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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6-01 05:22:37

송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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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군의 영관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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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출처

1. 개요


구한말의 군인. 최종 계급 육군 부령.

2. 생애


승정원일기의 첫 등장 시기를 보면 1860년대생으로 추정된다.

1899년에는 국민교육회에 성금을 냈다. # 대한천일은행의 설립 청원에 이름을 올리고 주주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

1905년에는 본인 소유의 도장을 잃어버렸다며 황성신문에 광고를 냈다. 비파동(琵琶洞)[2]에 거주하고 있다. 本人의 姓名下一心章아라 刻 圖章을 本月十三日遺失하엿스니

1906년에 현역 부령 시절에 소송에 걸린 게 황성신문에 보도되었다. 송문섭이 의성군수 이인성에게 공금 수만 냥을 지인에게 지급하도록 부탁했다. 해당 인물이 반환하지 않아 송문섭에게 소를 제기하였다. 義倅將訴 평리원에 넘겨질 거란 얘기가 돌았는데 곧 송학중이란 사람이 광고를 내어 송문섭이 공금을 주라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이 이인성에게 받은 거라고 하였다. 昨日本雜報內平院不遠이란데 對야 그해에 아들인 성래(聲來)가 아편을 피다 순검에 체포되었다가 방면된 일이 보도되기도 했다. 연何白放

1907년에는 송문섭의 부인이 진명부인회에 찬조금을 냈다. 진명부인회 제회 연죠금

1909년에는 일본인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아 감옥에 갇힌 내용이 황성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기사에선 전 참령으로 보도되었다. 似是債關

1910년 7월 15일에는 송문섭의 아들인 성래가 유흥에 빠져서 기생에게 진 빚으로 비파동의 집안 재산이 강제 집행을 당한 게 보도되었다. 蕩子敗家 같은 달 21일에 송문섭은 구희문(具熙文)과 함께 구속되었다. 宋具被捉 화투 도박을 한 혐의이다. 宋具花局 23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인 사기꾼으로 유명한 핫토리 겐노스케(服部健之助)와 관련하여 기소당했다. 被損幾何 송문섭 외에도 전 부위인 이승익(李昇翼)[3], 전 군수인 유진찬(兪鎭贊)도 함께 기소되었다.

1913년에는 아편을 핀 혐의로 순사에 체포되어 제1심에서 징역 5개월형을 받고 항소했단 내용이 매일신보에 보도되었다. 기사에서 54세로 보도된 점을 볼 때 1858년생에서 1860년생(한국식 나이 기준)으로 추정된다. 송문섭의 징역 불복

1914년에는 아들인 극래(克來)가 언급되었다. 극래는 아버지의 재산으로 주색잡기를 즐기다가 아편에 빠졌는데 중독이 심해서 거리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다가 경찰에 잡혔다. 기사 내용으로 볼 때 당대 서울 사람들은 송문섭이 아편 혐의로 잡힌 게 아들의 죄를 뒤집어 쓴 것이라 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浮浪者의 말로, 아비 징역시키던 부랑자의 말로

3. 출처


[1] 승정원일기에는 일부 부위로 잘못 적었다.[2] 오늘날의 종로구 관수동모곡동 일대.[3] 육군무관학교 2회 졸업자. 기사와 달리 실제론 포병 참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