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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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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건 의친왕 이곤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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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궁 제4대 궁주
<colbgcolor=#29176e><colcolor=#ffffff> 대한제국 고종의 증손
이준 | 李準
파일:이준황손_프로필사진.jpg
출생 1961년 9월 11일 ([age(1961-09-11)]세)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
(現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현직 제4대 사동궁 궁주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1]
재임기간 사동궁 제4대 궁주
1984년 3월 24일 ~ 현재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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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colcolor=#fff> 본관 전주 이씨
준(準)
부모 부친: 이곤[2]
모친: 황경생
형제자매 형: 이수[A], 누나: 이양, 이기, 이제
배우자 김성자
자녀 장남 이범[4], 차남 이백[5]
약력 외국계 대기업 근무
희망의 한국신당 중앙위원
자유민주연합 상임행정위원
제4대 사동궁 궁주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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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의친왕기념사업회 설립4. 가족관계
4.1. 친가(대한제국 황실)4.2. 배우자 / 자녀
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제국의 황손이다. 고종의 장증손이며,[6] 고종의 차남[7] 의친왕의 장손으로, 사동궁(寺洞宮, 의친왕부)의 사손(嗣孫)이다. 2022년부터 의친왕기념사업회의 회장 직을 역임한다.

2. 생애

1961년 9월 11일[8] 서울에서 의친왕의 6남 이곤과 황경생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A][10] 의친왕의 2남부터 5남까지는 다른 종친들의 후사를 잇기 위해 출계했고,[11] 1남 이건일본으로 귀화함에 따라, 의친왕 사후 이곤이 사동궁 사손, 즉 의친왕가의 종주가 되었고, 1984년 부친 이곤의 사후 이준이 그 지위를 물려받았다.

서울 중구 덕수궁에서 태어나 거주했다가 정부의 퇴거 조치로 인해, 가족과 함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205번지 홍릉[12] 재실로 거처를 옮겼다.

덕수궁홍릉 재실에 거주하며 손이 귀한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직계 후손으로서 어려서부터 당시 황실의 어른, 순정효황후, 고종의 후궁 삼축당 김씨광화당 이씨, 운현궁 종부 박찬주, 영친왕덕혜옹주에게 사동궁 황손으로 불리며, 황실의 예법을 익히며 성장했다.

성장 후 외국계 대기업에서 상무이사, 전임이사, 부이사장, 이사장으로 근무했다. 중간에 정치권의 영입으로 1998년에서 1999년까지 희망의 한국신당 중앙위원 직위를 역임했고, 2000년에서 2001년까지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상임행정위원으로 재임했으나, 곧 자민련을 탈당하고 의공학 엔지니어로 복귀했다.

1989년 4월 21일, 고모할머니 덕혜옹주가 76세를 일기로 생전 후사를 이을 자녀가 없이 사망하자[13] 당시 조카손자인 이준이 상주를 맡았다. [14]
파일:덕혜옹주상주이준황손1.png
<colbgcolor=#29176e>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 영결식 상주를 맡은 당시 대한황실 황손 이준
덕혜옹주의 영결식이 끝나고, 같은달 30일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가 서거하자 당시 일본에 살던 5촌 당숙인 황세손 이구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 3일 동안 상주를 대신했고, 이구가 도착하자 함께 칠일장을 치렀다. 2005년 7월, 이구가 일본 도쿄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하자 부인 및 사촌인 황사손 이원 내외와 함께 이구의 삼년상을 치렀다.

3. 의친왕기념사업회 설립

2022년 정년퇴임 후, 엔지니어로서의 경험과 기회를 살려 ICT분야 청년 대상 스타트업 투자기업의 고문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7월에 전 세계 흩어진 의친왕가의 황실 후손들과 독립운동가의 자손들과 함께 의친왕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이 자리에서 생존한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 중 최연장자인 이해경(의친왕의 5녀)을 만장일치로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파일:의친왕기념사업회_창립총회.jpg
<colbgcolor=#29176e> 2022년 10월 21일 의친왕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들과 김가진 전 대동단 총재의 증손녀 김선현 회장, 김규식 전 임시정부 부주석의 손녀 김수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등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학계와 김영란 경운회 회장, 장경수 장욱진문화재단 이사장 등 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인물들이 의친왕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및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 전시 개막식에 참석했다.

