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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18:54:47

페드로 카스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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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d91023>
페루 공화국 제63대 대통령
호세 페드로 카스티요 테로네스
José Pedro Castillo Terrones
파일:Pedro-Castillo.jpg
출생 <colcolor=#000000,#ececec>1969년 10월 19일 ([age(1969-10-19)]세)
페루 카하마르카
국적 페루 파일:페루 국기.svg
재임기간 제63대 페루 대통령
2021년 7월 28일 ~ 2022년 12월 7일
직업 노동운동가, 생태운동가, 교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베드로)
학력 세사르 바예호 대학교(학사)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1]
약력 페루는 할 수 있다 앙기아 시장 후보
페루 교사노동조합위원장
페루 63대 대통령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서명
1. 개요2. 생애
2.1. 빈농 가정 출신 교사, 교사 출신 정치인2.2. 대선 출마2.3. 생각도 못한 대역전2.4. 페루 대통령
3. 선거 이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90f6db799f792080917ae4d9403595bb66a5d96fw-800x533.jpg

페루의 빈농 가정 출신 교사, 노동운동가 출신 전 대통령. 빈농 출신이었으나 대역전으로 대통령에 자리에 오르면서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당선 당시와는 달라진 정치적 방향성과 부패로 소속 정당에서 출당되고 부패로 인해 야당들에게 탄핵 위기에 처하자 직전 소속 정당과 야당들, 의회를 상대로 친위 쿠데타까지 시도하다가 군대와 내각이 거부하면서 몰락하며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2. 생애

남미 최대의 금광산이 있지만 정작 페루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카하마르카에서 문맹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아홉 자녀 중 셋째다. 1980년대 빛나는 길과의 내전 당시 이들에 대항해서 싸웠지만 이걸 가지고 그가 단순히 반공주의자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빛나는 길은 마오주의 계열인데 그의 정치적 성향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가깝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마르크스-레닌주의 계열이였던 투팍 아마루 혁명 운동(MRTA)과 빛나는 길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교사로 활동했다.

2.1. 빈농 가정 출신 교사, 교사 출신 정치인

파일:PAF20210606258901055_P2.jpg

2002년 당시 여당 '페루는 할 수 있다' 소속으로 소도시 앙기아에서 시장직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카하마르카 지역당에서 쭉 활동해 왔으나 2016년 대선 겸 총선에서의 처참한 성적의 여파로 정당 등록이 취소되면서 정치와의 인연은 자연스레 멀어지는 듯 했다.[2][3]

그러던 2017년 교사들이 단체로 파업을 선언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카스티요는 이 사태를 직접 이끌면서 모두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파업은 "잠정" 중단되었으나, 모든 시위/파업이 으레 그렇듯이 장기화 됨에 따라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또 다른 파업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2.2. 대선 출마

2020년 코로나-19가 페루를 덮치기 시작하고, 전국이 락다운에 들어가면서 모든 학교들이 대면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최소 중진국이라도 되었던 다른 나라들은 그나마 온라인 수업을 시작할 수라도 있었지만, 후진국인 페루는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전자기기들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고, 그나마 처음에 수업용 전자기기를 제공해 주겠다던 우파 정부의 약속도 모조리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5년 경력의 교사로서 학생들을 쭉 가르치고 싶었던 카스티요는, 이러한 현실에 분노를 느끼고 차기 대선 출마를 시도한다.

10월 극좌 성향의 자유 페루 국민정당 후보로 출마할 것을 선언했으며, 당 내 경선에서 변호사 출신의 디나 볼루아르테블라디미르 세론 서기장과 맞붙게 되었다. 허나 세론은 당시 수감 중이었는데, 과거 위생 시설 운영 중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 등으로 2019년 징역 4년 5개월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고 있었으나, 막상 당권은 그대로 쥐고 있었다. 즉 빼도 박도 못 하는 옥중 출마였던 것. 당연히 선관위는 세론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고, 카스티요는 곧바로 자유 페루 국민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신에 세론은 제2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지만 유죄판결로 인해 당선이 무효가 되었다.

