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江戸川乱歩|Edogawa Ranpo[1] | ||
본명 | 히라이 타로(平井太郎, Hirai Tarō)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
출생 | 1894년 10월 21일 | |
일본 제국 미에현 나가 지구 나바리초 (現 일본 미에현 나바리시) | ||
사망 | 1965년 7월 28일 (향년 70세) | |
일본국 도쿄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 | ||
학력 |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 | |
직업 | 소설가 | |
데뷔 | 2전짜리 동전(二銭銅貨) (19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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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うつし世はゆめ よるの夢こそまこと
현세는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2]
현세는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2]
일본 미스터리 추리 소설계의 거장.
추리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본명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郎).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은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꼽히는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왔다.[3][4] 일본 추리소설 장르를 확립하고, 전후 일본 추리소설의 부흥을 이끈 견인차 역할을 했다.
2. 생애
간사이에 속하지만 나고야권역이기도 한 일본 미에현 나바리시에서 태어나, 3살 때 아버지의 전직(轉職)으로 나고야에서 자랐다.이 시절, 일본은 발 빠른 근대화가 진행중이었다. 도시에는 높은 빌딩이 세워지고, 노면 전차가 달리고, 인구가 도시에 집중해 도시화가 이뤄지는 시기로 나고야도 그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모더니즘이 유행하고 대중 문화가 발달, 활자 인쇄물이 넘쳐나고 신문 소설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다. 9살 때 어머니가 신문소설을 읽어주면서 문학에 흥미를 가졌다.
대학생 시절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과 황금충을 읽고 추리소설 장르에 빠졌다. 셜록 홈즈 인기로 대표되는 영미권과는 달리 일본에는 추리소설을 실어 줄 잡지조차 없었고, 1916년(21살)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추리소설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미국에 갈 돈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해야 했다. 대학 재학중에 트릭을 중시한 첫번째 단편 [화승총]을 써서 잡지에 투고했지만 게재되지는 못했다.
● (란포가 말하는) 탐정 소설의 정의 탐정 소설이란, 주로 범죄에 관한 난해한 비밀이, 논리적으로, 서서히 풀려가는 경로(徑路)의 재미를 주안(主眼)으로 하는 문학이다. (평론집 [환영성]에서) ──探偵小説とは、主として犯罪に関する難解な秘密が、論理的に、徐々に解かれて行く経路の面白さを主眼とする文学である。(「幻影城」より |
1920년에 창간하여 도시에 사는 인텔리 청년층에게 인기가 있었던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잡지 [신청년(新青年)](1920~1950)은 특집으로 해외 추리소설을 번역 소개한 증간호를 발간했다. 27살에 실업 상태였던 히라이 타로는 이것을 읽고 창작 의욕이 되살아났다.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충'을 오마쥬한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논리를 중시한 암호풀이 단편 《2전짜리 동전(二銭銅貨)》(1923)을 며칠 만에 써서 잡지에 투고,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때부터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후 2년간 단편 28편, 장편 4편을 쓴다. 1925년(치안유지법이 발동) 1월에는 아케치 코고로가 첫 등장하는 단편 <D 언덕의 살인사건>을 선보였다. 이윽고 본격, 엽기, 그로테스크, 괴기, 환상, 서스펜스,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면서, 순문학에 비해 평가받지 못했던 대중 통속 소설 장르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 인간의 은밀한 욕망, 살인충동, 변태성욕 등을 다룬 그의 많은 작품이 검열 대상(주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이 되어 부분 삭제당하고,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범인으로 의심받기도 했고, 집에 잘린 목을 감춰두고 있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루머에 시달렸다. 란포는 자괴감에 시달렸고 한때는 절필을 선언하고 일본 전역을 방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본래 본격 미스터리 정통파 추리소설을 쓰고 싶어했지만,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대중은 에로와 그로테스크한 자극적인 소설을 원하고 인기가 있었다. 다이쇼 시절은, 근대화의 빛과 어둠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국민들의 심리적인 불안함을 해소해 줄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소년 잡지 편집자가 권해서 쓰게 된 것이 아동 대상으로 쓴 '소년 탐정' 시리즈다. 월간 잡지 [소년 구락부]에 1936년[5] 신년호(1월호)부터 '괴인 이십면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소년 탐정단은 이 연재작 시리즈에서 등장한 어린이 탐정단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국민총동원령법(1938)이 발동하고 정부가 국민의 생활을 통제하게 되었다. 내무성은 출판사와 신문사를 검열을 하고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다. 탐정소설은 범죄를 조장하는 반체제적인 것으로 문학이 아니라고 규정, 경찰과 내무성에서 몇 번이고 고쳐 쓰라고 명령을 받다가 나중에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일본정부가 간섭하자 잡지편집자는 위축되어 탐정소설의 집필의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소년 탐정 시리즈 역시 맥이 끊기지만 전후 1949년부터 연재를 재개했다. 전후에는 주로 탐정소설의 보급과 작가 발굴 등의 프로듀서 역할의 활동에 힘쓴 에도가와 란포였지만, 소년탐정 시리즈만은 이후 14년간 계속 썼다.
