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1:47

임경완/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임경완

1. 롯데 자이언츠 시절
1.1. 1998~2007 시즌1.2. 2008 시즌1.3. 2009 시즌1.4. 2010 시즌1.5. 2011 시즌1.6. FA
2. SK 와이번스 시절
2.1. 2012 시즌2.2. 2013 시즌2.3. 2014 시즌
3. 한화 이글스 시절4. 시드니 블루삭스 시절
4.1. 2015/16 시즌4.2. 2016/17 시즌
5. 연도별 주요 성적

1. 롯데 자이언츠 시절

1.1. 1998~2007 시즌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318165301831A5.jpg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30504193051721.jpg

인하대 4학년 당시 대학 최다승 투수 출신으로 1998년 1차 지명으로 계약금 2억을 받고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프로에 데뷔했다. 그러나 데뷔전부터 고난의 시작.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였던 대구 삼성전에서 선발투수가 조기에 무너지자 구원으로 등판했는데 초장부터 털리기 시작한 건 신인이니까 그렇다쳐도, 당시 롯데 사령탑인 김용희 감독으로부터 '신인 주제에 성의없이 투구한다'는 오해를 사, 신동주에게 만루홈런을 얻어맞는 등 그로기 상태가 될 때 까지 난타를 당해도 임경완을 강판시키지 않고 마운드에 방치되었다. 사실상 벌투라는 비참한 데뷔전 직후 바로 2군으로 쫓겨났으며, 이후 3년간 거의 전력 외 취급을 받아 롯데 팬들로부터 또다시 투수 먹튀를 하나 수집했다고 까였다. 데뷔 첫 승을 데뷔 4년이 지난 2001년에 거뒀으니 그럴 법도하다.

이 와중에 2003년 지바 롯데 캠프를 다녀오면서 싱커를 제대로 연마한 덕택에 실력이 급상승했으며 2003년 3승 14패 11세이브 4홀드의 성적을 올리며 드디어 레귤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당시 롯데의 성적이 워낙 막장이라 패를 많이 쌓긴 했어도 이 해는 그 손민한조차도 3승 11패를 거둔 시즌이었으니 임경완이 14패를 떠안은 게 크게 흠이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해는 임경완이 유일하게 올스타전에 출장한 해이기도 하다. 2004년부터는 드디어 기량이 만개해 시즌에는 3.14의 평균자책점에 4승 6패 5세이브 22홀드를 기록하여 홀드왕에 오르는 등[1]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경기 중간에 올라와서 84구를 던지는등 양상문 당시 감독의 정신나간 혹사로 말미암아 허리 부상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2004년 9월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재검을 받은 뒤, 나이 30세에 입대했다. 공익도 아니고 부산진경찰서에서 전경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2007년에 복귀하였다. 현역으로 인한 공백같은거 없이 오히려 2004년 시즌과 같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1.2. 2008 시즌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80316091043021.jpg

2008 시즌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 의해 마무리 투수 보직을 맡았으나, 세이브 상황에서 세이브를 기록하지 못하고 패전 투수가 되는 블론세이브 경기를 자주 보여줘 야구 팬들로부터 임작가(혹은 임괴테라는 별명도 있다)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었다. 이 당시에 미니홈피에 몰려드는 악플이 10만개를 넘을 수준이었다. 실제로 경기에 이겼다 싶어서 관객들이 사직구장을 떠나다가도, 임경완이 등판했다고 들리면 나가는 걸 멈추고 다시 사직구장으로 돌아와 임경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5월 6일 한화전 9회 초 무사 1루 대주자 추승우, 타자는 김민재가 친 타구를 맞고 공이 굴절되면서 내야안타로 기록되지만 임경완은 이대호에게 불꽃같은 송구를 날리게 되는데...전설의 레이업 슛

결국 7월 2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2군으로 내려갔으나, 9월 들어 1군으로 다시 올라왔다. 9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8회 말 1군 복귀 이후 처음으로 등판하여 '임작가'라는 오명을 만회하려 하였으나, 볼넷을 2번이나 내주게 되면서 상황이 급박해지자 결국 ⅔이닝만에 다시 교체되었다.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자 2008년 시즌 말에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마무리로 데이비드 코르테스를 영입했다.