의친왕기념사업회를 설립한 후 매년 광복절과 맞물리는 8월 15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홍유릉 권역에 위치한 의친왕 묘에서 대한제국 의친왕 제향를 봉행하고 있다.
파일:의친왕기신제1.jpg
<colbgcolor=#29176e> 2023년 8월 15일 홍유릉에서 열린 대한제국 의친왕 제향 중 초헌관 이준 황손
현재 대한제국 의친왕 제향을 주재하고 5대 제향(조경단, 환구대제, 종묘대제, 사직대제, 건원릉제)에 참석하는 등 전주이씨 종친중에 한 명으로 전통문화를 계승 및 보전하고, 의친왕의 독립운동 역사를 연구, 출판, 황실유물보존, 전시하는 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15] 이준은 "대중적으로 '이 무능하여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프레임이 만연한 것이 안타까워, '의친왕과 황실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질 바란다."고 밝혔다.[16]

4. 가족관계

파일:대한황실계보도.jpg
<colbgcolor=#29176e> 대한제국 황실 계보도
고종황제는 3남 1녀(조졸 제외, 성인으로 생존한 자녀 기준)를 두었다. 첫째가 순종황제, 둘째가 의친왕 이강, 셋째가 의민황태자 이은, 넷째가 덕혜옹주이다. 첫째 순종황제와 넷째 덕혜옹주는 죽기 전에 후사없이 훙서했고, 고종과 순종의 적통을 이은 의민황태자 이은의 아들 이구 황세손 역시 2005년 7월, 후사가 없이 타계하였다.

당시 이준도 숙부인 이구의 양자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황실의 최고 연장자이던 이해경 왕녀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이준은 사동궁 사손으로 의친왕가를 이어야 한다.'는 공통된 입장이 있었다.[17] 이에 의친왕의 9남 이갑 황손의 아들인 이원이구의 사후 양자[18]가 되어 종묘대제와 사직대제 등 제향의 제주인 황사손에 봉무하게 되었다.

4.1. 친가(대한제국 황실)

ㅁ 친고조부 : 헌의흥선대원왕(獻懿興宣大院王)
ㅁ 친고조모 : 순목대원비 민씨(純穆大院妃 閔氏)
ㅁ 친증조모 : 귀인 장씨(貴人 張氏)
ㅁ 친조모(계비): 수인당 김씨(修仁堂 金氏)

4.2. 배우자 / 자녀

5. 여담

6. 관련 문서



[1] 의친왕의 로노크 대학교 동기동창인 우사 김규식 박사의 손녀 김수옥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안중근, 김가진, 윤봉길, 안창호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후손들이 참여하고 있다.[2] 의친왕 가문의 차남으로 아명은 명길이며 손위 형들이 종친에 양자로 출계하여 사동궁 사손이 되었다.[A] 이준에게는 원래 형 이수가 있었는데, 그는 걸음마를 갓 땐 아기 때 덕수궁 안을 돌아다니다가 석조전 분수대에 빠져 요절했다고 한다.[4] 황실명 범, 호적명 승환, NH농협 근무[5] 황실명 백, 호적명 승은, 국기원 태권도 사범[6]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족보인 《선원계보》 에 의거, 순종이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 서열인 의친왕의 종손인 이준이 고종의 장증손이 된다.[7] 고종의 조졸(어려서 사망)한 자녀들 포함하여 5남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성인까지 생존한 고종의 자녀는 1남 순종, 2남 의친왕, 3남 영친왕, 4녀 덕혜옹주의 3남 1녀이다. 성인까지 생존한 자녀 기준으로 '차남'으로 표기했다.[8] 음력으로는 8월 11일.[A] [10] 여담으로 이곤이 40살을 훌쩍 넘겨서 본 막내아들로, 큰누나인 이양과의 나이 차가 무려 17살 차이이다.[11] 둘째 이우운현궁으로, 셋째 이방은 소현세자파로, 넷째 이창은 은전군파로, 다섯째 이주인평대군파(대궁 사손)로 출계했다.[12] 현재 영휘원(永徽園,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소).[13] 정확히는 딸 정혜(마사에)가 있었으나 가출한 이후 실종 처리되었다.[14] 창덕궁 수강재에서 4월 25일, 황실 가족장으로 영결식이 엄수되었다. 구 황실의 가족장이었으나 국방부 의장대와 군악대까지 동원되는 등 사회장의 격으로 치러졌다.[15] #.[16] #.[17] 이준은 의친왕의 손자 중 가장 연장자였기 때문이다.[18] 대한민국 민법에서는 사후 양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원은 이구의 명목상 양자가 된다.[19] 여담으로 아버지 이곤도 사망 전까지 민주당 초급행정특보위원, 민주정의당 특임행정위원으로 활동했다.[20] 한 종교단체에 의해 대한제국 '여황제'로 등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황실 후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어느 곳에서도 인정하지 않은 여황제 등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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