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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2:05:13

조유류왕

유목왕에서 넘어옴
파일:조(전국) 전서체.png
조(趙)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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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169E1> 조(趙)나라 5대 왕
유류왕
幽謬王
영(嬴)
조(趙)
천(遷)
아버지 조도양왕(趙悼襄王) 조언(趙偃)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245년 ~ 기원전 228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235년 ~ 기원전 228년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3.1.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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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제10대 국군이자 제5대 왕이었으며, 조씨의 제24대 종주였다.

이름은 조천(趙遷)이었으며, 도양왕의 서자였고, 대나라 왕 조가(代王嘉)의 이복동생이었다. 조나라의 마지막 군주[1]로 간신 곽개(郭開)를 중용해 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2]《사기》에서는 시호를 붙여 조 유목왕이라고 부르는데, 유류왕의 오자일 공산이 크다.[3]

2. 생애

조도양왕과 이미 한 집안을 망하게 한 적이 있는 창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천을 후계자로 책봉할 때 이목이 반대했기 때문에 창후와 조천은 이목을 싫어하게 되었다.

조유류왕 원년(기원전 235년), 박인에 성을 쌓았다.

조유류왕 2년(기원전 234년), 진(秦)나라의 장수 환의(桓齮)가 조나라의 평양(平陽)과 무성(武城)을 침략하자, 조나라의 장수 호첩(扈輒)이 구원을 나섰으나 패배해 죽었다. 진군은 조군 10만 명을 죽였다. 10월에 진나라 장수 환의가 다시 조나라를 쳤다.

조유류왕 3년(기원전 233년), 진군이 조나라의 직려와 의안(宜安)을 쳤다. 조유류왕은 이목(李牧)을 대장군으로 임명해 진군을 막게 했는데, 이목은 진군과 교전해 이겨서 환의를 달아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목은 무안군(武安君)이 되었다.

조유류왕 4년(기원전 232년), 진나라가 대군을 거느리고 조나라를 쳤다. 한 부대는 업을, 한 부대는 태원, 낭맹, 번오를 쳤다. 이목이 진군을 격퇴시켰다.

조유류왕 5년(기원전 231년), 대 땅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악서와 평음까지 누대와 가옥이 무너지고, 땅이 130보나 갈라졌다.

조유류왕 6년(기원전 230년), 조나라에 대기근이 들어
조나라 사람들은 크게 울고 진나라 사람들은 크게 웃네.(趙爲號, 秦爲笑)
믿지 못하겠거든 밭에 난 농작물을 보소!(以爲不信, 視地之生毛)
는 노래가 유행했다.[4]

조유류왕 7년(기원전 229년), 진나라가 대군을 거느리고 조나라를 쳤다. 이번에는 왕전이 정형구를 쳤는데, 이목과 사마상이 맞섰다. 이에 진나라에서는 조유류왕의 총신인 곽개를 매수해서 이목과 사마상이 모반을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하니, 조유류왕은 곽개의 말만 듣고 이목과 사마상 대신 조총(趙蔥)과 제나라 장수 안취(顏聚)를 세우고는 이목을 숙청했다.

조유류왕 8년(기원전 228년), 왕전(王翦)이 조나라를 사나운 기세로 몰아치니 조군은 패배해 조총은 죽고 안취는 달아났다. 진군이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을 쳐서 함락시키니 조유류왕은 투항해 포로가 되고 조나라는 멸망했다. 조나라에 나쁜 추억이 있었던 진시황은[5] 조나라가 멸망한 후 볼모 시절 자신에게 무례했던 조나라 왕족과 귀족을 모두 처벌하고, 조유류왕은 일부러 온기가 없는 냉방에 감금시켰다. 조유류왕은 냉방에서 병을 얻고,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고통스럽게 17세의 나이로 죽었다. 국정을 농단해 오던 왕의 어머니 창후와 그 일족들은 조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조나라의 대부들에게 살해되었다.

