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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보병사단 포병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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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보병사단 포병연대
{{{#FFFFFF 第二步兵師團 砲兵聯隊}}}
The 2nd Infantry Division Brigade Regi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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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절굴불 불퇴전 상승 노도포병
창설일 1948년 11월 20일(포병 제1대대)
1950년 11월 13일(제2보병사단 포병연대)
해체일 2019년 12월 6일
상징명칭 노도포병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2보병사단
규모 연대
역할 공격부대, 전시진격
해체 전 연대장 예) 대령
위치 강원도 양구군

1. 개요2. 역사3. 편제4. 근무환경5. 출신인물
5.1. 연대장5.2. 장교/부사관5.3. 병
6. 부대영상7. 사건사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2보병사단의 예하 포병연대.

2. 역사

1948년 11월 20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포병 제1대대로 최초 창설되었다. 1949년 제2보병사단이 창설되자 2사단에 편입, 강원도 양구군으로 부대를 이동하였다.

2007년 국방개혁 2020으로 인한 부대개편 및 감축, 2보병사단의 공정화사단 개편으로 2019년 12월 6일 해체되었다. 예하 대대들은 제633포병대대를 제외하고 제21보병사단제12보병사단으로 재배치 되었다.

3. 편제

4. 근무환경

4개의 대대와 1개의 연대본부로 구성되어있으며 3개 대대와 연대 본부는 원통~인제에 주둔해있고 다른 1개 대대는 양구에 주둔해있다. 3개의 자주포부대와 1개의 견인포 부대로 구성되어있으며 모두 155mm이다. 선진병영(?)정책으로 유명한 동기 생활관을 맨 처음 시행한 부대가 여기 대대 중 하나이다(63대대). 막사는 위에 써있듯이 연대본부와 굴지의 1개 대대633를 제외한 전 부대가 신막사를 사용 중이다. 그러나 여기 부대에 배치되어 연대 내 다른 부대를 돌아다니다보면 1개 대대가 나머지 신 막사부대를 월등히 초월할 정도로 전방부대 치고 괜찮은 시설로 중무장되어있어 부러울지도 모른다. 18포병대대는 전군 최초 포병이라는 위업을 가지고있는데 이 최초 포병이라는 게 같은날 창설된 포병대대가 5개나 더 있어서 최초는 아닌 것 같지만 참 웃기게도 부대 창설식이 제일 일찍 시작하고 제일 빨리 끝나서 사실상 최초 포병이라는데, 사실 최초 창설 포병대대는 같은 날 같은장소에서 동시에 했었다(...). 6.25 전쟁 당시 부대재편과정에서 지금과 같이 되었을 뿐이다. 18포병대대가 창설되었을때 제1야전포병대대였기 때문에...18포병대대는 창설당시에는 1포병대대라서 최초 창설 6개 대대 중에서 가장 먼저 창설된 대대였다.
이름이 18포병대대인 이유는 이 1야전포병대대를 8사단에 배속시키면서 18포병대대로 명명했기 때문이다.최초 창설된 6개 대대 중 10포병대대는 수도사단 배속, 11포병대대는 1사단 배속, 17포병대대는 7사단 배속, 16포병대대는 6사단 배속, 50포병대대는 포병학교 배속이었다.


훈련 강도는 2사단에 걸맞게 한숨이 나올 정도로 강하다. 게다가 4개 대대중 3개 대대가 인제군에 주둔하고 있으며, 인제군이 주둔지인 12사단의 간섭을 심하게 받는다. 즉, 인제의 3개 대대는 12사, 2사 포병연대, 양구에 주둔하는 나머지 1개대대는 21사, 2사 포병연대가 있어 잦은 훈련과 검열로 인해 간부든 병사든 깊은 빡침이 올라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포병이라 총 쏠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포병 1개 대대가 사단 전투력 순위 1위에 오른 적도 있을 정도로 보병 못지않게 삽보다 총을 잘쏜다. 그래도 보병에는 못 미치겠지만 보병 지원해 준다고 이리저리 차출되는 병사들이 있으니 따져보면 거기서 거기다. 게다가 위수지역 자체가 전략적 요충지이다 보니 각종 상황이 전술훈련날 포탄 쏘듯이 뻥뻥 터져서 근무자와 당직 계통을 상당히 힘들게 하는 것도 한 몫 한다. 그 당시 근무한 타 부대 병사들마저 상황전파로 그 상황을 들으면서 불쌍해 했으니 말 다했다(…).

