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 |
<colcolor=#005ba6,#59b3ff><colbgcolor=#f0f0f0,#191919> 후보 | <colbgcolor=#fff,#1f2023>경선 (더불어민주당 · 자유한국당 · 국민의당) |
대권주자 · 최종 후보 | |
여론조사 | 여론조사 · 출구조사 |
변수 | 변수 (지역별 · 정당별 · 세대별) · TV 토론회 |
결과 | 개표 결과 (지역별 · 정당별 · 세대별) · 결론 |
기타 | 타임라인 · 2017년 5월 보궐선거 |
대한민국의 주요선거 |
1. 결론
19대 대선의 기본적인 구도는 정권심판론을 기반으로 한 박근혜 vs 반 박근혜, 자유한국당 vs 반 자유한국당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본격적인 선거 기간에 접어들수록 일련의 탄핵 사건으로 인한 반사 이익의 대부분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가져가는 형태를 띠자,[1] 이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 국민의당을 위시한 타 정당들과 이를 발 빠르게 확산시킨 언론 보도로 선거 중반엔 '문재인 vs 반문재인' 구도가 형성되는 모습을 띠기도 했다.[2]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기존 보수층들의 민심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실망, 배신, 분노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나눠졌고, 이 네 정당의 기존 지지층까지 합세하면서 "다른 누가 당선되는 건 어쩔 수가 없지만 자유한국당이 당선되는 것 만큼은 절대로 안 돼!"라는 적극적인 견제심리가 밑바탕에 깔려있던 선거였다.[3]그만큼 박근혜와 자유한국당에 대한 분노가 크게 작용했던 선거였던 셈. 이는 반문을 가장 적극적으로 외친 국민의당에서조차 자유한국당과는 단일화나 연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선거 후반 들어선 사실상 단일화가 무산되고 tv토론을 통해 유권자들이 각 후보들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소신투표 경향도 제법 뚜렷해져 선거 결과 사표가 될 확률이 높던 유승민과 심상정 후보도 각각 6% 이상의 유의미한 득표를 하게 된다.
각 당의 대선후보가 정해진 이후부터 언론은 문-안 양강구도를 예상했고 한동안 여론조사에서도 그렇게 나왔으나, 안철수 후보 본인과 소속 정당인 국민의당 구성원들이 그 표를 지켜낼 효과적 선거 캠페인을 구사하지 못하며 자폭 비슷하게 되어버렸고, 결국 홍준표만 반문 보수층이 결집하는 반사 이익을 보게 된다. 허나 그 홍준표도 여러 구설수와 실책 콤보로[4] 선거 결과 본인의 본진격인 경남을 캐스팅보트로 만들어버렸고, 저번 대선에서 보수정당에 80% 이상의 지지를 보내준 보수의 보루격인 TK에서도 과반을 넘지 못하는 충격적인 득표율을 맛봐야 했다. 안철수와 유승민 후보의 표 갈라치기도 일부 있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다른 후보들도 표가 갈라진 건 마찬가지였고, 결국 그만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러온 여파가 엄청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수도권과 충청권, 제주특별자치도 등지에선 범야권 후보인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의 득표율 합이 대략 7 : 3 정도로 범여권 후보인 홍준표와 유승민의 득표율 합의 2배 이상을 넘었다. 부울경과 강원도에서도 범야권 후보의 득표율이 6 : 4 정도로 범여권 후보의 득표율보다 더 높았다. 오직 대경권에서만 범여권 후보의 득표율이 더 높았지만 이곳에서도 범야권 후보의 득표율 합이 대구에선 41.5%, 경북에선 41.8%로 예전에 비해 괄목할 정도로 올라갔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부울경에서 지난 대선에 비해 51,794표가 더 늘었고 대경권에서는 86,653표가 더 늘어 영남에서 지난 대선에 비해 138,447표를 추가 득표했다. 이로 볼 때 지난 대선 때 박근혜를 지지했으나 박근혜 정부의 실책으로 인해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으로 선회한 표심이 영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호남에서는 지난 대선에 비해 득표율이 30% 정도 감소했고 득표 수도 741,891표가 감소하여 감소 폭이 가장 컸는데 이는 안철수의 등장으로 표심이 분산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안철수 두 사람의 호남 지역 득표율을 합치면 90% 내외로 정확하게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이 호남에서 기록한 득표율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 또한 지난 대선에 비해 615,689표가 감소했는데 이 역시 안철수의 등장으로 표심이 분산된 결과로 판단된다.
