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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12:28:06

친디트

<colbgcolor=#fff> 장거리침투단
Long Range Penetration Groups
파일:Chindits Logo.png
활동 1942년 ~ 1945년
상징명칭 친디트 부대 (Chindits)
소속 인도 제국 육군
동남아시아사령부
규모 사단[1]
단장 소장 오드 윈게이트[2]
참전 태평양 전쟁

1. 개요2. 역사3.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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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친디트[3] 부대(Chindits), 공식 명칭 장거리침투단(Long Range Penetration Groups, LRPG)은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활동했던 영국 육군특수부대였다.

2. 역사

친디트 부대는 오드 윈게이트(Orde Wingate) 대령에 의해 창설되었다. 윙게이트는 동아프리카에서 기데온 부대(Gideon Force)를 지휘해 이탈리아군의 보급선을 교란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이를 주목한 인도 총사령관 아치볼드 웨이벌(Archibald Wavell) 대장은 윙게이트를 인도로 불러들인 후, 대령으로 진급시키면서 일본군의 후방에서 싸울 게릴라 부대의 양성하게 했다. 윙게이트 대령은 제77인도보병여단을 기반으로 기데온 부대와 유사한 형태의 부대를 창설하게 되니, 바로 친디트 부대였다.

준비를 마친 뒤인 1943년 2월에 친디트 부대는 버마로 투입되었고, 일시적으로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일본군의 공격과 질병으로 인해 투입된 3,000여 명의 3분의 1이 죽거나 포로 혹은 부상자가 되었다. 돌아온 이들 중에서도 600여 명은 부상과 질병으로 인해 다시 부대로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도 주둔 영국군의 장교들은 친디트 부대의 효율성에 대해 비판했지만, 윙게이트 대령은 인맥을 통해 윈스턴 처칠 수상에게 보고서를 보내 처칠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처칠은 윙게이트를 미국과의 회담에 대동했고, 윙게이트의 이론은 미군에서도 지지받았다. 그리고 윙게이트 대령이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친디트 부대 역시 제3인도보병사단으로 확대재편되었다.

재편 이후 임팔 전투에 투입된 친디트 부대는 공중수송을 통해 일본군의 후방에 침투해서 교란하는 데 성공했지만, 수자원의 부족과 질병으로 인해 점점 지쳐갔다. 설상가상으로 윙게이트 소장이 비행기 사고로 전사하는 일이 생겼지만, 조 렌테인(Joe Lentaigne) 준장과 친디트 부대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의를 잃지 않고 일본군의 철로를 폭파하고 군수품 창고를 불살랐다. 이후 친디트 부대는 조지프 스틸웰의 북부지역전투사령부(Northern Combat Area Command)에 배속되었고, 스틸웰의 무리한 명령으로 인해 방어가 강화된 일본군의 진지에 공세를 벌일 것을 강요받아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되었다.[4]

친디트 부대가 해산된 뒤에 남은 인원들은 제44인도공수사단(44th Indian Airborne Division)으로 재편되었으며, 2015년에 창설된 제77여단은 친디트 부대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3. 편제

===# 제1차 친디트 원정 / First Chindit Expedition #===
===# 제2차 친디트 원정 / Second Chindit Expedition #===
[1] 9,000~12,000명[2] 오드 찰스 윈게이트(Orde Charles Wingate)[3] 친디트는 버마어로 사자를 의미하는 친테(Chinthe, ခြင်္)의 변형이다.[4] 제23보병여단은 본대와는 떨어져서 코히마 방면에 투입되었다.[25-pounder] 25파운더 운용 부대.[25-pounder] 25파운더 운용 부대.[25-pounder] 25파운더 운용 부대.[40mm] 보포스 40mm 포 운용 부대.[40mm] 보포스 40mm 포 운용 부대.[40mm] 보포스 40mm 포 운용 부대.[40mm] 보포스 40mm 포 운용 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