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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7 11:17:03

디르크 카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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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웨슬리 스네이더 134회 2003.4.30 2018.9.6
2 에드윈 반 데 사르 130회 1995.6.7 2008.10.15
3 프랑크 더부르 112회 1990.9.26 2004.6.26
4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109회 2001.10.6 2013.11.19
5 데일리 블린트 108회 2013.2.13 2024.7.2
6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 106회 1996.8.31 2010.7.11
7 디르크 카윗 104회 2004.9.3 2014.9.4
8 로빈 반 페르시 102회 2005.6.4 2017.8.31
9 필립 코쿠 101회 1996.4.24 2006.6.25
}}}}}}}}}}}}}}} ||
<colbgcolor=#55367c><colcolor=#fff> K 베이르스홋 VA
Koninklijke Beerschot Voetbalclub Antwerpen
<nopad>파일:lr220602ab22154.jpg
이름 디르크 카윗
Dirk Kuyt
출생 1980년 7월 22일 ([age(1980-07-22)]세)
네덜란드 캇베이크
국적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3cm / 체중 77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윙어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55367c><colcolor=#fff> 유스 퀵 보이스 (1985~1998)
프로 퀵 보이스 (1998)
FC 위트레흐트 (1998~2003)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3~2006)
리버풀 FC (2006~2012)
페네르바흐체 SK (2012~2015)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15~2017)
퀵 보이스 (2018)
감독 퀵 보이스 (2017~2018 / 수석 코치)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U19 (2018~2022)
ADO 덴하흐 (2022)
K 베이르스홋 VA (2023~ )
국가대표 104경기 24골 (네덜란드 / 2004~2014)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감독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7.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네덜란드축구 선수 출신 감독.

에레디비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리버풀로 이적하여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동시에 가장 과소평가 받은 선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활동량과 높은 수비 기여도, 이타적인 플레이, 높은 득점력이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98년 18세의 나이에 위트레흐트에서 프로 데뷔를 치렀고 5년 동안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마지막 시즌에만 34경기 20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당시에는 상당히 잘 나가던 페예노르트로 입성, 전 경기 출장에 20골을 기록하여 화려한 데뷔 시즌을 장식했다.

다음 시즌에는 살로몬 칼루와 함께 투톱을 형성,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며 04/05 시즌에만 29골을 터뜨리며 생애 첫 득점왕의 영예를 안게 된다. 이러한 활약에 단숨에 수많은 명문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뛰어난 충성심을 보이며 05-06 시즌까지 팀에 잔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팀은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에인트호번에 번번히 밀려 리그 우승을 놓쳤다.

그러다 2006년 8월 라파엘 베니테스의 러브콜을 받고 1,500만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리버풀로 이적했다.

첫 시즌 리버풀에서, 이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긴 한데, 득점력이 줄었다. 활동량과 팀 플레이는 여전히 톱클래스를 달리지만 유럽 리그에서도 가장 거친 몸싸움과 강한 압박이 이루어지는 PL 팀들의 수비진에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러한 면이 득점력의 감소로 이어졌다.[1] 게다가 풀타임 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첼시 FC로 이적하여 서브 및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는 살로몬 칼루보다 득점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상당히 안타깝다.[2]

결국 토레스가 온 07-08 시즌부터는 4-3-3 혹은 4-2-3-1[3]으로 전술을 바꾸면서 카윗은 스트라이커에서 오른쪽 윙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매 시즌마다 자리를 잡지 못 하고 주전이 바뀌는 왼쪽과[4] 달리 오른쪽의 카윗은 넓은 활동량과 이타적인 플레이로 리버풀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수비진의 강한 압박에 고전한다지만 오히려 카윗이야말로 필드의 좌우를 종횡무진 누벼대며 피지컬로 미친 듯이 비벼대고, 공을 탈취하고, 태클이나 반칙 한 번 더 하고, 공을 연계하며 상대편에게는 울화통을 아군에게는 사기를 선사하는 멋진 플레이를 기복없이 보여주고 있다. 리버풀에 디르크 카윗이 있다면 맨유에는 박지성이 있다. 매우 흡사한 역할과 플레이를 보여준다.[5]

또한 득점력이 떨어진다 어쩐다 하지만 첫시즌을 제외하면 윙포워드로 많은 시간을 뛰었고 네덜란드 시절의 폭발적인 득점력과 기대치에 못 미쳐서 그렇지 286경기 71골이라는 윙포워드로서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마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기복없는 꾸준한 모습과 필요할 때 한 방으로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줬다.

