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atan
현재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 연합으로, 제임스타운 정착민과 교류하였다.
‘포우하탄’이라는 이름은 대추장 ‘와훈수나콕’이 태어난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영국인들이 사용했던 포우하탄 추장의 공식적인 명칭은 이 위치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된다. 구체적인 고향 출생지는 알려지 있지 않지만, 현재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에 있는 포우하탄 언덕 근처가 원래의 마을이라고 생각된다. 동쪽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헨리코 카운티의 트리 힐 팜도 또한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라 여겨진다.
추장의 지위가 비교적 낮았던[1] 다른 원주민 사회와 달리 포우하탄족 추장은 대추장이라고 불리며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초기 유럽 정착민들은 포우하탄 대추장을 '왕'이라고 불렀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반, 와훈수나콕이라는 이름을 가진 추장이 테나코마카라는 동부 버지니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약 30개 부족을 정복하거나, 또는 협정을 맺어 강력한 연맹체를 구축했다. 이러한 연맹체제 덕분에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범으로 분쟁이 일어났고 영국인들과의 분쟁으로 상륙한 지 1주만에 부족원 하나가 사살당하는 일이 있었으나, 제임스타운 정착민들은 포우하탄족과 원만하게 생활하기를 원했고, 존 스미스가 포카혼타스의 도움으로 포우하탄 대추장을 만나 협상한 뒤에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1607년에 건설된 제임스타운의 이주민들은 담배농사 덕분에 성공적인 정착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담배농사는 급속히 토지를 황폐화시켰기 때문에 늘 새로운 땅을 필요로 했다. 결국 영국 이민자들은 인디언의 땅을 침범하게 되었고 양측간에 갈등이 심화되다가 결국 수차례 큰 충돌이 발생하고 말았다.제임스타운 정착민들이 포우하탄 영역을 계속 침범하면서 두 세력 간의 불화가 커졌고, 무력 충돌이 발생하였다. 결국 정착민들이 평화 협정을 깨고 포우하탄 족의 땅을 계속 무력으로 점령 확대한 결과로 1622년 3월 22일 포우하탄족의 무력 공격을 받은 제임스타운 학살(Jamestown Massacre)이 일어나게 된다.
이후 버지니아는 영국 직속령이 되었고, 포우하탄 족은 이에 큰 불만을 표했다. 결국 1644년 앵글로-포우하탄 전쟁에서 중재자였던 대추장 오페차나카노가 정착민들에게 살해되면서 포우하탄 연맹은 급속히 쇠퇴하게 된다.
[1]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추장은 부족 대표 공무원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