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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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의 첫 설법인 초전법륜을 묘사한 간다라 부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발굴된 금동판 불상. 가운데 부처가 하고 있는 손 모양은 전법륜인(초전법륜인)이라고 해서 초전법륜을 행할 때의 수인으로 전해진다. |
부처님께서는 삼법륜(三法輪)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성문승(聲聞乘)을 일으킨 사람을 위하여 바라나국(波羅柰國) 시록림(施鹿林)에서 생사와 열반의 인과를 처음으로 설하셨으니 이것이 첫째의 사제법륜(四諦法輪)이다. 둘째는 보살승(菩薩乘)에 나아간 사람을 위하여 취봉산(鷲峯山) 등에서 16회에 걸쳐 여러 반야를 설하셨으니 이것이 둘째의 무상법륜(無相法輪)이다. 마지막으로 일체승(一切乘)에 나아간 사람들을 위하여 연화장 등 정토와 예토에서 『해심밀경(解深密經)』 등을 설하셨으니 이것이 셋째의 요의대승(了義大乘)이다. 이것이 여래께서 가르침을 일으키신 뜻이다.
신라 승려 원측의 해심밀경소에서
신라 승려 원측의 해심밀경소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에 행한 최초의 설법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레바퀴에 비유하는데, 한자문화권 불교에서는 이를 법(法)의 수레바퀴라고 법륜(法輪)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부처가 가르침을 설파함을 두고 '법의 수레바퀴가 굴러간다'고 하여 구를 전(轉) 자를 붙여 전법륜(轉法輪)이라 부른다. 처음으로 전법륜(법의 수레바퀴를 굴림)했다고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깨달음을 얻은 직후 석가모니는 예전에 수행에 도움을 주던 수행자 두 사람을 떠올렸지만, 신통력으로 살피니 애석하게도 두 사람이 7일 전, 그리고 전날 밤(사흘 전이라고도 한다)에 죽었음을 알았다. 그는 직후 자신과 수행했던 다섯 수행자를 떠올렸다. 각기 이름을 콘단냐(Kondanna)[1] · 아사지(Assaji)[2] · 마하나마(Mahanama)[3] · 밧디야(Bhaddhiya)[4] · 바파(Vappa)[5]라고 하는 이들에 대해서 불교에서는 이들은 처음 싯다르타가 출가했을 때에 아버지 숫도다나가 아들을 호위하라고 파견했다는 설이 있고, 혹은 싯다르타의 인간됨을 보고 따랐던 그의 수행 시절 동료였다고도 전한다. 앞서 언급한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보고 오해하여 그들은 사르나트로 가서 따로 수행하고 있었다.
녹야원에 석가모니가 막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석가모니를 떠나버린 다섯 수행자가 수행 중이었다. 그네들은 석가모니를 보고 '수행이 힘들다고 타락한 놈 따위, 발 씻을 물이나 차려주고 내버려두자.'고 무시하기로 서로 약속했는데[6] 석가모니가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자신들도 모르게 석가모니를 향해 엎드렸고, '자리에 앉든 밥을 먹든 제가 알아서 하게 놔두자.'던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들이 먼저 자리를 펴서 석가모니가 앉을 자리를 만들고 발을 씻어주려 하거나 석가모니의 발우를 받아 스승의 예를 갖추며 알아서 저절로 석가모니를 맞이하였다고 한다.[7]
이때 다섯 수행자들은 부처님이 자리에 앉으신 것을 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로 고타마시여, 신색과 피부가 대단히 좋고 청정하오며 면목이 원만하옵고 또 광명이 족하오며 모든 근이 청정하나이다. 장로 고타마시여, 이제는 좋고 묘한 감로를 만났거나 청정한 감로의 성도를 얻었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나를 여래라고 부를 것이요, 고타마라고 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미 감로의 도를 발견했고, 나는 이제 감로의 법을 증득했기 때문이니라. 나는 곧바로 부처로서 일체지를 완전히 갖추었으며 고요하고 번뇌가 없어서 마음에 자재로움을 얻었느니라."
