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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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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00년 간의 기온 변화 (2016)

1. 개요2. 역사적 소빙하기3. 재발 가능성 및 전망

1. 개요

소빙하기(, Little Ice Age)는 지구의 기온이 간빙기에 비해서 비교적 낮게 내려갈 때를 이르는 말이다. 평균 기온이 2~3도 정도 강하해서, 농업 생산력과 어류 움직임 등이 크게 변화하는 사태가 나타난다. 현재로서는 근대적 측량 기록이 남은 17세기 중후반에는 기온 저하가 극에 달했음이 확인되어, 1400년/1500년에서 1850년까지가 장기적인 '소빙하기'로 설정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지리학자나 기후학자가 아닌 한 기자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라고 하며 현재로서도 그 실체에 대해서는 논의 중이므로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

2. 역사적 소빙하기

파일:CO2 mixing ratios at Law Dome.png
남극 Law Dome에서 시추된 빙하 코어에 기록된 시대별 이산화 탄소 분포.
17세기에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현저히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 소빙하기의 원인은 아직 미상이다. 몇몇 학자들은 태양 활동의 후퇴를 지목한다. 17세기 후반에는 마운더 극소점(Maunder Minimum)으로 지목되는 흑점 활동이 가장 미약한 시기가 존재했는데, 이것이 태양 활동의 약화로 설명된다는 것. 또한 혜성이나 운석 등 지구 밖의 동향이 영향을 미쳤다거나[1], 화산 폭발 등의 또다른 자연재해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는 당시의 역사 기록뿐만 아니라 꽃가루 측정, 빙하 퇴적 측정, 나이테 측정 등을 통해 원인을 알아내려는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확하게 증명된 이론은 없다.

기자인 찰스 만은 베스트셀러 저서 '1493'에서 소빙하기는 태양 흑점 변화에 의해서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주된 원인은 유럽인 도래에 의한 아메리카 원주민 수 감소에 있다고 지적한다. 만이 인용한 2003년 버지니아대학교의 윌리엄 루더만(William F. Ruddiman)의 이론에 따르면 인디언의 전통적 벌목 방식은 인력에 의한 채벌이 아닌 불지르기였다. 북미 인디언들은 정착지와 농경지 확보를 위해 이스턴 와베나키, 와음퍼나그, 레너피, 호터노쇼우니, 포우하탄, 튜탤로와 이웃, 쿠알레, 티무쿠아 등 북미 동부(17세기부터 유럽인이 정착하여 포트 로열, 뉴암스테르담, 보스턴, 제임스타운 등으로 불린 지역들)와 플로리다 반도의 방대한 삼림 지대에 정기적으로 수개월 간 지속되는 불을 놓았는데, 유럽에서 들어온 수많은 전염병으로 인해 16-17세기에 걸쳐 인디언 수가 극적으로 감소하였고 이 삼림이 다시 늘어났다. 불이 나지 않으니 대기 중으로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감소하고 삼림이 늘어나니 이산화탄소 흡수는 늘어났다. 이로 인해 온실 가스가 줄어들어 소빙하기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원인이 어찌되었건 간에 17세기 소빙하기는 유럽의 농업 생산력을 쇠퇴시켜 마녀사냥, 17세기의 각종 반란(영국 청교도 혁명명예 혁명, 프랑스 프롱드의 난, 러시아 스텐카 라진의 난 등), 30년 전쟁 시기의 혼란 등 사회적으로 분란을 불러 온 간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17세기 위기론)[2] 1677년과 1683~1684년에는 영국 템스 강이 얼어 회화로 남기도 하였으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17세기 유명해진 것도 이 시기 소빙하기로 인해 목재 질이 촘촘해지고 음질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한 조선의 경신대기근 역시 이 소빙하기의 영향이라는 학설도 있다.

한편 미술사에도 이 소빙하기를 접목시키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해당기사 #1 #2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1400년 이후 유럽의 사실주의 풍경화 1만 2천점을 분석한 결과 소빙하기 이전엔 파란 하늘이 묘사된 그림이 65%였지만 소빙하기가 시작된 이후엔 흐리고 어두운 날씨가 70~80%를 차지했다고 한다.

