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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비 신덕왕후 강씨 神德王后 康氏 | |
캐릭터 | |
<colbgcolor=#a60c0c,#360505><colcolor=#fff> 시호 | <colbgcolor=#fff,#111>신덕왕후 (神德王后) |
신분 | 조선국 왕비 (10~13회) |
가족 | 태조 이성계 (배우자) 정종 이방과 (차남)[A] 태종 이방원 (오남)[A] 원경왕후 민씨 (며느리) |
등장회차 | 1회 ~ 13회 |
배우 | |
예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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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로 이성계의 경처(京妻)[8]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이다. 배우 예지원이 연기했다.
2. 극중 행적
2.1. 화목했던 가정, 인생의 동반자를 정치에 끌어들이다.
1388년 위화도 회군 당시 철원에 있던 전장(田莊)에 머물다가 위화도 회군 때 이방원의 친모였던 한씨와 한씨 슬하의 두 딸(후에 경선공주와 경신공주), 자신 슬하의 두 아들인 방번과 방석과 함께 함께 이방원에 의해 도피하게 되었다.[9] 그 과정에서 이방원과 훨씬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인다. 계곡에서 잠시 쉴 때 병사들에게 잡힐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이방원에게 고맙다며 자신도 이방원을 친아들처럼 생각하겠다고 한다.[10]도피 과정에서 이방원이 군관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직접 단도로 군관을 찔렀고, 그 틈에 이방원이 칼을 다시 잡고 군관을 베어 죽임으로써 온 가족이 위기에 벗어난다. 이후 창왕이 옹립되자 정몽주, 그리고 정도전과 대책을 논의하지만, 둘 만으로는 못 미덥다고 판단하고, 같이 있던 며느리 민씨와 논의하여 각자의 친정인 두 가문의 힘으로 이성계를 도울 인재들을 모집하고자 한다.
2.2. 마지막 장애물을 넘어서 드러내는 야심
며느리 민씨와 함께 정국에 대해 논의를 하며 대책을 마련하던 중, 남편의 향처 한씨가 죽자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에서 애도했다. 남편이 이방원에게 3년상을 치르라고 지시하자 정도전도 탄핵된 마당에 이방원이마저 없으면 어떻게 되겠냐며 반발했지만 결국 이방원의 3년상을 막지는 못했다.[11]1392년 이성계의 낙마와 정몽주의 반격으로 가문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사위 이제를 보내 3년상 중인 이방원을 불러들인다. 이때문에 며느리인 민씨가 반발하였으나[12] 역으로 "내가 너에게 허락이라도 맡아야 하냐?"라고 추궁하자 민씨는 미리 상의라도 해주시길 바랐다고 대답한다.
결국 정몽주를 도모하려는 이방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찬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죽교에서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참살되고, 이 사실에 대노한 이성계가 이방원을 집에서 쫓아내자 이를 지켜보다 민씨가 도움을 요청하자 이방원이 우리 가문과 우리를 따르던 대신들, 그리고 대업을 살렸다면서 칭찬한 뒤 자신이 이성계를 설득하겠다고 얘기한다.[13]
정몽주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이성계에게 어린애처럼 굴지마라 일갈하며 본래의 위치를 되찾고 사람들을 이끌라 권한다. 이후 이방과를 비롯한 한씨 소생들이 정몽주를 역적으로 만들어 효수하여 혼란해하는 이성계에게 더 이상 (한씨 소생의)아이들은 이성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못 이기는 척 아우르라며 권한다. 동시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화가 될 수 있다며 다 자란 맹수는 아비에게까지 덤벼드는게 세상의 이치라며 한씨 소생 자식들과 이성계 사이를 이간질한다.
이후 이성계에게 이방번, 이방석 등 자신 소생의 자식들을 소개해주며 이성계의 마음을 돌린다.[14] 이후 왕위에 대한 이성계의 생각을 물으며 자신은 (한씨 소생의 자식들과 다르게)이성계가 원하는 대로 따를 것이라며 단지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리길 원한다 이야기한다.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이성계의 대답에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된다며 넌지시 왕위에 오를 것을 권유한다.
2.3. 조선을 품은 여인
이성계를 설득해서 결국 이성계가 왕위를 받게 한다. 이후 기분이 좋아진 이성계가 밤산책 와중 자신을 왕비로 책봉하겠다고 하자 거절의 뜻을 밝혔는데 이유는 자신이 왕비가 되고 이성계가 죽으면 한씨의 자식들 중 한 명이 왕위를 이어 받을 테니 그렇게 되면 계모를 가만히 두겠느냐고, 반드시 자신과 자기 소생의 자식들의 위태로워질 거라고 말하며 3년상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한씨를 책봉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이성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안아준다.왕궁에 즉위식을 하러 나가는 이성계를 자기 소생의 자식들, 그리고 자식들의 배우자들과 함께 배웅하고, 저택에 남아서 이방석에게 은밀하게 네가 세자가 될 거라고 말해준다.
이성계가 퇴궐 후 저택에 돌아와서 다과를 즐기다가[15] 자신을 왕비로 책봉시켜주겠다고 또다시 말하자 정색을 한다. 하지만 곧바로 세자를 자기 소생의 아들로 해주겠다고 하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아침이 되고, 이성계가 입궐 전 신하들에게 세자 책봉 얘기도 꺼내겠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자기 뜻을 따르도록 만들겠다고 밝히자 자신이 직접 돕겠다고 말한 뒤 같이 입궐해서 방 하나 건너 문 밖에서 이성계와 신하들의 얘기를 엿들은 뒤, 조준이 이방석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자 곧바로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왕비의 친자식인 데다 왕비가 살아 있는데 왜 세자가 되면 안 되냐며 조준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9회의 엔딩을 장식한다.[16][17]
2.4. 이방원과의 대립
이방석이 세자 자리에 오를 것이 확정되고, 이성계의 냉대와 셋째 아들의 중병 등이 겹치며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이방원이 찾아와 자신의 뒤통수를 친 것에 대해 따지자 엄마가 자식 앞길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며 태연히 대꾸한다.[18] 그리고 속은 널 탓하던지 아니면 일찍 돌아가신 형님을 원망하라고 패드립을 날리며 선을 넘는다.이에 제대로 분노가 폭발한 이방원이 다과상을 집어 던지며 쌓인 감정을 토해내자, 상궁에게 숙위병을 부르라 지시하고 이 자를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단언한다. 이방원이 "양심도 없는 여자가 어디서 국법을 운운하느냐"고 소리치자 "그래, 어디 더 해보거라. 이 나라의 왕비를 더 능욕해보거라!"라고 맞선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온 이방원이 목을 조르려고 손을 갖다 대다 망설이자, 손을 끌어당겨 목에 들이대며 "더 가까이 와서 목을 조르거라, 분이 풀릴때까지 마음껏 짓밟아보거라"며 도발해 이방원을 확실하게 죽일 구실을 만들려고 한다. 이때 민씨가 와서 "최영의 군사들이 쫓아올 때 왕비마마와 세자저하를 구해낸 공을 기억해 달라"면서 눈물을 흘리고 양손을 비비다가 옷자락에 매달리면서까지 용서를 빌자 "네가 좀 낫구나" 하면서 "네 아내 때문에 산 줄 알아라"라며 쫓아내는 것으로 그친다.
