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D89E6E> 설원 薛原 | |
본명 | 설원 (薛原) |
가족 | 아들 보종 손녀 보량 |
배우 | 전노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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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선덕여왕》의 등장인물.2. 작중행적
7대 풍월주로 현대의 육군 참모총장 격인 병부령을 맡고 있으며,[1] 미실의 정부이다. 비록 많은 남자와 관계를 한 미실이지만 형식상으로나마 그녀의 정부라는 것은 미실이 그에게 보내고 있는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중 그 누구보다도 미실의 심중을 잘 알아준 인물이며 덕만과 미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뛰어난 지혜를 겸비하였다.진흥왕은 죽기 직전 설원에게 지나치게 세력이 팽창한 미실을 암살하라고 명령했으나, 이미 그 역시 미실에게 포섭당한 뒤였다.[2] 미실 정권에서는 미실의 든든한 오른팔로서 진지왕을 몰아내는 데도 활약하고, 병부의 수장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물심양면으로 미실을 돕는다. 다만 무예에 있어서는 문노나 칠숙과 같은 전설적인 화랑보다는 아래인 듯하며 갓 태어난 개양자 덕만이 소화에 의해 빼돌려질 때, 제대로 문노에게 낚이기도 했다.[3]
미실의 공식 남편 세종이 상당히 이해타산적이고 끊임없이 이익을 계산함에 비해서, 인품이 매우 곧아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하며, 그 능력도 뛰어나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미실에게 도움이 된다.[4]
병법가나 사령관으로서의 면모도 상당히 뛰어나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하종이 나대다가 1만의 군사를 데리고 출정했는데도 지고 오자, 미실이 편전에서 "역시 설원 공이 가셔야 합니다. 하종으로는 무리입니다."라고 딱 잘라 말할 정도로 신국 최고의 전략가의 위상을 지녔으며 한신과 공명에 비견된다는 평도 미생에게 듣는다.[5] 그렇게 출전한 전장에서 적 백제의 첩자를 역이용, 아막성을 공격하는 척 하면서 속함성을 공격해서 빼앗음과 동시에 육참골단을 내세우며 김서현과 용화향도를 거의 죽음으로 몰아넣어 견제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김서현 항목에도 나오지만 왕실 입장에서는 야속하긴 해도 설원의 방식은 신라라는 대국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어긋남이 없었다. 가장 적은 희생을 하면서도 큰 이득을 보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6]
그 외에도 병부의 수장이라는 지위를 매우 대담하고 유연하게 이용하는데, 가령 21화에서 쌍생을 화백회의에서 폭로하기 위해 왕실파가 보호하고 있는 덕만의 유모 소화를 손에 넣기 위해서 무려 왕도의 법을 담당하는 행정부로 직접 군을 이끌고 나아가기도 했다. 이때 젊은 용춘 공은 악에 받쳐 그를 향해 무엄하다 소리지르고, 을제 대등은 이 행위의 불합리함을 침착히 지적하나 그는 태연히 "여기서 쌍방이 피가 흐르는 상황이 된다면 그대로 내전으로 이어집니다. 감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며 행정부의 두 수장을 그대로 압도하는 포스를 보인다.
세종과 미실의 아들인 하종이 제대로 찌질한 반면에 이 사람과 미실과의 사이에서 나온 보종은 제대로 엄친아가 되었다.
다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덕만을 쫓는 과정을 총 지휘하다가 다 잡은 덕만을 놓치고, 엉뚱한 천명공주까지 사망하면서 다소 체면을 구긴 바 있다.[7] 덕만이 공주로서 궁에 돌아온 후 미실에 의해 자살한 서리의 자리마저 채우려는 듯, 더더욱 그녀의 오른팔로서 활약한다. 덕만의 온갖 정치적 공격에 미실의 입지가 좁아지고 힘들어할 때, 미실이 유일하게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보인 인물이며 또한 유일하게 그녀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인물이다.[8]
김춘추를 낚고자 자신의 손녀딸인 보량을 이용해 김춘추와 함께하도록 하나, 그것이 되려 김춘추에게 역이용돼서 세종과의 내분을 낳게 만든다. 결국 하종에게 납치당하나, 하종이 칼을 휘두르며 난리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미실을 믿고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해 끝내 이 내전을 종식시키는 대단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결국 미실의 군사 정변 때 시나리오 기획부터 실행까지 철두철미 하게 지휘함으로써 덕만파 주요 인물들을 곤란에 빠뜨리는 데 성공한다. 알천과 김유신을 고문할 때는 아예 대놓고 "쿠데타에 정의 따윈 없다."며 사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전이 될수록 불리해지는 정국에 진평왕에겐 급소 공격을 하고 살생부를 만들어 중소 귀족들 단속하기 등으로 전전긍긍하다, 결국 덕만의 반격으로 수세에 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기지를 발휘해 궁궐을 나가야 하는 미실파 군사들을 잔뜩 선동하여 정문에서 김서현의 방어군을 돌파하고 대야성으로 미실을 피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옆에서 하종은 찌질거리고, 세종은 전혀 도움이 안 되며 미생까지 포함해서 찌질 3세트가 일희일비하는 가운데, 끝까지 묵묵히 최선을 다해서 미실을 위해 대야성 방어에 철저히 매진하고 미실과 뜻을 같이 한다. 덕만의 물에 독 탄다는 전략도 루머라고 간단하게 간파한다.
