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FBC8F><colcolor=#000000> 제2대 엑서터 공작 존 홀랜드 John Holland, 2st Duke of Exeter | ||
이름 | 존 홀랜드 (John Holland) | |
출생 | 1395년 3월 29일 잉글랜드 왕국 데본셔 다팅턴 | |
사망 | 1447년 8월 5일 잉글랜드 왕국 미들섹스 스테프니 | |
배우자 | 앤 스태퍼드 (1427년 결혼 / 1432년 사망) | |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1433년 결혼 / 1439년 사망) | ||
앤 몬타구 | ||
자녀 | 헨리, 앤 | |
아버지 | 초대 엑서터 공작 존 홀랜드 | |
어머니 | 랭커스터의 엘리자베스[1] | |
형제 | 콘스탄스, 리처드, 에드워드, 앨리스 | |
직위 | 헌팅던 백작, 엑서터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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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군에 대적했다.2. 생애
1395년 3월 29일 잉글랜드 왕국 데본셔 다팅턴에서 초대 엑서터 공작 존 홀랜드와 곤트의 존과 그로스몬트의 헨리의 딸인 랭커스터의 블랜치의 차녀인 엘리자베스의 아들로 출생했다. 5살 때인 1400년 1월, 아버지 존 홀랜드가 헨리 4세를 살해하고 리처드 2세를 복위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어 피살당했다. 이후 존은 가문의 영지와 작위를 모두 상실하고 곤궁하게 지냈다.1415년 헨리 5세의 프랑스 원정에 참여하여 아르플뢰르 공방전, 아쟁쿠르 전투에 참여해 공적을 세웠다. 1416년, 헨리 5세는 그의 공적을 인정해 헌팅던 백작 작위를 부여하고 가터 기사단의 기사로 임명했다. 1417년 2차 캉 공방전에 참여했으며, 이후로도 프랑스의 여러 전투에서 장교로서 활약했다. 1420년에는 런던 탑의 순견에 선임되었다. 1421년 클라렌스 공작 랭커스터의 토머스 휘하 부관으로 발탁되어 앙주 원정에 가담했다가 보제 전투에서 참패한 뒤 프랑스군에 생포되어 4년간 포로 생활을 지내다가 1425년에 풀려났다.
1432년 11월 왕의 부관으로 발탁되어 1436년 9월까지 직임을 수행했고, 1435년 잉글랜드, 아일랜드, 아키텐의 고등 제독으로 선임되었다. 1438년 3월 긴느 성을 구조하기 위해 파견된 잉글랜드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군사 작전을 벌였으며, 1439년 아키텐 방면에서의 왕의 부관이자 총독이 되었다.
1440년, 잉글랜드 왕실로부터 가스코뉴 일대를 지속적으로 급습해 많은 피해를 입히는 알브레 가문을 응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존은 이에 따라 그해 8월 2일에 맨앳암즈 300명과 장궁병 2,000명이 가스코뉴의 수도인 보르도에 상륙했다. 이들의 임무는 프랑스군의 압박으로부터 가스코뉴를 보호하고 샤를 7세를 따르는 프랑스 남서부 도시 및 마을들을 공략하고 약탈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타르타를 첫번째 목표로 삼았고, 가스코뉴 지방 의회는 타르타를 6개월간 포위하는 데 들어가는 군사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여기에 토머스 램프스턴이 이끄는 100여 명의 맨앳암즈, 400여 명의 장궁병, 몇 개의 대포도 가세했다.
1440년 8월 31일, 존과 램프스턴은 타르타 포위에 착수했다.(타르타 공방전) 알브레 공작 샤를 2세 달브레와 그의 조카인 로마뉴 백작 장은 타르타 인근 잉글랜드 영지, 특히 샬로세와 쿠두레스, 오디뇽, 생콜롬브, 에레스 등지를 약탈함으로써 적의 포위를 약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군은 여기에 흔들리지 않고 포위를 굳건히 이어갔다. 하지만 타르타의 방비가 강건했기 때문에 함락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1440년 말 존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잉글랜드로 소환되었다. 이후 램프스턴이 타르타를 포위한 잉글랜드군 사령관이 되었다.
1443년 1월 6일 헨리 6세에 의해 아버지가 과거에 맡았던 엑서터 공작위를 수여받았다. 1447년 8월 5일 미들섹스 스태프니에서 사망했으며, 공작위는 아들 헨리가 이어받았다.
3. 가족
- 앤 스태퍼드(1398/1401 ~ 1432): 제5대 스태퍼드 백작 에드먼드 스태퍼드의 딸, 제5대 마치 백작 에드먼드 모티머의 미망인.
- 헨리 홀랜드(1430 ~ 1475): 제3대 엑서터 공작, 제3대 헌딩턴 백작, 영국 제독.
- 앤 홀랜드(? ~ 1432): 제2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의 아들인 존 네빌과 초혼, 네빌 남작 존 네빌과 재혼, 제9대 더글러스 백작 제임스 더글러스와 삼혼.
-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1386 ~ 1439):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의 사생아, 제12대 아룬델 백작 토머스 피츠앨런의 미망인.
- 앤 몬타구: 제3대 솔즈베리 백작 존 몬타구의 딸. 존 홀랜드와 결혼하기 전에 몽클리, 애너리, 뱀프턴 남작 리처드 행크포드와 초혼, 기사 존 피츠루이스와 재혼했다.
- 잉글랜드 연대기 작가 존 스토우에 따르면, 존 홀랜드는 '엑서터의 사생아들"이라 일컬어지는 윌리엄, 토머스, 로버트 등 여러 사생아를 두었다. 이들은 장미 전쟁에 참여했으며, 그중 2명은 1461년 타우턴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1]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차녀로 에드워드 3세의 친손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