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05 21:33:37

엥겔베르트 3세

파일:카노사 가문의 문장.png
토스카나 변경백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1.4px"
보니파초 1세 보니파초 2세 아달베르토 1세 아달베르토 2세 귀도
람베르토 보소네 우베르토 우고 보니파초 3세
라니에리 보니파초 4세 페데리코 마틸다 라보도
콘라트 엥겔베르트 3세 하인리히 오만공 울리히 폰 아템스 벨프 6세
크리스티안 1세 폰 부흐 슈바벤의 필리프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1.4px"
랑고바르드 왕국 치하
파로알트 1세 아리울프 테오델라피우스 아토 트라사문트 1세
파로알트 2세 트라사문트 2세 힐데리크 트라사문트 2세 아지프란트
트라사문트 2세 루푸스 알보인 기술프 테오디키우스
힐데프란트
프랑크 왕국 치하
위니게스 수포 1세 아델라트 마우링 아델치스
랑베르 베렝게르 귀도 1세 람베르토 1세 수포 2세
람베르토 1세 귀도 2세 귀도 3세 람베르토 2세 귀도 4세
이탈리아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 치하
알베리크 보니파초 1세 피에트로 테오발트 1세 안스카리오
사를리오 우베르토 보니파초 2세 테오발트 2세 트라사문트 3세
판둘프 1세 트라사문트 4세 우고 1세 콘라트 아데마르
라니에리 1세 우고 2세
카푸아 가문 치하
보니파초 3세 페데리코 마틸다 라니에리 2세 마틸다
신성 로마 제국의 대리인
베르너 2세 엥겔베르트 3세 하인리히 1세 울리히 폰 아템스 벨프 6세
벨프 7세 벨프 6세 콘라트 1세 판둘프 2세 콘라트 1세
교황 대 신성 로마 제국
콘라트 2세 하인리히 2세 디에폴트 베르톨트 1세 레이날트 1세
콘라트 3세 베르톨트 2세 레이날트 2세
}}}}}}}}}}}} ||

이스트리아 변경백
토스카나 17대 변경백
스폴레토 48대 공작
Engelbert III | 엥겔베르트 3세
성명 한국어 엥겔베르트 3세
독일어 Engelbert III
생몰 년도 미상 ~ 1173년 10월 6일
재위 기간 1124년 - 1173년(이스트리아 변경백)
1135년 - 1037년(토스카나 변경백 및 스폴레토 공작)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이스트리아 변경백, 토스카나 변경주의 17대 변경백, 스폴레토 공국 52대 공작.

2. 행적

이스트리아 변경백 엥겔베르트 2세와 슈바벤 일대에서 강력한 위세를 떨쳤던 디폴딩-라포톤 가문의 일원인 파사우 백작 부인 우타의 아들이다. 1124년 아버지가 케르텐 공작에 선임된 뒤 이스트리아 변경백 직위를 물려받았다. 1135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로타르 3세의 특사로서 피사 공의회에 참석한 뒤 황제로부터 토스카나 변경백 및 스폴레토 공작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1137년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10세에게 그 직위를 넘겨주고 독일로 귀환했다.

1147년 교황 에우제니오 3세십자군 선포에 호응해 십자군으로서 서약했지만 실제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고, 그 대신 교회 기관에 약간의 기부금을 제공했다. 1156년 레겐스부르크 회의에 참석해 형제인 카란틴 공작 하인리히 5세와 레겐스부르크 주교 하인리히와 함께 프리드리히 1세의 칙령에 증인으로서 이름을 올렸다.

그는 1140년부터 줄츠바흐 백작 베렝가르 1세의 딸인 마틸다와 결혼했지만 1165년 마틸다가 사망할 때까지 자식을 얻지 못했다. 이후 다시는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1173년 10월 6일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사망했고, 그의 재산은 형제들에게 분할되었고 이스트리아 백국은 프리드리히 1세에 귀속된 뒤 안덱스 백작 베르톨트 3세에게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