한편, 안철수 후보의 경우 간혹 일부에서 보수진영으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엄연히 민주당계 정당에서 갈라져 나온데다 선거 결과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호남, 수도권, 대전, 제주)일수록 득표율이 높았고, 약한 지역(영남, 강원)에서 득표율이 낮았다.[5] 따라서 안철수 후보의 표는 진보, 중도, 보수표가 뒤섞여 있어 어느 한쪽 진영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표심이 아니었다는 분석이 타당하다. 좀 더 들어가면 문재인vs홍준표 양자 대결 시엔 문재인을 찍으면 찍었지 홍준표를 찍을 표는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 이는 심층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는데, 안철수 후보를 찍은 표심은 중도가 가장 많았고 진보와 보수는 엇비슷했다. 참고로 문재인은 진보와 중도가, 홍준표는 보수표가 압도적이었다.
선거 기간 보수층 민심은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으로 일부 옮겨가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한동안 정처없이 떠돌았다. 이 시기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하기 직전 새누리당에서 분리된 바른정당 역시 탄핵 찬성층에선 난파하는 배에서 살려고 빠져나온 반 적폐세력,[6] 탄핵 반대층에선 배신자 정당이라는 인식이 남아 완전히 신뢰가는 대상이 아니었기에 한동안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상황에서 박근혜는 결국 탄핵되었고, 곧바로 접어든 대선 초반 국면에서 치러진 민주당 경선은 214만 명 참여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이념상 지향점이 약간 차이가 나던 문재인/이재명/안희정 후보 지지자들 간의 갈등이 불거졌고, 경선 결과 문재인 후보가 선출되긴 했지만 다른 후보의 지지자들을 몽땅 흡수하진 못했다. 그리고 직후 열린 국민의당 경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압도적 지지율로 선출되고, 언론의 조명 아래 반문 대안세력으로 성장하며 기존 보수 지지층+민주당내 반문 지지층을 상당수 흡수했지만, 결국 tv 토론 등에서 양쪽의 마음을 다 잡아두지 못하면서 특히 보수층이 다시 분산되기 시작해, 결과적으로는 안철수 후보가 3위 홍준표 후보는 2위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는 무난하게 1위를 차지하며 대통령에 당선된다.
2.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안티테제
19대 대선의 판도 및 결과는 묘하게도 10년 전에 벌어진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정반대로 바뀐 듯한 결과가 나왔다. 19대 대선의 가장 큰 계기가 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그 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반대 버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볼 때 기묘한 결과다.1. 정부의 실책들로 인한 여당 지지 기반의 붕괴, 전 선거에서의 치명적인 타격, 분당 및 재창당
17대: 참여정부 말기에 정부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인기를 급속도로 잃었다.[7] 삼성 X파일 사건, 대연정 파동, 우클릭 논란과 비노계인 정동영의 대선 후보 확정 등으로 친노 지지층도 대거 빠져나갔다. 특히 2006년 벌어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수도권 기초자치단체장을 대거 내주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여파로 열린우리당에서의 탈당 및 중도통합민주당의 창당, 그리고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의 재창당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시기 유행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란 말도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정권의 인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19대: 박근혜 정부의 지속된 실책으로 인해 지지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다, 기어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여당인 새누리당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의 야권 분열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참패, TK지역 야권후보 입성 허용, 원내 2당 추락 등의 대참패를 당한다. 여기에 더해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강성 지지층까지 떨어져 나가고, 한국갤럽 조사에서 역대 최저 정권 지지율인 4%를 기록하고 만다. 결국 박근혜 탄핵을 둘러싸고 새누리당 내의 친박과 비박 간의 대립이 극도로 심해지고, 그 결과 비박계를 중심으로 탈당 및 바른정당 창당이 이어졌으며 기존의 새누리당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여기에 친박 의원인 조원진도 따로 나가서 구 새누리를 계승한다고 2017년 신 새누리당을 창당했다.
2. 선거가 벌어지기 한참 전부터 이어져 온 제1야당 후보의 대세론
17대: 본격적인 대선 구도로 접어들기 전부터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여론조사 선두를 달렸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를 따라잡는 형국이었다. 범여권 인사로서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이 높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지지율이 떨어져 결국 2007년에 대권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엔 단 한번도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으면서 이를 대선까지 이어갔다.
