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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이름 | ZEEBRA |
본명 | 요코이 히데유키(横井英之) |
출생 | 1971년 4월 2일 ([age(1971-04-02)]세) 일본 도쿄도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게이오기주쿠 유치사 (졸업) 게이오기주쿠 보통부 (중퇴) 세인트 메리스 인터네셔널 스쿨 (중퇴) 분카가쿠인 고등부 (중퇴) |
전 배우자 | 일반인(이혼), 모델 나카바야시 미와(1979년생, 2020년 이혼) |
자녀 | 아들 2명[1], 손자 1명[2] 장녀 나카바야시 카논, 차녀 나카바야시 리마[3] |
소속사 | GRAND MASTER[4] |
소속 레이블 | 소니 뮤직 내의 'Ariola Japan' |
애칭 | Z, ZBR, Zeebra The Daddy, Zeebra the ill skill, 도시의 야만인, 죠난 허슬러 |
별명 | DJ DIRTYKRATES(DJ 활동시 예명)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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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래퍼.라임을 맞추기 난이도가 극악이라고 소문난 일본어 랩 씬에서 일본어를 분석하여 라임 체계와 기본 플로우를 확립한 기념비적인 인물 중 하나다.
2. 생애
93년 K-DUB SHINE, DJ OASIS와 함께 전설의 힙합그룹 킹기도라를 결성하여[5], 96년 그룹으로서의 활동을 정지하고 97년 솔로로 데뷔한다. 99년 Dragon Ash[6][7]의 <Grateful Days>라는 곡에 피쳐링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고 정력적으로 MC+프로듀서+DJ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03년에는 일본의 유력 음악 시상식 VMAJ에서 사회를 보고[8], 2008년에는 힙합 가수로서는 드물게 일본무도관에서 데뷔 20주년 라이브를 가지기도 했다. 특유의 야성적이고 거친 목소리로 유명하다.일본에서 힙합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버라이어티를 비롯한 TV 프로그램과 CF에 자주 출연하는 몇 안 되는 MC이다. 이로 인해 대중에게 '마이너한 장르'에 불과했던 힙합이란 장르를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9]
2000년 초반에 주석이 속한 한국의 Master Plan과 Zeebra가 속한 일본의 Future Shock이 활발히 교류하였다. 현재에는 한일간 교류가 당연한 시대이고 국제적인 콜라보가 당연해졌지만, 당시 만해도 한국의 일본문화 수입이 겨우 시작된 때이고 한일 양국에서 힙합은 태동기에 불과했고 인터넷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은 때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진보적인 움직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Future Shock에 속해있던 Zeebra와 Maccho 등이 한국에서 주석 등과 함께 공연을 했는데 상당히 호평을 받았었다.[10] Zeebra 또한 2022년 수파사이즈와의 인터뷰에서 그 때의 내한공연은 자신이 해외로 원정간 최초의 공연이었다고 밝히는 것을 보면 꽤 뜻깊었던 공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Zeebra의 랩스타일은 주석의 랩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Zeebra 등 일본 힙합퍼들과 교류한 이후 발표한 주석의 2번째 엘범 Welcome 2 the Infected Area에서 주석은 획기적으로 진일보한 랩 실력을 보여주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목소리를 긁어 걸걸한 느낌을 준 것이 Zeebra의 영향이라는 평이 많았다. 상업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주석의 2번째 엘범이 음악으로든 랩으로든 매니아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을 보면 한일간 교류가 준 긍정적인 영향을 엿볼 수 있다. Welcome 2 the Infected Area에서 Zeebra와 Maccho가 6문자의 남자라는 곡으로 참여하였다. 해당 곡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상당히 평이 좋았다.
일본 힙합의 레전드답게 한국 힙합의 레전드 드렁큰 타이거와 친분이 깊어서, 드렁큰 타이거 8집의 수록곡 Jet Pack에 피쳐링했으며, 서로의 공연에 찬조 출연하기도 한다. 2010년 MAMA 마카오, 2017년 케이콘 Japan에서 타이거JK, 윤미래와 함께 Jet Pack의 합동 무대를 가졌다.
다른 국내 아티스트 중에서는 보아가 피쳐링을 해준 Holiday가 있다.