하지만 자유 페루 국민정당은 지지율이 턱 없이 낮은 원외 정당이었고, 무엇보다도 정당이 좌파~극좌 성향이었던 탓에, 한때 공산당과의 내전을 제대로 겪었던 페루에서 상당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세론 서기장도 일찍이 2016년 대선에 출마를 시도했지만, 인기가 너무 없어서, 행여나 등록이 취소될 것을 우려해 아예 선거에 불참했을 정도. 당연히 언론들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고, 여론조사 기관들도 결선투표 가상 시나리오에서 카스티요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4] 이 때만 해도 카스티요는 당선은커녕 1차에서 군소후보로 광탈해 정당의 존속 여부나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2.3. 생각도 못한 대역전

그런데... 그간 페루 정계를 쥐어잡고 있던 기득권들은 누가 집권하건 간에 온갖 실책만 거듭하다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났고, 그러고도 후에 대선 출마를 통해 복귀를 시도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대놓고 난립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유권자들이 이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중도우파 성향의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2018년에 사임하면서 그의 변화를 위한 페루인이 자진해산을 하면서 문제가 심화되었는데, 대통령직을 승계한 마르틴 비스카라는 무소속이되 좌파 ~ 중도우파의 지지를 받는 형태로 국정 운영을 하기 시작했지만 막상 구심점인 대통령이 무소속이었던 탓에 막상 정계에서 주도권을 쥘 만한 정당들이 없어졌고, 실제로 2020년 조기 총선에서도 중도좌파 ~ 우익 정당들이 난립하는 결과가 나왔던 것.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1년과 2016년에 두 번 출마한 게이코 후지모리독재자 부친의 후광을 바탕으로 서서히 재기하고 있었는데 극우 성향의 후지모리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자 온건좌파 유권자들을 비롯해 아예 일부 온건 보수 성향 유권자까지도 좌파 내지 극좌로 응집하는 맞수를 두었고 결국 1차 투표에서 18.92%를 득표해 예상을 뛰어넘는 1위를 기록해 그야말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 벌어지자 언론들은 이를 대서득필했고, 후지모리가 2위를 하면서, 유권자들이 기득권을 심판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도시와 농촌 간의 갈등이 이번 대선에서 표면화되었는데, 도시 지역은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의 손을 좀 더 들어준데 비해 농촌 지역은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를 크게 지지하면서 이변의 주역이 되었다.

이후 결선에 진출했고 여론조사도 앞서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치 경력이 풍부하고 이미 대선 재수까지 했던 후지모리를, 정치 경력이 사실상 전무한 교사가 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는 평이 많았다. 실제로 결선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여론조사 역시 차이가 줄어들더니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이기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당일 출구조사에서도 후지모리가 근소하게 1위를 했다.[5] 물론 누가 되더라도 향후 파장은 만만치 않을 듯하다.

그러나 결선 투표 개표 결과, 근소하게 후지모리를 이기고 있다! 개표 초반에는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에게 뒤졌으나, 이후 개표가 지연되었던 농촌 지역 표가 개표되기 시작하면서 득표율 차가 좁혀지기 시작하다가 개표 94.059% 상황에서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가 역전에 성공, 이후 리드를 조금씩 벌리면서 개표 종료 시점까지 우세를 지키고 있다.

다만, 득표율 격차가 워낙 적은데다가(0.5%p 차이) 상대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패배 승복을 거부하고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있어 실제 당선 확정까지는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선 확정 이후에도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은데, 소속 정당인 자유 페루 국민정당의 의석 수가 37석(28.5%)에 불과해 선거 결과에 불복 중인 게이코 후지모리와 민중의 힘이 이번 대선에서 자신에게 지지 의사를 표명한 중도우파 성향 정당들과 손을 잡고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건 현실이 되는데...

현지 시간으로 6월 9일, 리마에 있는 자유 페루 당사 앞에서 대선 승리를 선언했다.#
파일:E39Ta5LWYAAJFEk.jpg

6월 15일, 개표 완료 결과 8,835,970표(50.13%)를 득표해 8,791,730표(49.87%)를 득표한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를 44,058표(0.26%p) 차이로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게이코 후지모리가 여전히 증거 없이 부정선거 주장을 반복하며 승복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당국이 법적 문제를 심의하고 승자를 선언하는 데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개표 완료 후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새 시대가 시작됐다. 수백만 페루 국민이 존엄성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맞섰다"며 사실상의 '당선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43일만에 페루 선거심판원에서 게이코 후지모리의 재검표 요청 등을 최종 기각하면서 공식적으로 당선이 확정되었다. 게이코 후지모리 역시 결과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2.4. 페루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극좌 여당인 자유 페루의 초선 의원을 총리로 임명했고, 중도좌파 경제학자인 페드로 프랑케가 맡을 것으로 예상됐던 재무장관을 공석으로 남겨두자 30일, 증시가 6%나 떨어졌고 가치도 폭락했다.