그렇지만, 계속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고 변방의 지원군도 포기하고 항복 선언한 미실과 끝까지 함께한다. 미실이 최후까지 신뢰했던 정부이자 충신이었으며, 결국 미실이 죽을 때 사후 모든 것을 맡기기도 한다.[9] 그러면서 성에 백기를 들고 백의로 환복한 후, 항복 선언했다.
미실파의 주요 인물들이 개념을 상실한 가운데, 이 사람은 꿋꿋하고 강직한 개념 포스를 자랑해서 미실뿐만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이 좋아한다. 특히 여러 신에서 그가 보여준 미실에 일편단심인 모습은 미실이 최후를 맞이할 순간까지 함께할 것으로 보였으나 미실은 혼자 음독 자살했고 최후를 지켜본 건 비담이었다.
세종이 자진 낙향한 후, 현재 구 미실파 생존자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남아있는 중. 비담의 멱살을 쥐며 미실이 아들인 비담을 왕으로 만들라 명령했다며 울분을 토한다.
세월이 흐른 후, 미중년에서 이젠 백발의 미노년이 되어 사량부에서 일하고 있다. 비록 수장을 모시는 최측근 자리는 염종에게 내줬으나 그럼에도 복야회에 대한 비담의 계책을 알아채고 상황을 지켜보는 비담파의 브레인 자리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찌 됐건 미실의 유언에 따라 비담을 밀어주고 있긴 하다. 사실상 비담의 아버지 역할을 도맡아 하는 셈. 그런데, 미실이 자주 들렸던 누각에 있을 때 여왕은 비담을 밀어주지 말라는 경고성 발언을 한다. 그러나 김유신이 적지에서 잡혀 선덕여왕이 심란한 가운데 찾아와서 폐하야말로 비담을 부추기고 있고 폐하가 비담을 위한다면 충신이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냐고 반박한다.
김유신의 첩보대로 대야성이 백제군에게 함락당하고, 궁지에 몰리게 되자 자신이 노장으로서 김유신 산하 군대를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허나, 선덕여왕에게 자신이 이기면 병부권은 물론 비담과 결혼하라고 요구한다.[10][11] 이후 미실의 사당에서 눈물 흘리며 "제가 비담을 키우겠습니다, 새주.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등 제대로 사망 플래그를 시연하더니, 결국 패주해서 돌아와 앓다가 비담에게 "사람을 목표로 하지 말고 큰 뜻을 품으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전사로 멋있게 죽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사망 플래그가 강렬했기에 너무나 안타까웠다는 사람이 많았다.
설원의 퇴장은 비담이 몰락하는 시발점이었다. 침착하고 강직한 설원이 살아있었다면 비담과 비담파 귀족들의 사이를 원만하게 조율했을 것이고, 비담이 염종의 계략에 그렇게 허망하게 놀아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설원이 사망함으로써 비담의 주변에는 더 이상 비담을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은 없고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기기 급급한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실제로 비담파 귀족들이 멋대로 날뛰기 시작한 것도, 비담파랑 덕만 사이에 갈등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도 설원의 최후부터다. 그나마 삼촌인 미생이 이 역할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이 사람 역시 사욕을 버리지 않고 조카를 이용해 먹는 입장이었다. 안타까울 따름.[12] 게다가 덕만과 비담파 귀족들이 틀어지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설원이 살아있을 때는 기타 미실파 인물들도 어찌되었든 선덕여왕에게 충성하는 것을 베이스로 행동했으나[13] 설원이 죽은 뒤에는 전원 선덕여왕의 폐위를 목표로 하는 역적들로 변한다.