이때에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다섯 수행자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로 고타마시여, 예전에 6년 간의 극심한 고행을 하면서도 무상정등정각을 증득하지 못했거늘, 모든 성인이 수행했던 그 같은 길을 증진하지도 못했거늘, 하물며 장로께서는 지금 육신의 욕망을 좇아 나태를 내어 선정을 잃고 해태함이 몸에 얽혀 있는데 어찌 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고 하십니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는 욕망에 끌리지 아니하며 선정을 잃지도 않고 또한 해태함이 몸에 얽혀 있지도 않다. 그대들은 스스로 알리라. 내 지난날 사람들에게 망령되이 거짓을 말한 것이 있는가? 또한 일찍이 상호가 이처럼 청정하고 원만히 빛나던 때가 있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만약 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내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그대들이 나의 가르침을 받아 지녀 따르고 청정히 수행한다면 곧 해탈락을 얻으리라. 그대들이 만약 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이제 조용히 법을 들을 귀를 준비하라."
《불본행집경》
"장로 고타마시여, 신색과 피부가 대단히 좋고 청정하오며 면목이 원만하옵고 또 광명이 족하오며 모든 근이 청정하나이다. 장로 고타마시여, 이제는 좋고 묘한 감로를 만났거나 청정한 감로의 성도를 얻었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나를 여래라고 부를 것이요, 고타마라고 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미 감로의 도를 발견했고, 나는 이제 감로의 법을 증득했기 때문이니라. 나는 곧바로 부처로서 일체지를 완전히 갖추었으며 고요하고 번뇌가 없어서 마음에 자재로움을 얻었느니라."
이때에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다섯 수행자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로 고타마시여, 예전에 6년 간의 극심한 고행을 하면서도 무상정등정각을 증득하지 못했거늘, 모든 성인이 수행했던 그 같은 길을 증진하지도 못했거늘, 하물며 장로께서는 지금 육신의 욕망을 좇아 나태를 내어 선정을 잃고 해태함이 몸에 얽혀 있는데 어찌 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고 하십니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는 욕망에 끌리지 아니하며 선정을 잃지도 않고 또한 해태함이 몸에 얽혀 있지도 않다. 그대들은 스스로 알리라. 내 지난날 사람들에게 망령되이 거짓을 말한 것이 있는가? 또한 일찍이 상호가 이처럼 청정하고 원만히 빛나던 때가 있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만약 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내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그대들이 나의 가르침을 받아 지녀 따르고 청정히 수행한다면 곧 해탈락을 얻으리라. 그대들이 만약 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이제 조용히 법을 들을 귀를 준비하라."
《불본행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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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팔상전에 봉안되어 있는 팔상도 가운데 녹원전법상. 석가모니 부처가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들을 향해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
이때 석가모니가 다섯 수행자들을 향해서 설법한 내용이 오늘날 불경 가운데 《초전법륜경》(담마짝가)이다. 불상 가운데 양손을 가슴까지 올려 엄지와 장지 끝을 서로 맞댄 후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펴진 마지막 두 손가락 끝을 오른쪽 손목에 대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형태의 불상의 손 모양을 가리켜 전법륜인(轉法輪印)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가 다섯 수행자들에게 처음 사성제, 팔정도 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의 기본 가르침들을 설법할 때 취했다는 자세에서 유래한다. 이 초전법륜의 자리에서 석가모니는 유명한 고집멸도와 팔정도를 가르쳤고, 다섯 수행자는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이를 보고 "이로써 세상에는 아라한이 6명이 되었다." 하고 말했다.[8]
석가모니 부처가 자신의 깨달음을 제자에게 공식적으로 가르친 첫 번째 법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이 가르침에 의해 다섯 수행자는 첫 번째 성자인 수다원이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의 법이 '사회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초기 불교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초전법륜을 시작으로 불법에 승보(僧寶, 승려)가 탄생했고, 부처와 부처의 법, 그리고 부처의 제자(승려) 이른바 삼보(三寶)가 처음으로 갖추어졌다.
