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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9 09:24:40

튜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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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유럽의 부족명2. 중세 초기 내륙 게르만 부족의 총칭3. 중세 유럽의 기사단

1. 고대 유럽의 부족명

라틴어: Teutones, Teutoni
영어: Teutons
독일어: Teutonen
튜튼족(영어) 혹은 테우토네스족(라틴어)는 고대 중부 유럽에 존재했던 부족이다. 일반적으로 게르만 민족의 한 계통으로 여겨지며,[1] 기원전 2세기 후반 킴브리 전쟁으로 인해 로마의 기록에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유틀란트 반도의 북부에 살고 있었는데 더 이상 살기 힘들 정도로 큰 기근이 닥치자 이웃인 킴브리족, 암브로니족 등과 함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남하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거의 20년 가까운 기간동안 정착지를 찾아 중부 유럽을 휩쓸었는데, 그 과정에서 로마 공화국과 충돌하여 3번의 참패를 안겨주게 된다. 특히 세번째 전투인 아라우시오 전투(Battle of Arausio)는 로마 측에서 총력을 기울인 대병력을 동원 했음에도[2], 병력은 모두 전멸하고 지휘관 중 한 명인 전직 집정관은 포로로 잡혀 처형되고 만다. 이는 칸나이 전투 이후 로마 공화국 최악의 패전이었고 당대 로마인들에게 게르만족에 대한 공포를 뼛속 깊이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이후로도 정착지를 찾아다니며 히스파니아갈리아 일대를 몇년동안 떠돌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고, 현지 원주민들과의 충돌로 점차 세력이 약해진다. 결국 테우토네스족은 아쿠아이 섹스티아이 전투(Battle of Aquae Sextiae)에서 마리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섬멸당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3]

이들이 전장에서 보인 용맹은 로마인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지 훗날 제정시대의 시인 루카누스는 자신의 서사시 '파르살리아'에서 "튜튼족의 격노(Furor Teutonicus)"[4]라는 문구를 사용하며 튜튼족의 용맹과 광기어린 분노(Berserk)를 묘사했다.
"튜튼족의 격노"라는 문구는 중세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도 유럽에서 독일(게르만) 민족의 용맹함이나 기질을 표현할때 종종 인용되는데, 이 때문인지 튜튼이라는 단어는 멸망한 일개 부족의 이름을 넘어 독일 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게 된다. 오늘날의 영단어 Teutonic은 "게르만 민족의 ~" 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이고, 2번 항목 역시 역사에 등장하는 튜튼족과 연관은 없지만 독일권의 의미로 쓰인 경우다.

2. 중세 초기 내륙 게르만 부족의 총칭

1번의 튜튼을 어원으로 하지만 고대에 이미 멸망했던 원조 테우토네스족과는 별로 관련이 없고, 게르만족이긴한데 게르만족 전체가 해당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바유바리, 알레만니, 투링기, 삭소니, 리푸아리 프랑크족의 영역을 한데 모아서 튜튼 왕국이라고 하였었으며, 모국어의 전면적 교체를 실시한 살리 프랑크족, 랑고바르드족, 부르군트족, 고트족은 해당되지 않고 북해연안의 앵글족과 프리시족 및 데인족과 스베아족도 해당되지 않았다.[5]

튜튼인은 원래 피지배층인 라인-도나우강 국경지대 로마인들과 별개인 게르만 지배층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잔존 로마인의 주도로 튜튼어를 라틴문자로 재생산한 독일어가 형성되고 이 독일어가 튜튼인들에게 역수출되면서 언어를 공유하는 도이치, 즉 독일민족의 원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3. 중세 유럽의 기사단

튜튼 기사단 항목 참고.
[1] 일부 기록에서는 켈트 민족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2] 군단병 8만여명과 보조병 4만여명을 합쳐 12만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당시기준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가 투입한 인원으로는 가장 많은 병력.[3] 훗날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만나게 되는 아투아투키족을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족의 후손이라 기록하긴 했다. 진위 여부는 불분명.[4] 위키디피아 문서 링크[5] 그래서 앵글로색슨족도 포함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