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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17:31:12

파벨 네드베드

파벨 네드베트에서 넘어옴
파벨 네드베드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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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이르지 네메츠
(1996~2000)
파벨 네드베드
(2000~2006)
토마시 갈라세크
(200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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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네드베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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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체코의 국영방송 체코 텔레비전 방송공사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위대한 체코인 100명을 선정했다.
TOP 10
1위2위3위4위5위
카렐 4세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 바츨라프 하벨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얀 지슈카
6위7위8위9위10위
얀 베리흐 얀 후스 안토닌 드보르자크 카렐 차펙 보제나 넴초바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에밀 자토펙 카렐 고트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 프란티셰크 팔라츠키
16위17위18위19위20위
오타카르 2세 성 바츨라프 바츨라프 클라우스 야로슬라프 헤이로프스키 아네슈카 체스카
21위22위23위24위25위
토마시 바타 에드바르트 베네시 오토 비흐테흘레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 즈데네크 스베라크
26위27위28위29위30위
에미 데스틴 야로미르 야그르 마리아 테레지아 카렐 크릴 밀로스 포먼
31위32위33위34위35위
블라스타 부리안 로만 셰브렐레 이반 흘린카 카렐 하블리체크 보로프스키 다니엘 란다
36위37위38위39위40위
밀라다 호라코바 블라디미르 멘식 야로슬라프 하셰크 알폰스 무하 얀 에반겔리스타 푸르키녜
41위42위43위44위45위
파벨 네드베드 얀 얀스키 프란티셰크 크리지크 얀 젤레즈니 얀 팔라흐
46위47위48위49위50위
베라 차슬라프스카 레오시 야나체크 알로이스 이라세크 야로미르 노하비차 얀 마사리크
51위52위53위54위55위
보후밀 흐라발 얀 네루다 요세프 융만 그레고어 멘델 프란츠 카프카
56위57위58위59위60위
프란티셰크 토마셰크 스바티 보이테흐 요제프 비찬 요세프 카예탄 틸 루시에 빌라
61위62위63위64위65위
카렐 히네크 마하 스바타 루드밀라 볼레슬라프 볼리프카 루돌프 2세 요세프 도브로프스키
66위67위68위69위70위
요세프 라다 루돌프 흐루신스키 바츨라프 2세 마들렌느 올브라이트 아네타 랑게로바
71위72위73위74위75위
오타카르 1세 루드비크 스보보다 도미니크 하셰크 얀 루쳄부르스키 밀란 바로시
76위77위78위79위80위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 스바타 즈디슬라바 야로슬라프 포글라르 라디슬라프 스몰랴크 올가 하브로바
81위82위83위84위85위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헬레나 루치지코바 파벨 티그리드 엘리슈카 프르제미슬로브나 밀란 쿤데라
86위87위88위89위90위
블라디미르 레메크 볼레슬라프 1세 마그달레나 도브로밀라 레티고바 미콜라시 알레시 에밀 홀룹
91위92위93위94위95위
프란티셰크 파이틀 클레멘트 고트발트 즈데넥 마테 조지 보스코벡 마르타 쿠비소바
96위97위98위99위100위
이르지나 보흐달로바 밀로슬라프 지메크 지그문트 프로이트 사모 밀로시 제만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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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축구인
파일:1679903089773_f9a414.jpg
이름 파벨 네드베드[1]
Pavel Nedvěd
출생 1972년 8월 30일 ([age(1972-08-30)]세)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헤프[2]
국적
[[체코|]][[틀:국기|]][[틀:국기|]]
|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92kg[3]
주발 오른발 (양발)
직업 축구 선수 (윙어, 미드필더[4][5] / 은퇴)
축구 경영인
등번호 SS 라치오 - 18번
유벤투스 FC - 11번
소속 선수 TJ 스칼나 (1977~1985 / 유스)
RH 헤프 (1985~1986 / 유스)
TJ 슈코다 플젠 (1986~1990 / 유스)
VTJ 타보르 (1990 / 유스)
FK 두클라 프라하 (1990~1991 / 유스)
FK 두클라 프라하 (1991~1992)
AC 스파르타 프라하 (1992~1996)
SS 라치오 (1996~2001)
유벤투스 FC (2001~2009)
FK 스칼나 (2018)[6]
경영 유벤투스 FC (2012~2015 / 기술 이사)
유벤투스 FC (2015~2023 / 부회장)
국가대표 91경기 18골 (체코 / 1994~2006)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3. 은퇴 후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논란 및 사건사고7. 여담
7.1. 남자를 울리던 남자
8. 네드베드에 대한 말, 말, 말