주석과 Leo Kekoa(현 L.E.O)의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니코니코동화에 업로드되어 있는데 댓글들이 거의 호평이다. 토종 힙합을 개척했다는 점에서는 가리온과 비슷하기도 하다. 마침 가리온의 MC Meta와 동갑이기도...
사생활 면에서는 한 번의 이혼을 거쳐서, 두번째 아내였던 모델 나카바야시 미와[11]와 2002년 결혼하여 총 4명의 자녀(2명은 첫번째 배우자가 낳은 아들, 2명은 두번째 배우자가 낳은 딸)가 태어났다.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이어서, 원자력 발전에 절대 반대하는 좌익 입장에 있고,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아이티 주민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인 JP2HAITI를 개시하였다. 이 운동은 트위터 사용자 사이에 널리 확산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자선 싱글에서는 GLAY의 TERU, Hi-STANDARD의 난바 아키히로, 이토 세이코우 등 장르 불문 콜라보레이션이 실현되었다.
지금까지 같이 작업한 아티스트들 중 대단한 사람들이 많으며, 콜라보한 아티스트만 들어도 GLAY의 TERU, 아무로 나미에, 카토 밀리야, DJ OASIS, Sugar Soul, DJ KAORI, DJ MAYUMI(일본 여성 DJ계의 양대 거성으로 불린다.), Dragon Ash, DREAMS COME TRUE, EXILE, 나가부치 츠요시, DJ HASEBE, 도우시-T, 보아, 드렁큰 타이거, 코무로 테츠야, Swizz Beatz, AI, DJ Mitsu the beats, 릴 존, 스눕 독, Teriyaki Boyz(M-flo의 VERBAL을 필두로 한 프로젝트 그룹) 등 정상에 위치한 사람들이 있다. 2011년 7월 27일 일본 R&B 계의 레전드인 AI와 함께 작업한, 평화를 나타내는 가사가 특징인 싱글 'Blue'를 내놓았다.
현재는 DJ와 프로듀싱 위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부(異父) 동생인 SPHERE of Influence도 일본 힙합씬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일본 유흥법에 의해 일본 클럽들이 늦게까지 영업하는 것이 불법이었으나 Zeebra가 압장서서 정치인들을 설득한 끝에 법을 개정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클럽 영업을 합법화한 공로를 본인 스스로도 상당히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2020년 11월 2일 본인의 외도가 주간지 플래시(FLASH)의 보도로 인해 발각되면서 불거진 불화로 인해 결국 아내인 모델 나카바야시 미와와 합의 이혼하였다. 미성년자인 두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이며 딸들의 호적도 모두 아내의 호적으로 옮겨서 딸들의 법적 성씨가 어머니의 성씨인 나카바야시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NiziU 멤버인 리마의 법적 본명도 나카바야시 리마로 변경되었다(어머니 인스타그램 전문). 사진(번역)
2022년 현재에는 일선에서 물러나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12] 현역 당시에는 자신이 돌격대장으로서 힙합씬을 잡아 먹어야 겠다는 굳은 각오로 임했기에 호전적인 모습을 보였었다고 한다. 현역 당시 Zeebra의 눈빛이나 애티튜드가 상당히 사나웠던 건 사실. 할아버지가 된 현재에는 눈빛도 말투도 부드러워졌고 사람 좋은 모습으로 변모하여 래퍼로서의 Zeebra만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본인의 말로는 자신의 회사인 GRAND MASTER를 설립하고 난 뒤로는 여러 비즈니스 업무도 해야했고, 일본의 클럽 공연 관련한 법 개정 문제 등으로 여러 자리에 참석하기도 해야하는 등 어른으로써 성숙해져야하는 자리가 많아지기도 했기 때문에 스스로도 그런 면에서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3. 신예 랩퍼 RAU DEF와의 디스전