이때문인지 뒤늦게나마 30일, 당초 약속대로 페드로 프랑케를 재무장관으로 임명해 증시와 통화가치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화이자사의 코미나티주 백신 대신 중국 시노팜사의 BBIBP-CorV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서, 중국에 우호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와 함께 중국에게 광산세 인상을 요구했다. 중국은 페루의 주 세수원인 구리의 최대 구매국으로 페루는 중국이 자국 내 광산을 채굴하는 대가로 광산세를 받고 있다.

한편 엑토르 베하르 외교장관이 과거 발언들로 인한 논란 속에 취임 19일 만에 물러났다.

그런데 취임 후 2개월만인 10월 6일, 급작스럽게 극좌 성향 기도 베이도 총리를 해임하는 등 전면 개각을 단행하면서 중도 방향으로 강력하게 급선회했다. 이에 대해 페루의 정치학자들 및 금융시장에서는 환영하고 있지만, 여당 자유 페루에선 대통령이 우리를 배신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달 뒤에는 대통령과 측근들의 불법적인 영향력 행사 의혹 등에 따라 보수 야권을 중심으로 '도덕적 무능'을 사유로 의회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고, 표결을 진행했지만 찬성 46표, 반대 76표, 기권 4표가 나오면서 탄핵 절차가 불발됐다.

그 뒤로 혁신 차원에서 개각을 몇 번 단행하였으나 정작 새롭게 사람 뽑아보니 전부 의혹들만 있고 전문성이 의심될 정도로 업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여 능력을 계속 의심받다보니 2022년 들어 지지율이 폭락하여 30%대에 머무르고 있다.

취임 8개월만에 총리만 네번째로 바뀌는 극심한 정치 혼란이 대선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고, 결국 2022년 3월 15일 페루 의회에서 야당들이 대통령에 대한 2번째 탄핵 절차를 개시했다.

게다가 3월 22일 이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 페루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이유는 경제 정책 실패와 연이은 식량과 에너지의 세계 물가의 상승으로 인한 생활고. 하지만 3월 28일, 페루 의회는 8시간을 넘긴 마라톤 토론 끝에 카스티요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찬성 55표, 반대 54표, 기권 19표로 다시 한번 부결시켰다.#

7월 2일, 자유 페루에서 그의 온건화된 경제 정책에 반발해 탈당하지 않는다면 제명 절차를 밟는다고 선언했고 카스티요는 얼마 후 자진탈당했다. #

2.4.1. 친위 쿠데타 시도와 몰락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2022년 페루 친위 쿠데타 시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9월에 부패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국가사업을 특정 업체에 밀어주는데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한 예비조사인데 페루 검찰은 특정 업체가 공공근로계약을 대거 따낸 경위와 관련하여, 대통령과 대통령 측근들의 조직적 개입 여부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12월 7일, 의회가 본회의를 열고 카스티요 대통령에 대한 3번째 탄핵안을 이번에는 의결정족수(87명)를 훨씬 넘긴 101명의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탄핵을 승인하였고 결국 탄핵되고 만다. 호세 윌리엄스 사파타 의장은 "카스티요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위헌적인 방식으로 그 기능을 방해하려 했다"며 대통령 탄핵 사유를 설명했다.#

사실 탄핵은 카스티요 대통령이 초래한 것인데 실제로 카스티요 대통령은 의회의 탄핵안 처리가 임박하자 계엄령의회 해산을 시도하고 임시정부 설치를 주장하는 등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군대는 물론 내각까지 호응하지 않아 실패하면서 스스로 자폭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여당까지 반발하게 되어 여당 의원들이 탄핵에 찬성하였기에 의회에서 압도적으로 탄핵안이 가결된 것이다. 카스티요는 탄핵되면서 대통령에서 파면되었고 쿠데타 혐의가 들통나 법원에서 체포영장까지 나오자 가족과 해외로 도주하려 했으나 경찰에 의해 체포당했다.#

대선 과정에서 빈농 출신의 깜짝 스타로 당선까지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영구집권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축출된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이후 페루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게 생겼다. 다만 일각에서는 카스티요 대통령이 국가경제 '최대 돈줄' 광물·석유·수력·가스·통신 등 주요 산업 국유화를 바탕으로 한 국가 주도 경제 개혁을 추진하려다 기득권의 역풍을 맞은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6]

카스티요의 탄핵과 체포 후 대통령직은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승계했다.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카스티요와 러닝메이트를 구성해 당선되었으나 2022년 1월 함께 자유 페루로부터 카스티요와 마찬가지로 중도화되었다는 이유로 출당된 바 있다.

