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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15:24:19

제17계획

1. 개요2. 문제점3. 실전4. 같이 보기

1. 개요

제17계획(Plan XVII)은 1913년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채택된 대 독일 제국 전쟁 계획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독일과 전쟁이 난다 → 알자스-로렌으로 돌격한다. 끝.

1905년 시작하여 독일이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한 슐리펜 계획이 구체적인 전쟁 수행 방침을 담고 있는 것에 반하여, 실지 회복이라는 애국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다만, 이것도 전쟁계획은 계획이므로 어느 정도의 내용은 있었는데, 일단 아래와 같은 생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보통 단순 무식하기만 한 계획이었다는 식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사실 이 계획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일단 전자의 경우는 당연히 알자스-로렌 방면에서 본인들이 계획한 것처럼 전투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독일 너머에 있는 동맹국인 러시아와의 협공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회전문효과를 통해 독일 본토로 들어갈 경우 독일군의 기동만 방어하면 되는 프랑스에 비해 독일이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공산이 컸다. 실제로 독일의 슐리펜 계획은 러시아의 낙후된 시스템상 총동원에 2달은 걸릴 것이라고 계산하고 이루어진 계획이었으나 프랑스의 자금지원을 통한 철도망 구축으로 러시아의 총동원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또한 중립국 벨기에 방면으로 쳐들어오는 것은 참전을 망설이던 영국의 참전을 부르는 것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근본적인 결함과 급변하던 전장 환경의 특성상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있었다.

2. 문제점


결론적으로 말해서 제17계획은 중간과정만이 있을 뿐 최종목표가 없는 반쪽짜리며 시대의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낡은 계획이었다.

슐리펜 계획의 허점이 상대방은 철저하게 호구이며 본인들은 터미네이터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 중간에 변경조차 어려운 복잡함에 있다면 제17계획은 전쟁을 끝낼 목표조차 갖추지 못할 만큼 단순무식했다는 점에서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3. 실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프랑스군은 본 계획에 따라 알자스-로렌으로 공격을 시도하였다. 당시 다양한 경로로 들어온 첩보는 독일이 벨기에를 통해 우회하여 침공할 것을 시사했지만 공격지상주의(엘랑 비탈)가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군 수뇌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강공을 시도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이 배치된 부근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독일군의 방어가 완강하여 공격은 지지부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때 공세를 한 것조차 잊곤 한다. 프랑스 군부에서는 나폴레옹 시대의 기병의 기동력을 믿었으나 이미 기관총이나 야포가 널리 보급된 상황이라 참호를 파고 대응 사격을 하면 기병의 일제돌격이 먹힐리가 없었다. 게다가 해당 방면에는 독일이 설치한 각종 요새와 방어시설물이 넘치는 상황이니. 이런 상황에서도 공격 의지가 부족해서 이를 돌파하지 못한다며 일선 지휘관을 교체하는 추태를 벌였다.[1]

게다가 계획이 정체된 상황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는데, 독일군이 곧 벨기에를 통하여 넘어오자 이를 막기 급급하여 프랑스군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바빴으며, 덕분에 알자스-로렌 방면의 독일군이 반격해서 상실한 지역을 되찾은 것도 모자라 오히려 국경선을 넘어서 일부 프랑스 영토를 점령하는 등의 흑역사로 남겨지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안한 것만 못한 결과로 남았다.

하지만 정말로 이 계획이 성공했더라면 프랑스군이 너무 멀리 진격한 덕분에 마른 전투에 제때 병력을 투입하지 못해서 오히려 프랑스가 전쟁에서 패배했을 지도.

4. 같이 보기


[1] 제1차 세계 대전은 철조망, 기관총, 참호, 요새로 도배한 방어자의 화력이 고작해야 19세기 기병 수준이었던 공격자의 기동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대단히 특이한 상황이었다. 결론은 참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