2011년 어느날, Twitter에 Zeebra를 겨냥한 디스곡이 하나 올라온다. # 디스곡을 올린것은 도쿄 태생의 일본랩퍼 Rau Def(1990년생).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부정확하고 다소 흐느적거리는 발음으로 랩을 하기 때문에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실력 논쟁이 있는 랩퍼다. Ken the 390과 콜라보를 한적도 있고, 일본내 언더그라운드 판에서는 핫한 랩퍼(이 당시에는 데뷔 2년차 랩퍼)이다. 어쨌든 첫번째 디스곡은 가사도 저질스러운 비난, 비방에 가까웠으며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았고, 지브라는 자신의 트위터에 맞디스곡을 올리며, 이 이상의 대응은 (Rau Def에게)먹이를 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Zeebra / Die By The Beef 真夜中三時 丑三つ時 突然の発作 始まる病気 激しい鼓動 激しい動悸 末期的症状 漲る狂気 ジキルとハイド スキルとプライド が引きずり出す俺のイーヴィルなサイド 白黒付けるなら今の俺はBlack 子供相手にBiggie & 2 Pac 幼児虐待 リリカル・スプラッター 速効Murder 目の前で火付けるバーナー 突然掌返した君に 裏で糸引いてる誰かの耳に 歳がどうの?Yes, I'm 40 だがステップすりゃ最後 U dead like zombie 東電もびっくりの責任転嫁 トチ狂って年上にライムでケンカ? 若手いじめるのは柄じゃねえ だから忘れんなよ これはお前のゲーム 正にスピルバーグVSジョージ・ルーカス 1ヴァースでお前の背筋凍り付かす 神よ 許したまえ奴の罪を 若さが故の過ちと無知を 銃に生きる者は銃に死す様に Beefに生きる者はBeefに死す 神よ 与えたまえ奴に罰を 愚かな裏切り者の結末を 銃に生きる者は銃に死す様に Beefに生きる者はBeefに死す |
ラフにしかけた罠。まんまとハマった! 禁断の餌 This is beef そんな食いたかった?草食男子。 もちろん ready to die!like a biggie ヤツの享年まで約2年 突っ走るのみ。仕掛けるか死ぬか 始めた時からできてる覚悟 わざわざ1曲使っての説明ありがとう いくつだっけ? あら、もう40!!!! えっ?てかお前だろゾンビ?笑 東電もびっくり大阪逃亡の間 放射能浴び肥大化 俺はgodzilla そっちは三匹くらい揃ってやっと怪獣だっけ? でも一匹じゃただの動物 早いとこオススメします降伏 hook 同じ土俵? 下りてってやろうか? 日本語ラップlike a今の相撲界 やべえ。また言っちまった...可哀想か... でも口悪いからこのjob選ぶ! yes im 21。まだ就活中 とりまえず履歴書数枚 新世代にエントリーその名はリーダー 常にtrap or die 覚えときな! 目的は明解ただの選手宣誓 他に深読みはいりません 仲良しこよしラップサークル 代表引き連り出したらついてるうじ虫 FUCK YOU! あのビールみてーなヤツですら シーダからゲトれたリスナー たしか桁が一つちがうよな? 本性がばれた裸の大様 そろそろお気付き?今回のtrap 暴く真実後悔はない 白黒つけりゃもはやただの馬 鹿でもつれて老後楽しみな ? まあ、一方通行ならtwitterでいいか。 これ以上は弱いものいじめDEF やってんもーん? そう、すべて俺のゲーム 返した掌で転がしてくぜ 2nd hook おびき寄せて一気に狩る これが新しいゲームの 新しいルール 評論家きどりネトヲタの 採点? いらねー! 単純明快な殺し合いでいい。 どーせみんなこういうの好き? 盛り上がったハッシュタグが証拠 何が不謹慎 プロ野球、Jリーグ、AKBすら始める戦い 試合開始! 3rd hook |
4. 여담
- 시대를 잘못만난 REAL 뮤지션 MC 노리아키의 노래 UNSTOPERBLE에서 FAKE 라며 디스를 당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노리아키는 지브라와 에미넴을 Fake라고 디스한 이유는 당시 두 사람이 가장 잘나가는 래퍼들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13] 지브라의 불륜 등으로 스캔들이 발생하자 뮤직비디오 댓글에서 지브라가 Fake였던 것을 몇년은 앞서서 알아차린 시대를 앞서간 뮤지션이라는 밈이 유행하고 있다.[14]
- 게임 매니아들에게는 2008년 직접 프로듀싱한 PS3 게임 용과 같이 켄잔! 주제가인 'BUSHIDO'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곡은 그간 일본어 곡 작업을 중단하고 영어로 주로 랩을 해왔던 기존의 관행을 타파한 곡이다.[15]
그의 목소리가 니코동에서 케이온! 주제가와 리믹스된 적이 있다. 덕후들도 ZEEBRA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닥찬중.