[clearfix]

1. 개요

체코의 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윙어미드필더였으며 애칭은 네디. 엄청난 활동량과 날카로운 크로스, 대포알 슈팅으로 유명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파벨 네드베드/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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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가대표

네드베드는 유로 1996에서 말 그대로 미친 듯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약팀이라고 평가받던 체코를 유로 결승전 무대까지 끌고 간 것. 독일과의 개막전에서 공격적인 부분의 결함을 드러냈지만, 수비적인 부분에서 맹활약했고, 이탈리아와의 2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다.

네드베드는 경고누적으로 8강 포르투갈전에 결장했으나, 체코는 4강 진출에 성공했고, 4강전에서 네드베드는 승부차기 때 2번째 키커로 나와 성공시켰고, 결국 프랑스를 물리치고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올리버 비어호프에게 골든골을 허용해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유로 2004에서 네드베드는 골은 넣지 못했지만 밀란 바로시, 얀 콜러와 합을 맞추며 맹활약한다.

체코는 라트비아네덜란드를 힘겹게 잡아냈으며 독일과의 최종전에서는 네드베드를 비롯한 9명의 선수가 휴식을 취했음에도 2:1로 승리하며 8강 진출에 성공한다.

체코는 덴마크를 3:0으로 대파했지만, 4강전에서 그리스에게 연장 혈투 끝에 패한다. 전반전에 부상으로 네드베드가 교체된 이후 체코는 미드필더에서부터 힘을 잃어갔으며 결국 그리스의 한방으로 인해 패배한다. 네드베드가 계속 뛰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 유로 2004 당시 네드베드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리고 유로 2004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유로 2004 이후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으나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네덜란드에 밀려 2위로 직행을 하지 못한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고 그동안 네드베드가 없는 체코 대표팀은 이전만 못한 공격력으로 부진하자 매번 네드베드의 복귀를 당시 체코 축구협회와 카렐 부뤼크너 감독 팬들까지 복귀를 원했지만 그때마다 네드베드는 고사했지만 최종적으로 노르웨이 와의 플레이오프로 월드컵 진출 티켓이 걸려있자 조국을 위해 한시적으로 복귀를 선언했고 노르웨이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과 2차전 모두 출장하면서 맹활약 끝에 노르웨이를 두번 모두 1:0으로 제압하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슬로바키아와 분리후 처음 출전권을 획득하였고 네드베드의 공로가 굉장히 컸다. 네드베드는 플레이오프 후로 월드컵 진출권을 획득했으니 다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지만 월드컵 티켓을 획득했기에 이제는 월드컵 출전까지 요구했고 네드베드 또한 월드컵 본선 경험이 없기에 마침내 2006 독일 월드컵 출전을 선언하였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미국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나 이후 가나, 이탈리아에게 모두 0:2로 패하며 1승 2패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7]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난 직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유로 2008이 다가오자 국가대표팀 복귀를 요청받았지만 거절하였다.

3.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전향하지 않고, 유벤투스에서 보드진으로 활동 중이다.[8] 2015년 10월 23일에 유벤투스 부회장직에 올랐다.

그런데 2017년 9월 22일 그는 자국의 아마추어 팀 FK 스칼나와 현역 계약을 했다! 이 팀에는 자신의 아들이 현역으로 선수 생활을 하고있다.

하지만 네드베드는 유벤투스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구단도 이 부분을 알고 출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계약 후 경기에서 뛴 적은 없다.