19대: 문재인 전 대표가 2016년 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지지율의 1,2위 자리를 차지했고, 안철수 전 대표가 이를 따라잡는 형국이었다. 한편, 여권에선 당시 출마가 거론되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6년 이전까지 각종 여론조사 1위를 하며 주목 받고 있었는데, 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다가 2017년 1월에 1위까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넘겨준 반기문 전 총장이 결국 대권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인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등이 지지율 상위권을 유지했다. 문재인은 본격적인 대선 기간에서도 안철수와 양자 대결을 가정한 일부 여론조사에서 근소하게 뒤진 것을 제외하면 끝까지 1위 자리를 고수했고 이는 대선 결과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3. 여권의 유력 주자의 실종
17대: 당시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에선 마땅한 차기 대선주자가 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2006년까지는 고건 전 총리가 유력 후보로 등장했지만 지지율이 떨어지며 장고 끝에 2007년 불출마를 선언했고, 박스떼기 논란까지 터지는 혼탁한 당내 경선 끝에 이해찬, 유시민 대신 정동영이 후보로 나온다. 그러나 친노계 유시민이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안 망한다라는 폭탄발언을 하는가 하면#, 정동영은 당시 비노계에다 친노와 거리를 두기 위해 참여정부를 비판해 기존 친노 지지층에서 반감이 심했고, 이는 그가 당내에서 일치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19대: 제20대 총선의 참패로 인해 김문수, 오세훈, 김무성 등 잠재적인 대선 주자들이 대거 탈락해버리고, 그나마 여당에서 희망을 걸던 반기문, 황교안도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제대로 된 후보가 없게 되었다. 경선을 통해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후보로 확정되었지만 홍준표는 장기간 도지사 업무를 맡으면서 여의도의 중앙 정치판과는 다소 멀어졌고, 자유한국당 내 주류 계파인 친박과도 거리가 있는 인사였다.
4. 제1야당 후보의 절대적인 1위 고수 및 다자구도, 1강 2중 2~3약 대결, 범여권, 반(反)제1야당 인사들의 단일화 시도 및 실패
17대: 이명박의 절대 우위 아래 정동영 및 이회창이 그 뒤를 따랐고, 그 뒤를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및 여러 군소후보들이 쫓아가는 형태가 되었다. 정동영 및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의 범 개혁 진영 단일화 시도가 있었으나 권영길 후보와 민주노동당 세력은 민주당계와 뿌리가 다른 진보당계인데다가 나머지 셋조차 입장 차이가 뚜렷해 결국 단일화는 실패했다.
19대: 문재인의 절대 우위 아래 안철수 및 홍준표가 그 뒤를 따랐고, 그 뒤를 유승민, 심상정 및 군소후보들이 쫓아가는 형태가 되었다. 안철수와 홍준표, 유승민의 후보 단일화에 대한 바람을 일부 보수 언론 쪽에서 피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 세력은 민주당계에서 갈라져 나온데다가 적폐 세력(특히 자유한국당)과의 연대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반대했고, 홍준표와 유승민도 처음엔 단일화에 긍정적이었으나 후보 간의 몇 번의 감정 싸움 끝에 계파 갈등도 다시 심해지며 결국 단일화는 실패했다.
5. 전국적인 지지 기반 확보에 성공한 당선자
17대: 당선자인 이명박은 광주, 전북, 전남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특히 전통적으로 역대 대선에서 민주계 후보를 지지해왔던 서울을 가져오면서 유일하게 수도권을 완전히 석권한 보수 후보가 되었다.
19대: 당선자인 문재인은 대구, 경북, 경남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특히 전통적으로 역대 대선에서 보수계 후보를 지지해왔던 부산, 울산, 강원을 가져오면서 유일하게 남부 영남과 호남에서 동시에 승리한 민주계 후보가 되었다.
6. 서울 전지역을 석권한 당선자
17대: 당선자인 이명박은 서울 전 지역에서 정동영을 더블스코어로 따돌렸다. 강남3구에서는 압도적으로 이겼으며, 심지어 진보 성향이 강했던 관악장군, 노도강에서도 무려 20% 이상 앞서면서 완승했다.
19대: 당선자인 문재인은 서울 전 지역에서 홍준표를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따돌렸다. 심지어 보수 성향이 강했던 강남3구, 용산구에서도 10% 이상 격차를 벌리면서 여유롭게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오륜동, 한남동, 잠실4동, 잠실6동에서도 승리했다.