10-11 시즌 부진했던 리버풀이 맨유와 경기를 가졌을 때 모두가 맨유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카윗의 해트트릭으로 리버풀이 3:1로 이겨버렸다.

2012년 6월, 페네르바흐체로의 이적이 결정되었다. 이적 조항에 따라 이적료는 단돈 £1M이며, 리버풀 팬덤은 브렌던 로저스 감독의 부임 직후 터진 이 뉴스로 충격에 빠졌다.[6]

페네르바흐체에서는 모우사 소우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UEFA 유로파 리그에서도 팀의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데 한몫했다. 최종 기록은 리그 31경기 8골.

2013-14 시즌에도 모우사 소우, 에마누엘 에메니케와 함께 페네르바체의 득점을 책임지며 리그 31경기 12골을 기록했으며 2014-15 시즌에는 리그 32경기 8골을 넣었다. 통산 95경기 28골. 유럽대항전과 컵대회 기록을 합치면 130경기 37골이다.

2015년 4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올 시즌으로 페네르바체 생활을 마감하고 다음 시즌에는 페예노르트로 귀환함을 알렸다. 2016년 2월 21일 로다전에서 페예노르트 통산 100호골을 달성했다. 2월 28일 위트레흐트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면서 1959/60 시즌의 렌스트라(39세), 빌커스(36세)에 이어 에레디비시 사상 세번째 최고령 15골 득점자(35세 221일) 기록을 세우고 리그 득점 3위를 달리고 있다. 최종 기록은 리그 32경기 19골.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

파일:Kuyt Feyenoord Last season.gif
2017년 5월 14일, 2016-17 시즌 마지막 라운드인 헤라클레스 알메로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자신의 조국에서 첫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동시에 시즌을 12골로 마무리하며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도 성공했다.

시즌 최종전 승리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팀을 18년만에 우승으로 이끈 뒤 명예롭게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2018년 4월 7일, 자신이 코치로 있는 퀵 보이스의 공격수 부족으로 현역에 복귀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에서도 헌신적인 플레이 덕분에 활약이 좋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 이탈리아전에서 정확한 크로스로 히오바니 반 브롱크호르스트의 골을 어시스트하고, 그 다음 경기인 프랑스전에서는 코너킥을 받아 직접 헤더로 선제골을 득점하는 등 네덜란드가 죽음의 조를 3전 전승으로 돌파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비록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아르연 로번, 웨슬리 스네이더 등에게 득점 면에서 밀리는 면모가 있었지만, 16강전인 슬로바키아 전과 8강전인 브라질 전, 그리고 4강인 우루과이 전까지 3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대회에서 총 1골 3도움으로 팀의 준우승 기여했다. 특히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수비력과 투지와 활동량은 카윗을 제외하면 네덜란드 공격진의 다른 어떤 선수도 제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UEFA 유로 2012, 카윗을 기용하지 않은[7] 결과 네덜란드가 눈 버리는 경기력으로 3패 광탈한 것이 단적인 증명이다. 카윗이 빠진 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커다란 이유 중 하나임은 틀림 없다.[8] 과소평가 과소평가 말이 많지만 그것까지 감안해서도 정말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선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의 필요에 따라 최전방 공격수에서 후방의 윙백까지 포지션을 변경해가며 대활약. 멕시코전에서 국제경기 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브라질과 맞붙은 3·4위 결정전에서는 전반전 헤딩 경합 중 머리에 출혈이 있었으나 교체하지 않고 풀타임 출장하면서 마지막 월드컵을 3위로 마무리했고, 이어진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9]를 끝으로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감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유망주 시절에는 그리 주목 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헌신적이고 움직임이 좋으나 실력은 기대에 조금 못미치는 선수였으나, 10대 중,후반에 들면서 여태까지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기량이 폭발적으로 만개하였다. 카윗은 플레이스타일이 흡사 박지성과 비슷하다. 뛰어난 위치선정과 엄청난 활동량, 공수 양면에서 능력을 갖춘 팀 플레이어다. 거기에 정확한 킥력을 갖췄다.[10]