하지만 미실 측 핵심 인물들은 모두 정치 판에서 밀려나 조용히 사라지거나,[14] 칠숙, 비담의 난[15]에 가담하여 반역자로 죽은 반면에, 설원은 그래도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인물이니[16] 이들 중 유일하게 충신으로써 명예롭게 간 인물이라 할 수 있다.[17]
3. 여담
- 이렇게 진중한 행적을 보여주는 현재 작 중 행적과는 다르게, 42화에서 미실이 말하길 어린 시절에는 틈만 나면 화랑들을 꼬여내 청유나 다니는 예인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진흥왕은 '구름 위의 사람'이라 운상인이라는 별칭도 지어줬다고.
- 6화에서 고현정의 발을 씻어주던 부분이 연출되었는데 이를 보고 아내인 김보연이 약간 질투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애틋한 연기를 볼 수 있었다.
- 주인공인 덕만과는 작중에서 직속 상관으로써도, 적으로써도, 신하로써도 일한 적 있고 전쟁에서 싸워본 적도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초반 속함성 탈환전에서는 당시 낭도였던 덕만이 참전한 신라군의 총사령관이었고 미실의 난 때는 미실군의 중진과 왕실파의 수장으로써 적으로 싸웠으며 설원의 최후였던 계백과의 전투에서는 설원이 선덕여왕의 신하로 나가서 싸웠다. 그리고 작중 최초로 덕만에게 대면해서 공주 예우를 해준 사람이다.[18]
- 생각해 보면 진흥왕의 수하로 발탁되어 진지왕, 진평왕, 선덕여왕까지 4대에 걸친 왕을 모신 신하이다. 증조부에게 발탁되어 증손녀의 치세까지 중신으로 복무한 셈이다. 이것을 달성한 인물, 즉 진흥왕에게 발탁되어 선덕여왕 시대까지 종사한 인물은 작중에서 설원과 처남인 미생이 유이하다.
- 진흥왕은 통찰력이 미실과 비견될 정도로 발군의 인물이라는 설정인데, 그 진흥왕이 유일하게 통찰해 내지 못한 것이 바로 미실과 설원의 주종관계이다. 미실과 설원이 얼마나 이것을 잘 숨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이것 하나를 통찰하는데 실패하여 신라의 모든 권력을 미실 손에 넘겨주는, 진흥왕 입장에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일이 일어나고 만다.
- 은근 넘어가는 부분인데, 원래 인물 설원은 성씨가 '설(薛)'이고 이름이 '원(原)'이다. 즉, 경주 6촌의 하나인 경주 설씨 가문 인물. 그런데도 보통 2인칭 내지 3인칭으로 지칭될 때는 성 빼고 이름만으로 불리는 작중 인물들[19]과는 달리 쭉 풀네임으로만 불린다. '설원공' 대신 '원공'이라고만 부르면 어색해서 그런가.
- 왕가인 경주 김씨 출신이 아니지만 작중 묘사로 보면 설정 상 설원도 진골임은 확실해 보인다.[20] 진골 이상만 할 수 있는 대등 직위에 있는 것도 그렇고, 작중 김유신의 말에서 진흥왕이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로 인재를 고용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예시로 "미실은 여자고, 문노는 골이 없었고,[21] 설원 역시 한미한 가문 출신이다."라고 하는 대사에서 알수있다. 이 대사는 설원이 한미한 가문 출신이기는 하나 진골임을 시사하는데, 만약 설원마저 골이 없었다면 김유신은 "문노랑 설원은 골이 없었다"라고 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설원은 출신 가문은 한미했으나 진골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적합하다. 작중 석품처럼 확정적으로 가문이 미천하기는 하나 진골이 맞는[22] 인물도 있으니 비슷한 경우라고 보면 될 듯하다.