7. 지지율의 상당수를 특정 지역의 표심에 의존한 2, 3위 후보들
17대: 각각 2, 3위를 기록한 정동영과 이회창 후보는 각각 호남과 호서에서만 간신히 존재감을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정동영은 호남에서나마 압도적인 1위라도 차지했지만, 이회창은 텃밭으로 인식하던 충남에서조차 이명박에게 근소하게 밀려 2위를 차지했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1위를 한 곳이 없었다.
19대: 각각 2, 3위를 차지한 홍준표와 안철수는 광역자치단체 중 각각 영남/관동과 호남에서만 간신히 존재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나마 홍준표는 대구, 경북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경남에서도 불과 만여 표 차이로 가까스로 이겼지만, 안철수는 텃밭으로 인식하던 호남에서조차 문재인에게 압도적으로 밀려 2위를 차지했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1위를 한 곳이 없었다.
8. 2~30대 청년층의 지지를 받으며 화제를 일으킨 군소 정당 후보들.
17대: 정치 신인인 문국현이 인터넷 상에서 청년층의 지지를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20대에서 유의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15.9%) 덤으로 정동영을 비토하던 일부 친노에게도 어필하였다.
19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각각 '따뜻하고 온화한 보수', '여성과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선명성 있는 진보'라는 점을 어필해서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에게 어필하였고, 각각 계층에서 유의미한 득표율을 냈다.
9. 1위 후보와 나머지 후보의 뚜렷한 포지티브vs네거티브 활동, 그리고 역효과
17대: 이명박 후보는 그 유명한 먹방 CF(이명박은 배고픕니다) 등을 통해 자신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경제 대통령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였다. 반면 정동영 후보를 비롯한 다른 주자들은 BBK 주가조작 사건을 계속 언급하며 이명박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세의 대비되는 모습은 오히려 이명박 VS 안티 이명박이란 구도를 만들어서 이명박 대세론을 더욱 탄탄하게 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19대: 문재인 후보는 자신이 진정한 적폐 청산의 적임자임을 주장하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탄핵을 통해 쌓인 시민들의 불만을 해결해 주겠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친문 지지자 및 민주당이 별도로 행한 네거티브 공세가 있긴 했으나 문재인 본인의 포지티브 공세에 비하면 비중이 적은 편이었고 문재인 본인이 네거티브를 행한 사례는 더욱 적었다. 한편, 국민의당 안철수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측에선 문재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쏟아부었고, 이는 세간에 아침마다 때린다고 '문모닝'이라는 비아냥 섞인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였다.[8] 그러나 문재인 측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안철수, 홍준표 측에서 역으로 구설수가[9] 터지면서 결국 지지율 격차를 줄이진 못했고 문재인 대세론은 끝까지 유지된다.
다만 차이점도 있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17대 대선의 경우 이명박 대세론이 너무 굳어 있었고 여당의 탈당쇼로 지리멸렬한 상태여서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들이 매우 많았다. 실제 17대 대선의 투표율은 고작 63%에 불과해 제6공화국 이후 치른 대선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그러나 19대 대선의 경우 박근혜 탄핵 심판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고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그 어떤 때보다 뜨거웠으며 자유한국당 지지층들도 원래 투표율이 높은 노년층이 대다수에 보수 궤멸의 위기감을 느끼고 본 선거 날에 총결집 하면서 무려 77.2%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17대 대선 당시 2위 후보였던 정동영은 전국 대부분에서 대패했지만 그래도 텃밭인 호남에서 만큼은 8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보이며 텃밭을 지켰다. 그러나 19대 대선 2위인 홍준표는 텃밭인 영남에서도 부산과 울산을 문재인에게 헌납했고 경남은 초박빙 접전 끝에 겨우 이겼으며 대구, 경북에서도 과반 득표에 실패해 텃밭도 온전히 사수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17대 대선과 다르게 19대 대선은 원래 보수의 앞마당이었다가 경합지로 변한 곳이 상당히 많았고[10], 이에 따라 많은 국민들이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결과(특히 강원, PK)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비슷한 부분으로 세대별 투표의 경우, 17대 당시 2~30대 청년층의 투표 성향이 많이 갈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2위인 정동영은 모든 세대에서 20~30% 정도의 비교적 고른 지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19대 대선 2위인 홍준표는 노년층인 60대 이상은 거의 50%에 가깝게 나오는 반면 20대 지지율은 두자리 수인 10%에도 못미치는 8% 정도의 지지율이 나오는 등 세대별 격차가 심했다.