리버풀 시절에는 주로 수비형 윙어로 굉장히 헌신적인 활동량과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현란한 드리블링이나 엄청난 킥을 보유한 선수는 아니지만 한때 에레디비시에에서 4년 연속 20득점을 해줬던 선수임에도 아주 수비를 열심히 가담하고 심지어 잘하기도 하며 특히나 왕성한 활동량과 체력은 운동장 전체에서 카윗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본래 에레디비시에 시절에는 공격수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페예노르트 시절에는 4년 연속 20골을 넣었고 실제 리버풀로 올때는 그 전에 있다가 빌라로 떠난 밀란 바로시나 같이 뛰었던 크레이그 벨라미, 피터 크라우치등의 득점력이 좋은 스트라이커들이 없었기에 입단 당시만해도 에레디비시에 시절처럼 스트라이커로 많은 득점을 해주길 바랬었다. 훗날 생길 -라인보다도 먼저 리버풀의 주포가 되어주길 바랬으나 기술적으로 아주 훌륭한 선수는 아니라 꾸준한 기회에도 페예노르트 시절만큼의 폭발력이 발휘되지는 못했다. 사실 득점력이 줄었다기보다는 에레디비시에 시절에도 본인이 스스로 엄청난 득점기회를 만들거나 혹은 골잡이로의 본능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닌데 리그의 수준차이나 이런 것들로 인한 다소간의 오차였다. 그런 이유로 계륵이 되어가던 중이었는데 당시 감독이었던 라파엘 베니테즈는 아예 공격수 치고는 놀라운 활동량이나 수비력을 보고 윙어로 변신시켜 버렸으며 이른바 수비형 윙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 대성공을 거두게 되어 심지어 2014년 월드컵에서는 쓰리백의 윙백으로 뛰기까지 한다. 20골씩 넣는 폭발적인 득점력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어느정도씩 골을 넣어주고 맨유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아직 죽지 않은 득점력을 보여주었었다.

이후 페네르바흐체로 떠나면서 똑같은 롤을 수행했지만, 페예노르트로 복귀하면서부터는 득점력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4. 감독 경력

4.1. ADO 덴하흐

2022년 6월 2일, ADO 덴하흐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1년 계약.

2022년 11월 24일,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되었다.#

4.2. K 베이르스홋 VA

2023년 12월 28일, 벨기에 챌린저 프로 리그의 K 베이르스홋 VA 감독직에 부임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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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웨슬리 스네이더 134회 2003.4.30 2018.9.6
2 에드윈 반 데 사르 130회 1995.6.7 2008.10.15
3 프랑크 더부르 112회 1990.9.26 2004.6.26
4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109회 2001.10.6 2013.11.19
5 데일리 블린트 108회 2013.2.13 2024.7.2
6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 106회 1996.8.31 2010.7.11
7 디르크 카윗 104회 2004.9.3 2014.9.4
8 로빈 반 페르시 102회 2005.6.4 2017.8.31
9 필립 코쿠 101회 1996.4.24 2006.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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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 데 사르 · 2 오이여르 · 3 헤이팅아 · 4 마테이선 · 5 V. 브롱크호르스트 · 6 더 제이우 · 7 V. 페르시 · 8 엥헬라르 · 9 V. 니스텔로이
10 스네이더 · 11 로번 · 12 멜키오트 · 13 티머 · 14 바우마 · 15 더 클레르 · 16 스테켈렌뷔르흐 · 17 더 용
18 카윗 · 19 휜텔라르 · 20 아펠라이 · 21 불라루즈 · 22 헤셀링크 · 23 판 데르 파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마르코 반 바스텐

