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명예 훈장 수훈자 | |
<colbgcolor=#00518f><colcolor=white> 이름 | 스메들리 버틀러 |
<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스메들리 버틀러 Smedley Butler | |
본명 | 스메들리 달링턴 버틀러 Smedley Darlington Butler |
별명 | 늙은 송곳눈 "Old Gimlet Eye" |
출생 | 1881년 7월 30일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웨스트체스터 | |
사망 | 1940년 6월 21일 (향년 58세) |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군인, 평화운동가 |
종교 | 개신교 (퀘이커) |
소속 | 미합중국 해병대 |
최종계급 |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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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해병대 장성이자 반전 평화 운동가이다. '늙은 송곳눈'(Old Gimlet Eye)'라는 별명이 있다.저서로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가 있다.
2. 생애
버틀러는 펜실베니아에서 퀘이커 집안의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미국-스페인 전쟁 중 입대했으나 임관하기 전에 종전해서 참전하진 못했다.[1]그후로 미국-필리핀 전쟁, 의화단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바나나 전쟁으로 불리는 남미 바나나 공화국들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에 참전했다. 1차대전에도 참전하여 전부 16개 무공 훈장을 받았으며 명예 훈장을 2개 수훈한 유이한 해병대원[2]이다.
1924년에는 필라델피아 치안감으로 부임했다. 당시 필라델피아 시장은 프리랜드 켄드릭이었는데, 그는 버틀러 부친의 권유로 출마해 당선됐다. 켄드릭은 버틀러에게 해병대를 나와 필라델피아 치안감으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버틀러는 거절했다. 그러자 켄드릭이 캘빈 쿨리지 대통령에게 부탁해 특별히 해병대에 복무하면서 치안감으로 부임할 수 있게 재가를 받자 버틀러는 치안감직을 수락했다.
당시는 금주법 시대였기 때문에 버틀러는 기동 타격대를 조직해 900여 개소의 밀주 관련업소를 폐쇄했다. 그외에도 도박, 매춘, 경찰부패를 근절하고자 노력했다. 6개월 후 버틀러가 너무 해병대식이라는 비판여론이 일어나자 1년 임기만 채우고 해병대로 복귀하려했는데, 버틀러 지지자들이 시위하였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임기가 1년 연장되었다.
버틀러는 48세에 최연소 미해병대 소장으로 진급했는데, 당시에는 소장이 미해병 최고계급이었다.
1931년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가 어린이를 차로 치여 숨지게 한적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는데, 이에 파시즘을 싫어했던 버틀러는 무솔리니를 '어린애를 차로 치여 죽인놈'이라고 욕한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이탈리아 외교관 귀에 까지 흘러들어가 외교문제가 발생해 제대하게 되었다.
보너스 아미에서 연설하는 버틀러의 육성
제대후 참전군인회에서 활동하며 보너스 아미 활동을 지원했는데, 버틀러가 보너스 아미를 방문한 다음날 맥아더와 조지 S. 패튼이 전차를 끌고와 전우들을 짓밟아 버렸다.
1940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2.1. 비즈니스 플롯
1934년 11월 버틀러는 이른바 '비즈니스 플롯'(Business Plot; 사업가들의 음모)을 폭로했다. 루즈벨트 정권에 불만을 품은 JP 모건을 비롯한 자본가들이 유럽 파시즘 국가들을 시찰한 뒤, 재향군인회와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미국을 파시즘 국가로 만들려 했으며 참전군인회 간부인 자신에게 쿠데타군 지휘관을 제안했다는 내용이다.[3]당시 많은 파장이 일었고 진상조사위가 조직되었으나 명확한 결론없이 끝났다. 이에 대해 실제로 그런 음모가 있었다는 설과 당시 복지정책을 추진하던 루즈벨트와 참전군인들을 위한 복지증진을 주장하던 버틀러가 손잡고 복지정책에 반대하던 재계를 억누르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각자 반론도 만만치 않다.
