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972. 독일계 미국인 생물학자, 식물학자. 상당히 다재다능한 인물이자 복잡한 결혼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전공하던 프랭크 램지어와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이어 조셉 달렛을 만나 공산당에 가입하여 좌익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둘은 사실혼 관계였지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던 사이였고 영화에서 언급되는 거 처럼 달렛은 스페인 내전의 국제 여단에 합류한 이후 전사했다.
이어 리처드 스튜어트 해리슨을 만나 결혼했고 이시기 공산당을 떠났다. 이후 이야기는 영화와 같으며 오펜하이머와 결혼을 한 이후 아들과 딸을 낳고 지내다 1972년 10월 27일에 파나마 운하를 횡단하던 중 색전증으로 사망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 지휘관. 오펜하이머는 이론을 통한 실제 폭탄 제조를 담당했다면 레슬리 그로브스는 프로젝트의 모든 부분(로스 앨러모스 건설, 예산 확정, 보안관리, 우라늄 및 플루토늄 구매 등등)을 담당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까지 갈아내는 성격 탓에 전쟁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중장 진급 후 전역했다. 이후 군수업체 임원을 지내는 등 군과의 인연을 이어가다 1970년 사망했다.
1914~1944. 미국 공산당 소속이었던 심리학자로, 1930년대에 오펜하이머와 애정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오펜하이머에게 공산당 사상을 소개하는 등 적잖은 영향을 미쳤으나 그의 청혼을 두 번 거절하여 결혼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이후 오펜하이머가 키티와 결혼을 한 후에도 친분을 이어갔으나, 1944년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다만 그녀의 죽음이 정보 요원에 의한 타살이었다는 음모론도 존재한다. 영화상에서도 이를 반영해서 다소 모호하게 죽음을 연출한다. 참고로 자막과 평전에는 이름이 '태트록'이라고 나왔는데, 표기법을 따르면 '탯록'이 옳은 표기다.
엔리코 페르미 산하의 과학자들과 시카고 파일 개발에 참가했던 미국의 핵물리학자. 이후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기에 앞서 사전 경고를 하자는 실라르드 청원서 서명 운동에 참가한다. 영화 상에서는 오펜하이머가 그를 2차례나 밀치고 펜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와서 악의를 가질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오펜하이머가 몰락한 이후 스트로스의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와 악연일 가능성이 있는 시카고 물리학자들을 청문회 증인으로 전략적으로 요청하여 힐이 나오자, 관객들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끔 한다. 하지만 스트로스의 기대와 달리 그는 개인적인 악연이 아닌 과학자적 양심에 근거한 증언을 하여 외려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관계를 고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스트로스가 로저 롭이랑 짜고 같이 오펜하이머를 불공정한 청문회로 몰락시켰다는 것까지 고발하며 그야말로 대인배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1]
이름이 따로 언급되지 않는데, 영화 속 유일한 가상 인물이다. 영화가 진행 될수록 스트로스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데, 초반에는 스트로스를 지지했으나, 이후 데이비드 힐이 청문회에서 말한 내용을 듣고 오펜하이머의 청문회가 열리게 된 것, 윌리엄 보든에게 오펜하이머의 정보를 넘긴 것이 모두 그의 짓인 것을 알게 된다. 그 이후에는 스트로스에게 따져묻는 등 상당히 그의 인간성에 실망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저한테도 말 안하신 것이 있었네요" 라고 말할 정도로 상당히 노골적인 시선을 보낸다.
컬럼비아순회항소법원(United States Court of Appeals for the District of Columbia Circuit) 소속이었던 미국의 연방 검사. 오펜하이머의 불공평한 청문회에서 그와 그의 주변인들을 심문하는 인물로, 작중에서는 스트로스가 고용한 것으로 언급된다. 강압적인 자세로 오펜하이머의 변호인 측 질문을 끊어버리거나 말의 허점을 노려 강력하게 물고 늘어지는 등 오펜하이머를 압박해 간다. 이런 행동들을 보여줘서 그런지 관객들 입장에서는 가장 비호감 캐릭터 그 자체이다. 여기서 스트로스 덕분에 오펜하이머의 서류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고 이게 이후 데이비드 힐에 의해 까발려지면서 스트로스의 몰락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만건 덤이다. 그의 언행또한 부적절했는데 변호사 개리슨과 오펜하이머를 아예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마냥 몰락시키는데 집중 한 것처럼 보이며 캐서린에게도 부적절한 표현을 써 그녀와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영화를 본 대다수가 이 캐릭터를 비호감으로 평가한다.
프랭크 오펜하이머 (딜런 아놀드 扮) 오펜하이머의 친동생. 영화상에서는 그냥 동생으로 부각되지만 그도 물리학자다. 존스홉킨스 대학교 졸업 후 칼텍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193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핵입자 연구도 수행했다.
칼텍 수학 중 UC 버클리 경제학과 학생이던 '재키' 콴과 약혼했는데 그녀는 미국내 젊은 공산주의자 조직인 YCLUSA 에서 활동중이었다. 형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936년에 둘은 결혼했고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다. 1939년 박사 학위 취득 후 스탠포드에서 포닥을 2년간 거쳤다. 1941년부터 45년까지 형의 친구인 어니스트 로런스의 연구실에서 근무하고, 1943년에는 케네스 베인브리지 휘하에서 일하며 트리니티 실험의 장소를 고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전후 버클리에 돌아와 루이스 알바레스, 볼프강 파노프스키와 협력하여 양자 선형 가속기 개발에 참여했고 1947년에는 미네소타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1947년 워싱턴 타임즈 헤럴드의 고발 기사로 공산당원이었음이 알려지며 낙인 찍히고 교수직을 사임하게 된다. 이후 10여년 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콜로라도에서 목장을 사서 가축을 키우며 세월을 보냈다. 1957년에야 지역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 콜로라도 주 과학전에서 1등상을 여러 명이 타게 되었다. 2년 동안 한스 베테, 조지 가모프 등이 노력하여 결국 그는 콜로라도 대학교에서도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랭크는 새로운 유형의 과학관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결국 1969년 샌프란시스코에 'Exploratorium'을 열었고 초대 관장이 되어 남은 생애를 박물관에 바친다.