2023년 플루스발렌차 관련 재판 시작 후 보드진 전원과 함께 무죄를 주장하며 부회장직에서 자진사퇴 하였으며 1심 무죄, 2심에서 8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항소하여 최종적으로 징계가 취소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어렸을 때부터 노력의 화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컸으며, 원래 오른발잡이였으나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 코치가 질릴 정도로 미친 듯이 노력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동시에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인해 집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연습장[9]을 뛰어서 다니다 보니 엄청난 체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도 유명한 백그라운드 스토리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유벤투스가 지네딘 지단을 보내고 그의 공백을 전혀 느끼지 못 하게 했던 최고의 선수.[10] 물론 테크닉과 슈팅, 패스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긴 했지만 전임자인 지단이나 같이 뛰었던 판타지스타 델 피에로 등과 비교한다면 천재적인 테크닉이나 예상 불가능한 패스 능력보다는 강인한 체력과 뛰어난 축구 지능, 지칠줄 모르는 활동량과 강력한 킥력 그리고 헤더 능력까지 갖췄던 굳이 비유하자면 박스 투 박스 타입에 가까웠던 선수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박지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타입이다. 물론 네드베드가 박지성의 상위호환.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양발잡이라면 정말 성가시기 그지없는 타입인데, 그걸로 끝이 아니고 경기 다 끝나가는 시점 다들 혀 빼물고 늘어지려는 시간대에 이르러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경기장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네드베드를 상대하는 입장이 되어 보면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네드베드는 박지성이 두 개의 심장이라 불리기 이전에 이미 두 개의 심장, 세 개의 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선수다.

분명 골키퍼 바로 앞까지 내려와서 윙어의 드리블 돌파를 차단하며 수비가담을 하고 있던 선수가 1분도 지나기 전에 크로스를 올리고 있거나 반대로 상대 진영 골 포스트 앞에서 헤딩 경합을 하고 있으니 상대팀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 공격 상황에서도 상대 수비진을 혼돈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 오른쪽에서 오른발로 크로스 올리던 선수가 잠깐 카메라 돌아간 사이 왼쪽에서 나타나 크로스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미친 활동량을 자랑하는 선수가 테크닉까지 월드클래스였다. 그의 이런 미친 활동량에 수비들이 지쳐 나가떨어져 마크에 실패하면 곧바로 중앙으로 파고들어 특유의 정밀하면서도 대포알 같은 중거리슛을 때리던 선수다. 그는 당대 지단, 베르캄프 등과 함께 퍼스트 터치와 볼 트래핑에 있어 정상급이었으며[11] 네드베드의 크로스 역시 피구, 베컴, 긱스 등 당대 내로라하는 윙어들과 함께 최정상급이었고 델 피에로와 함께 프리킥을 번갈아 찰 정도로 킥력 역시 세리에 A를 넘어 세계 최고를 논했다. 단순히 킥력만 좋은게 아니라 웬만한 스트라이커 못지 않은 다양한 슈팅을 구사하곤 했다. 약간 뒤로 빠진 공을 그대로 터닝슛으로 때려넣는다던가 조금 먼 공에는 기술적으로 슬라이딩 슈팅을 넣는다던가 하는데 이걸 양발로 구사하는 수준. 이런 선수가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있고 부드러운 드리블로 수비진을 헤집는다.

네드베드의 주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지만 유벤투스에서 윙어로 출전했을 때는 중앙 미드필더 시절만큼 아주 훌륭했던 것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훌륭했던 선수였고 윙어임에도 절륜한 수비력까지 갖춘 선수였다. 지단과 함께 축구라는 종목에서 필요한 모든 스킬을 완성형으로 구사했던 선수였으며 이런 월등한 능력으로 윙어들의 무덤이라는 세리에 A에서 '측면의 지배자[12]'라고 불리며 상대팀 사이드라인을 초토화시켰다.[13]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걸 정말 효율적으로, 그리고 온몸을 불살라 가며 사용할 줄 아는 남자였다. 30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은퇴하는 시즌에까지 그 플레이스타일은 변함이 없었으니 이건 뭐... 네드베드는 36세의 나이로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12.66km를 뛰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활약한 모든 선수들 중 가장 많이 뛴 선수로 랭크되었다.[14]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논란 및 사건사고

