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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16:44

쿠오 바디스(소설)

1. 개요
1.1. 등장인물
2. 외부 링크
2.1. 영어2.2. 한국어2.3. 중국어
3. 미러 링크

1. 개요

Quo vadis: Powieść z czasów Nerona

폴란드인 소설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1]가 미국의 루 월리스의 소설 벤허에 영감을 받아 쓴 역사소설로 1895년에 발표했다. 네로 황제 시기의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인 귀족 청년 비니키우스와 그리스도교도 리기아를 중심으로 당대 로마 제국의 퇴폐상, 로마 대화재와 그에 뒤이은 그리스도교도 탄압, 사도 베드로바울로의 순교, 네로의 몰락에 이르는 과정을 다뤘다. 1항목에서 언급된,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 대화하는 환상을 보는 장면도 당연히 작중에 묘사된다.

한편으로 작품 속 로마의 그리스도교도들은 당시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압제를 받던 폴란드인들의 고난을 은유하고, 결국 최종적으로는 고난받는 이들이 승리하리라 암시하는 민족주의 소설이기도 하다.

시엔키에비치는 《쿠오 바디스》 이외에도 크미치스 등 폴란드 역사를 배경으로 한 많은 역사 소설을 집필하였고 1905년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네로와 당시 로마 제국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미 타키투스 등 기록 때문에 네로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사실 시엔키에비치가 소설을 쓰며 가장 많이 참고한 기록이 타키투스의 <연대기>이다. 서구 지성계는 역사학이 본격적인 학문 분과로 정립되어 로마사를 더욱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기 이전까지는, 티베리우스에서 네로까지 이어지는 원수정 초기 황제들의 평가에 있어서 원로원 계급의 적대감이 투영된 타키투스의 시선을 전반적으로 수용해왔다. 그리고 <쿠오 바디스>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19세기 작품임을 감안하면, 그 시대 기준으로 제정 로마 시기의 각종 풍속, 문화 고증은 훌륭한 편이다.