1939년 문고판 도서를 출간하던 중, 10년 전에 발표한 단편 「애벌레(芋蟲 이모무시)」(1929)[6]가 문제가 되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주인공이 전쟁 참전 군인이라는 이유로 "군인의 비참한 육체가 추악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사실로부터 불온하다. 처(妻)의 욕망이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져 있다."라는 이유로 검열에 걸렸고, 이에 「애벌레」가 삭제당하고 애벌레는 발행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당시에 여관을 운영했는데, 극우선동 깡패들이 와서 여관을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 내놓은 신작들이 대중의 평이 좋지 않았다. 검열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작품 소재가 고갈된 점도 있고,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는 해외 확장이라는 국책으로 만주국이니 식민지 조선 등의 해외의 신천지로 이주가 가속화되어 성공의 꿈을 꾸는 성장물이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국가에 봉사하자는 소설이 인기를 얻고 군부의 환영을 받았다. 란포의 그로테스크한 소설은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 취급을 받았다.
란포는 점점 펜을 들 의욕이 사라졌다. "악서 취급에 게다가 무반응이라니,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제는 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밝혔다.
쇼와 16년(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을 정부가 마음에 안들면 중죄가 되는 법도 만들어졌다. 일본 전체가 전시체제가 되고, 란포의 모든 작품은 발행금지가 되었다. 원고 의뢰도 끊긴 란포는 도쿄를 떠나 지방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종전(패전)후 3개월 뒤인 1945년 11월, 란포는 다시 도쿄로 돌아왔다. 이 당시 일본 추리 문단은 망연자실 상태였다. 많은 동료 작가가 죽고, 소설을 집필한 의욕도 잃고 , 공직에서 추방당한 작가도 있고, 부부가 동반자살을 하려고 준비한 사람도 있었다.
한편, 출판업계는 출판이 자유화가 되어 발행을 재개하고 1945년에만 100개가 넘는 잡지가 창간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1946년 창간한 탐정소설 전문 잡지 [보석]이었다. 보석에서 장편소설의 연재를 의뢰받았지만, 란포는 거절했다. 대신 1957년에는 보석의 편집장도 맡으면서, 전후에는 창작 활동보다는 추리소설의 부흥을 위해 프로듀서의 역할에 힘썼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마츠모토 세이쵸, 야마다 후타로, 호시 신이치, 츠츠이 야스타카), 1947년에는 일본탐정작가클럽(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설하고 1954년에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창설하고, 각종 강연과 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추리소설의 발전과 보급에 큰 공헌을 했다. 오카야마 현에 있던 요코미조 세이시를 찾아가서 만나기도 하고, 1946년에는 일본에 환상의 여인을 소개하였으며, 이는 일본에서 꼽는 세계 3대 추리 소설이 되기도 했다. 그는 추리소설 작가이기 전에 추리소설의 열혈 독자 매니아여서 전후에는 영미권의 최신의 추리소설의 영어원서를 찾아다니면서 수집했다.
