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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5:48

율리우스(은하영웅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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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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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Julius · ユリウス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gxh5veCU31ua8voio1_1280.jpg
OVA
인물 정보
<colbgcolor=#eee,#222> 신체 정보 남성, ???cm, ?형
생몰년 SE 357 ~ SE 453. 04. 16. (96세)
재위 SE 433 ~ SE 453. 04. 16.(20년)
가족 관계 오토프리트 1세(형)
프란츠 오토(아들), ???(손자)
(증손자), 지기스문트 폰 브로네(증손자)
국적 및 소속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최종 직위 은하제국 황제
최종 작위 대공
별칭 없음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없음
1. 개요2. 일생
2.1. 즉위2.2. 재위2.3. 사망
3. 여담

[clearfix]
파일:Goldenbaum-Dynasty.png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파일:Goldenbaum-Dynasty.png
카스퍼 율리우스 지기스문트 2세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골덴바움 왕조의 제6대 황제다. 모든 골덴바움 왕조의 황제들이 다 그렇듯 본명은 '율리우스 폰 골덴바움'일 것이다.

2. 일생

2.1. 즉위

은하제국 5대 황제 카스퍼 재위 말기, 권신 에크하르트 백작은 황제의 애인 플로리안을 살해하려 사병들과 함께 노이에 상수시에 침입했다가 리스너 남작에게 사살당했다. 이후 카스퍼 황제는 퇴위선언서를 남기고 플로리안과 함께 잠적해버렸다. 황제가 고작 1년 만에 스스로 물러난 것도 모자라 행방불명까지 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으니, 중신들은 새 황제를 찾아야만 했다.[1] 그렇게 140일의 공위,空位, 기간 끝에 4대 황제 오토프리트 1세의 동생, 즉 5대 황제 카스퍼의 작은아버지인 율리우스 대공이 황제로 결정되어 즉위했다.

하지만 율리우스 대공은 황제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적절한 인물이었다. 그는 즉위 당시 76살이라는, 차기 황제로서는 너무나 고령이었을 뿐더러,[2] 통치능력도 황제가 될 자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신들이 율리우스 본인보다는 그의 아들 프란츠 오토를 주목해서였다. 프란츠 오토는 아버지가 즉위하자 자연스레 황태자로 책봉됐는데, 그는 아버지와 달리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유능한, 그야말로 훌륭한 황제감이었다. 문제는 정통성이었다. 전임 황제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사라진 상황이다 보니 누가 제위를 계승하건 정통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신들은 프란츠 오토를 바로 추대하지 않고 그의 아버지 율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었다. 율리우스는 일흔을 넘은 나이였기에 가까운 시기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고, 이러면 프란츠 오토에게 부계계승이라는 정통성을 가능한 한 빨리 세워줄 수 있었다.

2.2. 재위

율리우스 황제는 즉위하자마자 프란츠 오토 황태자에게 국정을 대부분 위임했고, 궁정에 틀어박혀 사치와 여색을 즐기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사실상의 황제가 된 프란츠 오토는 중신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능력을 발휘해 제국을 건실하게 운영했다. 에크하르트 백작 시대의 폐해가 상당수 시정됐고, 평민들에게도 감세 혜택이 다소 주어졌다. 그러면서도 황태자는 황제의 사치를 통제하며 황제가 낭비하는 것 이상으로 국고를 채워 재정 개선에 힘썼다.[3]

그러나 율리우스가 오래 재위하지 못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율리우스는 골덴바움 왕조에서 손꼽힐 정도로 굉장히 장수했다. 그는 80대를 넘어 90대에 이르러서도, 쇠약해지기는커녕 후궁을 줄줄이 들이고 또 갈아치워가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식욕 또한 왕성해서, 그가 식사를 하는 모습이 '성장기 청소년이 먹는 모습과도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고령의 나이에 이렇게 과식을 하면 탈이 나기 마련인데, 이는 율리우스가 그 나이임에도 아주 건강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묘사다. 다나카 요시키는 이런 전통과 고사를 인용하는 것을 즐기는 작가다.

물론 율리우스가 이미 황제가 되어버린 이상, 이 곤란한 상황에 대한 별다른 해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신들은 황제가 장수하며 향락을 누리는 걸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결국 프란츠 오토는 인류 역사상 최연장 황태자라는 업적 아닌 업적을 세우며 74살에[4] 병사했고, 프란츠 오토의 아들도 일찍 타계했던 바람에 그 자리는 황태자의 손자인 대공이 24살의 나이로 황태증손에 책봉되며 계승하게 됐다. 이때 율리우스 황제의 나이는 무려 95살이었다.

2.3. 사망

제국력 144년 4월 6일, 율리우스 황제는 5명의 후궁 미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가졌다. 이 5명의 나이를 다 합쳐도 율리우스의 나이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하니 다들 10대 후반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황제는 식사 중 포도주를 마신 뒤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하다가 하얀 식탁보를 움켜진 채 96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영원토록 살 것만 같았던 율리우스 황제가 마침내 사망한 것이다.

그의 사망 이후에는 성대한 장례식이 칼 대공의 주관으로 열렸다. 무능력한 율리우스의 치세에 질렸던 중신들은 안도하며 젊은 새 황제 아래 청신한 정치가 시작되리라 기대했던 반면, 민중들은 어차피 자신들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없으니 새 황제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5월 1일 새 황제의 즉위식이 열렸지만, 중신들과 민중들은 모두 경악했다. 어째서인지 옥좌에 앉아야 할 칼 대공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 대신 프란츠 오토 대공의 또다른 손자, 지기스문트 폰 브로네 후작이 지기스문트 2세라는 이름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칼 대공은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잊혔다.

황제 사망 이후 브로네 후작의 즉위까지의 이런 기묘한 내막은 300년 넘게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국력 490년 로엔그람 왕조가 들어서고 골덴바움 왕조사의 편찬을 위해 골덴바움 황실의 기밀자료가 풀리면서 공개됐다. 사실 율리우스 황제는 독살당한 것이었으며, 범인은 다름아닌 칼 대공이었다. 칼 대공은 가만히 있어도 제위를 계승할 수 있는 신분이었지만, 100살도 너끈히 살 것 같은 황제의 정정한 모습을 보고 저 '영원히 죽지 않는 노인네'를 제거하지 않으면 할아버지 프란츠 오토처럼 자신도 늙어 죽을 때까지 제위를 물려받지 못할 것이란 공포감에 빠져 독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사건의 내막은 문서를 참조할 것.

3. 여담


[1] 카스퍼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특별히 후계자를 지정하지도 않았다.[2] 전세계 기준으로도 이렇게 고령에 즉위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즉위할만한 이유가 거의 없기 때문. 예외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건국 후부터 오랫동안 형제상속을 했고 때문에 왕들의 즉위 나이는 많아질 수밖에 없어서 현 국왕인 살만은 80을 앞두는 나이에 즉위했다.[3] 평민들에게도 다소의 감세가 주어졌음에도 오히려 국고를 채웠다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결국 재정운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했다는 것이다. 덜 거뒀는데도 더 채웠다는 것이니. 그리고 당연히 그만큼 프란츠 오토가 유능했음을 보여준다.[4] OVA에는 48실. 참고로 현실에서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오랫동안 즉위하지 못했으나 2023년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병사함으로 73살의 나이에 찰스 3세로 즉위했다.[5] 이름이 안 나오는 인물로는 바로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의 할아버지가 언급된다. 26살이던 시절 백작의 할아버지는 네 배가 넘는 장수를 누리며 풍족하게 살다가 갔다고 하니 100살을 넘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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