줄거리 참고

1.1. 등장인물

참고

2. 외부 링크

2.1. 영어

2.2. 한국어

2.3. 중국어

3. 미러 링크



[1] 러시아가 폴란드를 지배하던 시절의 인물이라, 정식으로 폴란드 국적을 가진 적은 없다.[2] 한국어 역본에서는 호민관이라고 했는데 사실 오역이다. 이런 오역이 의외로 자주 나온다. 작중 비니키우스는 코르불로 휘하에서 아르메니아 전쟁을 치르다 잠깐 귀국한 군인이다. 그래서 호민관(트리부누스 플레비스)이 아니라 대대장이나 천부장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일본판에서도 대대장으로 번역한다.[3] 사실 리기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끌렸지만, 갈수록 베드로와 바울로에게 감화를 받으면서 진정한 신앙인이자 크리스천이 되어간다.[4] 사실 묘하게 취급이 주인공치고는 좋지 않다. 입체적인 면모나 매력적인 면에선 삼촌 페트로니우스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고, 로맨스물에선 주인공의 특징이기도 한 '위기에 처한 연인을 구하는 역할'을 별로 연애와 연관 없는 우르수스가 맡는다. 그러나 이는 본 소설이 단순한 로맨스물이 아님을 간과한 설명이다. 초반의 비니키우스는 원하는 건 뭐든지 얻어야 직성이 풀리는 방약무인한 귀족이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겸손한 신앙인이 되어간다. 리기아를 탈옥시키려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한 뒤,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묘사는 그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5] 로마에선 노예를 들이면 노예의 본명을 무시하고 주인이 새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대체로 노예를 구입한 장소나 출신지에서 따왔다. 그러니까 '리기족의 공주'라고 '리기아'라는 것은 딱 로마인이 지어줄 법한 노예의 이름이다. 리기아의 본명인 "칼리나"는 슬라브 계열 여성 이름으로, 실제로 작중에서 슬라브계 인물이라고 나온다. 묘사를 보면 영락없이 폴란드다.[6] 나중에 로마군에 잡혀 성난 소의 뿔에 묶인 채로 경기장에 들어갔다. 이 소를 리기아의 노예 우르수스가 상대해야 했는데, 다행히 우르수스가 소를 제압하여 구해낸다.[7] 다만 입장을 바꾸지 않았을 뿐, 인간적인 사랑과 신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둘을 양립시킬 수 없어 비니키우스를 사랑하면서도 그리스도교도인 자신은 이교도인 그와 엮여선 안 된다는 관념 때문에 내적으로 갈등하고, 이런 갈등 때문에 크리스푸스에게 꾸지람을 듣는 등 인간적인 면모는 있다. 한편으로는 비니키우스가 그리스도교도가 되기 전에 그가 자신을 차지하려 다가오는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도주한다.[8] 정확한 종교 이름은 알 수 없으나, 타키투스의 기록에도 폼포니아가 '외국 미신'을 숭상해 비난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9] 이때 삼국지연의화웅급 아부 실력을 보여주는데, 네로가 시를 읊으면 다른 신하들은 뛰어난 작문 실력이라고 이구동성 외치는 반면 페트로니우스는 끔찍한 시라고 비판한다. 주변이 그 발언에 충격을 받아 조용해진 이때 네로가 페트로니우스의 말을 듣고 언짢은 표정으로 뭐가 문제냐고 묻자 페트로니우는 네로가 지은 시가 만약 동서고금의 유명 시인들이 지었다면 세기의 작품이라 칭송했겠으나 네로의 실력이 그들을 뛰어넘기에 황제 폐하가 자신의 재능에 걸맞지 않는 끔찍한 시를 지은 것을 알아 그렇게 말했다고 답한다. 그 대답을 들은 네로가 크게 기뻐하며 페트로니우스를 더욱 가까이하여 본인이 지은 시를 버리고 더 좋은 시를 쓰겠다고 하자 페트로니우스는 한술 더 얹어 네로가 지은 시는 비록 네로의 재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범인들에겐 걸작이니 버릴 바엔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매우 유명한 장면으로, 영화 간신에서도 연산군과 임숭재의 일화로 나오고 각종 소설이나 대중매체 등에서 아첨꾼들의 신들린 아부를 보여줄 때 오마주된다.[10] 페트로니우스의 아부 약발이 잘 먹히는 이유에는 페트로니우스의 행실과 학식이 크게 한몫한다. '네로는 다른 조신들의 거창한 아부와 찬사는 모두 자기네들의 일신상 이득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페트로니우스만은 순수하게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한다고 생각한다.'는 소설 내용이나 페트로니우스가 그리스도교인들이 로마 시 방화범이 아니라고 주장해 네로의 눈밖에 난 후 네로의 시 낭송회에 참가하자 비록 총애를 조금 잃었어도 시 낭송회에서 순식간에 총애를 되찾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쟁자 티겔리우스, 실제로 다시 네로와 친밀해지자 이전에 잠시 총애를 잃었을 때 냉담하게 대했음을 후회하는 신하들을 보면 페트로니우스의 위상을 알 수 있다.[11] 실제로도 이런 아첨 실력을 사용하여 네로가 시를 낭송할 때 졸았던 베스파시아누스를 구해준 일화가 있다.[12] 역사상의 페트로니우스가 죽었던 것처럼 여러 사람들을 불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의사에게 정맥을 자르게 해 과다출혈로 천천히 죽어간다.[13] 살아남기 위해 네로에게 열심히 아첨했으나 유언장에서 네로를 엄청 까댄 것과 저질스러운 네로의 작품들에 억지 찬양과 아첨을 한 것에 회의감을 느끼던 걸 보면 예술인의 긍지가 있던 사람이 맞는다. 살아남기 위해 이를 감추고 다녔을 뿐.[14] 선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로마의 긍정적인 부분을 반영하는 사람이라는 뜻.[15] 짐승과 싸우던 검투사 베스티아리의 바리에이션 중 하나인데, 이 경우 일부러 빈약한 무장만 주거나 아예 맨몸으로 짐승과 대치시켜 사실상 짐승 먹이가 되라는 처형법이다.[16] 화재 당시 네로는 직접 전차를 몰고 수습하러 와 화재 현장 수습을 지휘하고 창고를 열어 로마인들을 구제하는 등 노력을 많이 했고, 이와 관련된 증거들도 나중에서야 속속들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런 낭설이 당대에나 후대에나 널리 퍼질 정도로 대화재와 관련하여 네로의 여론은 좋지 않았다.[17] 당시 로마인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국가적인 행사 등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로마인들이 3세기의 위기 때 신전에 가서 울고불고 했을 때도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시민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을 더욱 좋지 않게 보았다. 군인 황제들은 이들이 사회적인 단합을 해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인들을 탄압하였고, 이로 인해 다른 로마인들이 단결하길 바랐다.[18] 찔리니까 저런다고 판단하는 식으로 여론이 흘러갔다.[19] 해당 단어는 오늘날 교황이 천주교의 수장으로서, 중요한 행사마다 올리는 강복을 뜻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베드로가 초대 교황임을 생각한다면, 그 기원이 되는 셈.[20] 이 당시 킬로는 자기 때문에 결국 죽게 된 글라우쿠스를 비롯한 그리스도도들의 학살을 본 뒤였다. 거기서 우연히 바울을 만나는데 용서를 비는 그를 보고 바울이 그에게 세례성사를 해줬다.[21] 비니키우스가 리기아를 납치하기 위해 고용한 당시 로마 최고의 검투사가 자기를 처리하려고 달려들자, 그 자리에서 그를 맨몸으로 상대해 죽여버렸다. 이후 비니키우스와 킬로도 처리하려 했는데 킬로는 도망가고 비니키우스는 리기아가 중도에 끼어들어 말린 덕에 겨우 구사일생한다.[22] 이 과정에서 익투스, 즉 당시 그리스도교인들이 사용하던 물고기 표식과 그 의미를 처음으로 언급하는 작중 인물이 된다.[23] 실은 화재 사건을 일으키지 않은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누명을 씌운 것.[24] 이교도와 사랑함은 그리스도교도에게 있어 용서하지 못할 부분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도인 리기아가 사랑하게 된 이가 하필이면 그냥 이교도도 아니고 네로의 부하 비니키우스였으니.[25] 페트로니우스가 직접 부탁했다. 영화 중 한 버전에선 페트로니우스의 죽음의 장면이 좀 앞당겨져 세네카가 페트로니우스의 유언을 네로 앞에서 말해주는 장면이 보다 일찍 나오게 되었다. 세네카는 네로 앞에서 페트로니우스의 유언장을 읽는데, 네로는 유언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페트로니우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유언장 내용을 귀담아듣다 그게 죄다 자기를 조롱하고 자기 예술성을 비웃으며 페트로니우스의 칭찬도 그냥 네로 앞에서 아첨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내용이라는걸 깨닫자 바로 화를 낸다. 졸지에 세네카는 네로 앞에서 유언장만 읊어줬는데 네로의 화내기와 꼬장질을 면전에서 당한다.[26] 실제로는 세네카가 페트로니우스보다 1년 앞서 사망했는데 둘이 같은 방식으로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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