2.2. 전쟁은 사기다
전역 후 반전 반파시스트 연맹(American League Against War and Fascism;ALAWF) 등에서 반전 평화운동을 하던 버틀러는 자기 연설내용을 정리해서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그는 저서에서 전쟁은 비용은 인명으로 계산하고 수익은 달러로 계산하는 사기라고 지적했다. 전쟁은 침략을 당했거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만 해야하는데 실제로는 바나나 공화국들에서 플랜테이션을 지키기 위해, 대기업들의 영리를 위해 싸웠다는 것이다. 또 전쟁의 값을 치르는 건 얼마되지도 않는 급료를 받고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불구가 된 참전용사와 그 가족, 그리고 세금을 낸 시민들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전쟁을 위해 수많은 차량과 항공기를 구매했지만 그중 상당수가 아예 전장으로 가지도 않았고, 심지어 모기장이나 사륜마차처럼 원래 프랑스 전선에 필요없었던 물자들까지 어마어마한 양이 구매된 뒤 지금은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걸 비판했다. 그와중에 1,800%에 달하는 수익률을 낸 기업들은 아무 것도 잃은게 없다. 뺑이치는 사람 따로 있고 번 사람 따로 있는 이런 사기가 또 어디있단 말인가. 버틀러는 알 카포네는 3개 도시에서 사기를 쳤지만 자신은 3대륙에 걸쳐 사기를 쳤다며 회한을 드러냈다.
또 그는 입대할 때는 정훈장교들이 민간인들을 군인으로 만들지만 군대에서 사회에 돌아갈때는 알아서 하란 식으로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고, 그 결과 적응에 실패한 수많은 전우들이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며 울분을 드러냈다.
버틀러는 국내 문제를 가라앉히려고 남의 전장들에 기웃거리며 어떻게든 전쟁에 참전하려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일정이상의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선거가 있듯이[4] 침략을 당한게 아닌데 참전하려면 국민투표로 결정하되 투표권은 입대가능연령인 사람들에게만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여든 먹은 재벌 사장은 전쟁을 결정한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전시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사장들은 본인이 참전용사거나 가족 중에 전사자나 상이용사가 있어야 한단 자격제한을 둬야하고 참전 중인 이등병보다 급료를 더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미 해군이 훈련하겠다면서 본토에서 수 천 마일 밖까지 나가는 것을 비판했다. 미군이 본토에서 200마일 이상 나갈 필요가 없고 그랬다면 미국-스페인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만약 일본 함대가 훈련한답시고 로스앤젤레스 서부해안에 나타나면 미국인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고 빈정거렸는데 이 구절은 진주만 공습 이후 재조명되기도 했다. 실제로 버틀러 본인은 미국과 일본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진주만 공습 이전에 미리 예측하기도 했다.
버틀러는 군인이지 학자가 아닌만큼 그가 울분에 가득차 제안한 정책들은 비현실적이었지만, 문제가 산적한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많이 공감할만한 내용들이다. 버틀러는 반기업적 성향 때문에 미국 공산당 대회에도 자주 연설자로 참석했지만, 입당 권유에는 '뭐하러 굳이?'란 반응을 보이며 거절했다.
그의 주장들은 21세기인 지금에도 통하는 바가 많이 있어 수많은 반전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3. 어록
전쟁은 사기다. 전쟁의 손해는 사람의 목숨으로 계산하고, 전쟁의 이득은 달러로 계산한다. 전쟁에서 몇몇 사람만 이득을 보고 대다수는 손해를 본다.
1차 대전을 통해 미국에서만 2만 1,000명의 부자가 탄생했다. 그런데 이들 억만장자 가운데 소총을 들어본 사람은 몇 명인가? 참호를 파본 사람은 몇 명인가? 생쥐가 들끓는 참호에서 굶주린 부자들이 있는가? 전투 현장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은 몇 명인가?
전쟁의 부담은 누가 지는가? 일반 국민들이다.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다. 그뿐만 아니다. 국민들은 막대한 액수의 전쟁 부채를 갚기 위해 대를 이어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전쟁을 시작할지 여부는 젊은이들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현역 군인으로 33년 4개월을 복무했으며 그 대부분을 대기업과 월가, 은행가들을 위한 고급 조폭(a high class muscle man)으로 일했다. 한마디로 나는 자본주의를 위한 사기꾼, 조폭이었다. 1914년 나는 멕시코, 특히 탐피코를 미국 석유업계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티와 쿠바를 내셔널시티뱅크가 돈을 긁어모으기에 적당한 장소로 변모시키는 것을 도왔다.
월가의 이익을 위해 중미 6개 국가를 침탈하는 것을 도왔고, 1902∼1912년에는 브라운브라더스국제은행을 위해 니카라과 소탕을 도왔다.
월가의 이익을 위해 중미 6개 국가를 침탈하는 것을 도왔고, 1902∼1912년에는 브라운브라더스국제은행을 위해 니카라과 소탕을 도왔다.