6.1.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관련 논란

2019년 7월 26일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친선경기가 열러 선수단에 따라 방한했다. 하지만 사실상 친선경기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초도 출전하지 않으면서 유벤투스가 계약을 위반한 셈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관중석에 있던 네드베드는 대행사의 대표 로빈 장이 항의하자 "코치도 선수도 그 계약을 알지만 선수가 그냥 뛰기 싫단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다는 게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네드베드는 호날두가 사인회도 멋대로 불참했을 때 부폰 등 일부 선수와 함께 내려와 본인이 대신 사인을 해줬고, 항의했을 당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는 등 할 수 있는건 정말 다 했다. 서호정 기자 역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네드베드가 호텔에서부터 엉망진창이 된 상황을 풀기 위해 유일하게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뛰어줬는데 역부족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만약 주최 측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유벤투스의 레전드, 그것도 델피에로 수준으로 언터쳐블인 올타임 레전드이자 한 클럽의 부회장이 이적한지 고작 2년된 선수 한명의 변심도 컨트롤 못하고 휘둘릴 정도로 구단의 기강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이 되므로 국내 유벤투스 팬덤 역시 애초에 이 모든 사단을 만들어서 클럽을 욕먹인 호날두에게 다시 한번 크게 분노하고 있다. 더페스타 측의 언급에 따르면 뒤늦게 연락을 받은 유벤투스 관계자는 이 일에 대해 구단의 수치라며 사과하고 29일에 긴급 회의를 소집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 시간을 단축하자는 무례한 주장을 한 사람이 바로 본인인 게 밝혀져 다시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앞서 유벤투스는 지각에도 모자라 경기시간과 하프타임 시간을 단축시키자는 제안을 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경기를 취소할수도 있다고 사실상의 협박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 갑질 논란이 일어났었는데 그 제안을 한 당사자가 바로 네드베드라는 것이다. 연맹은 이에 공식항의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선수 하나가 물을 흐렸다고만 생각했던 국내 팬덤은 이젠 레전드까지 말썽이냐며 한탄하는 중이며 국내 유벤투스 팬사이트인 유베당사에서도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이에 실망한 팬들이 네드베드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줬다고 증언한 서호정 기자를 비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17]

그러나 이 사실은 시간이 지나며 로빈장의 당시 발언 등을 토대로 발췌된 기사로 다소 악의적인 날조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로빈장은 사건 당시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잘못을 상황을 외면하고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왔기에 이번에도 그저 네드베드에 대한 책임전가성 발언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실제로 네드베드 협박설은 근거도 부족하고 서호정 기자가 언급했듯이 사건 당시 네드베드가 팬들을 응대하는 자세나 사태 해결을 위해 보여준 태도와도 상당히 달랐기에 호날두와 달리 사건 초기 만큼의 비난은 받지 않고있다. 아직까지 호날두를 싫어하는 분위기가 매우 짙은 유벤투스 팬들 사이에서도 네드베드는 까이지 않고 있고 네드베드로 인해 탈덕을 선언한 사람도 매우 적다. 유벤투스 팬들 외의 다른 축구팬들도 호날두 노쇼 사태는 로빈장의 뻥카로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서 네드베드의 협박설도 뻥카로 여기고 있다.