선거 | 18대 대선 방송3사 출구조사[11] | 19대 대선 홍-안 양자구도 | ||
지역 | 박근혜 | 문재인 | 홍준표 | 안철수 |
서울특별시 | 47.5% | 52.2% | 47.6% | 52.1% |
인천광역시 | 49.0% | 50.6% | 46.4% | 53.3% |
경기도 | 48.8% | 50.9% | 47.4% | 52.3% |
강원도 | 61.3% | 38.4% | 57.8% | 41.9% |
대전광역시 | 49.5% | 50.0% | 46.5% | 53.2% |
충청남도[12] | 54.0% | 45.8% | 50.5% | 49.3% |
충청북도 | 56.6% | 43.2% | 54.6% | 45.2% |
부산광역시 | 60.3% | 39.5% | 65.4% | 34.4% |
울산광역시 | 59.9% | 39.9% | 61.2% | 38.6% |
대구광역시 | 79.9% | 19.9% | 74.9% | 24.7% |
경상남도 | 62.9% | 36.8% | 73.4% | 26.4% |
경상북도 | 82.1% | 17.7% | 76.3% | 23.4% |
광주광역시 | 6.1% | 93.8% | 4.9% | 95.0% |
전라남도 | 7.7% | 92.1% | 7.4% | 92.5% |
전라북도 | 11.2% | 88.5% | 12.3% | 87.5% |
제주특별자치도 | 51.8% | 47.9% | 46.5% | 53.2% |
전국 | 50.1% | 48.9% | 52.7% | 47.0% |
이외에도, 19대 대선의 홍준표 vs 안철수 결과는 마치 18대 대선의 축소버전이라고 할 정도로 흡사했다.
3. 반문 연대가 성사됐다면?
선거 기간 중 일부 보수층을 중심으로 문재인에 대항하기 위해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간의 중도+보수 단일화를 진행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위의 사진은 만약 이 셋이 단일화에 성공했을 경우를 가정하고 우선 홍준표vs문재인을 나타낸 양자대결 여론조사 그래프이다. 대부분의 관심도는 3명 중 지지율이 높은 안철수와 홍준표를 중심으로 하였고, 유승민으로의 단일화는 바른정당과 유승민의 낮은 지지율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선 직전 조사되어 후에 공개된 양자구도 대결에선 실제 결과보다 더한 결과로 홍준표가 문재인에게 압도적으로 밀린다. 이것을 보면 안철수가 문재인의 표를 일부 가져갔기에 그나마 덜 망신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안철수 본인이 토론회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아 급속도로 보수층의 지지를 까먹었음에도 2위 홍준표와 큰 차이없는 3위를 했다. 40석 정당과 107석 정당의 득표가 거의 비슷한 것은 자유한국당의 참패다. 단일화가 이루어져 신거를 실시했으면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말도 못꺼내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사실 이번 대선이 조기대선으로 치러진 이유를 생각해보더라도 이번 대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박근혜 탄핵으로 인해 치러진 선거였고, 이 탄핵에 대한 여론은 찬성이 80%에 이를 정도로 그야말로 진보, 중도 세력이 압도적으로 박근혜와 자유한국당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드러내고 있던 선거였다. 선거 과정을 보면 각 당의 경선이 모두 끝나고 본격적인 대선기간이 시작할때부터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은 기존 민주당의 안희정 충청지사 및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층+자유한국당의 승산을 가늠하지 못하는 보수층을 대거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지지율이 폭풍처럼 올라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층을 표방하는 유권자들이 박근혜 탄핵사태에 책임이 있는 자유한국당에 표를 줄리 만무했고, 문재인이 대통령 되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보수 세력이 생각했다면 당연히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이 그나마 문재인 당선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해석되어야 했다. 하지만 안철수로 잠깐 몰리던 보수 민심은 여러 논란으로 인해 다시 급격하게 빠져 결국 홍준표와 안철수 후보는 둘 다 서로 비슷한 표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보수층이 가장 많은 영남 지역에선 안철수 후보가 전국 평균보다 한참 낮은 15%를 얻었고, 그 다음으로 보수세가 강하던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도 20% 미만으로 주저앉으면서 안 후보에 대한 보수층 지지가 대부분 빠졌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선거 막판에 지지표가 이처럼 급격히 요동친 이유는 어차피 안 될거 보수 세력의 몰락이나 막자라는 명분으로 탄핵 반대층을 비롯한 골수 보수층들이 급격하게 자유한국당으로 결집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익/극우 유권자들은 선거 막판 문재인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자유한국당이라도 살려서 문재인 정권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덕분에 선거 보전 비용도 못 받을 지지율을 얻고 있던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은 막판에 반등하며 당 파산 얘기까지 나돌던 막대한 선거 비용을 보전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보수표가 대거 빠져나가고 남은 안철수 후보의 21% 득표는 문재인을 찍어줬으면 찍어줬지 자유한국당에게 갈 표는 전혀 아니었던 셈이다.
