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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4 02:35:31

제비급 고속정

파일:대한민국 해군기.svg 현대 대한민국 해군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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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함 DDG 세종대왕급, {정조대왕급}, {KDD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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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첨자R: 퇴역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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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동급 함정3. 상세
3.1. 사업 배경
4. 제원

1. 개요

대한민국 해군이 운용한 소형 고속정(PK: Patrol Killer). 최초의 국산 고속정이다.

2. 동급 함정

|| 함종
선체번호
|| 함명 || 진수 || 인수 || 취역 || 퇴역 || 건조사 || 비고 ||
시제형
PK 151 제비 51 1972년 11월 18일 1972년 11월 18일 1973년 1월 15일 - 대한조선공사 학생 1호
PK 152 제비 52 1972년 11월 18일 1972년 11월 18일 1973년 1월 15일 - 학생 2호
양산형
PK 153 제비 53 - 1975년 5월 31일 1975년 6월 1일 - 코리아타코마
PK 155 제비 55 - 1975년 5월 31일 1975년 6월 1일 - 대한조선공사
PK 156 제비 56 - 1975년 8월 1일 1975년 8월 1일 - 대한조선공사
PK 157 제비 57 - 1975년 9월 15일 1975년 9월 17일 - 코리아타코마 1979년 7월 삼천포 근해에서 무장간첩선 격침
1983년 12월 다대포 근해에서 무장간첩선 격침[1]
PK 158 제비 58 - 1975년 10월 8일 1975년 10월 8일 - 대한조선공사
PK 159 제비 59 - 1975년 11월 1일 1975년 11월 1일 - 코리아타코마 1980년 3월 포항 근해에서 무장간첩선 격침[2]
PK 161 제비 61 - 1975년 11월 25일 1975년 11월 25일 - 대한조선공사
PK 162 제비 62 - 1975년 12월 22일 1975년 12월 29일 - 코리아타코마
PK 163 제비 63 - 1975년 12월 27일 1975년 12월 29일 - 코리아타코마
PK 165 제비 65 - 1976년 1월 20일 1976년 2월 11일 - 대한조선공사
PK 166 제비 66 - 1976년 1월 23일 1976년 2월 11일 - 코리아타코마
PK 167 제비 67 - 1976년 1월 23일 1976년 2월 11일 1984년 7월 26일 코리아타코마 어청도 인근에서 좌초
PK 168 제비 68 - 1976년 2월 4일 1976년 2월 11일 - 코리아타코마
PK 169 제비 69 - 1976년 2월 23일 1976년 2월 - 대한조선공사
PK 171 제비 71 - 1976년 2월 27일 1976년 2월 28일 - 코리아타코마 1980년 6월 격렬비열도 근해에서 무장간첩선 격침
PK 172 제비 72 - 1976년 2월 20일 1976년 2월 28일 - 코리아타코마
PK 173 제비 73 - 1976년 3월 30일 1976년 4월 1일 1993년 2월 15일 대한조선공사 1978년 4월 거문도 근해에서 무장간첩선 격침
PK 175 제비 75 - 1976년 3월 30일 1976년 4월 1일 - 대한조선공사 1978년 4월 거문도 근해에서 무장간첩선 격침[3]
PK 176 제비 76 - 1977년 11월 18일 1977년 12월 20일 - 대한조선공사
PK 177 제비 77 - 1977년 11월 21일 1977년 12월 20일 - 코리아타코마
PK 178 제비 78 - 1977년 11월 18일 1977년 12월 20일 1993년 2월 15일 대한조선공사
PK 179 제비 79 - 1977년 11월 28일 1977년 12월 20일 - 코리아타코마
PK 181 제비 81 - 1978년 1월 31일 1978년 3월 2일 1993년 2월 15일 코리아타코마 1980년 6월 격렬비열도 근해에서 무장간첩선 격침
PK 182 제비 82 - 1977년 12월 20일 1978년 1월 30일 - 대한조선공사
PK 183 제비 83 - 1978년 2월 10일 1978년 3월 2일 - 코리아타코마
PK 185 제비 85 - 1978년 3월 15일 1978년 4월 15일 1991년 4월 8일 대한조선공사 마산 근해에서 유조선과 충돌, 침몰