- Street Dreams 뮤직비디오에서는 욱일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나온다. 뮤비가 나온지 한참이 지난 후인 2013년~2014년 즈음에 한번 논란이 됐었는데 워낙 친한파로 유명했던 지브라였고, 타이거JK, 윤미래, 주석, 보아 등 많은 한국 가수들과 친했으며 같이 작업을 했던 지브라 였기에 생각보다 큰 논란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욱일기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 않는 일본 교육이 문제다,", "욱일기에 대해 잘 몰랐던것 같다." 라는 팬들의 주장으로 덮어졌다. 실제로 지브라는 대표적인 좌익 성향으로 반우익, 탈원전을 외쳤었고 한국에 관한 많은 칭찬글을 올렸다. 지브라를 싫어했던 일본 극우들과 자주 다퉜다.#
- 원래는 상당한 부잣집 출신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요코이 산업 이란 회사로 일본 해군육전대 군복 독점 납품, 벼락부자가 된 호텔 뉴재팬 사장이자 화재 사건 당시 안일하고 문제 많은 대응으로 욕을 배불리 처먹었던 요코이 히데키의 외손자라고 한다. 그가 20살 무렵 외조부 요코이 히데키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사들인 적도 있을 정도로 갑부였으나 사망시에는 집안이 몰락해 재산이 빚 밖에 남지않은 상태라 상속포기를 신청했다고 한다. 집안 빚만 2000억엔이었고 당시 이 돈을 갚으려면 자신의 수입으로는 16666년이 걸릴것이기에 상속포기는 당연했다고 회고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인듯.
- 차녀이자 막내인 나카바야시 리마(2004년생)가 2019년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으로 확인되었다. # 유명 연예인 부모의 배경을 가진 것 때문에 니지프로젝트 출연 이전부터 일본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았다. 누가 지브라딸 아니랄까봐 포지션도 래퍼. 2019년 JYP 연습생 쇼케이스에서 가장 인상깊었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리고 2020년 1월 31일부터 일본에서 방영되는 박진영의 글로벌 프로젝트인 Nizi Project에 참가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회부터 출연했다. # 아무래도 JYP연습생 출신으로 기본기가 출중한데다 연예인인 부모의 피를 제대로 이은 서러브레드 멤버로 일본 측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듯 하다. 2019년 7월에 촬영된 니지프로젝트 2화 기준으로 7개월차 JYP 연습생이라고 한다. 만 2세 때부터 영미권 국제학교를 다녀서 영어가 유창하고, 한국 연습생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한국어도 할 수 있다. 아버지의 트윗과 모델 출신 어머니의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공개된 과거를 보면 어릴때부터 K-POP를 무척 좋아했다. 2020년 JYP 소속 걸그룹 NiziU의 멤버로 데뷔했다.
- 2020년 8월 25일 일본 주간지 플래시를 통해 부인이 아닌 다른 젊은 여성과 8월 5일부터 2박 3일 고급 리조트 여행을 다녀왔다고 증거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다. 불륜설과 관련해 그의 소속사는 “(리조트에서 함께 있던 여성과는)단순 친구”라고 즉각 부인했으나 지브라는 트위터를 통해 “나의 경솔한 행동으로 관계자분들과 팬들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혀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 최근 일본 연예계의 대형 불륜사건이 잊을만하면 터지는 상황이기에 당연하지만 여론이 매우 좋지않다. 특히나 딸이 인기를 얻고 막 가수 정식데뷔를 준비하는 중에 벌어진 일이라 아버지가 딸 발목잡는다며 욕을 두배로 먹고있는 상황. 다만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사건일 뿐이기에 억지로 리마를 엮어 조회수를 뽑으려는 기자들 또한 일본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는 상황이다. 결국 2020년 11월 2일 전 아내 나카바야시 미와는 이혼을 공지했고, 지브라는 두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상실했으며, 두 딸이 어머니의 호적으로 변경하면서 두 딸의 법적 성씨도 나카바야시로 바뀌었다.