2008 시즌은 2승 5패 7세이브 5블론 평균자책점 4.19, WHIP 1.37의 기록을 올려 마무리 투수로서는 실패했다고 평가받는다.

사실 2008년의 부진은 임경완만 탓할 것은 아니었다.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는게 드러났는데도 계속 기용한 로이스터의 잘못도 크며(덕분에 임경완은 임경완대로 욕먹고 강영식이 모든 부담을 뒤집어 썼다) 2004년 양상문의 혹사로 허리가 망가지면서 기존의 구위와 각좋은 슬라이더를 상실했고, 결정구였던 싱커에 의존했으나 심판 성향에 영향을 많이 받는 구종이라 마무리에는 부적합했다.

1.3. 2009 시즌

파일:attachment/lim_angel.jpg

중간계투로 옮기며 한동안 자책점을 0점대를 유지하여 '임천사'라 불리웠다. 7월 23일 두산전에서는 주자 2루에 노아웃 쫓기는 상황에서 4-5-6 번을 상대로 3연속 삼진으로 틀어막는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롯데 팬들의 분위기는 '마무리만 아니면 얜 된다'로 가는 중인 듯. 애초에 홀드왕 출신이니 원 위치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봐야 하나? 아직도 타 팀 팬들은 임작가의 위용을 기대하지만 그런 거 없이 다 틀어막아주는 당신은 진정한 임천사.
파일:attachment/임경완/f0018015_4df093fcead89.jpg

2009시즌에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임창용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롯창용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마운드에 등판하면 '임임임임', '林林林林'이라는 제목의 게시물로 도배되기 시작한다.

부상으로 잃어버린 회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릴리스 포인트를 언더핸드까지 내리며 부활에 성공했는데 이는 또 한번 노예 알바로 부상당하는 날에는 정말 영원히 부활하지 못할 것이란 뜻.

2009 시즌은 4승 1패 7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5, WHIP 1.17의 매우 뛰어난 성적으로 홀드왕을 차지했던 2004 시즌에 버금가는 최고의 성적을 냈다.

1.4. 2010 시즌

양상문의 귀환과 함께 화려하게 추락. 이정훈과 함께 완전히 몰락하는 롯데 계투진을 상징하게 되었다. 투구시 손목과 허리를 전혀 쓰지 못하면서 신나게 맞아 나가는 중. 2008년에 이미 마무리에 부적합하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또다시 마무리로 기용된 것도 부진에 한몫 한듯 하다.

하지만 5월 이후로는 회복세를 보였다. 팀 내 불펜진이 최악인 상황이라 팀 사정 상 어쩔 수 없이 당분간 계속 마무리 투수 보직을 맡을 듯했다.

8월 현재 롯데 투수진 중 유일한 3점대 방어율이라 팬들 사이에선 우리팀 승리조는 임천사밖엔 없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역시 마무리는 맡으면 안되는지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7월 3일 경기에서도 9회 말 2아웃에서 블론세이브를 했다. 그리고 8월 7일 한화전에서도 8회 1사 이후 올라와 ⅔이닝동안 6안타를 맞으면서 폭풍같이 5자책점을 기록.

7월까지도 어떻게든 막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8월 들어 피안타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8월달 성적은 ERA 7.94로 끔찍한 수준.

2010시즌 정규시즌 기록은 47경기 43⅔이닝 3승 4패 7세이브 4블론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3.30, WHIP 1.42.

외국인 노동자 사도스키를 핍박하는 주범이기도 했다. 사도스키가 힘들게 막은 걸 자주 막장으로 만들어서 사도스키는 리그 상위급 호투를 하고도 겨우겨우 10승을 거두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던 2010년 9월 30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팀이 스코어 1:0으로 앞선 7회 말 1사 2, 3루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3번타자인 고영민의 대타로 나온 이성열을 상대로 2스트라이크까지 잘 잡아 놓고 투수 글러브 맞고 2루쪽으로 굴러가는 내야안타를 맞아 블론세이브를 하고 말았다.