그리고 멕시코로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에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망명에 대해 허용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페루 정부에서 멕시코 대사를 초치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12월 9일, 카스티요 전 대통령 변호인측에서 현재 구속이 부당하다며 석방을 요청하였으나 리마 제2 헌법재판소에서 기각했다. 또한 사안의 중대성을 위해 오히려 구속기한을 1주일 연장하였다. 페루 현지 매체에 따르면 페루 헌법에 따라 내란 및 폭동 혐의로 최대 2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

한편 옥중 편지를 통해 자신이 여전히 대통령이고 현재 권력을 찬탈당한 상태라고 주장하면서, 탄핵 반대 시위를 벌이는 지지자들을 독려하였다. 한편 AP통신은 “카스티요의 정치적 거점이었던 농촌 지역에서 특히 탄핵 반대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페루 대법원이 도주 위험이 있다면서 그를 계속 구금해야 한다는 검찰의 요구를 받아들여 구금 기간을 2024년 6월까지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36개월로 늘어났다.#

에보 모랄레스#, 구스타보 페트로#,미겔 디아스카넬#, 오브라도르# 등 중남미의 주요 좌익 정치인들이 트위터에서 페드로 카스티요를 지지했다.

카스티요 가족들은 멕시코로 망명했다. 이에 페루 정부는 반발하며 멕시코 대사를 추방했다.#

3.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1차 득표수 (득표율) 2차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2 앙기아 시장 선거 앙기아 104 (8.82%) - 낙선 (4위)
2021 제63대 페루 대통령 선거 페루
2,724,752 (18.92%) 8,836,380 (50.13%) 당선 (1위) 초선[7]

4. 여담


[1] 좌파정당 자유 페루 소속이었으나 당 지도부가 그의 중도화된 경제 정책에 반발해 출당되었다.[2] 해당 정당은 알레한드로 톨레도 전 대통령의 정당으로 해당 2001년 총대선에서 집권해서 여당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2006년 총대선에서 패배했고 이후 2011년 총대선에서는 나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듯 싶었지만 톨레도가 퇴물 정치인 신세가 되면서, 결국 2016년 대선 겸 총선에서 한때 여당이 맞나 싶을 정도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해 광탈했다. 득표율이 5%에 미달했는데, 문제는 페루 선거법상 그 어떤 선거에서라도 득표율이 5%에 미달하면 정당 등록이 취소된다. 이런 조항은 과거 대한민국에도 있었으나, 2014년 위헌 판결을 받아 사라졌다.[3] 참고로 이 시절 카스티요는 엄연한 학교 교사였는데, 이 신분으로 정치 활동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문제가 되었겠지만, 페루에서는 이게 합법이다. 참고로 성향은 중도쪽이었다.[4] 이때는 오히려 조지 포사이스, 요니 레스카노 등 중도우파 성향 후보들이 서로 맞붙을 것으로 보아, 포사이스-레스카노 가상 대결 등을 재는 경우가 많았다. 좌파 후보로는 베로니카 멘도사 정도가 언급되는 정도였는데 베로니커 멘도사도 2016년 대선에서 3위를 기록한 연유때문에 인지도는 있는 정치인이었지만 분당 및 2020년 총선에서의 부진으로 입지가 약했다. 후보들이 위낙에 난립하다보니 진출가능성은 있기는하다며 공격받았기는 했지만[5] 다만 결과와는 무관하게 모두에게 충공깽 그 자체인데, 중도층들에게는 극좌와 극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문제는 페루는 의무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싫다고 투표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럼에도 접전 양상이 벌어진 것을 보면, 찍을 후보가 없으니까 아예 아무나 투표하는, 의무투표제의 단점을 보여준 선거라고도 할 수 있다.[6] 멕시코,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 주변 남미국가들 역시 카스티요를 우익 의회쿠데타로 축출된 것으로 간주하고 카스티요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7] 2022. 7. 2.
자유 페루
탈당
2022. 12. 7. 탄핵으로 인한 대통령직 파면
[8] 국내에는 '프레지던트 메이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상영됐다.[9] 포르투갈 출신의 미국 배우 조아큄 드 알메이다가 연기했다.[10] 참고로 해당 선거는 2002년을 무대로 삼고 있는데 당시 볼리비아는 선거제도가 1차에서는 직선제지만 결선투표는 간선제였기 때문에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