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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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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차우
周庭 (짜우팅, 주정) | Agnes Chow Ting
파일:아그네스 차우.jpg
<colbgcolor=#000><colcolor=white> 본명 아그네스 차우 (Agnes Chow) | 周庭
출생 1996년 12월 3일 ([age(1996-12-03)]세)

[[틀:국기|]][[틀:국기|]][[영국령 홍콩|]]
국적
[[틀:국기|]][[틀:국기|]][[영국령 홍콩|]](1996년 12월 3일 - 1997년 06월 30일)

[[영국|]][[틀:국기|]][[틀:국기|]](1997년 - 2018년)[1]

[[중국|]][[틀:국기|]][[틀:국기|]] (
[[틀:국기|]][[홍콩|]][[틀:국기|]])(1997년 - 현재)
직업 학생, 학생운동가, 민주운동가, 정치인
학력 홍콩침회대학 (국제관계학 / 학사)
토론토 대학교 대학원 (석사 재학 중)
소속 정당 [[데모시스토|
데모시스토
]] (2016 - 2020)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20 -)
경력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주도
학민사조 대변인
데모시스토 공동 창립자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주도
별명 학민여신(學民女神)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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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611311.jpg
왼쪽 조슈아 웡, 오른쪽 아그네스 차우

홍콩민주파 진보주의 여성 학생 운동가. 1996년 12월 3일생이다. 현재는 망명하여 캐나다에서 거주 중이다.

이름한글로 '아그네스 초우'라고 표기하는 사례도 있으나, 주(周)의 광동어 발음월병으로 자우(zau1)이고 홍콩인들의 관용 로마자 표기에서 사용되는 ow는 일반적으로 영어 how의 ow를 염두에 둔 표기다. 따라서 광동어 원음을 따른다면 '초우'보다는 '자우'나 '짜우'가 더 적합한 한글 표기이고 영어화된 음가를 따른다고 해도 '초우'보다는 '차우'가 더 적합한 한글 표기다.

2. 활동

홍콩침회대학을 나왔다. 홍콩침회대학은 홍콩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중문대학, 홍콩이공대학과 달리 한인 학생 비중이 낮아서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홍콩에서는 홍콩시티대학과 함께 신흥 명문으로 뜨는 곳이다. 이름답게 침례교 재단이다.[2]

조슈아 웡과 함께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으며 그와 함께 민주파 정당인 데모시스토의 창립에 참여했다.

2016년에 홍콩 입법회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당시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네이선 로(Nathan Law, 羅冠聰)가 대신 출마하였다. 네이선 로는 당선은 됐지만 2017년 폭동 선동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지도부의 일원이었다. 2019년 8월 30일 시위를 주도한 조슈아 웡과 더불어 홍콩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조사를 받고 오후에 석방되었다. # 1만 홍콩 달러가 넘는 거액[3]의 보석금을 내고 야간에는 자택에 머무르는 조건이었다.

2019년 9월 2일 홍콩 항소법원은 그녀의 출마 금지가 위법이라고 판단했고 네이선 로가 당선 무효된 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아우녹힌(Au Nok-hin, 區諾軒)의 당선을 무효로 결정했다.

그녀는 2016년 홍콩 입법회 선거중국공산당의 압력으로 출마가 금지된 적이 있다. 해당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던 에릭 추 홍콩 입법회 국회의원에 대해 2019년 11월 홍콩 항소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하고 아그네스 차우의 피선거권을 회복시켰다. 에릭 추 의원은 상고했지만, 상고 허가제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으면서 2020년 1월 6일 상고를 취하했다. 기사

2020년 7월 1일부로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이 결정되자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될 가능성이 큰 데모시스토당 인사들은 데모시스토당을 자진 해산하기로 했다. 먼저 조슈아 웡이 비서장(사무총장)직에서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영국[4] 또는 일본으로[5] 망명을 가겠다고 하였다. 기사 그러나 기사와 달리 실제로는 출국하지 못했는데 아그네스 차우와 조슈아 웡은 홍콩 출국이 금지된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소된 죄목 중 민중을 선동한 죄목과 불법 시위에 참가한 죄목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조슈아 웡과 이반 람은 두 가지 죄목 다 유죄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과 대조된다. 선고는 8월 중으로 내려질 예정이었다.