그나마 4번타자 김현수를 상대로 3루주자 이종욱을 홈에서 아웃시키는 1루땅볼, 5번타자 김동주를 삼진로 아웃시켜 추가 실점은 하지 않았고, 결국 이날 3⅔이닝 41투구수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는데, 팀이 연장 10회 초에 3점을 뽑아 스코어 4:1로 승리하여 임경완은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이기던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2로 지던 9회 초 1사 2, 3루 상황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4번타자인 고영민의 대타로 나온 정수빈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고 다시 작가로 변신하고서 김일엽으로 교체되었다. 이날 임경완은 0이닝 4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99.99를 기록하며 2010년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 제대로 집필한 두산 베어스정재훈과 함께 사직에 잉크 냄새가 폭발할 정도로 집필을 해주셨다.[2] 그리고 팀도 9회 초에만 8점을 조공하며 스코어 11:4로 패했다.

2010년 준플레이오프 5경기 중 4경기 등판하여 5⅔이닝 5피안타 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59, 1승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1.5. 2011 시즌

시즌 초 컨디션이 매우 좋아서인지 고원준과 더불어 무섭게 굴려졌다. 45게임중 무려 25게임(21⅔이닝)이나 등판하여 이기는 게임/지는 게임 구분없이 혹사당하였으나, 7월부터 양승호 감독이 정신줄을 고쳐잡으며 그럭저럭 정상적인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김사율이 각성한 7월 이후부터 우완 셋업맨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강영식-임경완-김사율의 필승계투조의 한 자리를 든든히 지켜내었다.

시즌 최종 성적 72경기 65⅔이닝 4승 3패 18홀드 0세이브 1블론세이브, 평균자책점 3.15, WHIP 1.14을 기록.

2011년 10월 16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4로 이기던 6회 초 무사 2루 상황에서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정상호를 초구만에 1루땅볼로 아웃시켰지만, 9번타자 박진만에게 1타점 적시타, 1번타자 정근우에게 내야안타를 맞고 고원준으로 교체되었다. 고원준이 2번타자 박재상을 삼진, 3번타자 최정을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아웃시켜 임경완의 실점은 없었고, 이날 임경완은 ⅓이닝 9투구수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연장 10회까지 가는 경기 끝에 스코어 7:6으로 패했다.

2011년 플레이오프 5경기 전 경기를 출전했고 2, 3, 4, 5차전 모두 승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고 무실점으로 막는 등 4⅔이닝 4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2홀드 평균자책점 제로라는 굉장한 호투를 하였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1.6. FA

FA를 신청했는데 롯데 쪽에선 임경완의 말은 거의 들은 척도 안하고 시장에 나가보라는 식으로 대우했다고 한다. 롯데 딴에는 누가 채가겠냐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거 같았다. 11월 20일, 정대현의 이적 등으로 불펜진이 빈약해진 SK 와이번스가 이적을 제안했고 결국 계약을 맺었다. 3년 11억원이라는 꽤 괜찮은 조건에 정대현의 등번호인 21번까지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택근송신영의 이적 소식에 묻혔다. 일단 롯데로서는 해외진출을 선언한 이대호에 이어 불펜의 핵인 임경완까지 잃으면서 전력 누수가 불가피해졌다.

사실 임경완은 그 놈의 작가 이미지 때문에 가장 저평가된 불펜투수 중의 하나다. 홀드왕을 했던 커리어나 로이스터가 마무리로 낙점한 전력 등에서 봤듯이 공도 좋은 편. 하지만 임경완의 단점이 있다면 역시 유순한 성격 때문에 찾아오는 새가슴 기질에, 덧붙여서 롯데의 터무니없는 수비 능력으로 인해 손해를 보며 던져야 했던 부분인데, 비록 감독은 바뀌었지만 이만수 감독이 김성근 전 감독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수들의 정신력을 굳건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롯데보다는 탄탄한 수비진의 도움을 받는다면 SK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많았다.

