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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2 05:30:06

오페미스카 커뮤니티 홀 화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오페미스카 화재.jpg

1. 개요2. 사고의 전개3. 사고 이후

1. 개요

Incendie de Chapais
Opemiska community hall fire

1980년 1월 1일 캐나다 퀘벡주 샤뻬에서 일어난 건축물 화재.

2. 사고의 전개

1979년 12월 31일부터 1980년 1월 1일까지 진행되는 신년 파티가 오페미스카 커뮤니티 홀에서 진행중이었다. 파티는 매년 열렸던 파티로, 원래는 입장료 5달러를 내야 했으나 방침을 바꿔 무료 입장이 가능하게 해 사람들이 더 모였다. 파티엔 약 300여명이 모였다. 오페미스카 커뮤니티 홀은 근처에 있는 오페미스카 광산을 소유한 팔콘브리지 코퍼 회사(Falconbridge Copper Ltd)소유의 커뮤니티홀로, 얼마 전 열었던 크리스마스 파티 당시에 설치한 장식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신년 파티에도 재활용했다. 장식 중에는 나뭇가지도 있었는데, 그냥 방치하면 마르다보니 회사에선 직원들에게 매일 분무기로 물을 뿌리라 지시했다. 하지만 바로 전날인 1979년 12월 30일이 일요일이었고, 일요일엔 직원들이 출근을 안하는 바람에 물을 뿌리지 않아 가지는 전부 말라있었다.

파티는 계속 진행되고 새해가 됐다. 그런데 1월 1일 새벽 1시 15분 경, 21세의 플로랑 칸틴(Florent Cantin)이 라이터로 불장난을 하다 장난 삼아 장식 용 나뭇가지에 라이터를 대고 켰다. 나뭇가지에 불이 붙고 순식간에 다른 나뭇가지로 불이 번져가며 화재가 일어났다. 다른 파티 참가자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소화기를 뿌려 불을 꺼보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 사람들은 이것도 신년 파티 이벤트구나 하고 말았다. 얼마 안가 불을 간신히 끄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출입문이 열리고 바깥의 산소가 공급되자 불이 다시 타올랐다. 불은 이번엔 아까보다 더 크게 타올라 천장까지 태워나갔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달아났다. 하지만 출입구 2곳 중 한곳은 눈으로 막혀 열리지 않았고, 남은 한 곳이 유일한 출입구가 됐다. 좁은 출입구로 사람들이 몰려 대피가 힘들어졌고, 불이 전선을 태우는 바람에 정전까지 일어난네다 불을 못이긴 지붕이 무너졌다.

약 500m 떨어진 곳의 소방서에서 도착해 화마와 맞서 싸웠고,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들은 급한데로 밖에 쌓인 눈을 화상 입은 부위에 데거나, 옷에 불이 붙은 채로 나와 눈 밭에 구르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에 화상 환자를 치료할 큰 병원이 없어 환자들은 우선 근처 병원에서 1차 치료를 받고 다음 날 급한 환자들 부터 대형 병원으로 헬기로 이송했다.

화재로 48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입었다. 어린이 38명은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

3. 사고 이후

 플로랑 칸틴은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와 부모 집으로 도망갔다가 경찰에 채포됐다. 이후 재판에서, 화재를 일으킨 혐의로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얼마 안가 2년으로 줄었다. 출소한 뒤, 플로랑은 샤뻬로 돌아오지 못했다. 10년 뒤엔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당시 퀘벡 주 총리였던 르네 레베스크는 사고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당시 샤뻬 인구는 3,500명 밖에 안된 작은 마을이었는데, 주민 중 3분의 1이 사고의 영향을 받았다. 충격이 너무 커서 한동안 주민들은 불(Fire)과 관련된 단어 자체를 안쓰기도 했다. 사고를 겪고 불 공포증을 앓은 주민들도 많았고, 충격에 마약에 빠지거나 알콜의존증을 앓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