밖으로 나온 이방원과 마주친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미쳤냐며 더욱 화를 내고, 이후 정식으로 방석이 세자로 결정되자 강씨가 더더욱 기세등등해하자 이방원의 사돈인 민씨 집안이나 조준, 윤소종 등 여러 대신들이 크게 경계한다.
공식적으로 현비(顯妃)로 봉해지고 조선 왕조의 첫 왕비가 되면서 자신의 꿈을 이뤘다. 함께 세자로 책봉된 방석이 이방원의 존재에 불안감을 느끼자 자신이 살아있는 한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며 사망 플래그를 제대로 꽂았다. 한편 왕비가 된 후 나름 찔리는 게 있었는지 고양이 쥐 생각인지 몰라도 이성계에게 한씨 소생 아들들을 용서해달라며 생색을 낸 후 직접 이방원의 집에 선물을 가지고 찾아오나 나름 비위를 맞춰주는 민씨와 달리 이방원은 싸늘한 태도를 보인다.
방에서 이방원과 민씨를 앉혀 놓고 아들을 잃은 일을 언급하며 약재를 건네주면서 왕가의 화목 또한 백성들에게 보여야 할 모범이 아니겠느냐며 자신은 이방원의 어머니고 이방원은 자신의 아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계속 자신에게 반발하는 이방원을 보고 당황하는 민씨에게 자식이 어미에게 투정도 못 부리냐며 막는다. 이후 침소에서 이성계에게 이방원에게 벼슬과 가별초를 내려줬다는 사실을 알고 백허그하면서 이성계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이방원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면서 위로한다. 그러고는 이성계 무릎 베고 이제 아우들과 온천도 가고 사냥도 가서 쉬라며 이성계를 궁밖으로 내보낸다.[19]
그리고 처소 안을 무장한 병사들에게 지키게 한 다음 이방우의 실상을 알고 이방원이 분노하여 쳐들어오면 제거할 정당한 명분이 생기는 것을 노리고 일부러 사람을 시켜 이방원에게 이방우의 소식을 흘린다. 그런 후 정도전을 무장시켜서 불러와 자신의 계략을 설명하며 곧 이방원이 올 테니 준비하라고 한다. 그러나 정도전은 긍정의 뜻을 보이지 않았고 이방원은 절대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며 죽이지 않으면 언젠간 반드시 화가 된다고 설득한다. 그러던 사이 처소를 찾은 것은 뜻밖에도 이방원의 처 민씨였고, 오히려 직접 만든 약과를 주면서 이성계가 이방원에게 하사한 동북면 가별초 병력들을 무안군 이방번에게 줄 것을 요청하자 적잖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이방원에 대한 함정을 파놓으며 정도전을 처소에 부른 것도 이 계획으로 이방원을 제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정도전은 원하지 않아도 자신과 한 배를 타도록 강요하기 위해 덫을 친 것으로 드러났는데[20], 이후 명나라에 갈 사신으로 왜 이방원을 추천하지 않았냐며 다시금 한편임을 강조하기 위해 부른 정도전에게 되려 면전에서 역관광을 당한다.[21] 그러나 어쨌건 이로 인해 정도전의 사망 플래그까지 꽂아버렸다.[22]
2.5.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
이방원이 명나라 사신으로 떠난 뒤 이성계와의 잠자리에서 아직 완전히 이방원을 버리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는 이성계의 심중을 파악하고는 다음날 사위인 이제를 불러 아직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며, 이방원의 처가인 민씨 일족을 잘 감시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이때 즈음 부터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모습을 보여주고 무언가 이상을 감지한 이제에게는 그저 흉통이라며 둘러댄다. 그 말을 들은 이제가 의원을 부르라고 하자 알아서 할 테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그러던 와중 세자빈이 내관과 정을 통했다는 사실을 들으며 경악한다.[23] 바로 세자빈의 처소로 가 내관을 끌어내고[24] 세자의 앞길을 막지 말라며 세자빈을 꾸짖고 때리다가[25] 악화된 몸 상태로 인해 쓰러진다.
그리고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느낀 현비 강씨는 어의를 불러 자신을 진찰하게 하고, 여러 번 호통을 쳐도 병명을 말하지 않고 자신보다 나은 의원을 찾아보라며 입을 다물자 의녀를 비롯한 주변인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다시 묻는다. 그러자 어의가 망설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중전마마와 같은 증상을 보인 환자는 반 년을 넘기지 못했다'며 '몸 안의 순환이 제대로 안 되어 차가운 곳은 더 차가워지고 따뜻한 곳은 더 뜨거워져 장기들이 많이 손상된 상태다'라고 병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한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조급하게 살아와 그런 것 같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한다고 조언하자, 현비 강씨가 분노하여 벼루를 집어 던지며 "병에 대해서만 말하거라.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내가 살아온 길을 논하느냐!"고 반말로 소리친다. 덧붙여서 자신의 병에 대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탕약을 지어 올리되 누가 물으면 보약이라고 말하라고 시킨다. 그리고 어의에게 나가라고 명한뒤 충격받은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며 앞에 있던 탁상에 쓰러지듯 엎드린다.
이후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아는 현비 강씨는 세자를 불러서 세자빈 일이 있었어도 당당하게 다녀서 사람들이 무시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며 손을 꼭 잡아준다. 그리고 정도전에게는 은자를 주고 다음날 찾아온 정도전에게 세자를 잘 가르쳐 달라는 뜻일 뿐이라며 세자를 잘 지켜 달라고 말한다.[26] 그러다 명나라에서 돌아와 이성계를 알현하고 나온 이방원을 마주쳐 겉으로는 최대한 웃으며 얘기하려고 노력하지만 '말투에 가시가 서 있구나'라는 말을 하고 이유를 묻는 이방원을 피하며 이방원을 경계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이방원이 물러가자 '기어코 살아서 돌아왔구나'라고 중얼거리며 이방원을 노려본다.