SK팬들도 이왕 정대현 보낸 마당에 한 번 믿어주자는 심정이었는데, 그렇다 쳐도 정대현보다 많은 나이는 어찌되었든 상대적으로 가용 기간만 보았을 땐 불리한 점일 수 있었다. 일단은 여왕벌의 무릎부상이 얼마나 심각한 지에 따라 FA 맞교환의 득실이 도출될 것으로 보였다.

그 와중에 SK의 작승호가 롯데로 가면서 두 팀은 투수를 맞바꾼 꼴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대현이 롯데와 FA계약을 맺으면서[3] 그의 이적은 완전히 잊혀져 버릴 분위기가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대현이 무릎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롯데의 즉시전력 구상에 난리가 났다.[4]

SK로 이적 이후 정대현이 쓰던 21번을 등번호로 받았으나, 이재영이 은퇴한 김원형의 16번을 쓰게 되면서 롯데 시절 쓰던 19번을 계속 쓰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적이 결정된 후 롯데 행사에서 '코치로 롯데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해 SK 팬들에게 폭풍처럼 까였다.[5]
파일:/image/396/2011/11/28/20111128001959_0.jpg
한 때 배터리관계이자 동갑내기 조인성과 함께 찍힌 사진. 허나 그 친구는 2014년 시즌 중 갑작스럽게 한화로 트레이드되어 함께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임경완도 한화로 이적하게 되면서 재회하였다.

공교롭게도 다큐 나는 갈매기에서 임경완의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당시 롯데가 SK 상대로 열세를 면치 못하자 임경완의 아이들이 롯데말고 SK 좀 가서 이기라고 한 대목이 있다.

2.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image/382/2011/12/23/42817540.2.jpg

2.1. 2012 시즌

4월 7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전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3으로 이기던 6회 초에 등판 두 타자에게 연달아 몸에 맞는 공을 던지시는 신공을 보여주셨다. 결국 이 날 ⅓이닝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여 문학작가의 위엄을 보여주었으나, SK가 경기를 뒤집으며 진정한 거작을 집필하기도 전에 1사 2루 상황에서 감독에게 끌려 나갔고 다음 투수인 박희수가 승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아서 추가 실점은 없었다. 역시 접전 상황에서는 불안한 투수라는 점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4월 13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0:0인 8회 초에 등판하여 3타자를 상대, ⅔이닝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4월 14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0:1로 앞서던 7회 초에 등판하여 이여상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고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박희수가 승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으면서 실점과 자책점은 없었다.

4월 15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6:11로 이기던 9회 초에 등판하여 5타자를 상대, 1이닝 1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고 평균자책점을 4.50까지 낮췄다.

4월 17일 홈그라운드였던 사직경기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2:3으로 뒤져있던 1사 1,3루 상황에서 등판, 강민호를 병살타로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감했다.

5월 29일 넥센전에서 박희수가 선두타자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아낸 뒤 등판했는데 상대는 이날 3타수 무안타라지만 올해 시즌 14호 홈런을 터트리며 미친 방망이를 보여주던 강정호였고, 결국 2루타를 얻어맞으며 바로 강판. 그리고 뒤에 급히 수습하러 올라온 정우람이 블론세이브를 하고, 팀도 연장전 끝에 패배.

6월 27일 임치영박승욱이 등록되고 권용관과 같이 1군 말소되었지만 8월 19일 다시 재등록되었다. 집필을 다시 하려고 했지만 이미 베스트셀러는 정대현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8월 26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제대로 불을 지르고 말았다. 팀이 1:1로 비기던 8회 말 박희수에 이어서 등판. 당시 경기장에 있었던 SK팬들은 임경완 등판 소식에 할|말을 잃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박병호를 유격수 땅볼로, 유한준은 삼진으로 잘 잡으며 각성하나 싶어서 오늘은 불을 안 지르겠지 했는데...

김민성에게 볼넷을 내주며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이적 후 타율 1할대의 부진에 허덕이던 이성열에게 역전 2점 홈런을 맞고 말았다.[6] 이후 허도환은 2루수 직선타로 아웃. 그 뒤 손승락이 등판하여 SK 타자들을 처리하며 팀 패배의 주역이 되었다.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가 2위로 올라가도록 한 배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이 날은 1이닝 5타자 18투구수 4타수 1피안타 1피홈런 1사사구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으며, 이 날의 2실점 덕분에 본 항목이 몽땅 삭제되는 테러를 당하기까지 하였다. 이만수감독도 이상한 투수교체 지시를 이유로 욕을 먹어야 했다.

