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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0:46:17

마이클 드 라 폴(2대 서퍽 백작)

성명 마이클 드 라 폴
Michael de la Pole
생몰년도 1367년 ~ 1415년 9월 18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서퍽
사망지 프랑스 왕국 아르플뢰르
아버지 마이클 드 라 폴
어머니 캐서린 윙필드
형제 토머스 , 윌리엄, 리처드, 존, 앤
아내 캐서린 스태퍼드
자녀 마이클, 윌리엄, 알렉산더, 존, 토머스, 카트린, 이사벨라, 엘리자베스
직위 서퍽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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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에 헨리 5세를 따라 프랑스 원정에 참여했다가 아르플뢰르 공방전에서 전사했다.

2. 생애

1367년경 잉글랜드 왕국 서퍽에서 초대 서퍽 백작 마이클 드 라 폴과 기사이자 흑태자 에드워드의 최고 행정관이었던 존 윙필드의 딸인 캐서린 윙필드의 장남이다. 아버지 마이클은 리처드 2세의 총애를 받고 잉글랜드 대법관에 선임된 뒤 권세를 누렸지만, 1387년 12월 우드스톡의 토머스 등이 주축을 이룬 청원파가 반란을 일으켜 런던으로 쳐들어와서 레드콧 브리지 전투에서 왕실군을 격파하자 공포에 질려 프랑스에 달아난 뒤 파리에서 근근히 지내다가 1389년 8월 6일에 사망했다.

이로 인해 모든 영지가 몰수되어서 곤궁한 처지에 몰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가문의 재산과 작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1398년 1월 청원파를 대거 숙청한 리처드 2세에 의해 서퍽 백작에 선임되었고 영지를 대거 돌려받았다. 1399년 더비 백작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리처드 2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요크 공작이며 리처드 2세가 아일랜드 원정을 떠난 사이 호국경을 맡고 있던 랭글리의 에드먼드를 따라 반란 진압에 나섰지만, 에드먼드가 볼링브로크의 헨리 쪽으로 투항하자 그 역시 귀순했다. 이후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로 등극한 뒤, 잉글랜드 의회는 1388년 의회가 내렸던 몰수 명령을 지지했다. 하지만 헨리 4세는 자신을 따랐던 것을 고려해 그의 모든 직위와 재산을 즉시 복원했다.

1400년 헨리 4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참여했고, 1405년 해군 작전에 참여했으며, 1409년 피사 공의회에 잉글랜드 외교관으로 참여했다. 1412년 클라렌스 공작 랭커스터의 토머스를 따라 노르망디 원정에 나서기도 했다. 1399년부터 노퍽과 서퍽에서 순회 판사로 일하면서 지역 상류층의 지지를 획득했다. 1415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의 프랑스 원정에 참여했다가 아르플뢰르 공방전 중이던 9월 18일에 전사했다. 사후 서퍽의 윙필드에 안장되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