결국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다시 체포되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서 조건부 석방되었다. 역시 홍콩 밖 출국은 엄격히 금지되어 당초 계획과 달리 망명을 가지 못했으나 이후 다시 체포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2019년 시위로 인해 다시 구속되었다.#

2020년 11월 23일에 구속되면서 법정에 출두했다. 조슈아 웡, 이반 램과 함께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했고 실형이 언도될 것으로 보였다.#

12월 1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당국의 탄압에 따른 절망과 두려움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12월 2일에 결국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7개월 만인 2021년 6월 12일에 석방되었다.#

석방된 후에는 정치 활동을 금지당한 뒤 일반 시민으로 조용히 살고 있어서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다. 감옥에서 출소한 뒤 전과자가 되어 해외 출입국에는 큰 제약이 걸렸고 외국과 연계해 뭔가를 한다거나 하는 일도 어려운지라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아직까지 감옥 신세를 지는 동지들보단 나은 편이다. 조슈아 웡 등은 아직도 감옥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9월 토론토 대학교로부터 석사과정 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공산당이 진행하는 애국 교육을 이수하고 방학 때마다 홍콩에 돌아오는 조건으로 조건부 출국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여권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홍콩 경무처 국가보안부 소속 경찰들과 동행해 선전에서 중국공산당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고 하며 방학 때마다 귀국해 보고하는 조건으로 출국했으나 2023년 12월 3일 캐나다 정부로부터 망명 허가를 받았다고 하며 앞으로 홍콩에는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 분노한 중국 당국이 수배령을 내렸다.#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홍콩 당국으로부터 고강도 조사를 받았고 여권이 몰수된 후에는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살며 침묵을 지켜야 했다고 말했다.#

3. 기타



[1] 완전한 영국 국적은 아니었고 홍콩 반환 이전에 출생한 홍콩인들이 받을 수 있었던 BNO 국적이다. 부모님이 그녀의 어린 시절에 신청하였으나 영국 본토에 거주한 적은 없다. 그러나 2018년 홍콩 입법회 지방 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해 영국 국적을 포기했다.[2] 캠퍼스가 소재한 곳이 구룡반도 카우룬통 일대다.[3] 한국 언론에서 중국 위안으로 단위를 표기했는데 홍콩은 위안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홍콩 반환 후 홍콩 특파원이 철수하고 홍콩이나 대만 소식을 베이징에서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특성상 위안화로 액수를 적어서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의 이러한 특파원 운영이 홍콩이나 대만에 대한 보도를 느리거나 부정확하게 하는 원흉이다. 베이징을 거치기 때문에 보통은 하루나 이틀 심하면 1주일 늦게 뭔가를 보도하며 웨이보발 루머 등이 섞여 부정확한 보도도 흔하다. 동남아시아 특파원 기지인 싱가포르방콕은 뭐든 똑바로 빨리 보도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마카오의 경우는 불명.[4] 원래 아그네스가 갖고 있던 국적이 영국 국적이었다.[5] 외가 쪽이 일본계 혈통이다. 홍콩에는 중일혼혈인이 흔한 편이라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도 꽤 많다. 한국이 1980년대 말에야 중국에 진출하고 한중수교는 1992년에야 이뤄진 반면 중일수교는 1971년에 이뤄졌으며 일본은 한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중국에 진출하고 중국 진출 역사도 오래되어 홍콩이 중국 진출 기지로 쓰였고 많은 일본인들이 사업 등을 위해 이주했다. 당장 한인타운인 타이쿠싱 등도 원래는 일본인들의 거주지에서 출발했다. 중일전쟁까지 치른 과거사와 달리 일본은 중국에 ODA 등으로 빨대를 꽂고 밀착했다.[6] 그러고 보면 묘하게 IZ*ONE 출신인 김채원과 닮았다.[7] 아사히tv, TBS, 마이니치 신문, 니혼 테레비, 아사히 신문, 산케이 신문 등 일본의 유명 기관지에서 인터뷰를 통역 없이 실시간으로 했을 정도로 좋은 편이다. 캐나다로 망명한 직후인 2023년 12월 6일에는 NHK와의 화상 인터뷰에 통역 없이 응하기도 했다.#[8] JTBC와 한 인터뷰에서도 한국 측 앵커가 표준중국어로 물으니 잘 못 알아들었다. 홍콩 특성을 감안하면 표준중국어를 쓰는게 오히려 기분 나쁜 경우도 있는 모양이니 그냥 영어로 인터뷰하는게 나을 것이다.[9] 이 점에서 중국공산당의 악선전과 달리 그녀가 홍콩 독립운동을 주장하진 않는다는걸 알 수 있다. 사실 민주 시위에 참가한 홍콩 청년층의 대다수는 홍콩의 민주화와 진정한 일국양제를 원하지 굳이 독립을 주장하진 않는다. 독립을 주장하던 본토파들이 시위 때 눈에 잘 띄어 상대적으로 많아보일 뿐이며 대다수는 본토파와는 선을 긋고 있다. 물론 일국양제조차 제대로 안 지켜지는 마당에 언제 여론이 변할진 알 수 없다만.[10] 민주화 운동이기 때문에 사태라는 표현은 다분히 비하적 의미가 있으므로 되도록 쓰면 안 된다. 사태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한국 언론에서 대게 전쟁, 반란, 내란 등 사변을 뜻해 왔다. 5.18 민주화운동이 한때 광주 사태라고 불리던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