8월 29일 롯데 자이언츠전, 롯데 선발 이정민의 8이닝 무실점이라는 괴물같은 호투로 인해 팀이 8: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9회에 올라와 손아섭에게 투런홈런을 두들겨맞으며 기어이 10점을 채워주었다.

2.2. 2013 시즌

역시 초반에는 헤매다가 상당기간 2군으로 내려갔고 1군 콜업된 이후에 7, 8월에는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9월 7일 기준 평균자책점 3.00으로 준수한 성적을 마크하였다.

9월 12일 경기에서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 손시헌을 잡아내고 7회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팀은 8, 9회 등판한 투수들이 털리면서 대역전패를 당해버린다.

9월 28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5:4로 앞서있는 7회 진해수의 뒤를 이어 구원 등판하였으나 0.1이닝 동안 2개의 사사구를 내주며 만루를 만들었으며, 2사 만루에서 황정립에게 결승타를 맞으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2.3. 2014 시즌

개막전인 3월 29일 문학 넥센전에서 구원 등판했지만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채 두 타자에게 모두 안타를 내주고 1실점을 기록하며 작품을 집필한 후 바로 1군에서 말소당했고, 4월 22일에야 다시 복귀했다.

이후에는 그냥 패전처리로 등판하며 그럭저럭 막아주고 있다. 하지만 이 시즌 SK에는 필승조-추격조-패전조가 따로 없다. 그나마 제 몫 이상을 해준 때는 윤희상이 급소 직격으로 불시에 강판된 후 4이닝 2실점으로 버티며 혼자서 분전한 끝에 역전승의 발판이 되어준 4월 25일 사직 롯데전.

이후 백창수에게 만루포를 맞는 등 불만 지르다 6월 16일자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결국 SK 와이번스에서 FA 계약 기간이 만료된 후 2014년 10월 22일, 팀에서 전력 외 통보를 받아 방출당했다.

3.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5012101002544700158951.jpg

11월 5일, 뜻밖에도 김성근 감독의 한화 이글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이 직접 연락을 취했다는 점에서 2015년엔 한화 선수로 활약할 것이 유력하다. 김성근 감독의 사이드암 베테랑 영입과 인스트럭터 영입을 시사한 인터뷰 기사로 미루어 볼 때 팀 내 언더핸드/사이드암 선수들인 정대훈, 정재원, 허유강등 여러 선수들의 멘토링도 겸할 것으로 보인다.

2월 18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 1이닝 동안 홈런 1개와 6안타를 얻어맞으며 5실점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3월 7일 LG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선 5회 초 2구만에 1실점하고 강판당했다.

4월 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7회초에 등판하여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못잡고 루츠홍성흔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하여 강판당했다. 뒤에 올라온 권혁이 승계주자를 분식하여 실점까지 하였다.

이후 오윤과 함께 완전히 잊혀졌다. 사이버 투수마냥 1군 등록이 전무한건 물론이고, 퓨처스리그도 1경기 등판이 전부였다.

7월 23일 결국 마일영, 쉐인 유먼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었다. 나이랑 성적을 감안하면 더 이상의 선수생활 연장은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2015년 8월 17일 부터 오스트레일리아시드니 블루삭스에서 뛰게 되었다.

4. 시드니 블루삭스 시절

파일:external/www.iusm.co.kr/697298_291579_574.jpg

4.1. 2015/16 시즌

성적은 17경기 0승 2패 15이닝 방어율 8.40으로 해외에서도 여전히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면서 불을 지르고 있으며, 똑같이 불을 지르던 이혜천이 15경기 2승 0패 21이닝 방어율 3.00으로 체면치레라도 하는 것과는 달리 암담하다.

올해도 무사히 재계약 성사되어 계속 뛸 수 있게 되었다.