윌리엄 보든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扮) 1954년, 오펜하이머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스파이 활동 고발 편지를 작성한 미국의 변호사, 정치인. 이후 미국 의회 원자력 공동 의회(United States Congressional Joint Committee on Atomic Energy)의 총괄 책임자로서 트루먼 대통령 시기 수소 폭탄 개발의 추진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케네스 니콜스 (데인 드한 扮) 맨해튼 계획 당시 그로브스 장군의 전속부관이었던 미합중국 육군공병대령. 종전 후 오펜하이머 사건에 관여한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그로브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모진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내가 다시 원자폭탄 개발 계획의 상관을 모셔야 한다면 다시 그로브스를 택하겠다."라는 평을 남겼다.#
로버트 서버 (마이클 안가라노 扮)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물리학자. 프로젝트의 기본 원리와 목표를 설명하는 ‘로스 앨러모스 입문서’를 작성한다. “원자폭탄 탄생의 지적 산파”로 불리게 된다.
조지 '키스티' 키스티아콥스키 (트론 포사 扮)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인으로 하버드 대학교의 물리화학 교수였다. 폭탄의 내파를 위한 렌즈를 설계한 최종 책임자. 영화상에서 렌즈에 문제가 있어서 터지지 않을 수 있다는 주위의 우려에 오펜하이머에게 자신의 한 달 월급을 걸었고 결국 성공하자 매우 기뻐한다.
케네스 베인브리지 (조시 펙 扮)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물리학자로, 트리니티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트리니티 핵실험이 성공한 후 자괴감에 휩싸여서 "우린 이제 개새끼야.(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라고 한 발언이 유명하며, 종전 후 핵실험 반대 운동에 몸을 담았다.
에드워드 콘던 (올리 하스키비 扮)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영화에서는 "왜 우리가 거기에 가야해?"라며 비웃으며 레슬리 그로브스에게 "인류 역사상 최고로 중요한 프로젝트니까!"라며 f-word를 시전하게 만들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1943년에 맨해튼프로젝트에 합류했지만 과거 좌익 이력으로 인해서 지나치게 보안 감시[4]를 당하자 자진해서 프로젝트에서 하차한다. 영화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그로브스에게 갈굼 당하자 오펜하이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오펜하이머가 나몰라라 해버리자 빡쳐서 나가는 것으로 조금 변형했다.
참고로 레슬리 그로브스와는 악연이 이어지는데, 1945년 6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아카데미 창립 220주년 행사에 초대된 수많은 미국 과학자들 중 한명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레슬리 그로브스는 이 사실을 알자 "콘돈은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하다 나간 인물이라 참가를 막아달라."며 콘돈이 일하던 웨스팅하우스와 국무부에 요청, 끝내 여권을 박탈하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그의 좌익 이력을 빌미로 끊임없이 공격 당했으나 죽기 직전까지 원자력 보안 허가 취소를 당했던 오펜하이머와 달리 1954년에 보안허가가 다시 발급되며 명예를 회복했다. 이는 해리 트루먼의 지지도 있었다. 이후 1974년에 사망했다.
레오 실라르드(마테 하우만 扮) 핵분열 연쇄반응으로 특허를 낸 헝가리의 물리학자. 원자폭탄 개발의 필요성을 거론하는 편지에 아인슈타인의 서명을 실어 루즈벨트에게 보냈고, 이 편지는 이후 맨해튼 계획의 발단이 된다. 무기 개발 성공 이후에는 핵무기 투하 대상인 일본에 대한 사전 경고 등을 요청한 실라르드 청원서 서명 운동을 주도했다.
리차드 톨먼 (톰 젠킨스 扮) 미국의 물리화학자. 맨하탄 계획에서 레슬리 그로브스의 과학고문 역을 했다. 부인은 임상 심리학자였던 루스 톨먼이다.
[1] 여기서 힐은 내가 불공정한 청문회의 일원이었으면 로저 롭의 불공정한 방식에 항의했을 것 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2]Haakon Chevalier(1901~1985). 오펜하이머의 UC 버클리 시절 친분 관계를 유지한 프랑스어과 교수.[3]Ruth Sherman Tolman(1893~1957).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톨먼의 부인이다. 1944년부터 1945년 시기에 OSS 소속 임상 심리학자로 근무했다.[4] 사직서에 따르면 "우편 통화 검열, 외부세계로부터의 완벽한 고립은 나를 우울증에 걸리게 만들거 같다."라고 했다.[5] 맨해튼 계획에서 핵무기의 내폭형 방식을 개발한 물리학자.[6]Giovanni Rossi Lomanitz(1921~2002). 맨하탄 계획 참여 과학자.[7] 프랭크 오펜하이머의 부인이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제수.[8]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멀라키 역으로 알려진 배우[9]아미 오브 더 데드에서 금고 전문가 '루트비히 디터' 역을 맡은 독일인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