[1] 병부령=국방부장관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실제 신라의 병부령은 육군을 지휘하던 직책이었고, 해군을 지휘하던 직책으로 선부령이 따로 있었는데 선부령은 작중에서 나온 적이 없다.[2] 후에 미실이 내가 만약 정적들을 모두 죽이기만 했다면.. 지금 설원 공도 이 자리에 없겠지요.라고 발언했던 것을 보면 처음에는 미실과 대적했었던 걸로 보인다.[3] 다만 이건 설원이 약한 게 아니라 이 두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거다. 문노의 제자 비담만 해도 병사 십 수명을 때려잡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비담이 유신과 함께 간신히 칠숙을 죽였다. 이 때 몇 번이나 그들의 칼에 베이고 찔려서 죽은지라 시청자들에게 칠숙네이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칠숙보다 강한 것이 문노이다.[4] 다만 '무조건적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게 '매번 지는 내기에도 이길 기회가 한 번은 온다. 난 미실에게 걸었다.'라고 아들 보종에게 말한 것처럼 다른 인물들보다 덜할 뿐 계산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미실도 '내게 온전히 주기만 한 것은 사다함 공 뿐'이라고 상천관 서리에게 말한 바 있다.[5] 나중에 스스로가 평가하길 백제의 윤충도 명성에서 자기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충이 신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굉장한 명장이었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비교위의다.[6] 물론 이러면서도 본인이 김서현을 이용해서 공을 날로먹었다는 것도 어느정도 인지했다. 보종과의 대화에서 더 중요한건 생존이지 공을 세우는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을 보아 본인은 확실히 인식한듯. 더욱이 김서현이 전멸했으면 설원의 공으로 몽땅 돌아가는 것이기에 쉽게 공을 세우면서도 피해는 별로 없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7] 다만 설원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가혹한 것이 덕만을 놓친 건 비담이라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돌발 변수가 나왔고, 천명공주의 일은 대남보의 삽질이다. 미실은 덕만을 생포하라고 했으나 미생과 서리는 덕만을 죽이려 했는데 천명이 대남보의 독화살을 맞고 덕만 대신 죽어버린 것이다.[8] 미실이 혈통의 부재를 한스러워하자,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그녀를 위로한다.[9] 이 때 미실이 설원에게 유언을 주다가 손을 뺀 뒤 "설원 공께는... 미안합니다."라며 울먹인다. 대놓고 설원에 대한 마음을 보여준 미실의 얼마 안 되는 감정 표현.[10] 물론 요구만 한 것은 아니고 선덕여왕의 삼한일통이라는 꿈에 자기도 일조하고 싶다는 발언도 했다. 작중 내내 미실의 수족으로 덕만의 적이었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는 덕만의 충신으로 죽은 게 참 아이러니하다.[11]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설원은 덕만과 그 일파들과 정적이어서 대적하는 모습이 보였을 뿐 인품은 곧은 사람임이 드러났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도 항상 있었고 또한 패전하고 돌아와서 옥에 갇혀있는 유신에게 백제군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려주고 세상을 떠난 장면을 보면 인품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12] 그나마 아들이자 설원의 인품을 닮아 젊은 시절에는 대인배 포스를 보여줬던 보종이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었으나 보종은 설원이 사망한 이후 완전히 캐붕이되어 염종과 하종과 붙어다니며 온갖 나쁜 일들을 하고 다녔다. 생전에 보종에게 염종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지만 듣지 않으며 보종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로 변해버렸다.[13] 유신, 춘추 등 친왕 파벌들과 경쟁을 한 것은 사실이나 어찌되었든 선덕여왕의 신하라는 전제에 이루어진 일이다.[14] 세종, 대남보 등.[15] 전자는 미실, 칠숙, 석품, 후자는 미생, 보종, 하종.[16] 엄밀히 말하면 전상의 후유증으로 사망.[17] 아들인 보종은 최후가 아예 삭제되었다. 명활산성이 함락된 후 아직 보종을 체포하지 못했다는 언급을 마지막으로 작중에서 존재가 사라진다. 물론 죽었을 확률이 99.99%이다.[18] 다만 대면해서가 아닌 호칭으로 덕만을 공주로 예우해준건 설원이 아니라 다름아닌 미실이 최초이다.[19] 공홈에는 풀네임으로 소개되는 김유신과 김춘추도 이 상황에서는 유신, 춘추로 불린다.[20] 모계 쪽으로 진골이였을 확률이 높다.[21] 그도 그럴것이 문노는 가야 출신이니 골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물론 김유신 가문 같은 경우는 진골로 편입됐지만 그건 그들이 금관국 왕가였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가능했던 거고.[22] 초반에 스스로 "진골 화랑"이라고 말했으며 후반에 스스로를 미천하다고 칭하고 새주께서 자기의 식솔들을 먹여살려 주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