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연대 미상
1. 소개
진흥왕대 신라의 장군.2. 상세
장수왕 이래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반도 중부를[1] 551년 공격할 때[2] 참전한 9명의 장수 중 한 명이다.[3] 이 때 점령한 10군은 한강 상류지역 강원도 및 함경도 남부 일대로 본다.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단양 신라 적성비에 나오는 사훼부(沙喙部) 출신의 두미지(豆弥智) 피진간지(佊珎干支)도 파진찬 탐지의 다른 한자표기로 본다.
공을 인정받아서 3년 사이 잡찬에서 이찬으로 승진했고, 554년에는 나제동맹이 깨진 후 성왕이 신라에 쳐들어온 관산성 전투에도 참전해 싸웠다. 처음에는 백제군이 각간 우덕과 탐지가 이끄는 신라군을 격파하며 불리했지만 김무력이 이끄는 원군의 도움으로 전세를 뒤집어 성왕을 전사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1] 죽령 이북, 고현(高峴) 이내의 10군[2] 백제는 한강 하류를, 신라는 한강 상류로 치고 올라가 차지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후 한강 상하류 모두 신라가 차지해 성왕(백제)이 분노해 관산성 전투로 이어진다.[3] 대각간 구진, 각간 비태(比台), 잡찬 탐지ㆍ비서(非西), 파진찬 거칠부ㆍ서력부(西力夫)ㆍ노부(奴夫), 대아찬 비차부, 아찬 미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