그러던 와중 한양으로 천도를 하게 되는데
눈물을 흘리며 이성계가 나간 문을 절절히 바라보던 현비 강씨는 이방원을 보자마자 재빨리 눈물을 감추려고 하며 이방원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왜 왔냐고 묻는다. 이방원이 현비 강씨가 편찮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고 하자 현비 강씨가 매서운 목소리로 나가라고 말했다가 마음을 바꾸고 불러 세워 앉으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죽으면 세자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해칠 것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자신의 동생이고 절대 해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가라는 이방원의 말에도 기어서 이방원이 앉아 있는 자리까지 오더니 두 손으로 이방원의 목을 조르면서 혼자 가지는 않을 거라고, 같이 지옥으로 가자고 소리치다가[27] 이성계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이 상황을 목격했다.[28]
2.6. 끝내 이루지 못한 꿈, 그리고 사후에 찾아온 인과응보
"서기 1396년, 태조 5년,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가 숨을 거두었다.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남편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고, 자신의 소생인 방석을 세자로 만들었던 신덕왕후. 하지만 신덕왕후가 죽자, 그녀가 이룩한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신덕왕후 강씨의 졸기 |
이성계는 신덕왕후의 장례를 치른 후, 신의왕후의 자식들을 불러모으면서 이방석을 지켜줄 것을 부탁하고는 이방원과의 독대에서 그가 이방석을 해칠 인물임을 신덕왕후가 잘 꿰뚫어보고 이방원의 도발에 그를 죽이려는 것에 망설이다가 끝내 기회를 놓쳤다.
결국 생전의 우려대로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차남 이방석은 세자 자리에서 폐위되어 유배가는 도중 이방원의 수하에 의해 살해당하고, 장남 이방번도 유배를 가던 도중[29] 탐욕과 열등감에 눈이 먼 이방간의 독단으로 보낸 군사들에게 살해당하며 두 아들을 모두 잃는다. 급기야 딸 경순공주마저 눈 앞에서 남편인 이제가 박포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신덕왕후의 자식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지만 하루 아침에 친동생과 남편 모두를 잃는다.
심지어 이방원은 이성계에게 "정도전은 정실 소생의 왕자들을 제쳐놓고 서자를 세자로 앉힌 죄를 물어서 죽였습니다."라는 말까지 하면서, 사실상 신덕왕후를 첩으로 격하시키고, 그녀의 아들인 이방석도 서자로 규정해 죽은 이후에도 계속 수모를 겪도록 했다.[30]
이후 딸 경순공주가 그녀의 안전을 걱정한 아버지 이성계의 권유로 인해, 머리를 깎고 비구니로 출가하면서[31] 사실상 신덕왕후의 혈통은 완전히 끊어진다.[32]
시간이 지나 원경왕후 민씨의 어머니인 송씨가 민씨에게 신덕왕후를 본받아야 한다는 조언을 해준다. 즉위 후, 민씨와의 갈등이 본격화된 이방원이 아버지가 실패한 이유로 신덕왕후 강씨를 지목하며,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하면서 언급한다. 결국 강씨가 보여준 행보가 이방원과 민씨 두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부부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부부 싸움을 크게 벌인 이방원이 아예 원경왕후를 폐비시키고 새 왕비를 들이겠다고 선언했을 때 상왕으로 물러난 이방과가 찾아와 이를 말리면서 지금 이방원이 하는 짓은 이성계가 신덕왕후와 중혼해 자신들에게 했던 것처럼 이방원의 자녀들에게 두 명의 어머니를 만들어주는 거라고 설득하면서 간접적으로 언급이 되었다. 이방과와 이방원을 비롯한 신의왕후의 자식들에게 있어 신덕왕후가 어떤 존재였고,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그녀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3. 인물 묘사
이제까지 여말선초를 다룬 드라마 중 이성계와 함께 가장 부정적으로 연출된 인물이다. 실상은 그 이성계조차 임종 직전 이방원과 화해를 이루는 모습이나 그 전까지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묘사를 생각하면 독선적인 면모가 강하다는 성격적 결함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신덕왕후는 그저 자신의 야심과 친자식들을 위한다는 명분에 눈이 멀어 그 어떤 추악한 짓도 서슴치 않고 행하며 막 나가는 명실상부한 최악의 악녀라 해도 할 말이 없다.본 드라마와 같은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기존 사극들 중 〈용의 눈물〉에서 신덕왕후는 실록에서의 묘사에 가장 충실한 편이다. 처음부터 대놓고 야심을 내비치는 이성계를 충실히 내조했고 조선 건국 이전까지는 한씨 소생들과 무난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가, 개국 이후 세자 선정 과정에서 급격히 틀어지는 등. 태종은 신덕왕후를 작은 어머니로 깍듯하게 모시다가[33] 세자 책봉 건으로 틀어지게 되며, 이후에는 그 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일까지 모두 원망하게 되고 강씨의 사후 그녀의 무덤을 허물어버리는 식으로 무자비하게 보복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를 다룬 드라마 〈정도전〉에서의 신덕왕후는 이인임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이성계에게 조언하거나 초반의 정도전이 이성계의 정치 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겨 꺼리는 등 고려에 순응하다 점차 대업을 받아들이며 이방원에 대해서도 칼에 맞을 위기에 처한 이방원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지거나 명나라에 이방원이 사신으로 가자 손수 붓주머니를 만들어 선물하는 등 진심으로 친아들처럼 여기다 중전이 되고 난 이후부터 적대적으로 변하는 관계이다.[34] 친어머니 한씨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한 이방원 쪽에서 일방적으로 강씨를 적대했지만, 강씨가 이방원을 진심으로 아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고 화해했으나 역시 세자 책봉 건으로 틀어지고 강씨가 죽는 마지막까지 대립한다. 즉 이전까지의 사극에 등장하는 신덕왕후들 역시 친자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이성계에게 바람을 넣고 이로 인해 이방원 등의 한씨 소생 자식들과 갈등이 심화되긴 했지만, 이성계에 넣은 바람은 어디까지나 애정에 기반한 수준 이상은 아니었고 한씨 소생의 자식들과의 갈등도 서로 양상은 다르지만 적어도 서로 핏줄의 벽을 넘을 정도로 가족으로 여기던 시절이 묘사된 만큼 이방원을 비롯한 대놓고 표현되는 반발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심하게 악화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 외의 다른 공작들 역시 정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역대 신덕왕후 중에서 가장 온화한 편이며 이방원에게 희생된 비극적인 여인의 면모가 강조되었다.