7. 여담

파일:attachment/파벨 네드베드/nedveddal.jpg
파일:external/imgs.idnes.cz/A040120_PET_NEDVED5_V.jpg
실제 네드베드의 딸 이바나와 아들 파벨의 모습이다.
파일:external/nimg.sulekha.com/italy-soccer-serie-a-2009-5-31-12-53-10.jpg
2009년 네드베드의 은퇴식때 찍힌 그녀의 모습

파일:a3oxwlR.jpg
파일:F7MiV0D.jpg파일:ivananedved.jpg
현재의 모습. 성인이 되며 그녀의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7.1. 남자를 울리던 남자

파일:external/m.cdn.blog.hu/nedved.jpg
이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22]

2002-03 챔피언스리그 4강전 vs 레알 마드리드. 지단 vs 네드베드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이 맞대결에서 승리한 팀은 유벤투스였으나 네드베드는 기뻐할 수 없었다. 팀의 승리를 확정짓는 쐐기골까지 박아넣었음에도 한순간의 실수로 경고를 받아 경고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고, 그가 빠진 유벤투스는 결승전에서 AC 밀란에게 승부차기까지 간 접전 끝에 패배하고 만다. 선수 본인도, 팬들도 "그 때 네드베드만 있었다면…"라고 하며 몹시도 아쉬워했고, 위의 사진처럼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던 네드베드의 모습을 본 팬들은…네드베드도 울고, 팬들도 울고, 하늘도 울고, 나도 울었다.[23]

이 일 후에도 비슷한 일이 또다시 일어났는데, 유로 2004에서 체코가 4강까지 전승으로 올라갔음에도 이번에는 준결승 도중 부상으로 교체아웃되었고[24] 그가 빠진 체코는 또다시 연장까지 갔다가 패배하고 만다.[25]

한편, 유로 2004 이후 체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체코가 유럽 예선에서 원체 죽을 쑤자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복귀, 플레이오프 끝에 간신히 체코를 본선까지 이끌었으나 체코미국전에서 3:0으로 승리한 후 가나이탈리아전에서 2연패를 당해 16강 능선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필드를 종횡무진하던 네드베드의 모습은 수많은 축구팬들의 눈물을 뿌리게 만들었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 됐다. 대회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으며, 유로 2008이 다가오자 체코 국가대표팀 복귀를 요청받았지만 거절하였다.

네드베드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흘륭한 멘탈인데, 위에 상술한 대로 칼치오폴리 사건이 터진 직후에도 팀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오히려 떠나가던 동료들을 붙잡으려까지 하며 팀을 지켰던 모습에 반해버린 축구팬들이 부지기수다. 경기가 끝나가던 말던 방금 시작한 것처럼 미친 듯 뛰어다니던 그의 플레이 스타일도 그런 멘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은퇴한 후에도 유벤투스에서 프런트로 일하고 있다.#

8. 네드베드에 대한 말, 말, 말

나는 매일 지옥과 같은 트레이닝을 요구했다. 베론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파리처럼 쓰러져나갈 때, 오직 그만이 운동장에 서 있었다.
- 스벤예란 에릭손
현대 축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선수는 다름아닌 네드베드이다. 그와 같은 선수는 없다. 그는 절대 멈추는 법이 없다.
- 마르첼로 리피
그는 내가 만나본 선수 중에 가장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네드베드는 팀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한 시간 동안 혼자서 사이클을 탔고, 훈련이 끝나면 다시 한 시간 동안 혼자서 조깅을 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로 여간해서는 중간에 나오는 경우가 없었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이제 최고의 미드필더다'라고 말하는 기자들에게) 네드베드가 은퇴했던가요?
- 카카
어렸을 때 나의 우상은 네드베드였습니다.
- 파비오 미레티