1 스테켈렌뷔르흐 · 2 판 데 르빌 · 3 헤이팅아 · 4 마테이선 · 5 V. 브롱크호르스트 · 6 판 보멀 · 7 카윗 · 8 더 용 · 9 V. 페르시
10 스네이더 · 11 로번 · 12 불라루즈 · 13 오이여르 · 14 더 제이우 · 15 브라프하이트 · 16 포름 · 17 엘리아
18 샤르스 · 19 바벌 · 20 아펠라이 · 21 휜텔라르 · 22 보스커르 · 23 판 데르 파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파일:나이키 로고 화이트.svg파일:Netherlands KNVB 2014.png
Nederlands nationaal voetbalelftal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 최종 명단)
1 실레선 · 2 플라르 · 3 더 프레이 · 4 마르팅스 인디 · 5 블린트 · 6 더 용 · 7 얀마트 · 8 더 구즈만 · 9 V. 페르시
10 스네이더 · 11 로번 · 12 페르하흐 · 13 펠트만 · 14 콩골로 · 15 카윗 · 16 클라시 · 17 렌스
18 페르 · 19 휜텔라르 · 20 바이날둠 · 21 멤피스 · 22 포름 · 23 크륄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루이 판 할


[1] 덕분에 리버풀은 부족한 득점력을 메우기 위해 또다른 공격수를 영입해야만 했고, 그 결과 리버풀에 입단한 선수가 바로 페르난도 토레스. 하지만 토레스를 영입하기 위한 이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레이그 벨라미, 지브릴 시세, 마르크 곤살레스, 루이스 가르시아, 플로랑 시나마-퐁골 등 주전급 자원 여러 명을 이적시켜야 했고 이는 팀의 스쿼드가 얇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2] 출장한 경기 수는 거의 엇비슷하지만 칼루는 처음 이적해왔을 때부터 활약이 변변찮아 서브로 전락해버리며 풀타임 출장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에 비해 거의 전 경기 풀타임 출장하는 카윗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게 되고 만 것이다.[3] 제라드의 위치를 중미, 혹은 공미로 보느냐에 따라 포메이션이 달라진다.[4] 왼쪽은 저메인 페넌트, 라이언 바벨, 알베르트 리에라, 요시 베나윤, 막시 로드리게스 등을 돌려 썼으나 확실하게 만족스러웠던 선수는 없었다. 그나마 베나윤과 막시가 가장 괜찮았다.[5] 사실, 둘은 플레이 스타일도 따지고 보면 많이 다르다. 물론, 왕성한 활동량과 특유의 성실한 플레이를 보면 많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카윗은 친정팀인 페예노르트에서 스트라이커로도 많이 뛰었던 만큼이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포스트 플레이에도 능한 모습도 종종 돋보이는 반면에, 박지성은 좌우측면을 휘저으며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를 돌파하는 플레이가 카윗에 비해 조금 더 두드러지는 편. 실력의 차이보다는 아마 이런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역할의 차이 때문인지 두 선수는 스탯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윙어로 출전한 카윗은 상대 윙플레이어에게 직접 달라붙어 피지컬로 압박하여 공격을 방해하는 플레이는 박지성에 비해 뛰어난 반면에, 박지성은 오히려 뛰어난 축구 지능을 활용하여 패스를 차단하여 곧바로 역습으로 연결시키는 플레이가 카윗에 비해 더 돋보인다. 박지성의 플레이 스타일은 사실 제임스 밀너와 좀 더 유사하다. (카윗보다는 미드필더적이고 밀너보다는 포워드적인 움직임을 가져갔다.)[6] 지난 시즌부터 이어 진 리버풀 구단측의 세대교체 움직임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고, 구단 입장에서도 고주급자들을 처리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이적이 결정되었다. 팬 입장에서는 팀에 헌신적이고 필요 할 때 한 건씩 해주는 카윗의 이적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점이다.[7] 카윗은 이 대회에서 2번 교체 출전했으며, 그것도 모두 후반 막판이 전부였다.[8] 연계가 안 되는 공격진, 공격진에서의 부족한 수비 가담, 그로 인해 풀백과 미드필더진들과의 고립 현상, 수비마저 불안.[9] 2014년 9월 4일 경기[10] 다만 박지성과는 결이 조금 다른데 박지성이 카윗보다 좀 더 지능적이고 섬세한 반면 카윗은 박지성보다 좀 더 투박하다. 물론 득점력은 카윗 쪽이 훨씬 우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