하지만 본 작품에서는 이방원과 사이가 나쁘지는 않지만, 결국 직접 낳아준 어머니가 아니다보니 미묘한 관계로 묘사되다가[35] 점차 파국을 향해 갈 것임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한씨 소생 자식들도 차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가면 뒤로 자기 소생의 자식들을 위해 치밀한 간계를 구사하는 타입이다. 향처 한씨(후에 신의왕후로 추존)가 이방우와 이방원의 다툼에 가슴아파하다가 주변의 만류에도 포천으로 떠나자 "장차 궁궐의 안주인이 되실 분이 저래서는 어떡하냐?"며 대업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성계와 가장 밀접하게 붙어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아이들을 편애하도록 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36], 이방원에 대해서 고맙게 여기면서도 후계 구도에 이방원이 오르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견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급기야 명백히 이성계의 미움을 사게 되는 정몽주 암살 건을 이용해, 오히려 신의왕후 소생의 자식들이 이성계와 멀어지는 것을 유도하는 교활한 행동을 연속해서 보여준다. 이성계의 집에서 쫓겨난 이방원에게 '내가 설마 일이 끝났다고 너를 버리겠느냐, 대감께 잘 말씀드려 주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성계를 위로하고 이방원을 감싸 주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이후 '다 큰 자식은 부모 뜻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다'라며 은근히 이방원을 디스하고, 자신의 친자식들만 따로 불러서 이성계를 만나게 했을 때에도 '부모를 웃게 하는 것은 어린 자식들밖에 없다'며 계속 친자식들을 띄워 주는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적장자 이방우가 궁궐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고려의 충신으로 남아달라는 말과 함께 "세자가 될 망상은 하지 말라"는 내용의 서신을 남겨 이방우가 폐인이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에 이방원은 더더욱 분노하였다. 그 덕분에 이방우는 순식간에 실권도 없는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고, 이방원 또한 신덕왕후의 이간질로 이성계와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만다. 정도전도 이런 신덕왕후의 행태에 대해 추악한 계책이라 표현할 정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임종 직전에 혼자 못 죽으니 같이 지옥으로 가자며, 이방원의 목을 조른 건 인간말종 수준의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참고로 이방원은 분노를 못 이겨 신덕왕후의 목을 조르려 들었던 이후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신덕왕후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고, 신덕왕후의 이런 행동에 마음에 둔 이성계의 선을 넘은 모욕만 아니었어도 난을 일으킬 생각은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니 신덕왕후의 마지막 발악이 개인의 편집적인 악감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령 처음부터 강씨가 야심을 명확히 가졌다고 가정할 경우 2회 초반에서 이방원을 도와주는 장면도 동 시대를 다룬 정도전에서의 묘사와는 격이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의 강씨는 이방원을 칼밥으로 희생시키는 동안 다른 쪽으로 도망가도 될 상황인데도 이성보다 모성애가 앞서 이방원을 지키려 칼날 앞에 뛰어든 것이지만 본작에서의 강씨는 나서지 않으면 방번과 방석도 죽기 때문에 군관을 찔렀기에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그리고 강씨에게 자기 자식 아니라서 쉽게 말한다며 누차 타박주고, 강씨 소생과 자기 소생들 사이에 선을 긋던 한씨의 모습도 의미심장해진다. 같은 여자이자 어머니로서 어떤 사람인지 진즉 꿰뚫어 보았던 것. 다만 앞선 해석에 대한 반론도 당연히 존재한다. 먼저 1회에서 강씨와 이방원이 친모와 친자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신의 배에서 낳은 아들과 다르지 않게 대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이방원이 한씨와 강씨가 서로 미묘한 갈등을 벌일 때 한씨를 말리는 모습, 그리고 이방우와 방과가 서경에 인질로 잡혀있는 것을 한씨가 우려할 때, '이방우는 영민하고, 방과는 용맹하다. 그러니 걱정 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 것 등이다. 2회에서 이방원이 칼을 맞을 위기에 처할 때 도와주는 모습 역시 강씨와 이방원이 앞서서 나눈 대화를 생각해본다면 야심이 있다기보다는 진짜로 이방원에게 모성애를 느껴 도와주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 큰 자식은 부모 뜻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다'라는 말 역시 이방원을 디스하기보다는, 한씨 소생 자식들의 행동을 변호하기 위한 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해석의 경우, 처음에는 한씨 소생 왕자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조선 건국 이후 세자 책봉 과정에서 서로 관계가 틀어졌다는 실록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관계가 틀어지게 된 계기가 정몽주 참살 이후 강씨의 행보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단순히 친자식들을 위해서라는 모성애로도 옹호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것이, 자신의 소생 중 장남인 이방번이 혼인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내치고 막내인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는 친자식을 홀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녀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였던 이방원을 향한 이런 편집증적인 악감정이 이성계로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그 때까지도 망설이고 있던 이방원이 무인정사를 일으키도록 흑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야 말았다는 점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친자식들의 앞날을 처참하게 망친 셈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죽기 전 세자인 이방석을 잘 부탁한다고 한 말이 그 때까지 명확히 선을 긋고 있던 정도전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이방원을 비롯한 한씨 소생들과 대적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볼 때 자기 자식들이나 이성계는 물론 정도전까지 파국으로 같이 끌고 간 셈이다. 이 정도면 그냥 재앙의 역병신 수준.
이렇듯 전체적으로 야심과 인간성 면에 있어서 용의 눈물, 정도전에서 다뤘던 신덕왕후보다 훨씬 독하게 그려지다 보니 역사적 장면보다 인성 면에서 크게 너프를 받은 행동이 있다. 실제 역사에서 정몽주 살해 이후 이방원이 책망을 받을 때 신덕왕후도 이성계의 분노에 어쩔 줄 몰라하다, 이방원의 SOS에 마음을 다잡고 이방원을 위해 변명하며 이성계의 마음을 다잡게 하였다. 본작에서는 이 행동이 겉으로만 신의왕후 소생의 아들들을 위로하는 척하며, 실제로는 이성계를 충동질해 부자 간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배신으로 각색되어 나타났다. 이성계만이 아니라 이방원 형제들이나 정도전 등을 상대할 때도 아닌 척하면서, 상대방을 자극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데 매우 능숙하다. 시청자에 따라 흥미로운 각색으로도, 신덕왕후를 폄하한 왜곡으로도 볼 수 있는 지점으로 어쨌든 드라마 자체가 이방원 시점에서 전개되는 드라마다 보니 그녀의 역할은 말 그대로 빌런 포지션인 셈이다. 거기에 배역을 맡은 배우 예지원의 호연도 한몫하는데, 각 커뮤니티나 시청자들에게 보는 사람이 진짜 열받게 연기 잘한다는 평가가 많이 보이는 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기존 사극에서의 신덕왕후는 친자식들에 대한 편애로 인한 입장차를 갈등의 메인으로 두고 인간성에서 입체적으로 그려졌다면, 이 작품에서의 신덕왕후는 이방원의 흑화에 보다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악녀 이미지에 무게를 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신덕왕후의 행보는 향후 이방원이 벌일 일에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다. 무인정사는 말할 것도 없고 즉위 후 철저한 외척 숙청까지 전부 신덕왕후가 이방원에게 심어준 경각심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방원에게 있어 중전이라는 자리가 마음 먹으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계모 덕에 잘 알았으니, 이를 방지하고자 처남들과 사돈을 냉혹하게 제거하고 아내와의 사이도 멀어지는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무인정사와 그 이후의 이방원 및 주변 인물들의 행보와 운명을 결정지은 만악의 근원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신덕왕후가 사후에 받은 수모마저 자업자득으로 보일 지경이다.
