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 장굉의 손자에 대한 내용은 장상(손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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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張爽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촉한의 관료.2. 정사 삼국지
권학종사를 지낸 인물로 220년에 조비가 헌제를 선양을 빙자한 폐위로 존호를 칭해 연호를 고쳐 황초라 하면서 조위의 황제에 즉위했는데, 이에 유비가 발상해서 상복을 입고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황제에 즉위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제갈량이 꾀병을 부려 자신의 집에 오게 했는데, 제갈량이 유비의 허락을 받는 동안에 바깥에서 안한장군 미축, 청의후 상거, 양천후 유표, 별가 조조, 치중 양홍, 의조 두경, 태상경 뇌공, 광록경 황권, 제주 하종, 학사 윤묵, 사업 초주, 대사마 은순, 편장군 장예, 소부 왕모, 소문박사 이적, 종사랑 진복과 함께 대기했다가 제갈량이 유비의 허락을 받고 병풍을 치자 쏟아져 나와서 즉위를 청하니 유비는4. 창작물에서의 등장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43, 무용 21, 지모 54, 정무 54, 인사 62, 외교 57의 능력치로 165년생으로 나온다.[1] <선주전> 원문에는 초주가 참가했다고 되어 있으나 <초주전>에서는 초주가 권학종사가 된 것은 유비가 죽은 건흥 연간(223년 ~ 238년)에 제갈량이 명한 것이며 초주의 나이를 상고하면 당시에는 겨우 20대 초반이라 이런 중대사항에 참여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고증하고 있다. 《화양국지》에는 상서로운 도참을 말할때 "주군(周群)의 부친이 아직 죽지 않았을 때"라고 적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심가본은 "부친 군" 두 자가 베끼다 잘못되어 거꾸로 된 것(...)으로, 응당 "신 군의 부친이 아직 죽지 않았을 때"라고 하는 것이 화양국지의 말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여기서 나오는 초주의 이름은 주군이 와전된 것으로, 글을 베끼다 군(群) 자를 놓치고, 다시 초(谯) 자를 잘못 더한것이라고 했다. 중국어 위키백과에 제공하는 화양국지본에서도 같은 이유로 '주군'으로 적고 각주로 '(화양국지의) 각 구본(舊本)과 삼국지에는 동일하게 '초주'라고 적혀있다. 고찰하건데 당시 초주는 아직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았다(尚未入仕), 이 표 안에는 주군(周群)이 밝혀져 있다. 당시 전사(傳鈔)하면서 잘못 쓰여 주군이 초주가 되었다. 이곳을 개정하니 상세한 주를 그대로 따른다.'라고 교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