사학계에도 소빙하기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명나라청나라교체를 소빙하기와 연결지으려는 시도가 있고,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사를 다루는 서울대학교 이태진 교수가 적극적으로 시도를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증보문헌비고』 등의 기록을 종합했을 때 이 시기의 자연재해가 잦았다는 것이 동아시아 측에서도 확인되기도 한다. 조선의 경우 1653년 6월에는 한 여름임에도 강원도에 서리가 끼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1655년 봄과, 1659년 봄에는 동해가 얼어 붙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이 시기 조선에 표류해 전라남도 나주, 여수를 돌며 떠돌이 생활을 당했던 헨드릭 하멜은 자신의 저서 하멜 표류기에 "(1662년) 우리가 산간에 있는 사찰에 갔을 때 어찌나 눈이 많이 왔던지 집과 나무가 다 파묻혀 사람들이 눈 속에 굴을 뚫고 이 집에서 저집으로 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의 거대한 재앙이었던 경신대기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본 에도 막부 역시 화산 활동과 저온 현상 등으로 인한 텐메이 대기근 등의 잦은 대기근에 시달린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도 소빙하기, 대홍수로 인한 몰락으로 인해 1795년에 분할되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마냥 부정적으로만 작용 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한반도의 남부와 서해안처럼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된 곳들은 소빙하기를 거치면서 바닷물이 얼어붙은 관계로 해수면이 낮아지고 새로 생긴 영토가 많다. 예를 들면 김해 평야 일부분이 그 시절에 생긴 땅이라고 한다.

이 외에 8세기 ~ 9세기 경과 13세기 후반 ~ 14세기 즈음에도 소빙하기가 존재했다는 설이 있다. 8세기 ~ 9세기 소빙기론은 바이킹의 남하, 마야 문명의 쇠퇴, 당나라신라 등지의 혼란 등을 설명하는 데 이용된다. 실제로 삼국사기를 보면 효공왕신덕왕 때 음력 3월 ~ 4월에 서리가 내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13세기 ~ 14세기 소빙하기론은 흑사병과 중세 말기의 이상 기온과 관련되어 나온 학설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로마 제국 후기부터 중세 시대의 기온이 상당히 높았던 것의 반작용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강수량과 무방하게 해가 흐린 때가 잦아 일조시간이 매우 적었다. 오히려 2013년 이후 일조시간이 매우 많아진 것과 대조된다.

3. 재발 가능성 및 전망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대에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소빙하기의 원인조차 모르는 지금 상황인데, 지구 온난화 등을 필두로 한 기온 상승은 이미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다. 초화산의 폭발 등 극단적인 현상으로 태양 에너지의 입사가 원천 차단되지 않는 한, 지구 전체에 걸쳐 통상적인 원인(태양 주기, 해류 변화 등)으로 소빙하기가 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1914년부터 시작된 태양 주기의 극대기(근현대 태양 극대기, modern solar maximum)가 2007년을 끝으로 종료되었고, 극소기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3]이다. 한편 2020년라니냐 현상과 흑점 극소기가 겹치고,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일부 가설(남극 토양 샘플의 소빙하기 500년 주기설) 등으로 초소빙하기(mini ice age)가 온다는 소문들이 오고갔으며, 한반도에 이상저온이 당해년도에 나타나 소문을 부풀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라니냐 및 흑점 주기 등은 주기적인 현상으로, 이것들만으로는 소빙하기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태양 극소기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NASA에서 그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일축하였다.
그 밖에 해류 변화 등의 요소에 대해서도 아직 전 지구적 영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학계에서 충분히 검증된 바가 없으며, 지구 전체의 에너지 총량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쪽에서 지구 온난화는 소빙하기 등으로 상쇄될 것이며, 태양 주기, 해류 변화 등에 의해서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들이 하나 같이 제대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로 심지어 반박된 것들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소빙하기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기상 현상보다는 과거의 기상 현상으로서 분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핼리 혜성이 나타난 것이나,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이 천문학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동향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뒷받침된다.[2] 원래도 당시 유럽엔 갖가지 반란과 전쟁이 많았지만, 유독 특히 소빙하기의 기세가 절정에 달한 17세기 중반기에 이르러 그 횟수가 많아졌다.[3] 다만 실제 관측치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인류가 태양 활동을 상세하게 기록한 이래 2008년부터 2019년까지의 24주기(cycle 24)는 실제로 약화된 것으로 분석되었으나, 2019년부터의 25주기는 예측치와는 다르게 비교적 태양활동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4] 대극소기(Grand solar minimum)으로 불리기도 한다.[5]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현대 과학자들이 지구의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의 99%이상이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농도 급증으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