한 마디로 변명의 여지도 이입의 여지도 없는 역대 신덕왕후 중 최악의 악녀다. 그에 걸맞게 이 드라마에서도 신덕왕후의 인과응보를 제대로 묘사했다. 이성계와 정도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왕실 종친과 대신들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어떻게든 세자 자리를 유지시켜주려 했던 이방석은 이방원의 무인정사로 폐위되어 참살당했고, 장남 이방번 역시 분명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방원을 향한 신덕왕후의 편집증적인 악감정 때문에 스스로 그 기회를 차버렸고[37] 끝내 이방간의 독단에 의해 참살당했다. 급기야 고명딸 경순공주는 친동생들로도 모자라 남편마저 눈앞에서 참살당하고, 사실상 폐서인이 되어 비구니로 출가하는 비참한 신세로 굴러떨어졌다. 또한 이렇게 신덕왕후의 혈통이 모두 끊어진 반면 그녀가 패드립을 날려대던 신의왕후의 혈통은 이방과와 이방원이 차례대로 즉위하여, 대대로 조선 왕실의 후계로 이어지면서 가히 생전의 업보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덩달아 그 양녕대군조차 뛰어넘은 스케일로 주변 인물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전주 이씨 파멸의 불씨이자 재앙의 물귀신인 셈.
3.1. 스토리 전개상의 문제
다만 신덕왕후의 이런 행보가 이방원의 흑화 및 이성계와의 갈등 심화 이상의 활용이 없다 보니 무인정사부터의 스토리 전개가 일부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면이 있다.우선 상술한 이방우에 대한 계책인데, 장자 계승이 원칙이 된 당시 시대상에서 신덕왕후가 한 행동은 당시 그녀가 중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명백히 차기 세자 1순위에게 핍박을 가해 후계 구도를 어지럽힌 국정 농단으로 간주될 행위인지라 이건 신덕왕후 세력의 축출을 기지로 한 이방원에게 있어서 개인적 원한으로 삭히며 끝낼 문제가 아니다. 물증이 남아있지 않다 해도 정권을 장악한 이방원은 충분히 이를 공론화할 힘이 있었고[38] 이미 장자 계승의 원칙 하에 우위에 선 명분과 정당성을 부동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를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신덕왕후는 후궁 격하나 장물이 물에 처박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성계가 두 눈 뜨고 살아있을 시절 폐비당해 왕실에서 이름이 도말되는 건 물론이고 공개적으로 역적으로 규정되는 것도 내다볼 수 있다. 그리고 폐인이 된 이방우에 대한 일이나 생전 신덕왕후에게 핍박당한 일로 원한에 사무친 이방원이라면 그런 단계까지 나가도 이상할 것이 없다. 즉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이방원은 정권 장악 후 신덕왕후가 그 동안 저지른 행보에 대해 거론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방원은 무인정사에 성공했음에도 이를 거론하는 묘사가 보이지 않는다. 이성계 면전에서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이방석을 살해하기는 했지만 이방우를 핍박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고 넘어가 버린다. 거사의 명분이나 개인적 원한은 제외하더라도 신덕왕후의 간계에 희생당한 이방우를 생각해서라도 그 일을 공론화했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당시 조선이 고려의 잔재를 지우는 것에 주력하고 있던 것을 보면 딱히 이방우가 고려의 충신으로 남은 대외적 이미지를 명예라 여겨서라 보기도 어렵다.
다만 이방우의 문제를 거론하려면 이에 앞서 이방과가 적장자의 입지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방우의 권위를 살려주면 이게 꼬이게 된다. 만일 적장자로 인정되어버리면 사실상 왕위는 적장자의 아들인 이복근에게 물려져야한다는 것이다.[39] 이런 이유로 이방우를 적장자의 위치로 추존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대로 골치아픈지라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일부러 불문에 부쳤을 수도 있다. 당장 이방원 본인부터 적장자의 원칙 때문에 형의 아들이 되는 무리수까지 써가면서 세자가 된 걸 생각해보면 본인의 정통성을 생각해서라도 굳이 이 문제를 당시에 거론해봐야 좋을 게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를 왕실의 위신이나 물증 여부 및 고려의 충절을 두고 갈등했던 이방우 본인의 마음을 신경써서 그런 거라 쳐도, 이성계 앞에서조차 이를 전혀 거론하지 않은 건 설명이 안 된다. 무인정사 당시 이성계와 만난 자리에서 그 동안 쌓인 설움을 터뜨리며 냉혹하게 나오는 그 순간에야말로 이방원은 희생된 이방우의 진실을 폭로하며 이성계를 질타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때부터 이방원과 이성계의 대립은 그저 둘 사이의 감정의 문제로만 전개될 뿐 신덕왕후의 간계는 그야말로 연기처럼 증발해버린 양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결국 이성계는 죽는 그 날까지 신덕왕후의 추악한 일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고 이방원은 그저 자신이 아버지에게 입힌 마음의 상처만 신경 쓸 따름이다. 신덕왕후의 건에 있어서만큼은 그런 그녀의 행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이성계가 명백히 잘못이고 이방원이나 이방우는 명백히 피해자의 위치라는 점과 그런 그녀의 행보가 무인정사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걸 감안하면 부자연스러운 전개.
물론 이방원이 즉위 당시 상왕이 된 방과와 얘기하며 신덕왕후의 전횡을 운운하는 걸 보면, 화면상에서는 묘사가 안 되었어도 이방원 지인들 사이에서는 얘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이성계 앞에서 얘기하지 않은 건 한씨 소생의 왕자들에 대한 무관심 및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그 모든 핍박의 주원인이 이성계였던 탓에 굳이 얘기할 의미를 못 찾아서였다고 하면 어느 정도 설명은 된다. 또한 태종 이방원이 기존 사극들에 비해 짧은 화수에 전개가 빠르다 보니 이런 부분의 묘사도 대강 넘어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신덕왕후 캐릭터나 실제 역사와 일선을 달리할 정도였던 본편 신덕왕후 행보를 보면 이에 대해 추가적인 언급이 없는 건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
결국 신덕왕후의 추악한 면모는 이방원의 흑화에 당위성과 이입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서만 활용되었을 뿐 그 후로는 전혀 활용되지 못한 채 묻혀버리고 만 셈이다. 그 결과 신덕왕후의 인성이 실제 역사 이상으로 지나치게 폄하된 건 물론이고, 무인정사부터 이성계의 승하에 이르기까지의 전개도 그에 대해 제대로 거론되지 않아 일부 매끄럽지 못한 부자연스러움이 빚어지고 말았다. 태종 이방원이 기존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들 이상으로 실제 역사에 근접한 사실주의적 연출을 노선으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보면 아쉬운 옥의 티.