3. 상세

1972년 11월 첫선을 보였으며, 1973년부터 1978년까지 28척이 취역했다. 시제함은 '학생호'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학생들이 방위성금으로 모금한 3억 8천만 원이 설계 및 제작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를 기리고자 붙여졌다. 건조사는 대한조선공사코리아타코마. 시제정 두 척은 처음 제작 당시 PBK[4] 1/2로 약칭되다가, 정식 취역 이후 PK라는 함형을 부여받게 되었다.

제비급은 중형 고속정인 참수리급(PKM, 당시 기러기급)이 등장하기 전까지 연안 경비를 책임졌으며, 참수리급의 배치 이후에는 참수리 1척 + 제비 2척의 편대 조합으로 운영되며 초계 등 각종 임무에 쏠쏠히 쓰였다. 특히 작은 선체에서 오는 뛰어난 기동력으로 대간첩작전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으며 이후 북한의 해상을 통한 간첩 침투를 크게 줄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선체가 70톤급으로 매우 작았던 탓에 작전에 무리가 있었고, 80년대 중후반경부터는 물 밀 듯이 양산되던 참수리급에 밀려 항만경비 등으로 임무가 축소되었다.

알루미늄 선체로 내구성이 약하여 시제형인 학생호들은 1980년대 초반부터, 양산형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각각 퇴역을 시작했으며, 약 10 ~ 15년 정도 사용 후, 1993년을 끝으로 최종 퇴역하였다. 최종 퇴역하면서 12척이 필리핀 해군에 공여되었다. 1991년에는 185호정이 유조선과 충돌하여 침몰하기도 했다.

3.1. 사업 배경

1970년 이후 미국의 군수물자 무상지원 감소 결정은 국내 예산을 이용한 전력증강투자를 늘렸고 국민의 세금이 곧 군사력 증강의 밑거름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해군 역시 보다 체계적으로 한국의 실정에 맞는 장비와 무기체계의 확보에 노력했으며, 1970년대 초 고속정 확보 계획이 해군에 시달되었다. 이러한 고속정 확보 계획과는 별도로 1970년 11월 정부는 국민들의 방위성금을 해군에 배정하여 40노트급 고속정을 확보하도록 했다. 따라서 국민의 방위성금을 재원으로 한 70톤급 고속정의 국내 건조가 결정되었으며, 방위성금 중 학생들이 모금한 성금 3억 8천만 원을 고속정의 설계, 건조 비용으로 배정한 이유로 학생호라는 이름을 얻었다.

1972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서 상세 설계, 건조된 학생호는 당시의 낙후된 조함기술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41노트라는 속력을 달성한 획기적인 사업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해군 조함단이 주관하여 해군 자체의 기술과 설계능력으로 만든 최초의 고속정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학생호는 이후 율곡사업으로 건조한 소형 고속정(PK) 획득사업의 기본이 되는 최초의 함정획득 사업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김효철 외, 『한국의 배』 (지성사, 2006).출처

4. 제원

함종 소형고속정(PK: Patrol Killer)
배수량 경하 70 t
만재 76 t
전장 23.6 m
전폭 5.4 m
흘수 2.9 m
최고속도 38 knots
승조원 20 여명
무장 학생호(시제형) 20mm 2문, 5인치 로켓 6기, 12.7mm 2정
PK(양산형) 40mm 1문, 20mm 1문, 5인치 로켓 6기, 12.7mm 2정


[1] 잠수정을 함수로 들이받아 격침하였다.[2] 교전 과정에서 승조원 1명 전사(중사 이양), 충무무공훈장 추서.[3] 교전 과정에서 승조원 1명 전사(하사 강종철), 충무무공훈장 및 1계급 특진 추서.[4] 한국형 초계정(Korean Patrol Boat). 울산급 호위함을 FFK라고 부르던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