추리소설 수집가로도 유명해서 그가 살았던 저택에는 따로 큰 창고가 있었고 그 곳에는 약 2만 권의 장서가 있다. 2만 권이 전부 소설책이 아니라 범죄에 관련한 범죄심리학이나 형법에 관한 법률 등의 서적과 자연과학과 의학, 심리학같은 추리소설 집필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집했다. 그곳을 직접 찾아가서 취재한 일본 방송을 보면 지금의 현대 도서관 운영 시스템으로 영어 원서는 ABC순으로 정리했고, 누군가에게 빌려준 책은 누구 누구씨에게 대출해줬다는 명패를 그 책이 있던 자리에 꽂아두었다. 에도가와 란포는 거의 병적으로 정리벽(사소한 일까지 기록하고 정리정돈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한 예로 그는 해외 미스터리를 포함해서 소설에서 사용한 트릭을 총 821개의 항목별로 나누고 그 빈도까지 꼼꼼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1953년 잡지 「보석」에 발표한 뒤 나중에 개고한 「유형별 트릭 집성(類別トリック集成)」이란 평론을 평론집 「속, 환영성」에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의 추리 작가 김내성과도 친교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김내성과의 편지 내용을 소개한 内外近事一束 韓国の探偵作家, (1952)을 잡지에 게재했고, 그에게 들은 조선 시대의 재판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탐정소설 작가로 여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7]의 니키 에츠코는 란포가 발굴 소개한 작가이다. 제3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주었고, 여성이라는 점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하여 추리소설에 관심이 없던 여성들도 추리소설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작가들과의 친교를 중요시해서, 자비를 들여 작가 80명을 초대해서 연회를 연 적도 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활동사진 필름이나 인터뷰 녹음에서 보여준 모습은,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한 작풍과는 달리 굉장히 사교적이고 유머스러운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일본 미스터리 계에서 명성으로는 최고 수준에 꼽히는 작가임에도 한국에는 출간되는 작품이 한동안 거의 없었다. 요코미조 세이시, 마쓰모토 세이초 등은 속속 나오는 와중에 란포는 두드림 출판사에서 나온 단편 전집 3권만 있었고 장편은 거의 출간되지 않았다.[8] 란포 하면 괴기소설쪽이 유명한 만큼 한국에서 미스터리보다 더 안팔리는 단순히 호러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판단해서 상업성이 크지 않고 일부 매니아들에게만 어필을 하는 것으로 간주를 하는지도 모른다. 201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중편 <파노라마섬 기담>에 단편 <인간 의자>가 수록되어 정식 출간되었다.
북미에서도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일본내에서의 위상과 명성에 비해 거의 소개가 안되었으나 "인간 의자"만은 앤솔로지 등으로 알려졌으며 단편 영화도 만들어졌다. 이토 준지 또한 인간 의자를 바탕으로 단편을 만들기도 했다.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 에도가와 코난의 이름은 코난 도일에서 따왔고, 성은 란포의 필명에서 따온 것으로 유명하다.[9] 같은 작품의 등장인물 모리 코고로 역시 란포가 창조한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에서 따왔다.(성씨 쪽은 모리스 르블랑.)
사후 50주기를 맞아 후지테레비 노이타미나에서 2015년 7월 란포기담 Game of Laplace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2016년 1월부로 사후 저작권이 완전히 끝나면서 아오조라문고나 아마존 등의 인터넷 도서관/서점을 통해 그의 작품을 무료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3. 탄압 시기의 고찰
일반적으로는 1930년대말~태평양 전쟁시기에 걸쳐 일본 내에서 추리문학이 탄압을 받았다고 설명되어 왔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영국을 악으로 규정하고 영미 문화와 영어 사용을 규제, 영미권에서 탄생한 미스터리 문학도 적대시해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모두 절판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하지만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에도가와 란포는 추리소설 창작보다는 평론과 아동문학 창작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일명 '에로-그로-넌센스'라는 다이쇼 ~ 쇼와 초기(1920년대)의 분위기 속에서 그의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연재도중 휴재를 하거나 연재중단을 하는 등 개인적으로 슬럼프에 빠졌으며, 당대 추리소설 문단의 흐름도 변화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주로 평론 활동을 하면서, 소년 탐정단 시리즈와 같은 아동문학 작품 이외에는 더이상 새로운 추리소설을 창작하지 않았으며 과거 발표했던 작품들이 전집이나 선집, 문고판 등으로 출간되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 정부에 밉보여 요주의 인물로 찍혀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았고, 그래서 평론이나 아동용 소설을 쓴 거라 전후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에도가와 란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된 실사영화 RAMPO(1994)를 참조. .