작품 편성과 관련해서 본다면 제한된 제작 편수 문제로 신덕왕후 관련 서사를 재대로 못 다뤘거나 다뤄도 잘려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4. 인간 관계
4.1. 이방원
친 모자지간이 아니다 보니 거리감이 있었지만 위화도회군 당시 같이 도망을 치다가 서로 생사를 넘나들며 도와주면서 가까워졌다. 이성계가 낙마하여 가문이 위기에 처하자 이방원을 먼저 부를만큼 그 능력은 신뢰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 이성계의 왕위 등극이 현실화되면서 다시 거리를 두려고 하고, 이성계가 왕위에 등극하자 자신의 친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 이성계와 이방원 사이를 이간질 시킨다. 결국 자신의 속셈을 눈치챈 이방원도 극도로 분노하여[40] 강씨를 더 이상 어머니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으며, 자신 역시 중전에 등극하고 방석이 세자가 된 뒤에는 이방원을 어떻게든 제거하기 위해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강씨 본인이 병으로 인해 시한부가 된 뒤엔 이제 본인이 이방원을 극도로 경계하고, 이방원은 여러 시련을 겪은 뒤 적개심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결국 두 사람은 강씨가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못했고 이방원은 강씨의 사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방석을 폐위시킨 뒤 참살하고 신덕왕후마저 첩으로 격하시키면서 그간 당했던 원한을 배로 갚아준다.4.2. 이성계
이성계가 개경 중앙정치에 진출하면서 같이 살게 되었다. 향처인 한씨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41] 사실상 본처일 만큼 친밀한 관계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성계는 죽는 그 날까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신덕왕후의 어두운 면에 대해 알지 못했다.4.3. 이방번
자신의 친아들 중 장남. 애초에 자신의 야심을 위해 방번을 고려 왕씨의 여식과 결혼시켜놓고서 훗날 그 혼인이 세자에 부적합하다는 핑계를 대며, 명색에 장남인 방번을 밀어내고 대신 적극적으로 차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시켜 방번마저 친모인 신덕왕후에게 분노한다. 이로 인해 자신의 사후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에서 방번이 방석을 저버리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방번 역시 방석과 마찬가지로 1차 왕자의 난 때 살해당한다.[42]4.4. 이방석
자신의 친아들 중 차남. 장남인 방번이가 고려 왕씨와 혼인을 하면서 세자를 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이 들자, 적극적으로 이방석을 세자로 밀면서 결국 세자로 책봉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세자 자리에서 밀려난 건 물론 아버지인 이성계에게까지 외면당한 한씨 소생의 왕자들, 특히 이방원을 분개하게 만들어 결국 그가 자신의 사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을 폐위시키고 살해하는 계기가 된다.4.5. 신의왕후
향처 한씨가 자신보다 연상이고 이성계의 첫 부인이다보니 형님으로 깍듯이 대하면서, 한씨 생전에는 불편함없이 지내고 한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에게 큰 이득으로 작용하면서 조선의 첫 중전에 오른 뒤, 이방원 앞에서도 거리낌없이 패드립을 날렸다. 이때문에 이방원은 생전에 중전이 되지못한 친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하는 한편, 강씨는 중전이 아닌 후궁으로 격하시켰고 드라마 내에서 묘사되진 않았지만 무덤까지 헐어버렸다.4.6. 원경왕후
며느리 민씨와는 조선 건국 전부터 자주 담화를 나누고 가문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자신이 이성계에게 내조하는 것처럼 민씨에게도 이방원을 헌신하도록 조언했다. 조선 건국 후로 이방원이 이성을 잃고 자신의 목을 조르려했을때도 민씨가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애원하자 며느리가 조금은 낫다며 처벌을 내리지않고 넘어갔으며 이방우 일로 격노한 이방원이 자신의 함정에 걸리길 기다렸으나 그마저도 민씨의 처세술로 아무 일 없이 끝나자 민씨의 교활함을 경계했다. 용의 눈물에서는 아예 적대했고,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딱히 별 다른 관계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이 둘의 사이는 사실상 조금 나아졌다.4.7. 정도전
정도전은 가족 다툼에 관여하고싶지않았으나 살 날이 얼마 남지않은 강씨는 정도전에게 인심을 써서 세자를 지켜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5. 어록
무사할 겁니다. 방우는 영민하고, 방과는 용맹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필시, 살아날 방도를 찾아냈을 겁니다. - 1회, 이성계와 한씨 소생의 장자들이 전장에 위화도 회군하는 동안, 우왕의 군사들로부터 이방원의 보호 아래 가족들이 산 속에 피신하면서 |
어미라서 그랬다. 어미는 원래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다. 아니, 해야만 한다. 너도 자식이 있으니 알 거다. 자식의 앞길을 열어주는 건 모든 어미의 의무다. 난 그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형님도 살아계셨다면 형님도 그러셨을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셨지. 그래서 너와 형들이 버림받은 거다. 자식들은 아무리 장성해도 보살펴 줄 어미가 없으면 이렇게 되는 법이다. 특히, 서열이 중요한 왕가에서는... - 10회, 배신당한 이방원에게 날린 폭언 |
이 어미가 있는 한, 넌 아무 걱정 안해도 된다. 내가 널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 10회, 중전과 세자 책봉색에서 가마를 타면서 애지중지하는 아들 이방석에게 한 약속[43] |
삼봉대감의 눈에는 안보일지 모르지만 제 눈엔 보입니다. 정안군은 오래전부터 용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기를 쓰고 아버지의 대업에 동참하고자 했던 겁니다. 정안군은 굶주린 맹수입니다. 죽이지않고는 다스릴 수 없습니다. 지금 정안군을 살려두면, 결국... 우리가 다 죽을 겁니다. 잊지 마십시오. 대감과 저는 한배를 탔습니다. - 11회, 폐인이 된 이방우를 미끼로 이방원을 반역죄로 유인하려는 음모 |
이제 정말 한배를 탔군요. 이제 대감의 목숨도 걸렸으니 대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십시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살펴 가십시오. - 11회, 이방원과 민씨의 낚시에 걸린 정도전을 포섭하면서 |
