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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8:50:29

페르디난도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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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91801><colcolor=#FFF>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
페르디난도 4세
Ferdinando IV, Granduca di Toscana
파일:페르디난도 4세.jpg
이름 페르디난도 살바토레 마리아 주세페 조반 바티스타 프란체스코 루이지 곤차가 라파엘레 라니에리 젠나로
Ferdinando Salvatore Maria Giuseppe Giovan Battista Francesco Luigi Gonzaga Raffaele Ranieri Gennaro
출생 1835년 6월 10일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사망 1908년 1월 17일 (향년 72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잘츠부르크
재위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
1859년 7월 21일 ~ 1860년 3월 22일
배우자 작센의 안나 공주 (1856년 결혼 / 1859년 사망)
부르봉파르마의 알리시아 공녀 (1868년 결혼)
자녀 마리아 안토니에타, 레오폴트 페르디난트, 루이제, 요제프 페르디난트, 페터 페르디난트
아버지 레오폴도 2세
어머니 양시칠리아 왕국의 마리아 안토니아 공주
형제 마리아 이사벨라, 카를로 살바토레, 마리아 루이사, 루이지 살바토레, 조반니 네포무체노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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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디난도 4세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마지막 대공이다.

2. 생애

토스카나 대공국의 수도 피렌체에서 토스카나 대공 레오폴도 2세양시칠리아 왕국의 마리아 안토니아(Maria Antonia di Borbone-Due Sicilie 1814~1898)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59년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벌어지며 제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이 일어났고, 토스카나 주민들은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에 편승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을 내쫓았다. 4월 레오폴도 2세 일가는 본가인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으로 망명했고, 7월 21일 레오폴도 2세로부터 양위받아 토스카나 대공이 되었다. 그러나 페르디난도 4세는 영지 없는 군주에 불과했으며 토스카나 의회는 8월 16일 그를 폐위시켰다.

프랑스 제2제국이 오스트리아와 단독으로 맺은 빌라프란카[1] 강화 조약에서는 토스카나 대공국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페르디난도 4세는 토스카나 대공위를 주장했으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모두 페르디난도 4세의 복위를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토스카나 대공국은 모데나 레조 공국, 파르마 공국, 교황령볼로냐 지역과 함께 중앙이탈리아 연합주(Province Unite del Centro Italia)를 구성하여 1860년 3월 22일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에 합류했고, 본가인 오스트리아도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전으로 신생 이탈리아 왕국을 승인하고 베네토 지역을 양도하면서 페르디난도 4세의 복위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거주했으며 자신의 모든 권리를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양도했다. 페르디난도 4세 본인은 모든 직함을 사용할 수 있도록 예우받았으나 1866년 이후에 태어난 그의 후손들은 '오스트리아 대공/대공녀(Erzherzog/in von Österreich)' 칭호만 사용하며 1866년 이전에 태어난 자손들만 '토스카나의 왕자/공주(principe o principessa di Toscana)' 칭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법에 명시되었다. 1908년 잘츠부르크에서 사망했으며 유해는 카푸친 교회에 안장되었다.

3. 가족관계

1856년 11월 드레스덴에서 작센 왕국 국왕 요한의 딸 안나 마리아(Anna Maria von Sachsen 1836~1859)와 결혼했으나 안나 마리아는 둘째 딸을 낳다 사산하고 사망했다. 안나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얻은 유일한 딸 마리아 안토니에타는 수녀원장이 되었다.

1868년 1월 오스트리아의 란첸키르헨(Lanzenkirchen)에서 파르마 공작 카를로 3세의 차녀 부르봉파르마의 알리시아 공녀(Alice di Borbone-Parma 1849~1935)와 재혼했다. 알리시아와의 사이에서 레오폴트 페르디난트, 요제프 페르디난트, 페터 페르디난트[2], 루이제 등, 5남 5녀를 두었다.

부계 쪽으로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고종사촌이며, 모계 쪽으로는 이사벨 2세, 루이사 페르난다, 브라질의 이자베우 황태녀와 이종사촌이다.

[1] 현재 프랑스 알프마리팀 빌프랑슈쉬르메르.[2] 레오폴트 페르디난트는 자녀가 없었고, 둘째인 요제프 페르디난트는 귀천상혼을 해서 3남인 페터 페르디난트가 가문의 계승자가 되었다. 페터는 현재 합스부르-토스카나 가문의 계승자인 지기스몬도의 증조할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