부대 생활은 생각보다 단순한데 상급부대 지침을 매우 잘 따라서 일과 시간이 딱딱 맞아 떨어져서 군인들의 빛과 소금인 개인정비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예외적으로 62포병대대의 경우에는 개인정비 시간에 비사격 훈련을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제대로 된 개인정비시간을 가지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 개인 정비 시간이 19시에 시작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

한때 후반기 교육을 받는 자주포 조종수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부대였다. 오죽했으면 육군포병학교의 비공식 군가의 구절 중 "노도로 가면 눈물나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00년대 초반에 양구군 동면에 위치한 자주포 대대에서 한 병사의 결혼식을 올려준 일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해당 병사는 가정 사정으로 인해 식은 못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한 후 입대했는데 방송 촬영 중에 마침 좋은 소재이기도 해서 부대에서 가족을 초청해 결혼식을 올려준 것.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자주포에 타고 입장하는 신부의 모습이 압권이다. 당시 해당 부대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결혼식 비용은 110억 200만 원이라고. 11억짜리 자주포 10대 동원. 이후 해당 병사는 부대에 계속 남아 부사관으로 임관하였고 부사관 장기복무심사 역시 통과하여 계속 복무 중에 있다.

18포병대대와 62포병대대는 21보병사단, 63포병대대는 12보병사단#으로 각각 예속전환되었다. 633포병대대는 2019년 12월 31일부로 포병대로 개편되어 12보병사단으로 예속전환되었다.#

국방개혁 2020이 발표된 후, 2사단 해체설[1]과 함께 군단 포병여단이나 타 사단 포병연대로 옮겨간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기 때문에 당연히 막사 신축계획도 전무했으나, 2012년 9월 기준으로 1개 대대와 연대 본부를 제외한 3개 대대가 신막사 사용 중에 있다. 연대 본부는 땅이 좁아서 신막사를 못 짓는다는 말이 있고 남은 1개 대대633는 가 보면 도저히 신막사를 지을 엄두가 안나는 고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라고. 사단 내에서의 소문에 따르면, 4월에 보일러가 동파된 적이 있다고 한다.소문이 아니라 진짜다 그렇다, 봄이 오고도 동파가 되는 한파와 고도를 자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형자체가 산 중턱을 깎아만든 곳이라 신막사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경사 또한 없는 곳이 없다.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차리포대의 장병들은 행군 훈련시 45도 각도의 언덕을 0.7km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일명 눈물고개. 사실, 인근 부대로 넘어가는 3.5km 정도의 행군로가 있는데 부대 전체에서는 그 행군로는 눈물 고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차리 포대원들 마음속의 눈물고개는 포대로 복귀하는 그 길이 맞다. 복귀 중 다른 중대들이 중간에 줄줄이 빠져나가는 모습은 정말 다리에 힘이 빠지게 한다. 2005~07년에는 둘팔고개로 불렸고 대공초소로 가는 길이었다. 참고로 둘팔의 뜻은 그 28... 재미있는 일화로 2사단 신병교육대에서는 633으로 배정받은 훈련병에게 박수를 쳐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다들 짐작 갈 것이다...

연대 본부는 독립부대로 포가 없는 본부포대가 있다. 포병은 알다시피 중대장이 아니라 포대장이다.
위치는 원통리에 있고 봉화봉 끝자락이라 툭하면 전투체육으로 봉화봉을 올라갔다.

5. 출신인물

5.1. 연대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연대장.
역대 제2보병사단 포병연대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00대 000 예) 소장 육사 00기

5.2. 장교/부사관

5.3.

6. 부대영상

7.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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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년대 후반 당시엔 소문만 돌았을 뿐 아직 2사단 해체계획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