또한 태평양 전쟁 시기 란포의 저서가 모두 절판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모든 작품이 발매금지가 된 것이 아니라 1931~2년에 출간된 『에도가와 란포 전집(江戸川乱歩全集)』이 1941년 무렵에 절판되었으며 1938~1939년 『에도가와 란포 선집(江戸川乱歩選集)』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고판들이 발간되었기에 굳이 재간을 하지 않은 것에 더욱 가깝다.
당장 1940년만 해도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 탐정단 시리즈인 『대금괴(大金塊)』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1941~2년에는 모험소설인 『신보물섬(新寶島)』이 연재,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또한 1943~4년에는 '방첩 장편소설'인 『위대한 꿈(偉大なる夢)』[10]이 무사히 연재되었다. 정상적으로 집필활동을 하고 출간도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추리물만 특별하게 탄압받은 것이 아니며, 문학예술계 전반이 국가의 통제와 탄압을 받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추리 작가들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방첩물(스파이물)을 창작하였다. 즉, 추리물 자체의 맥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해 간 것이다.
4. 주요 작품
- 2전짜리 동전[11]
- 아케치 코고로 시리즈 - D 언덕의 살인(아케치 최초 등장)
- 인간 의자
- 외딴섬 악마 - 동서 미스터리 북스
- 음울한 짐승 - 동서 미스터리 북스 시리즈로 출판[12]
- 빨간방
- 애벌레[13]
- 거미남
- 검은 도마뱀
- 유령탑 / 시계탑의 비밀[14]
- 괴인 20면상
- 파노라마 섬의 기담
- 천장 위의 산책자
- 거울지옥
- 악마의 문장
- 오시에와 여행하는 사나이
5. 에도가와 란포상
1955년 그의 환갑을 맞아 탄생한 일본의 추리소설 신인상. 에도가와 란포가 자비로 100만 엔을 들여서 2회까지는 공로상을 주는 형식이었고, 장편 신인상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은 3회 부터였다. 일본추리작가협회에서 주최하고 있다. 1000만 엔[15]의 상금과 셜록홈즈 조각상(~48회)이나 에도가와 란포 조각상(49회~)이 부상으로 주어진다.[16] 수상작은 코단샤(강담사)에서 출간된다.28회 수상자인 오카지마 후타리(岡嶋二人)가 "란포상을 수상하고 사라진 작가는 없다"고 발언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상을 받은 작가는 이후의 집필 활동에서 코단샤의 적극적인 푸쉬를 받는 관행이 있다. 그런만큼 일본의 대중문학계 신인상 중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손꼽히며, 응모작 수도 300여 명이 넘어갈 정도로 규모가 크다. 심지어 프로도 응모가 가능하다. 이런 경쟁을 뚫고 선정된 작품인 만큼 작품의 질도 대체로 높다고 평가받는다.
본격파의 대표격[17]인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이 붙은 것 치고는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상은 본격 미스터리를 중시하는 상은 아니다. 모집 요강에서도 애초에 '넓은 의미의 미스터리'를 모집한다고 공시하고 있으며, 실제 수상 경향을 보면 본격 미스터리는 별로 높은 평가를 못 받는 편이다.[18] 특히 신본격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기 전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서 훗날 신본격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게 되는 점성술 살인사건은 당시 심사위원회의 만행에 의해 수상은커녕 출품을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처우를 받기도 했는데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또한 기본기가 탄탄하고 질적으로 좋은 작품이더라도 지나치게 개성적인 작품은 별로 좋은 평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고생 학창 시절 란포를 읽고 추리소설에 입문하고 란포를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던 야마무라 미사는 트릭을 중시하는 본격 미스터리물로 3번이나 후보작 대상으로 올랐지만, 끝내 수상에는 실패했다.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상을 타기 쉽다는 이미지가 있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가 되면서 상금도 절반으로 줄어들고, 상의 권위도 일반인의 인지도도 떨어졌지만, 그래도 수상작은 아무리 안 팔려도 5만 부 이상은 팔린다고 한다.