-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하여 2023 대구힙합페스티벌 5월 6일 라인업에 들어갔다.
[1] 아들 2명은 지브라와 첫번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지브라와 지브라의 두번째 아내가 직접 양육했다. 차남은 DJ REN으로 활동 경력이 있다.[2] 2020년 5월 26일 장남의 아들이 태어났다. 지브라에게는 첫 손주.[3] 딸 2명은 두번째 전 배우자였던 모델 나카바야시 미와에게서 태어났다. 차녀이자 막내인 리마는 JYP 연습생 출신이며 Nizi Project에 참가하여 JYP 소속 걸그룹 NiziU의 멤버로 데뷔했다. 2020년 이혼하면서 미성년자인 두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상실했고, 어머니의 호적으로 변경하여 두 딸의 법적 성씨도 나카바야시로 변경되었다.[4] 본인이 대표이사이다.[5] 음악적 면, 정치성향 면에서 불화설이 있다. 2011년 재결성.[6] 영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 2002년 킹 기도라의 '공개처형'이란 곡에서 Dragon ash의 kj를 디스하였다. 이 일로 인해 Dragon Ash의 음악성이 크게 바뀌게 된다. 공개처형 가사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KJ가 자기 스타일 따라한다고 깐 것이다. 팬들의 의견으론 Grateful Days 이 후로 KJ의 랩 스타일이 지나치게 자신을 따라하고 있어서 그 이전의 미성풍이었던 KJ의 스타일을 좋아했던 지브라가 거기에 디스했다고 보는 의견들이 많다. 이 후 인터뷰에서 이 말이 맞다고 얘기하였고, 지금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 애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단, 극적인 기회는 없어서 화해까지 안했다고. 물론 본인은 앙금이 모두 풀려 언제든 사이가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의견을 표했다.#[7] 정작 Zeebra는 KJ의 절친인 RIZE의 제시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이를보면 KJ를 인간적으로 싫어하진 않는다고 보면 될지도. 다만 디스의 목적 대비 가사 표현이 지나치게 원색적이라는 부분에서(KJ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디스한 것 뿐만 아니라 DA 멤버들까지 싸잡아서 깠다) 과연 디스곡의 완성도로써 평가할만하냐라는 부분에서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지브라는 이 곡 외에도 자신의 카피캣들을 디스한 전적이 있긴 한데(DJ OASIS - Harmaggedon 등), 정작 그 곡들에선 카피캣들의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8] 권위가 깊은 시상식인 만큼 일본의 당대 최고 인기 스타들이 진행자로 나선다. 게키단 히토리, AKB48도 여기서 사회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2008년에 스폰서만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MTV의 태도를 유튜브로 직접 비판했다.[9] 최근에는 TV 도쿄의 Ryuha-R을 비롯한 음악 전문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10] 지금이야 K-Pop도 K-Hiphop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아시아 최강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이 당시만해도 일본 음악이나 패션 등이 한국을 압도하던 시절이었다. 일본 뮤지션들의 일본어 랩, 무대 장악력, 패션, 라이프 스타일 등이 한국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시절이었다. 당시 표현으로 일본 래퍼들의 간지가 한국 래퍼들을 압살하던 시절이었다. 현재에는 Zeebra의 딸이 역으로 JYP의 한국식 아이돌 체제 하에서 걸그룹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20년 만에 한국의 위치가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두 세대를 이어 한일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11] 연애 시절 지브라의 집에 가면 두 어린 아들이 있고 어지럽혀진 집안이 보기 안쓰러워서 결혼을 빨리 해서 챙겨주고 싶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주부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12] 피쳐링 활동은 현재에도 간간이 하고 있으나, 솔로앨범이나 재결성한 KGDR의 신곡은 현재에도 요원한 상태이다.[13] 물론 디스 자체가 유머의 일부분일 뿐이다.[14] 물론 이 밈도 유머의 일부분일 뿐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15] 참고로 이 곡은 일본 고전시를 그대로 따와 가사를 개사하고, 소위 말하는 사무라이 필을 잘 살린 음악이다.[16] 20~24분에 보면 영상을 스크래치할 수 있는 DJ장비가 나오는데, 이 장비를 이용하여 지브라옹은 칸쟈니 금지영상 '야스다 댄스' 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