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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5-04 16:46:09

악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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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78년

랄리벨라 암굴 교회군
የላሊበላ ውቅር አብያተ ክርስቲያናት
1979년

파실 게비, 곤다르 지구
ፋሲል ግቢ፣ ጎንደር
1980년

아와시 강 하류 유역
ታችኛው አዋሽ ሸለቆ
1980년

티야
ጢያ
1980년

악숨
አክሱም
1980년

오모 강 하류 유역
ታችኛው ኦሞ ሸለቆ
2006년

하라르 주골 역사 요새 도시
ሐረር ጀጎል፣ የተመሸገ ታሪካዊ ከተማ
2011년

콘소 문화경관
የኮንሶ ባህላዊ የመሬት አቀማመጥ
2023년

게데오 문화경관
Gedeo Cultural Landscape
2024년

멜카 쿤투레와 발치트: 에티오피아 고원 지역의 고고 및 선사 유적
Melka Kunture and Balchit: Archaeological and Palaeontological Sites in the Highland Area of Ethiopia
자연유산
1978년

시미엔 국립공원
የሰሜን ተራሮች ብሔራዊ ፓርክ
2023년

발레산맥 국립공원
Bale Mountains Nation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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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숨
티그리냐어:ኣኽሱም | 암하라어:አክሱም
영어:Aksum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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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그라이주
인구 94,515명[1]
시간대 UTC+3 (EAT)
여행경보 출국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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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SCO World Heritage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한국어 악숨
암하라어 አክሱም
영어 Aksum
프랑스어 Axoum
국가·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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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그라이주 악숨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15
등재연도 1980년
등재기준 (ⅰ)[2], (ⅳ)[3] }}}

1. 개요2. 역사3. 유적지

1. 개요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주의 유서깊은 도시. 주도 메켈레에서 서북쪽으로 100여 km 떨어져 있는 분지에 위치한다. 과거 악숨 왕국의 수도였으며, 오벨리스크 등 그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곤다르, 랄리벨라와 함께 에티오피아의 3대 역사 도시로 분류되며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하다.

인구 7만의 소도시임에도 시가지 동북쪽 3km 지점에 악숨 공항이 있고, 서남쪽 외곽에는 악숨 대학교가 있다. 과거 이탈리아를 물리친 아도와 전투가 벌어진 아도와는 동쪽으로 불과 15km 떨어진 이웃 도시이다. 에리트리아와의 국경도 북쪽으로 불과 30km 떨어져 있을 정도로 가깝다.

2. 역사

악숨은 기원전 7~4세기부터 정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1세기에는 이미 국제 무역서인 『에리트리아해 항해기』에서 “대도시”로 언급될 만큼 성장했다. 거대한 화강암 석비와 왕실 무덤, 궁전·저수지·농업 기반 등으로 번영했으며 금속·유리·도자기·상아 공예도 발달했다. 6세기에는 코스마스가 화려한 궁전과 신전, 기독교 문서 보관과 게에즈어 성서 번역 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랍 세력과의 교역 단절 이후 쇠퇴해 8세기 이후 수도 지위를 잃고 9세기에는 주변 환경 악화와 함께 거의 폐허가 되었다. 이후 솔로몬 왕조 시기에 종교 중심지로 부흥해 시온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 왕들의 대관식이 이루어졌다.

1535년 아달 술탄국의 아흐마드 이븐 이브라힘 알가지의 공격으로 도시와 교회가 파괴되어 큰 피해를 입었고, 이후 인구가 급감했으나 1580년 사르사 덴겔 황제가 교회를 복구하고 다시 대관식을 거행하면서 재건되었다.

그러나 오로모의 침입으로 도시와 교회가 불타버렸고, 이로인해 작은 마을 수준으로 세퇴하였다. 이후 군주 시대 혼란기 동안 티그라이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에는 농업이 번성한 지역으로 남아 있었으며 1872년 요하네스 4세가 이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1936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중 이탈리아가 악숨을 점령해 1,700년 된 오벨리스크를 로마로 반출했다가 오랜 분쟁 끝에 2005년 반환되어 2008년 재설치되었다. 1989년 에티오피아 내전 중 공습 피해가 있었고, 2020년 티그라이 전쟁 동안 에리트레아군에 의해 수백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3. 유적지

파일:악숨 에티오피아 1.jpg
대표적인 유적인 오벨리스크 (하왈티) 군집

악숨은 4세기 ~ 10세기까지 악숨 왕국의 수도이자, 중심지로 수많은 문화 유산들이 많다.
파일:악숨 에티오피아 2.jpg파일:에티오피아 오벨리스크.jpg
에자나 국왕 하웰티 (21m) 1937년 반출된 후 2008년 돌아온 '로마 하웰티' (24m)

4세기경에 세워진 높이 24미터, 무게 160톤의 오벨리스크로 1937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중 이탈리아는 이 석비를 전리품으로 가져가 세 조각으로 나누어 로마에 세웠고, 유다의 사자 동상도 함께 반출했다. 1947년 유엔 협정으로 반환이 약속되었으나 기술적 문제와 정치적 상황으로 지연되었다. 이후 2005년 대형 수송기를 통해 세 부분이 순차적으로 에티오피아로 돌아왔다. 이후 UNESCO의 감독 아래 재조립이 진행되어 2008년 원래 위치에 다시 세워졌으며, 케블라 섬유를 이용한 구조 보강으로 지진과 번개 피해를 방지하도록 개선되었다.

에자나 왕의 비석은 악숨에 있는 비석 중 가장 나중에 세워진 비석으로 현재까지 파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비석들 중 가장 큰 규모이다.

파일:시온 에티오피아.jpg
17세기 파실리데스 황제가 재건한 시온의 성모 마리아 성당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석판이 보관되어 있다는 전설로도 유명하다. 시바의 여왕 궁전과 오벨리스크 유적이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의하면 시온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언약궤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악숨에 있던 시바의 여왕솔로몬과 재회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을 때에 어린 아들 메넬리크와 동행했는데, 예루살렘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가 언약의 궤를 가지고 악숨으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는 전승이 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신자들은 언약의 궤가 해당 성당에 지금도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파일:악숨 오벨리스크 에티오피아.jpg
지진으로 붕괴한 33m 높이의 대하왈티

악숨 왕국의 붕괴 후에도 1632 ~ 1871년 곤다르 시기를 제외한 솔로몬 왕조에티오피아 제국 황제들이 대관식을 거행하러 꼭 방문하는 등 악숨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신성한 도시로 여겨졌다. 대관식 자체는 언약의 궤가 있다고 여겨지는 시온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옆에는 새롭게 만든 시온의 성모 마리아 교회가 있는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파시스트 점령 으로부터 에티오피아를 해방시켜 줄 것을 시온의 성모 에게 맹세한 것을 이행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 성당이 얼마나 중요한지 황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빈 방문을 중단하고 악숨으로 가서 새 대성당 봉헌식에 참석하고 참배했는데, 이는 에티오피아 제국에서 이 성당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 보여준다.[4]

파일:에티오피아 궁전 2.jpg
전설 속 셰바의 여왕이 살았다는 두란크 궁전


[1] 2022년 기준[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엘리자베스 2세도 며칠 후 이 성당을 방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