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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1:18:34

에드먼드 스태퍼드

성명 에드먼드 스태퍼드
Edmund Stafford
생몰년도 1377년 3월 2일 ~ 1403년 7월 21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스태퍼드셔 스태퍼드 성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슈롭셔 슈루즈버리
아버지 휴 드 스태퍼드
어머니 필리파 뷰챔프
형제 랄프, 마거릿, 토머스, 윌리엄, 캐서린, 조앤, 휴
부인 글로스터의 앤
자녀 앤, 험프리
직위 스태퍼드, 헤러퍼드, 노샘프턴, 버킹엄 백작, 바스 기사단, 가터 기사단 기사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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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헨리 '핫스퍼' 퍼시 반란 진압에 참여했다가 전사했다.

2. 생애

1368년경 잉글랜드 왕국 스태펴드셔 스태퍼드 성에서 제2대 스태퍼드 백작 휴 드 스태퍼드와 제11대 워릭 백작 토머스 뷰챔프의 딸인 필리파 뷰챔프의 사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랄프[1], 마거릿[2], 토머스, 윌리엄, 캐서린[3], 휴[4]가 있었다.

1395년 제4대 스태퍼드 백작인 형 윌리엄이 자녀를 두지 못하고 사망한 뒤 가문의 재산과 작위를 물려받았다. 1398년이 되기 전에 글로스터 공작 우드스톡의 토머스의 딸이며 제3대 스태퍼드 백작이었던 큰형 토머스의 미망인이었던 글로스터의 앤과 재혼했다. 1399년 아내 앤이 헤러퍼드, 노샘프턴, 버킹엄 여백작이 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헤러퍼드, 노샘프턴, 버킹엄 백작이 되었다. 1399년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헨리 4세는 그를 바스 기사단에 선임했고, 1402년에는 가터 기사단의 기사에 선임했다.

1403년, 퍼시 가문이 헨리 4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헨리 4세는 헨리 '핫스퍼' 퍼시가 웨일스 반란군 지도자 오와인 글린두르와 합류하기 전에 각개 격파하기로 마음먹고, 군대를 이끌고 슈루즈버리로 진군했다. 이때 그 역시 토벌대에 가담했다. 1403년 7월 21일에 벌어진 슈루즈버리 전투에서, 그는 선봉대를 지휘했다. 전투 결과는 왕실군의 승리로 끝났고, 헨리 퍼시는 전사했다. 그러나 에드먼드는 전투 도중 헨리 퍼시의 반란에 가담한 스코틀랜드의 제4대 더글러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에게 살해되었다. 당시 한 살이었던 아들 험프리가 아버지의 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았다.

3. 가족



[1] 1354 ~ 1385, 리처드 2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참여했다가 헌딩턴 백작 존 홀랜드에게 피살됨.[2] 1364/1365 ~ 1396, 초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의 부인.[3] 1376 ~ 1419, 제2대 서퍽 백작 마이클 드 라 폴의 부인.[4] 1382 ~ 1420, 1411년부터 초대 스태퍼드 남작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