결론적으로 선거 당시 국민의당 주장이었던 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된다는 말이 맞아 떨어진 상황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결국 안철수라는 선택지는 보수층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그나마 맞으면 덜 아픈 매'로 비유할 수 있는[13] 선택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보수층들은 이러한 선택지를 스스로 마다하고 이기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결국 문재인이라는 맞으면 엄청나게 아픈 매의 선택지로 뛰어든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결과가 샤이 보수를 결집하기는커녕 탄핵 반대 보수층은 홍준표로, 탄핵 찬성 보수층은 안철수, 유승민, 심지어는 문재인, 심상정까지 골고루 분산시켜 버리면서[14] 결국 보수층은 강원/경남은 자기들 안방에서 캐스팅보터로, TK는 보수가 과반조차 못먹는 지역,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참패하는 결과가 되었다.
차라리 상기된 것처럼 오히려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 때 그나마 가능성이 더 있었던 걸로 나온다. 위 그래프는 대선토론으로 인해 안철수의 유동보수표들이 한창 빠져나가고 있던 시기에 나온 그래프인 만큼 이전에는 더더욱 비등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실제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에 조사된 양자대결 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10% 내외의 격차, 심지어 일부 조사에선 안 후보가 이기기도 하는 나름 해볼 만한 상황까지 흘러갔던 적도 있었는데, 안철수 본인이 토론회에서 진보/보수 양쪽 표심을 다 흡수하려다 스텝이 꼬이며 오히려 부진한 모습을 보여 스스로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기에 딱히 할 말이 없다.(...) 4월 토론회 이전까지만 해도 보수층들이 양자대결시 '문재인은 싫고 홍준표는 글렀으니 차라리 안철수를 뽑자. 그래도 IT전문가니 4차산업 대비는 잘하겠지.' 이런 심리를 보였는데 토론회 이후엔 '찍을 사람 참 없다. 차라리 투표 안할란다.' 식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애초 문재인에 비해 단단한 지지층이 부족했던 안철수 후보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했다.
어쨌든 문재인이 당선되는데에 역설적이게도 '홍찍문'을 실현시켜준 영남 TK 보수층의 홍준표 몰표가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더 확실하게 해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또 이런 결과물이 나온 건 안철수 본인의 대선토론회에서의 실책이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데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선 시작부터 `반문`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웠던 안철수 스스로가 토론회에서 보수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함으로써 보수의 전략투표를 방지했고, 그로 인해 선거 막판에 홍준표 지지도가 상승하면서 오히려 텃밭이었던 호남에서도 일부 국민의당 지지층이 홍준표만은 안돼라는 사표 심리로 1위였던 문재인 후보에게 결집하면서 안철수 후보는 3위로 주저앉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상들과 무관하게 애초부터 문재인 대세론이 형성될 만큼 문재인 후보 본인의 경쟁력도 세긴 했다. 실제 이번 선거는 단일화 없는 사상 최초의 5자 대결 구도였기에, 기존 정치 구도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찍어줄 중도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성향에 잘 맞는 후보를 따라 소신투표를 하면서 분산된 표도 무시할 수 없다. 