[1] /ˈpavɛl ˈnɛdvjɛt/, 실제 발음은 '네드비에트'에 가깝다.[2] Cheb[3] 현역 70~80kg[4] 측면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5] 유벤투스에서 주로 4-4-2 포메이션에서 왼쪽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로, 엄청난 활동량과 뛰어난 킥력, 패스, 크로스 등 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다만 자신의 최전성기이던 라치오 시절에는 왼쪽 사이드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겸하여 뛰었고, 이후 유벤투스 소속으로는 왼쪽 사이드 미드필더로 완전히 정착하여 뛰었다. 커리어면에서나 인지도 면에서는 유벤투스 시절이 라치오보다 낫긴 하지만 본인의 신체적 능력을 비롯한 능력이 가장 뛰어나던 시절은 라치오라고 할 수 있다.[6] 자신의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스칼나의 창단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아들 파벨 주니어(Pavel Jr.)와 함께 1경기 한정 계약했다.[7] 가나와의 2차전에서 동점골을 넣었으나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 축구팬들은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당시 반박 하기도 했었다. 이후 조별 리그 3차전 이탈리아전에서 고군분투하며 몇차례 슛팅도 했지만 부폰의 선방에 막힌다.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무대였고 이후 국가대표를 은퇴하게 되는데 이후 체코 대표팀은 하락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8] 비슷한 케이스로는 에드윈 반 데 사르가 있다.[9] 연습도 항상 연습장의 불이 꺼질 때까지 했다고 한다.[10] 그렇지만 두 선수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지단이 그야말로 아트사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우아한 축구를 보여줬다면 네드베드는 숫사자처럼 온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휘젓고 다니던 스타일이다.[11] 다만 둘의 화려한 퍼스트 터치 능력과는 달리 네드베드는 정석적이고 안정적인 편이었다.[12] 세리에의 팀들은 전형적인 형태의 윙어를 선호하지 않는다. 측면은 풀백이나 윙백들에게 전임시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이탈리아 선수들 중 파올로 말디니, 자친토 파케티, 잔루카 잠브로타, 안토니오 카브리니, 클라우디오 젠틸레, 주세페 베르고미 등 기라성같은 풀백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또한 주로 전통적으로 왼쪽 풀백은 공격적이고, 오른쪽 풀백이 수비적인 경향이 더 강하다.[13] 사실 전통적인 윙어라고 하기보단 하프윙이나 왼쪽 측면에 배치된 프리롤 플레이 메이커에 가까웠다. 라치오 시절엔 대부분 중앙에 배치되었으나 유벤투스 이적 이후엔 대부분 4-4-2의 왼쪽에 배치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신체적 전성기가 지나가는 시점인 30대에도 윙어들의 무덤 세리에에서 탑클래스 윙어로 뛰는 선수였다는 것이다.[14] 미친 듯한 활동량을 기반으로 경기장을 갈아엎는다는 점에서 박지성과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하다는 말이 있으며, 혹자는 박지성의 궁극적인 진화형이 네드베드라는 평을 내린다. 그래서 한때 디씨등지에서 (반은 비아냥으로) 박지성을 박드베드라 불렀고 심지어 네드베드에 박지성을 합성한 박드베드 짤방도 돌아다녔다. 결과적으로 박지성은 부상 이후 PSV 시절 보여줬던 공격력 포텐셜이 감소한 대신 네드베드 같은 팀의 에이스를 지원하고 시너지를 끌어올리는데 특화된 수비형 윙어로 정착했다.[15] 2군[16] Zlatý míč(황금공)[17] 다만 서호정 기자가 이후 해명문을 올려 설명하길, 자신이 호텔에서 목격했던 팬들을 응대하는 네드베드의 모습만큼은 진심이 느껴졌었다고 한다.[18] 네드베드 본인은 SNS를 하지 않는다.[19] 세바스찬 코르다의 아버지는 체코 국적의 테니스 레전드 페트르 코르다 이다.[20] 2004년에 폐지되었다.[21] 김천 상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22] 여담이지만 주심은 2002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의 미국전과 독일전에서 주심을 보았던 위르스 마이어이다. 2002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이기지 못했던 경기들의 주심을 보았다는 이유로 죄 없이 욕을 꽤 먹었었다.[23] ...라고 쓰여있어서 네드베드가 굉장히 억울하게 경고를 받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백히 경고당할만한 백태클이였다. 네드베드 본인이 카드관리를 못한 것일뿐. 사진만 봐도 어필할 시도도 안하는걸 보면...[24] 교체 후 벤치에서 낙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25] 골든골 제도를 폐기하는 과도기적 조치였던 실버골 제도의 피해자가 되고말았다. 연장 전반 종료 10초 전 골을 내주며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