니년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어디서 내 아들의 앞길을 막는 것이냐. 이 일이 세자의 위신을 얼마나 떨어뜨리는 줄 아느냐? 아무리 생각이 짧고 도화살이 뻗치는 년이라도 그렇지. 이 좁은 궁궐에서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 그래 놓고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 12회, 내시와 간통한 세자빈 류씨를 폐서인시키면서 |
병에 대해서만 말하거라.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내가 살아온 길을 논하느냐! - 12회, 자신의 병이 깊어지자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어의의 말에 격분하여 어의에게 벼루를 집어던지며 |
전하를 만나서... 너무나도 행복했사옵니다. 이루고 싶은거 다 이루고, 넘치도록 사랑받았사옵니다. 그 은혜를 어찌 갚아야하옵니까. - 12회, 임종을 앞두고 이성계에게 |
혼자 가지 않겠다. 널, 데려갈 것이다...! 함께 지옥으로 가는 거다. 지옥의 영원한 불길 속에서, 살이 타는 고통 속에서, 피눈물을 함께 흘리는 거다...! 피눈물을...! 함께! - 12회, 임종 직전, 자신을 조롱하러 온 이방원의 목을 조르면서 남긴 유언 |
[A] 계모자관계.[A] 계모자관계.[A] 계모자관계.[A] 계모자관계.[A] 계모자관계.[A] 계모자관계.[A] 계모자관계.[8] '두 번째 부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확실하게 말하자면 '경처(京妻)'가 맞는 표현이며, 드라마를 앞두고 방영했던 〈역사저널 그날〉 '태종 이방원' 특집에서도 거론되기도 하였다. 관련 영상 그러나 둘째부인인지 경처인지 구분여부를 떠나서, 강씨가 한씨보다 늦게 결혼한 것은 맞다. 한씨는 남편(1335년생)보다 2살 연하인 1337년생이지만, 강씨는 21살이나 연하인 1356년생으로 한씨 소생의 첫째이자 명색이 의붓아들인 이방우(1354년생)보다 어리다.[9] 작중 포천에서 가족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군관에게 휘하의 병사가 오면서 '철원의 전장도 텅 비었습니다.'라고 보고한 것으로 보아 철원에 따로 전장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10] 이성계보다 21세 연하인 신덕왕후와 이방원은 겨우 11살 차이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누나 뻘이었고, 맏형 이방우보다 2살 어렸다. 예지원의 실제 나이는 주상욱보다 5살이 많고 방의 역의 홍경인보다 3살 많으며, 이방우 역의 엄효섭과 방과 역의 김명수보다는 7살이 어리기에 나이 고증을 적절히 맞춘 부분이다.[11] 이방원의 3년상에 대해 민제는 "이방원을 후계자로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하는데, 강씨 역시 같은 생각을 해서 막으려 한 듯하다. 즉, 강씨에게 있어서 이방원은 대업을 위한 도구일 뿐, 후계자 자리까지 줄 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12] 민씨는 일전에 민제에게 이성계가 남편에게 3년상을 시키자 그게 정치에서 물러나라는 의미인지 물었는데, 이때 민제가 '그런 뜻이 아니다, 3년상을 시킨 이유는 나중에 이방원을 왕으로 세울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이니 그대로 치르고 오게 둬라'라고 대답한 것 때문에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13] 그러나 정작 이성계에게 이방원을 용서하도록 설득하는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14] 이때 이방과를 비롯한 한씨 소생 자식들은 문전박대를 당하여 출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씨 소생과 강씨 소생의 아이들이 차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15] 이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나온다. 여성으로서 매력을 앞세워 남편이자 국왕인 이성계를 설득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모습이다.[16]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같은 회 초반에 자신의 왕비 책봉을 사양하며 내세웠던 논리와는 완전히 대조를 나타낸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기부정인 셈.[17] 조준 졸기에서 의하면 태조가 처음에 배극렴, 조준, 정도전과 의논할 때 갑자기 중전 강씨가 침전 밖에서 큰 소리로 통곡을 하자(이 모습은 용의 눈물에서도 나온다.), 태조가 무안군을 단호히 세자를 지목했다. 그러나 배극렴, 조준, 정도전이 퇴궐한 이후 다시 의논한 끝에 태조를 알현한 자리에서 방석을 밀었고 이에 이방석이 세자가 된 것이다.[18] 문제는 방석이 세자가 되는 과정에서 강씨의 친자식인 방번까지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작중 방번은 세자 자리가 결정될 때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방석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배제당하고 있었고, 나중에서야 자기가 버림패 취급이었다는걸 알고 배신감에 분노를 표했다. 방번이 받은 대접은 강씨의 변명의 당위성을 부정한다.[19] 이 대목에서 그녀는 남편이자 일국의 왕인 이성계에게 "중전의 명입니다. 받드십시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20] 실제로 처소에 정도전이 있는 것을 본 민씨가 그걸 이방원에게 그대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21] 본인은 국왕과 세자와 함께 백성을 보살피는 것에 집중할 것이지 중전과 추악한 계책에 함께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거기에다 이런 일이라면 앞으로 다신 찾지 말라고도 한다.[22] 이를 보면 알 수 있는게 강씨의 정치적 세력은 일개 말단들과 외척 세력에겐 통할지 몰라도 공신들의 위치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점이다. 공신들에게 강씨는 그들의 신념과 대의를 방해하고 통제하려 들며 위기로만 내모는 방해꾼 정도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유일하게 제대로 설득한 사람인 이성계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권력과 세력은 금세 무너질 수 밖에 없는 형태다. 그래서 그녀가 작중에서 보일 수 있는 행동은 누군가를 죽이고 제거하려는 강압적 선택 말고는 선택지도 없었다.[23] 전개가 어떻게 되냐면, 빈궁의 궁녀가 둘이 간통한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와, 인근 숙위병들까지 모두 모이게 되며 널리 알리게 된 것이다.[24] 두 사람의 대화로 미루어 봤을 때 처형한 것으로 추측된다.[25] 이때 세자빈이 사내 구실을 못 하는 방석과 자신을 애초에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강씨를 탓하고 다른 세자빈을 들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대들자, 왕실 능멸죄로 네년의 아비와 어미까지 목을 베어 주겠다고 협박하여 두려움에 떨며 울게 만든다.