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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08:59:52

스티페 플레티코사

스티페 플레티코사의 기타 정보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D1D29 20%, #FFFFFF 20%, #FFFFFF 40%, #FFFFFF 60%, #FFFFFF 80%, #DD1D29 8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fff> 파일: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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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7a36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루카 모드리치 182회 2006.3.1 2024.10.16
2 이반 페리시치 138회 2011.3.26 2024.10.16
3 다리요 스르나 134회 2002.11.20 2016.6.25
4 스티페 플레티코사 114회 1999.2.10 2014.6.23
5 이반 라키티치 106회 2007.9.8 2019.10.13
마테오 코바치치 2013.3.22 2024.9.9
7 도마고이 비다 105회 2010.5.23 2024.6.3
요시프 시무니치 2001.11.10 2013.11.19
9 이비차 올리치 104회 2002.2.13 2015.10.13
10 베드란 촐루카 103회 2006.8.16 2018.7.11
11 다리오 시미치 100회 1996.3.13 2008.8.20
안드레이 크라마리치 2014.9.4 2024.10.16
}}}}}}}}}}}}}}} ||
크로아티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Pletikosa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스티페 플레티코사
Stipe Pletikosa
출생 1979년 1월 8일 ([age(1979-01-08)]세)
유고슬라비아SFR 크로아티아SR 스플리트
국적
[[크로아티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93cm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하이두크 스플리트 (1986~1996 / 유스)
하이두크 스플리트 (1996~2003)
샤흐타르 도네츠크 (2003~2007)
하이두크 스플리트 (2005~2006 / 임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07~2011)
토트넘 홋스퍼 (2010~2011 / 임대)
FC 로스토프 (2011~2015)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015~2016)
국가대표 114경기 (크로아티아 / 1999~2014)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수상 경력
4.1. 클럽4.2. 개인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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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로아티아의 前 골키퍼.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했다.

2. 클럽 경력

파일:Pletikosa_Rostov.jpg

그는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축구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8-99 시즌을 앞두고 1군 퍼스트 키퍼로 낙점되었고, 발군의 반사신경과 순발력을 지닌 그에게 팬들은 옥토퍼스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어린 나이에 스플리트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플레티코사는 2002년에 자국 언론 Večernji list이 선정한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이는 조란 시모비치와 함께 골키퍼로 수상한 선수였다.

2003년, 플레티코사는 팀 동료 다리오 스르나와 함께 약 200만 유로의 이적료에 우크라이나의 명문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한다. 그러나 훗날 팀의 레전드로 남는 스르나와 달리 그는 적응에 실패했고, 불안했던 첫 시즌 이후 서브로 밀려났다. 2005년 친정팀 스플리트로 임대를 가게 됐고, 정기적인 출전을 통해 감각을 회복하면서 2006 FIFA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소속팀으로 복귀했지만, 그의 자리는 없었고, 되려 세컨키퍼였던 얀 라슈투프카에게 밀리면서 시련의 나날을 보낸다. 샤흐타르는 디나모 자그레브로부터 300만 유로의 제안을 수락했지만, 그는 디나모의 가장 큰 라이벌인 하이두크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제안을 거부한다. 풀럼 FC와의 이적도 성사될 뻔했으나 워크 퍼밋을 발급 받지 못해 무산되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그에게 손을 내민건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스파르타크 모스크바였다. 2007년 3월 7일, 그는 스파르타크와 300만 유로의 이적료에 3년 계약을 채결한다. 그는 2009년까지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이후 새로운 감독으로 발레리 카르핀이 부임한 이후에는 주전에서 밀려났다.

2010년 8월 31일, 프리미어리그토트넘 홋스퍼로 1년간 임대를 떠난 플레티코사는 9월 21일 풋볼 리그 컵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연장에서 3골을 허용하며 팀은 4:1로 패배했다. 그리고 이 경기가 그의 유일한 출전경기였고, 시즌 종료 후 다시 원소속팀으로 복귀한다.

2011년 7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의 강호 셀틱 FC의 입단테스트에 참가하였으나, 닐 레넌 감독은 그를 영입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8월 6일, 러시아의 FC 로스토프와 2년 계약을 채결했고, 2014-15 시즌까지 주전으로 활약한다.

2015년 12월 20일, 플레티코사는 주전 골키퍼 파브리의 부상으로 공백을 매우기 위해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6개월의 단기계약을 맺고 영입된다. 리그 2경기를 출전한 뒤 2015-16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Pletikosa_National.jpg

유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자국의 차세대 수문장으로 주목받은 플레티코사는 1999년 처음으로 A대표팀에 콜업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미완의 대기였는지 잦은 실수를 보였고,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2000년 UEFA U-21 챔피언십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후 그는 자신의 약점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당시 크로아티아 감독 미르코 요지치의 신임을 받아 2002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출전하며 조국의 주전 골키퍼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대회 기간동안 약점이었던 공중볼 처리 능력이 많이 개선되는 등 괄목 할 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물론 팀이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건 흠이었지만..

대회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대표팀의 넘버원이었고, UEFA 유로 2004 대부분의 예선경기를 출전했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개막을 얼마 안 남기고 불의의 부상으로 본선 참가는 좌절되었다. 결국 서브였던 토미슬라프 부티나가 그의 공백을 매웠다.

부티나는 2006 FIFA 월드컵 예선에서도 주전 골키퍼 자리를 지켰다. 반면 플레티코사는 예선 2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대표팀 주전 자리를 내주는 듯했다. 그러나 월드컵을 앞두고 부티나가 연초 부상에서 아직 회복 중이었기 때문에 본선에서는 플레티코사가 주전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UEFA 유로 2008은 그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알린 무대였다. 플레티코사는 개최국 오스트리아와의 개막전에서 PK 선방을 포함하여 야신을 빙의한 선방퍼레이드를 선보이면서 팀의 1:0 승리를 지켜내며 MOM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활약에 리버풀의 전설이자 BBC 축구전문가로 활동 중인 앨런 한센은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페테르 체흐, 지안루이지 부폰 보다 플레티코사가 훨씬 뛰어난 골키퍼라고 극찬했다. 이후 독일전에서도 1골밖에 내주지 않는 철벽 방어를 선보였고, 폴란드와의 최종전에서도 무실점 승리를 거두며 팀은 조별라운드 전승을 거두고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에서 튀르키예를 만나 기적의 희생양이 되며 준결승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9년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백업 골키퍼로 밀려났을 때 RC 랑스 소속의 넘버 2 베드란 루네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단 1경기 출장의 굴욕을 맞본 토트넘 홋스퍼 임대 시절에는 국가대표팀에서 룬예에 밀려 벤치신세였다. 그러다 로스토프에서 재기에 성공하면서 국가대표 넘버 원 자리를 되찾았고 UEFA 유로 2012에서는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2013년 2월 6일,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A매치 100경기를 달성하면서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다. 팀은 4:0으로 대승을 거두었고, 클린시트까지 기록했다.

2014년 6월 12일, 개최국 브라질과의 2014년 월드컵 개막전에서 1:1 동점인 상황에서 수비의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주었고, 그는 네이마르 슛의 방향을 읽었지만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결국 팀은 3:1로 패했다. 이후 카메룬과의 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거두고 승리하며 기사회생했으나 다음 경기인 멕시코와의 3차전에서 3골을 내주고 패하면서 대표팀은 3연속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2014년 7월 17일, 월드컵이 끝난 뒤 플레티코사는 다니엘 수바시치에게 주전 자리를 물려주고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4. 수상 경력

4.1. 클럽

4.2. 개인

5.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