5.1. 국내에 소개된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3회. 고양이는 알고 있다.[19] 니키 에츠코.[20]15회. 고층의 사각. 모리무라 세이이치.
19회.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21]
26회. 사루마루 환시행.[22] 이자와 모토히코.
29회. 샤라쿠 살인사건. 다카하시 가츠히코.
31회. 방과후. 히가시노 게이고.[23]
32회. 화원의 미궁. 야마자키 요코.
38회. 희고 긴 복도. 가와다 야이치로.
39회. 얼굴에 흩날리는 비. 기리노 나쓰오
40회. 검찰수사. 나카지마 히로유키.
41회.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24]
46회. 뇌남. 슈도 우리오.
47회. 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49회. 저물어 가는 여름.아카이 미히로.[25]
51회.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53회. 침저어. 소네 케이스케[26]
55회. 프리즌 트릭. 엔도 타케후미.
56회. 재회. 요코제키 다이[27].
61회. 도덕의 시간. 오승호
68회. 세상 끝의 살인 - 아라키 아카네 - 북스피어
6. 기타
- 사회파 추리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는 자신이 왜 본격 추리소설의 방식에 흥미를 잃고 사회파를 생각하게 되었냐를 이야기 하면서, 란포 초기의 일상적이고 서민 친화적이었던 내용이 어느 순간 시장의 요구에 지나치게 부응해 비일상적이고 선정적으로 흐른 부분에 대해 비판조로 이야기한 바가 있다.[28] 상술된 내용처럼 아이러니하게 에도가와 란포상을 탄 사회파 작가들이 많다.
7. 관련 문서
- 소년 탐정단
- 아케치 코고로
- 괴인 이십면상
- 공포 기형인간
- RAMPO (새턴판 게임)
- 란포 기담
- 란포R
- 문호 스트레이독스 - 에도가와 란포(문호 스트레이독스)
- 문호와 알케미스트 - 에도가와 란포(문호와 알케미스트)
- TRICKSTER -에도가와 란포 「소년 탐정단」에서-
- 유령탑 # - [29]
-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 - 일본 미스터리의 탄생 에도가와 란포 대중문화와의 격투(その時歴史が動いた 「日本ミステリー誕生 江戸川乱歩 大衆文化との格闘」) (2007年)
- 英雄たちの選択 帰ってきた探偵 ~江戸川乱歩 ミステリー復活の闘い~
[1] 또는 Edogawa Rampo.[2] 팬에게 사인을 부탁받으면 반드시 이 문구를 써 주었다고 한다. 가끔 바리에이션도 있으나 같은 내용이라 한다. 풀이하자면, 우리는 현세에서는 남의 눈을 의식해서 가장된 언동을 하지만, 자면서 꾸는 꿈처럼 무의식의 세계의 온갖 욕망, 설령 그것이 그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파괴적 본능, 변태성욕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진짜 본모습이라는 뜻이다.[3] 에드거 앨런 포의 일본어식 발음인 에도가 아란 포(エドガー・アラン・ポー) -> 에도가와 란포(えどがわ らんぽ).[4] 일례로, <일본탐정소설전집2>의 <지붕 속 산책자>를 보면 주인공 고다 사부로가 사들인 서적 중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서적이 있었다. 그 외에 호프만, 가보리오나 부아고베 등의 서적도 같이 섞여있었다.[5] 2.26 사건 발생, 본격적인 군부 통제 체제로 돌입[6] 잡지 발표시 원제는 '악몽'.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사지가 잘린 채로 귀향한 정신이 피폐해진 전 육군 중위 주인공과 그로 인해 갈등하는 아내(주인공의 두 눈알을 손가락으로 눌러 터트려 실명시킨다)와 주변 인물의 심리를 그린 이야기.[7] 국내에 시공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현재는 절판 상태다[8] 동서출판사에서 나온 외딴섬 악마는 해적판. 2016년 2월, 검은숲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에 단편 세 개와 함께 장편소설 <거미남>이 수록, 출간되었다. 