2. 내용
초전법륜은 한역 『잡아함경』, 『불설전법륜경』, 팔리어 『상윳따 니까야』 「진리 상윳따」의 「전법륜경」과 『율장』 「대품」에 수록되어 있고, 『맛지마 니까야』 「진리분석경」, 『위방가』에서 해석되어 있다. [9] 여기서 초전법륜의 '원형'에 해당하는 『잡아함경』과 『상윳따 니까야』, 『율장』 「대품」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중도로서의 팔정도의 제시와 사성제의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 즉 3가지 양상과 12가지 형태(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를 설명하는 방식이다.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상윳따 니까야 56:11 '초전법륜 경'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상윳따 니까야 56:11 '초전법륜 경'
세간(世間)에서 두 가지 일이 있어 극단적인 행(邊行)에 떨어지니, 도를 행하는 제자와 출가자들은 목숨이 다하도록 그것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생각이 탐욕에만 있고 청정한 뜻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몸과 애욕에 기대고 집착하여 정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극단적인 행으로 물러나 도(道)와 덕(德)을 갖춘 진인(眞人)인 부처를 만나지 못한다. 만일 비구가 탐욕을 생각하지 않고 몸과 애욕에 집착하지 않고 수행하면 중도(中道)를 받아 지닐 수 있다. 여래ㆍ최정각(最正覺)은 안목(眼)을 얻고 지혜를 얻어 양쪽의 극단적인 행에서 벗어나 스스로 니원(泥洹)에 이르렀다.
『불설전법륜경』
『불설전법륜경』
처음에는 중도에 대해 그리고 이어서 팔정도에 대해 설파했다. 이 가르침을 전하는 경론의 구성은 상윳따 니까야나 잡아함경, 불설전법륜경 모두 같다. 아울러 상윳따 니까야는 석가모니 부처 스스로 더 이상 윤회 속에서 다시 태어남은 없을 것이라는 점도 밝혔다. 한역 잡아함경은 이런 언급이 없고, 불설전법륜경에는 나온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과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 신과 사람들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 스스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상윳따 니까야 56:11 '초전법륜 경'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 신과 사람들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 스스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상윳따 니까야 56:11 '초전법륜 경'
一切世閒諸天ㆍ人民ㆍ若梵ㆍ若魔ㆍ沙門ㆍ梵志, 自知證已, 受行戒ㆍ定ㆍ慧ㆍ解, 度知見成, 是爲四極. 是生後不復有, 長離世閒無復憂患.
모든 세간의 모든 하늘ㆍ인민ㆍ범천(梵天)ㆍ마구니ㆍ사문ㆍ범지(梵志)들이 스스로 알아 증득하고,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을 받아 행하면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이룰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의 가장 훌륭한 법(四極)이니, 이 생(生) 후로는 다시 몸을 받지 않아서 세간을 영원히 떠나 다시는 근심과 걱정이 없을 것이다.
『불설전법륜경』
모든 세간의 모든 하늘ㆍ인민ㆍ범천(梵天)ㆍ마구니ㆍ사문ㆍ범지(梵志)들이 스스로 알아 증득하고,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을 받아 행하면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이룰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의 가장 훌륭한 법(四極)이니, 이 생(生) 후로는 다시 몸을 받지 않아서 세간을 영원히 떠나 다시는 근심과 걱정이 없을 것이다.
『불설전법륜경』
또한 무아론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무아의 상태에 관한 경 또한 설하였다. 이 무아의 상태에 관한 경은 상윳따 니까야와 팔리어 율장 대품에 실려 있는데, <상윳따니까야>에서는 ‘무아의 상태에 관한 경’을 초전법륜경과 별도의 경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 달리 율장대품에서는 두 경의 내용이 쭉 이어져 있다.
영문 링크
[1] 한역하면 종련지(倧蓮如) 또는 교진여(憍陳如)라고도 한다. 이 사람의 외조카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의 십대제자 가운데 설법제일이라 불렸던 부루나 존자.[2] 한역하면 아설시(阿說示)이다.[3] 한역하면 마하남(摩訶男)이다.[4] 한역하면 바제(婆提)이다.[5] 한역하면 바파(婆頗)이다.[6] 물론 이 가운데 안나콘단냐만은 "그게 말처럼 쉽게 되겠냐 혹시 그가 정말 깨달음을 얻었을 지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바깥으로 말은 못하고 있었다.[7] 불본행집경에는 이때 이들의 모습을 "새장 속의 새가 불길이 다가오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저절로 날아오르고 뛰어오르는" 것 같았다고 비유한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가 이들을 보며 "나를 보면 상종도 하지 말자고 자기들끼리 약속한 것도 자기들 스스로 어기고 있는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8] 석가모니 자신도 '아라한'으로 헤아려 6명이라 한 것이다.[9] 다만 다섯 비구를 처음 만나 있었던 일은 중아함경 권17 포리다품 제3② 라마경(羅摩經)에 석가모니 부처 자신의 회상에 등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