보수층의 분열에만 초점을 두면 보이지 않는 사실인데,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으로 분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 정국이라는 호재를 맞고도 지난 대선에 비하면 약 127만 표 정도가 더 감소했고, 안철수 후보가 제3당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을 올리고 심상정 후보 역시 진보정당 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을 올린 것이다. 만약 양자 또는 3자로 구도가 좁혀졌다면 심상정 후보의 표 중 가장 많은 부분을 문재인 후보가 흡수했을 것이며, '깨끗한 보수'를 내세우는 유승민 후보의 표 역시 일정 부분 흡수했을 것이다. 이렇게 됐을 경우 문재인 후보는 3자 대결시 50% 내외, 홍준표와의 양자대결시엔 70% 내외까지 득표가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문재인 캠프 측에서 가장 우려했던 사항은 안철수 후보와의 양자대결이었으나 그런 상황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고,[15] 문재인 후보는 무난하게 당선된다.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9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며 여당으로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은 대선에서 557만 951표라는 역대 최다 표 차이로 패배하며 정권을 내주게 된다. 즉, 2007년 17대 대선 때의 대통합민주신당보다 좀 더 뼈아픈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이때 자유한국당의 처지가 대통합민주신당보다 더 비참하냐 아님 비슷하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자유한국당이 지지율상으론 한자리 수까지 추락하며 폐당 위기에 처했다가 그래도 24%라는 득표를 기록하며 회생의 여지를 남긴 점[16], 핵심 기반 지역인 TK에서 그나마 과반에 가까운 승리를 거둔 점, 그리고 비호남권에서 보은군에서만 0.5%p 차이로 이긴 정동영과 달리 비영남권에서 1등한 지역이 꽤 많다는 점에서 더욱 비참하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17대 대선 당시 호남은 80%에 육박하는 더 압도적인 몰표를 그때도 정동영에게 몰아줬고, 정동영+문국현+권영길+이인제를[17] 합친 개혁진영 총합이 36%에 육박한데 비해, 19대 대선 범보수진영은 홍준표+유승민+조원진+이재오를 합쳐도 31% 밖에 안되었다. 게다가 유승민이나 이재오의 경우 같은 보수진영이라지만 친박계와는 그야말로 앙숙이었고,[18] 서로 따뜻한 보수/중도실용보수를 내세우며 개혁 보수를 지향했기에 이념상 대비점도 있었다. 한편, 텃밭인 TK에서 과반을 못했다는건 자유한국당이 심각하게 봐야 할 일인데, 심지어 경북의 경우 20~30대, 대구의 경우 20~40대 연령층에선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밀렸다. 부산과 울산을 내준건 덤. 결국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향후 부활할 수 있느냐 아님 철저히 패퇴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7대 대선의 경우, 정권이 인기가 많이 없는 정도였지만, 이 선거에선 정권 자체가 이미 박살나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중도(특히 안보는 보수)를 표방한 안철수가 보수표를 적지 않게 가져간 상황이었기에, 17대 대선과의 비교는 더욱 힘들다. 또 당시 정동영은 대선에서 떨어지고 나서 대통합민주신당은 사분오열되었고 총선에서 또 졌다. 반면 홍준표는 이 선거 이후 오히려 힘이 생겨 현재 자유한국당 당대표까지 된 상황이다. 그리고 2018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갈릴 전망이었다. 그러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박살나버리면서 결론적으로 자유한국당은 이 대선에서 보수 총결집으로 어느 정도 표심을 모았으나 문재인 정부가 국정 지지도가 높아지면서 야당 심판론이 대두되자 선거에서 또 진 것으로 보인다.