1916년 미국 설탕업계가 도미니카공화국에 진출하는 것을 도왔으며, 1903년에는 온두라스를 미국 과일 기업들이 활동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1927년에는 스탠다드오일이 아무런 방해 없이 중국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알 카포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껏해야 시카고의 3개 구역에서 사기 행각을 벌였지만, 나는 세 대륙에 걸쳐 그 짓을 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농장, 사무실, 공장, 학교에서 일하고 공부하던 멀쩡한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살인 기계로 만들어버렸다. 180도 돌변을 강요한 것이다, 군중심리와 애국심, 대대적 프로파간다를 통해 이들은 2년간 오로지 죽이는 일, 또는 죽임을 당하는 일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사회로 돌아와서는 다시 한 번 180도 돌변하라고 한다. 군중심리도 없이, 상관의 지시나 조언도 없이, 전국적인 프로파간다도 없는 채로 다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적응하라고 한다. 더 이상 우리는 그들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방치해둔다. 너무도 많은 훌륭한 젊은이들이 결국은 망가지고 만다. 그들 혼자서는 '180도 돌변'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디애나 주 매리온에 있는 퇴역군인병원에서는 1800명의 젊은이들이 감옥에 갇혀 지낸다. 이 중 500명은 쇠창살 감옥에 갇혀 있다. 사람으로조차 보이지 않는다. 신체적으로는 멀쩡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어마어마한 전쟁의 열광, 그리고 광적 흥분 상태의 갑작스런 종말을 이들은 견뎌내지 못한다.
4. 매체
Hearts of Iron IV의 모드인 카이저라이히에 미 생디칼리즘 진영의 장군으로 등장한다. 현실에서도 나름 영향력 있는 역사적 인물이었지만, 본 게임에선 미국의 정치, 사회적 분열이 어마어마하게 심해져 결국 2차 미국 내전이 터지고 여기서 원래 출신 배경이 군대, 경찰과 사이가 안좋은 사회주의 혁명가들 중에 몇안되는 거물 군인이다보니 해당 미국 생디칼리즘 국가인 전미노조연맹의 실질적인 군사적 지도자로 입지가 굉장히 커졌다.[5] 만약 극좌 전체주의자가 집권하고 군 숙청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버틀러가 쿠데타를 일으켜 급진사회주의 정부지도자로 집권한 뒤 선거를 통해 민간이양하는 선택지도 있다.[6] 카라의 전체주의 내에 그가 그토록 혐오한 무솔리니같은 인물들이 들어가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른 모드 팍스 브리타니카에선 여전히 미국을 식민지배하고 있는 영국에 맞서 제2차 대륙육군을 이끄는 원수로 등장한다. 미국을 통일하고 문민정부에 권력을 넘겨 미합중국을 형성하거나 종신 독재로 대북아메리카 연방을 만들 수 있는데, 문민정부 대통령 후보가 얼 브라우더, 윌리엄 Z. 포스터, 거스 할이라 차라리 버틀러의 종신독재가 나아보인다는 평이 많다.
[1] 미서전쟁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3달 여 밖에 안된 전쟁이다.[2] 다른 한 명은 벨로 우드 전투에서의 발언으로 유명한 다니엘 J. 데일리이다.[3]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게 2022년 북미에 개봉한 암스테르담(영화)이다.[4] 당시엔 지금만큼 보통 선거가 확립되지 않았다.[5] 현실에선 2차대전 중 전사한 최고위 미군 장성이었던 모리스 로즈같은 다른 미군 출신 고위 장교들도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실제로 게임상에서나 설정상에나 전미노조연맹은 군재와 경험에서 맥아더의 군사독재 연방정부나 극우 민병대들이 많이 가입한 휴이 롱세력에 비해 장성진이 좀 빈약하게 시작하는편이다. 당장 미노조연맹 장성진만 보면 상당수가 현실에선 스페인 내전에서 국제여단에 싸웠던 태반은 군인도 아니었거나 미군 경험이 있어도 사병, 하급 장교 수준에 머물렀던 좌익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이 대부분인 반면 아이젠하워, 패튼, 브래들리 등 현실 2차대전기 미군의 유명한 네임드 장성들은 연방군이나 미주연합에 몰려있다.[6] 버틀러가 죽은 뒤면 에반스 칼슨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 특성은 둘다 매버릭 해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