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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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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행정구역 변천사
연일군
(延日郡,1895)
영일군
(迎日郡, 1914)
포항부/시
(浦項府/市, 1949)
포항시
(1995)
흥해군
(興海郡, 1895)
청하군
(淸河郡, 1895)
영일군
(1949)
장기군
(長鬐郡, 1895)

1.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3세기 진한 시절에는 연일읍 일대에 근기국(勤耆國)이 있었으며, 고구려가 한창 남진 정책을 펼칠 시기에는 우시군(于尸郡: 영덕군 영해면)에 속한 아혜현(阿兮縣: 청하면)까지 고구려 군현이었다. 신라 퇴화군(退火郡: 흥해읍)의 속현으로는 지답현(只沓縣: 장기면), 근오지현(斤烏支縣: 연일읍), 동잉음현(東仍音縣: 신광면), 화혜현(華兮縣: 기계면)[1], 비화현(比火縣: 경주시 안강읍), 음즙벌현(音汁伐縣: 경주시 안강읍 검단리)이 있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대인 757년에 퇴화군이 의창군(義昌郡)으로, 근오지현이 임정현(臨汀縣)으로, 지답현이 기립현(鬐立縣)으로, 동잉음현이 신광현(神光縣)으로, 화혜현이 기계현(杞溪縣)으로, 아혜현이 해아현으로, 비화현과 음즙화현이 안강현(安康縣)으로 개칭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흥해 지역을 미질부로 불렀으며, 호족 훤달이 지역을 쥐고 있었다.

2. 고려

고려 초에 임정현이 연일현으로, 의창군이 흥해군으로, 기립현이 장기현으로, 해아현이 청하현으로 개칭되었다. 신라~고려 대에 연일현의 치소는 오늘날의 오천읍에 있었다.[2]

연일(延日)과 영일(迎日)이라는 지명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는데, '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포항 호미곶과 울산 간절곶)이기도 하니 예로부터 포항 지역은 해돋이로 잘 알려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조선

파일:포항_1895년(2).png
황색 : 장기군(長鬐郡) 녹색 : 연일군(延日郡) 청색 : 흥해군(興海郡) 주황색 : 청하군(淸河郡) 자색 : 경주군(慶州郡) 홍색 : 영천군(永川郡)
1. 북면(北面)
2. 서면(西面)
3. 현내면(縣內面)
1. 북면(北面)
2. 읍내면(邑內面)
3. 서면(西面)
4. 남면(南面)
5. 동면(東面)
6. 고현면(古縣面)
7. 일월면(日月面)
8. 동해면(東海面)
1. 북상면(北上面)
2. 북하면(北下面)
3. 서부면(西部面)
4. 동부면(東部面)
5. 동하면(東下面)
6. 서면(西面)
7. 남면(南面)
8. 동상면(東上面)
1. 북면(北面)
2. 서면(西面)
3. 내북면(內北面)
4. 현내면(縣內面)
5. 남면(南面)
6. 동면(東面)
1. 죽장면(竹長面)
2. 기계면(杞溪面)
3. 신광면(神光面)
1. 자양면(紫陽面)(입암봉대)
1895년 23부제 실시때 놀랍게도 지금의 부산광역시 영역인 동래부에 속해 있었다![3][4] 물론 1년만에 23부제가 폐지되긴 했지만...

1906년 경주군 기계면과 신광면이 흥해군으로, 경주군 죽장면이 청하군으로, 경주군 양북면[5]과 양남면이 장기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때 죽장면은 죽남면과 죽북면으로 분할되었다.

한편 조선 시대에 '연일'과 '영일'이라는 이름은 자주 혼용되었다.

4. 일제강점기

파일:포항_1914년.png
황색 : 영일군(迎日郡)
1. 죽북면(竹北面)
2. 죽남면(竹南面)
3. 기계면(杞溪面)
4. 신광면(神光面)
5. 송라면(松羅面)
6. 청하면(淸河面)
7. 곡강면(曲江面)
8. 흥해면(興海面)
9. 달전면(達田面)
10. 포항면(浦項面)
11. 연일면(延日面)
12. 대송면(大松面)
13. 오천면(烏川面)
14. 동해면(東海面)
15. 창주면(滄洲面)
16. 봉산면(峯山面)
17. 장기면(長鬐面)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연일군, 흥해군, 청하군, 장기군을 연일의 이칭인 '영일'에서 따와 영일군으로 통합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일군 북면과 흥해군 동상면이 포항면으로 통합되었고, 1906년 경주군에서 장기군으로 편입되었던 양북면(현 경주시 양북면과 감포읍)과 양남면이 경주군으로 환원되었다.