[1] 2017년 3~4월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 당시 여론조사상 문재인+안희정+이재명 후보의 합이 6~70%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리고 경선이 끝난 이후 안희정+이재명 후보 지지층 중 상당수는 다른 정당 후보들에게 분산되지만 그래도 상당수는 문재인 후보가 흡수했고, 이는 선거 막판까지 문재인 대세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2] 반기문 - 황교안 - 안희정 - 안철수 - 홍준표 테크를 탄 반문(이 중 자유한국당 특히 친박 지지층을 제외하면 반패권주의, 중도) 표심이 실존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문재인 캠프 측에선 친박과 달리 자신들은 배타적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정도나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걸 믿지 못하는 (즉, 문재인 되면 도로 박근혜식 패권주의 정권 된다는) 민심 또한 분명 존재했다는 것이다.[3] 바른정당은 보수 정당이지만, 2016년 총선 직전 유승민 지지층 조사(96.4%) 등을 보면 지지층의 상당수가 야3당 출신일 정도로 범진보 진영의 영향력이 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TK나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쪽에서 바른정당 지지율이 좀 더 높긴 하다. 특히 연령적으론 20대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는 젊은 보수층이 바른정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자는 유승민에 대한 선호도 조사, 후자는 바른정당에 대한 지지도 조사이기 때문에 선호하지만 1순위로 지지하지는 않는 표심은 진보층에 많다고 볼 수 있으며, 오히려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국민의당 지지자보다 더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할 정도로 아직까지는 진보 계열 지지자가 많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자기를 보수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진보이거나.[4] 경남도지사일 때 반발이 굉장히 심했다. 안 그래도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는 중에 출마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거 후반부에 터진 과거 문제(발정제)도 그렇지만 강에 뛰어내리겠다, 여성 설거지, 장인 영감탱이 등의 실언 및 인성 문제는 누구의 공세가 아닌 자신의 입으로 뱉어낸 논란이기에 표심 확장에 스스로 한계를 둔 격.[5] 선거 초반 안철수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대신해 보수/TK 지역에서 지지율이 급등했을 때는 보수표가 안 후보에게 몰린게 맞지만, TV 토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지지율이 급하락한 이후로는 오히려 이전 민주당 지지자들의 코어 표가 더 많이 남았다.[6] 애초 바른정당으로 뛰쳐나온 의원들 중 상당수는 보수 개혁보다는 당시 지지율이 제법 높던 반기문의 바른정당 입당을 노리고 뛰쳐나온 사람들이었다.[7] 근데 아이러니한 건 참여정부 말기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 당시 역대 정권 중 최고였다. 오히려 최악은 제1차 북핵 사태와 한미FTA 문제가 있었던 집권 4년차 2006년이었다.[8] 그런데 이는 선거전략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뒤쫓아가는 후보 입장에선 1등 후보를 꺾기 위해 아니꼽지만 뭐라도 해야 하는 입장이고, 반대로 1등 후보 입장에선 논란을 줄이고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 게다가 이는 네거티브만 부각시키는 일부 언론의 문제도 있어 보이는데, 문모닝만 하더라도 "우리 당은 포지티브도 많이 하고 다른 당도 많이 비판했는데 언론이 문모닝만 부각시켰다."고 억울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9] 병설 유치원 논란(안), 토론셀프 네거티브 논란(안), 돼지 발정제 논란(홍), 장인 패륜 논란(홍) 등.[10]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동부, 강원도, 비영호남권 농촌 지역 등[11] 실제 선거 결과는 박근혜 후보가 경기, 인천, 대전에서 출구조사와 달리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12] 세종특별자치시 포함[13] 선거 초반 안철수 지지를 주장하기도 했던 그래서 안철수에게 오히려 민폐를 끼친 조갑제는 이를 '절반의 승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14] 실제로 이전 선거에서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의 17%가 문재인에게 투표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상대적 보수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말이라도 시원하게 잘하는 심상정을 뽑았다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또 반대로 탄핵은 찬성하지만 바른정당에 가지 않은 꽤 많은 비박계 의원들처럼 맘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보수 본류당이라 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을 찍어준 보수층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선 직후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다시 한자리수로 폭망하면서 홍준표를 찍은 표 중 상당수가 부동층으로 돌아갔다는데서도 확인된다.[15] 인위적인 단일화를 했을 시엔 적폐 세력과의 연대로 지지층 내에서 큰 반감을 샀을 수 있지만, 안철수 후보는 처음부터 자유한국당과의 연대는 없다고 선을 그었고, 이런 상황에서 만약 홍준표 후보가 조건 없이 자진사퇴했다면 승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고 해도 거대 보수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내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건 자존심+그동안 쓴 선거 비용 때문에라도 무리수가 많은 일이긴 했으나, 그걸 또 성사시키는 게 정치력인데 결국 실패했다.[16] 그런데 이건 당시 대통합민주신당도 비슷했다. 이때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여론조사상 이명박-이회창 후보에 이어 3위로 낙선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으나, 막판 호남이 결집하면서 결국 26%를 득표해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다. 실제 결과와 달리 여론조사에선 부동층이 선거 막판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17] 당시 피닉제 이인제는 19대 대선 당시 국민의당과 비슷한 포지션에 해당하는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래봤자 1% 득표율이었지만 넘어가자.[18] 유승민은 박근혜한테 직접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힐 정도로 친박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정치인이었고, 이재오의 경우 친이계 좌장으로 박정희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을 해 박근혜를 독재자 딸이라고 비판하는 등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둘 다 나란히 20대 총선 때 친박에 의해 공천학살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