한국에 최초로 정식 출간된 란포의 장편소설이다.[9] 작중에선 쿠도 유사쿠의 서제에서 아가사 히로시랑 의논하다가 란이 처들어와 코난을 발견하고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뒤에 코난 도일과 에도가와 란포의 책이 보여 즉석에서 지었다.[10] 초장거리 폭격기를 개발하던 박사가 스파이에 의해 암살되고, 이에 이를 수사하는 헌병대장이 그 스파이를 추리하는 내용임.[11] 란포의 첫 추리소설[12] 1928년작. 스스로의 작풍을 고민하던 에도가와 란포가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2년 만에 돌아와 잡지 「신청년」에 발표한 중편. 기괴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13] 동서판에서는 수록된 '음울한 짐승'을 제목으로 한 단편집에 한 편으로 나오며, '배추벌레'라는 제목으로 나온다. 이 단편집에는 음울한 짐승을 비롯한 2전짜리 동전, 심리 시험, D언덕의 살인, 천장 위의 산책자, 두 폐인, 인간 의자, 빨강 방, 거울 지옥같은 대표 단편이 실려있다.[14] 원제는 A Woman in Grey. 영국 작가 Mrs. Alice Muriel Williamson가 1898년에 발표한 소설로 거대한 시계탑이 있는 저택에서 수수께끼의 미녀를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미스테리물이다. 일본에서는 1899년 '유령탑'으로 구로이와 루이코가 번역해서 먼저 알려졌고, 에도가와 란포가 구로이와의 팬이었던 란포가 1937년에 '유령탑'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일본을 무대로 번안해서 새로 썼다. 1959년에는 '시계탑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아동 대상으로 번안해서 발표했다.[15] 68회 2022년부터는 500만 엔으로 절반으로 상금이 줄었다.[16] 에도가와 란포가 의자에 앉아있는 형상의 조각상이다[17] 다만 그의 소설에는 괴기 환상적인 변격적인 작품도 꽤 많다. 히라바야시 하츠노스케는 고가 사부로는 본격파, 에도가와 란포는 변격파로 불렀다.[18] 주최측이 동일한 일본추리작가협회상도 마찬가지.[19] 이 소설은 수상 당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작가 니키 에츠코가 에도가와 란포상 제정 이후 최초의 여성 수상자라는 점과 어릴 때 앓은 척추 카리에스 후유증으로 거동이 어려워져 정규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각종 지식을 습득했다는 점이 큰 화제가 되었다.[20] 본명은 오오이 미에코로 추리소설 외에 동화작가로도 활동했으며, 동화를 발표할 때는 본명으로, 추리소설 발표시에는 필명인 니키 에츠코 명의를 사용했다. 또한 이 소설의 주인공 남매 중 동생의 이름이 작가의 필명과 같다. 오빠의 이름은 니키 유타로.[21]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가의 꿈을 꾸는 계기가된 작품으로 알려져있다.[22] 정식 발행은 안했지만 후보로 경합했던 다른 작품 때문에 알려졌다. 바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23] 모리 야마히로의 《모차르트는 자장가를 부르지 않는다》와 공동수상[24] 나오키상 동시 수상작[25] 시라누이 교스케의 《매치 메이크》와 공동수상[26] 스파이물이다[27] 루팡의 딸의 원작을 썼다[28] 예컨데 '애벌레(芋蟲 이모무시)'의 경우 전쟁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그냥 기이한 성벽을 묘사한 것에 더 가깝다고 이야기했다.[29]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에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