1917년 포항면 일부를 형산면으로 분리하였다. 1931년 포항면이 포항읍으로 승격되었고, 1938년 분리되었던 형산면을 다시 포항읍에 편입하였다. 1934년 죽북면과 죽남면이 죽장면으로, 장기면과 봉산면이 지행면으로 통합되었다. 1942년 창주면이 구룡포읍으로 승격되었다.

5. 대한민국

1949년 8월 14일 포항읍이 포항부(府)로 승격되어 영일군에서 분리되었고, 승격한지 하루만에 포항시(市)로 개칭되었다.
파일:포항_1991년.png
백색 : 포항시(浦項市) 황색 : 영일군(迎日郡)
1. 포항시(浦項市) 1. 죽장면(竹長面)
2. 기북면(杞北面)
3. 기계면(杞溪面)
4. 신광면(神光面)
5. 송라면(松羅面)
6. 청하면(淸河面)
7. 흥해읍(興海邑)
8. 연일읍(延日邑)
9. 대송면(大松面)
10. 오천읍(烏川邑)
11. 동해면(東海面)
12. 대보면(大甫面)
13. 구룡포읍(九龍浦邑)
14. 장기면(長鬐面)
파일:포항시 구 휘장.svg
당시 사용된 포항시 휘장.
파일:영일군기.svg
당시 사용된 영일군 휘장. 해맞이 명소답게 붉은 원은 태양을 상징하고 흰색의 V자 모양은 해당 군의 지형을 취했다.

1956년 흥해면과 곡강면(현 흥해읍 곡강천 이북)이 의창면으로 통합되었다. 1957년 달전면이 의창면과 연일면에 분할 편입되었다. 1973년 의창면이 의창읍으로 승격되었다. 1970~80년대에 걸쳐 포항제철이 조성되면서 포항시와 맞닿아있는 연일, 대송, 오천 지역의 일부가 지속적으로 포항시에 편입되었다. 1980년 연일면이 연일읍으로, 오천면이 오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의창읍이 흥해읍으로 개칭되었고, 1986년 기계면 기북출장소와 구룡포읍 대보출장소가 각각 기북면과 대보면으로 분리되었다. 1991년 지행면을 장기면으로 환원하였다.
파일:포항시 CI(1995-2005).svg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사용한 포항시의 CI
파일:포항시 CI(2005-2009).svg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색상을 수정한 CI를 사용했다.

1995년 포항시와 영일군이 다시 통합됨과 동시에 남구북구가 설치되었고, 1998년과 2009년 두 번에 걸쳐 소규모 동의 통폐합이 있었다. 2010년 대보면이 호미곶면으로 개칭되었다.

[1] 삼국사기에는 이 지명이 모혜현(芼兮縣) 또는 화계(化雞)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음운 대응을 고려하면 '모(芼)'는 '화(華)'의 오탈자로 추정된다.[2]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오천읍 일대가 연일현의 옛 소재지란 뜻으로 '고현면(古縣面)'이라 불리고 있으며 --고을의 원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원동(현 원리)라는 지명도 존재한다.(원동은 고을 원이 아니라 오천서원이 있던 곳이라 원동이다. 원동 북쪽에서 포철공단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서원재, 원동과 인덕동에서 공단으로 이어지는 서원재로 모두 오천서원에서 유래한 명칭)[3] 23부제 실시 당시 동래부는 밀양군, 창녕군, 영산군을 제외한 현 경상남도 동부를 비롯하여 연일군, 흥해군, 경주군 등 현 경상북도 동부 일부 지역까지 관할하였다.[4] 다만 청하군 지역은 안동부에 소속되어 있었다.[5]경주시 문무대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