[26] 전편에서도 나왔듯 정도전은 중전의 권위로 뭉갤 수 없는 중신 중의 중신이며 본인 역시 집안 싸움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은 상태다. 그렇다고 곧 죽을 판국인 신덕왕후가 시간 들여 공략할 만한 여유도 없으니 차라리 감성에라도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을 쓴 것.[27] 지난 10화에서는 강씨가 의도적으로 이방원이 자기 목을 조르게 도발했는데 이번엔 자신이 이방원의 목을 조르는 반대 행동을 함으로서 얼마나 심리적으로 위태로운지 보여준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기어오는 장면이 사극이 아닌 흡사 공포영화를 연상케 한다.[28] 시청자들이 이 때 등장한 이방원은 신덕왕후가 본 환각일 것 같다고 추측했는데, 이방원의 등장이 너무 뜬금없는데다가 감정 표현이 인형처럼 너무 밋밋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화면 연출도 잔뜩 흐리게 연출되어 있어 마치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결정적으로 분명 이성계가 세자를 불러 오겠다고 했는데, 정작 나중의 이성계는 혼자 돌아온다. 게다가 이방원의 목을 조르는 광경을 보고 하는 말이 "중전!" 이방원은 눈에 들어 오지 않는듯한 묘사다. 즉, 신덕왕후가 병세때문에 환각을 보는 것이며, 전후상황을 고려하면 이방원이라 여기고 있는 인물은 사실 이성계가 불러서 들어 온 세자 이방석 내지 복식이 곤룡포가 아닌 일반 왕자의 옷인 점, 특히 이방원의 대사가 "세자는 자신과 피를 나눈 형제"인 점 등을 보아할때 무안군 이방번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13화에서 보면 이방원이 온 것이 맞았다. 그리고 이성계는 이것을 목격한 후, 따로 이방원을 불러 그를 추궁하게 된다.[29] 이방원은 기다렸단 듯이 이방석을 살해한 것과 달리, 이방번만큼은 유배를 보내되 진심으로 살려주려고 했다. 이복형제를 모두 죽이면 자신에 대한 백성들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될 것도 걱정했겠지만, 이방번도 자신처럼 신덕왕후에게 토사구팽을 당해 세자 책봉에서 밀려났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다.[30] 실제로 신덕왕후가 복권된 시기는 현종대인 1669년이다. 그 이전까진 태종이 신덕왕후의 위패를 종묘에서 치워버리고 그녀의 기일에도 조회를 파하지 않고 진행했으며, 제사마저 그나마 태조의 체면을 생각해 왕비가 아니라 후궁의 예로 지내며 거진 폐비 취급을 했다. 결국 태조 사후엔 아예 신덕왕후에 대한 예우를 완전히 왕비에서 후궁 격으로 격하시켜버리고, 능에 사용되었던 12지상들마저 청계천을 치수한 김에 광교의 석재로 사용해 물 속에 거꾸로 처박았고, 무덤도 기존 도성 안 정동에서 도성 밖 정릉동으로 이장하기까지 했다. 이후 사실상 평민의 무덤으로 전락해 제대로 된 관리도 받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난 현종 때 겨우 다시 위패가 종묘에 모셔지고 무덤도 왕릉으로 수복되었다.[31] 아버지인 이성계가 직접 경순공주의 머리를 잘라줬다. 이마저도 이성계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통곡을 해 중단되고, 옆에 있던 다른 비구니가 대신 깎아주며 마무리한다.[32] 이방석과 이방번 형제, 경순공주 모두 배우자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다는 묘사는 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방석과 이방번 모두 정실과 첩 사이에서 장성한 자녀가 없어(이방석은 세자빈 심씨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았지만 조졸했다.) 사후 봉사손을 들여야 했고, 경순공주 역시 남편인 이제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어 조카를 양자로 들여야 했다.[33] 심지어 원경왕후가 "어머니는 이러저러해서 서방님을 박대하고 있다(또는 박대할 작정이다)" 라고 몇 번이고 조언했는데도 "어머님이 내게 설마..." 하며 넘겨 버리곤 했다.[34] 전체 50화 중 조선파트가 겨우 10화라서 이 변화가 굉장히 갑작스럽게 그려져서 지적을 많이 받았다. 정도전의 조선 파트는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35] "그게 그리 말처럼 쉬운가? 자네 뱃속에서 낳은 아들이 아니라고 그리 쉽게 말하는가?"는 한씨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가족이긴 하지만 껄끄러움이 없지는 않은 관계.[36] 따지고 보면 신의왕후 소생의 아들들은 가장 위독한 순간에 달려와 몸소 아버지를 간호하고 개경으로 호송하는 등,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이후에도 정몽주 참살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반대로 신덕왕후 소생의 자녀들은 한참 후에야 방문하였으니 효행에 대한 격의 차이가 다르다. 그러나 이성계가 극렬히 분노한 상태에서 의도한 시점에 등장했기에, 이성계를 위로하는 역할로 행한 일도 없이 편애를 받는 상황이다.[37] 무인정사 당일 방원은 방번에게 악감정이 없었던지 자기 곁에 있으라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방원에게 악감정이 없던 방번은 어머니가 형님을 믿지 말라 했다며 거절하고 떠났다.[38] 당장 정도전부터가 이 드라마에선 실제로 한씨 소생 왕자들을 척살하려 했던 일에 대한 증거가 남았는가의 여부를 따지며 죽인 게 아니고, 현실 역사에서의 정도전은 정말로 한씨 소생 왕자들을 직접 죽이려 했는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는 판이다.[39] 알다시피 1차 왕자의 난 때 이복근은 정안군 이방원을 지지했고 이 때 이미 적장자는 사실상 이방과로 이복근은 정통성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태종은 양녕을 세자에서 폐할 때 양녕의 아들 중에서 세자를 다시 세우려고도 했었다. 더 멀리 가면 사도제사의 아들 정조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처럼 적장자의 핏줄이 대대로 왕위를 물려받는 게 당연했다. 이방우를 적장자로 세워버리면 당연히 왕위는 그 아들인 이복근에게 돌아가야 맞게 된다는 것이다.[40] 먼저 가신 형님을 원망하라는 패드립이 결정타였다.[41] 한씨는 포천에 있고, 강씨는 개경에서 이성계와 같이 살고 있다.[42] 무인정사가 일어나던 밤 방번과 마주친 방원은 그에게 악감정이 없었던지 자기 곁에 있으라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방원에게 악감정이 없던 방번은 중전마마가 생전에 형님을 믿지 말라 했다며 거절하고 떠났다. 이때 방번이 방원의 말을 따랐다면 죽지 않고 오히려 공신이 되었을 수도 있으니, 신덕왕후의 이방원을 향한 편집증적인 악감정이 살아남을 여지가 있던 아들도 죽게 한 셈이다.[43] 이 약속은 결국 본인이 먼저 사망하면서 지키지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