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4-05 10:27:26

알라 웃 딘 할지

<colcolor=#0B6D3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E674E, #0B6D33 20%, #0B6D33 80%, #2E674E); color: #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노예 왕조|
노예 왕조
]]
<rowcolor=#0B6D33>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쿠트브 웃 딘 아이바크 아람 샤 샴스 웃 딘 일투트미쉬 루큰 웃 딘 페로즈
<rowcolor=#0B6D33>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라지아 술타나 무이즈 웃 딘 바흐람 알라 웃 딘 마수드 나시르 웃 딘 마흐무드
<rowcolor=#0B6D33> 제9대 제10대 제11대
기야스 웃 딘 발반 무이즈 웃 딘 카이카바드 샴스 웃 딘 카유마스
[[할지 왕조|
할지 왕조
]]
<rowcolor=#0B6D33>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잘랄 웃 딘 할지 알라 웃 딘 할지 시하브 웃 딘 오마르 쿠트브 웃 딘 무바라크 샤
[[투글루크 왕조|
투글루크 왕조
]]
<rowcolor=#0B6D33>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기야스 웃 딘 투글루크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 피루즈 샤 투글루크 투글루크 칸
<rowcolor=#0B6D33>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아부 바크르 샤 나시르 웃 딘 무함마드 샤 알라 웃 딘 시칸다르 샤 나시르 웃 딘 마흐무드 샤
[[사이드 왕조|
사이드 왕조
]]
<rowcolor=#0B6D33>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키즈르 칸 무이즈 웃 딘 무바라크 샤 무함마드 샤 사이드 알라 웃 딘 알람 샤
[[로디 왕조|
로디 왕조
]]
<rowcolor=#0B6D33> 제29대 제30대 제31대
바흐룰 칸 로디 시칸다르 칸 로디 이브라힘 칸 로디
둘러보기 }}}}}}}}}}}}

파일:알라웃딘 할지.jpg

1. 개요2. 생애
2.1. 대몽골 전쟁2.2. 영토 확장2.3. 치세 후반

1. 개요

우르두어: علاءالدین خِلجی
힌디어: अलाउद्दीन खिलजी
영어 Alauddin Khalji

재위 1296년 7월 19일 ~ 1316년 1월 4일
생몰 1266년? ~ 1316년 1월 4일

델리 술탄국의 13대 술탄. 할지 왕조의 개창자인 잘랄 웃 딘 할지의 조카로,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힌두스탄을 자주 원정하였다. 그렇게 쌓은 명성과 부를 바탕으로 1296년 반란을 일으켜 잘랄 웃딘을 죽이고 술탄에 올랐다. 이를 틈타 차가타이 칸국이 무려 4차례의 원정을 감행하였으나 모두 격퇴하였고, 1306년 라비 강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후에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아프간까지 진격하는 위엄을 보였다. 동시에 그는 힌두 세력과도 싸워 라자스탄, 구자라트, 말와, 데카 고원 주요부를 정복하며 델리 술탄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군사적 재능 뿐만 아니라 알라 웃딘은 내치에도 능하였고, 경제적 중앙집권화를 통해 (50만에 달하는) 비대해진 군대의 유지에 힘썼다. 우선 노예 왕조 시절 귀족과 호족들이 누리던 조세권과 영지를 박탈하여 국유화하였고, 군대가 직접 토지세를 징수하게 하였다. 시장 경제에 있어서도 식품과 의류 등 주요 물품에 대한 가격 통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안정된 세수를 확보하였다. 사회적으로는 샤리아에 따라 음주, 도박, 마약, 매춘 등을 금하여였다. 말년에 와병하게 된 알라 웃 딘은 내정을 신임하는 장군 말리크 카푸르에 맡겼고, 1316년 향년 50세로 병사하였다.

2. 생애

숙부 잘랄 웃딘이 술탄에 오른 후 아미르-이-투주크 (예조판서)에 임명되었고, 반란을 진압한 후 1291년 카라 총독에 봉해졌다. 1296년에는 빌사 및 데바기리 원정의 수행 후 아와드 총독에 봉해졌다. 다만 원정들로 인해 축적한 재물을 바탕으로 반란을 일으켜 잘랄 웃딘을 시해, 물탄에 있던 그의 아들들을 제압하고 술탄에 올랐다.

2.1. 대몽골 전쟁

자란 만주르 전투 (1297-98년)

시비스탄 전투 (1298년)

킬리 전투 (1299년)

델리 전투 (1303년)

암로하 전투 (1305년)

라비 강 전투 (1306년)

알라 웃딘은 자파르 칸, 울루그 칸, (노예 출신의) 말리크 카푸르 등의 유능한 지휘관들의 활약과 함께 차가타이 칸국의 침공을 모두 격퇴하였다. 10여년간 이어진 전쟁은 1307년 차가타이 칸국의 군주 두와가 사망하며 일단락되었다.

2.2. 영토 확장

알라 웃딘은 1299년 라자스탄의 자이살메르를 함락한 것을 시작으로 1301년 란탐보르, 1303년 치토르, 1305년 말와를 점령하였다. 1299년부터 공세에 나선 구자라트 왕국은 1304년 병합되었고, 그외에도 1308년 시와나와 1311년 잘로어를 점령하였다.

파라마라, 바겔라, 라나스탐바푸라 및 잘로어의 차하마나, 라왈계 구힐라, 야즈바팔라 왕조 등을 멸하였다.

말리크 카푸르는 빈드야 남쪽을 원정하여 1308년 데바기리, 1310년 와랑갈, 1311년 다와라사무다라 및 판드야를 원정하였다. 이로써 그는 보물과 코끼리, 군마를 비롯한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이에 야다바의 라마찬드라와 카타키아의 프라타파루드라, 호이살라의 발랄라 3세가 알라 웃딘의 봉신이 되었다.

2.3. 치세 후반

40대 후반부터 병마에 시달리게 된 알라 웃딘은 말리크 카푸르에게 내정을 맡겼고, 1316년 사망하였다. 사후 말리크 카푸르는 알라 웃딘과 힌두 왕빕 자탸팔리 사이의 어린 아들 쉬하붓딘 오마르를 옹립한 후 실권을 행사하였다. 다만 얼마 안가 말리크 카푸르는 친위대에 의해 살해되었고, 알라 웃딘의 장성한 아들 쿠트브 웃 딘 무바라크 샤가 어린 동생을 살해한 후 술탄으로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