4.2. 2016/17 시즌

2017년 1월 11일 현재 성적은 10경기 9.2이닝 2승 2세이브 방어율 0으로 집필 활동을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1월 20일 캔버라전에서 2실점을 하면서 평균자책점 제로 행진은 끝났지만 평균자책점 1.42의 매우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 시즌 3점대로 호투했던 이혜천이 현재 7점대 방어율로 부진한 것과는 대조적. 15경기 14.1이닝 2승 1패 평균자책점 1.88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호주에서의 야구 선수는 물론 호주 생활을 2017년 가을에 완전히 정리하고 영구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후 코치 제안을 기다릴 예정이라고.

5. 연도별 주요 성적

5.1. KBO

역대 기록
<rowcolor=#000>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1998 롯데 7 9⅔ 0 1 0 0 18.62 21.7 9.10 22 3 12 6 3.00 -0.53
1999 4 4 0 0 0 0 4.50 111.6 8.27 5 1 3 1 2.00 0.00
2000 15 30⅓ 0 2 0 1 3.86 120.5 5.24 28 5 13 19 1.22 0.58
2001 41 62 3 1 1 5 4.35 107.6 4.59 69 6 29 35 1.55 1.30
2002 25 48⅔ 0 4 1 1 6.29 66.9 5.47 60 9 21 30 1.58 -0.18
<rowcolor=#fff>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2003 롯데 59 93⅔ 3 14 11 4 4.71 89.9 4.37 97 10 41 45 1.36 1.25
2004 67 105⅓ 4 6 5 22
(1위)
3.16 135.1 3.30 102 4 53 72 1.36 3.38
2005 군 복무(전투경찰순경)
2006
2007 65 74⅔ 7 1 0 6 3.25 117.6 3.47 73 2 47 52 1.45 1.64
2008 38 38⅔ 2 5 7 0 4.19 96.1 4.08 36 2 22 25 1.37 0.59
2009 43 62⅓ 4 1 1 7 2.45 195.1 3.12 55 1 21 37 1.17 2.18
2010 47 43⅔ 3 4 7 1 3.30 140.3 4.71 46 4 20 19 1.42 0.72
2011 72
(2위)
65⅔ 4 3 0 18
(5위)
3.15 133.1 3.86 60 4 21 34 1.14 1.44
<rowcolor=#fff>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2012 SK 32 31⅔ 0 2 0 3 5.40 70.6 5.25 36 4 17 16 1.55 0.09
2013 23 17⅓ 0 2 0 1 5.71 76.0 4.27 22 0 12 10 1.85 0.19
2014 16 16⅔ 0 0 0 0 5.40 94.5 7.82 21 4 8 5 1.62 0.02
<rowcolor=#fff>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2015 한화 1 0 0 0 0 0 0 0 2 0 0.00
<rowcolor=#373a3c> KBO 통산
(16시즌)
555 704⅓ 30 46 33 69 4.18 106.0 4.31 732 59 342 406 1.42 12.69

5.2. ABL

<rowcolor=#fff> 연도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16 시드니 17 15 0 2 0 - 0.000 8.40 25 19 8 18 15 14 2.47
2016-17 15 14⅓ 2 1 0 - 0.666 1.88 11 1 5 10 3 3 1.05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487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487 (이전 역사)
문서의 r516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참고로 이 시즌 롯데의 성적은 꼴찌였다. 꼴찌 팀에서 홀드왕을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겠지만 임경완은 절대 작가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아주 나쁜 투수는 아니다.[2]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실제로 소설을 쓴 것으로 묘사했는데 책의 제목이 타락천사였다.[3] 그 와중에 임훈은 임경완의 보상 선수로 갔다가 다시 정대현의 보상 선수로 SK로 돌아왔다.[4] 다행히도 2차 드래프트로 두산에서 이적 해온 김성배가 활약 하면서 임경완의 공백을 잘 메웠다.[5] 그리고 실제로 2017시즌이 끝난 후 롯데의 재활군-육성 코치로 친정팀에 돌아왔다.[6] 이성열의 이 홈런은 이적 후 첫 홈런이었다. 이성열은 임경완 상대로 통산 타율이 6할에 1홈런까지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타수가 5밖에 안 되는지라 표본이 부족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