3. 창작물에서

3.1.킹덤

도양왕의 막내 아들로 도양왕 사망 직후 진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태자 가가 분주히 움직이는 와중 곽개등과 함께 근위병을 이끌고 어전에 들이닥친다. 가는 차기 왕의 권한으로 곽개를 체포할 것을 명하나 도양왕이 사망 당일 태자를 가에서 천으로 바꿨음이 그 자리에서 밝혀 진다. 대사 한 마디 없었으나 첫 등장부터 아버지를 빼다박은 외모, 무려 어전에 반라의 여성 노예를 타고 나타나는 포스를 보여주었다. 일단 정말 도양왕이 직접 유언장을 작성한 것인지, 아니면 뭔가 음모가 있는 것인지는 아직 불명이나 644화에서 도양왕이 태자 가의 귀를 물어 뜯은 후, 영 서기관을 불렸고, 645화에서 유언장을 읽은 자가 영 서기관인걸 보면 날조 유언장보다는 도양왕이 직접 말해서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6] 704화에서 다시 등장. 작전을 세우는 장수들에 끼어 들어 카이네의 손을 핥는 성희롱을 하지만, 이목이 자신의 부대의 중요한 장교라고 하자 그만둔다. 이목에게 자신은 이목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며, 아버지와 같은 방해는 하지 않을 것이라 하며 한단의 병사도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주해평원 전투때 도양왕이 이목에게 한단의 병사를 허용해주지 않았던 점과 대조되는 장면.

역겹고 추악한 인물이나 도양왕과는 다르게 이목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인해 이목에게는 적어도 도양왕보다는 나아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실제 역사 기준 곽개의 농간에 넘어가 이목을 죽이는 트롤링을 벌이기 때문에 결국 부친보다 더 끔찍한 인물로 망국으로 이끌 것이란 점은 변함없다. 정사대로 간다면 본인 또한 결국 붙잡혀 죽는 엔딩이 확정이다.[7]

애당초 이목을 방해하지 않는 이유는 이목이 조나라, 정확히는 자기 위치를 지키고 유지해준다는 이유 때문인데 정황상 곽개가 이목이 왕위찬탈을 역모한다며 모함을 하고 당연히 그 농간에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1] 단, 망명국인 대나라의 왕이 된 조가를 포함하면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은 아니다.[2] 다만 이는 유류왕보다는 아버지인 도양왕의 책임이 컸다. 어차피 곽개는 도양왕이 먼저 중용한데다가 명장 이목도 반대하는 상황에서 유류왕 천을 왕으로 세우는데 있어 큰 역할을 했으니 유류왕도 함부로 내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유류왕은 생몰년에서 보듯 아주 어린아이였다... 죽을 때조차 성인이 되지 못했을 정도니 더 말이 필요한가? 추정상 곽개나 창후같은 이들이 조나라의 실권을 잡고 좌지우지했으며, 유류왕은 그냥 바지사장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3] 출처는 《사기》 <조세가>. 보통 망국의 군주는 시호가 없기 마련인데 시호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붙였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사마천이 없는 시호를 지어낼 리가 없고, 그걸 해야 할 이유도 없기에 이복형이자 후임 왕인 조가가 시호를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사기》에 나오는 시호인 穆은 '화목할 목'으로 시호로는 상급에 속하지만, 穆은 繆('얽을 무')와 상통하는데 무(繆)는 하급 시호인 謬('그르칠 류')와도 상통하므로 여기에서 목(穆)은 류(謬)의 오자로 보인다. 비록 소설이지만 《열국지》의 유류왕(幽謬王)이라는 시호가 옳은 표기일 것이다.[4] 하지만 저 기근은 진나라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노래와 달리 진나라도 울상이었다. 기근에 조나라 정벌까지 잠시 보류하려다가 울료와 이사 등이 조나라가 흔들리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진왕을 설득해서 정벌에 나선 거였다.[5] 그의 아버지인 장양왕 영자초가 조나라에 인질로 있었을 때 태어났는데 진나라와 조나라는 허구한 날 싸우는 나라라서 장양왕이 받은 대우가 빈약했다.[6] 원래 역사에서도 도양왕 생전에 가를 폐위하고 천을 올렸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7] 물론 킹덤은 픽션 판타지 사극이라 무조건 정사를 따르지는 않는다. 여불위의 경우만 보더라도 실제로는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지만 킹덤에서는 독약을 마신 시체를 대역으로 대체하고, 방랑 생활을 하는 엔딩으로 마무리지었다. 물론 어느정도는 실제 역사와 함께 가기 때문에 이목이 조정의 모함을 받아 최소 지휘가 박탈되는 장면은 확정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