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음탕하고 난잡스러움"의 줄임말.[3] 음란이란 비정형 개념이니 객관적인 기준은 없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르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서 '남자 성기를 여자 성기에 삽입하는 것(성관계)'으로도 규정할 수 있고, '여성의 톱리스 차림', 남성 유두 노출, 더 보수적인 경우 '스타킹이 살짝 보인 것'도 음란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는 그로테스크, 폭력성 및 잔인함이 묻어나는 것들을 포함한다. 고어물 등.
2. 특징
이런 개념은 사실 굉장히 추상적, 주관적이라 한국의 형법은 성풍속에 관한 죄를 규정하고 이 중 공연음란죄와 음란물죄에서 음란이라는 개념에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를 거친 정의가 필요하다. 몇몇 판례에서 법원은 음란성이란 과도하고도 노골적인 방법으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참으로 정의했으며 법관의 해석으로부터 음란한 것과 그렇지 아니한 것을 구별할 수 있다 하여, "음란"이란 표현은 명확성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본다. 음란물은 불건전하거나 음란한 매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런 관념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모호하여 지금도 많은 비판에 시달리는 편이다.3. 종교
3.1. 기독교
"간음하지 마라."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오른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또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또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면 그에게 이혼장을 써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5:27~32(공동번역성서)
마태오 복음서 5:27~32(공동번역성서)
주류 기독교가 보이는 보수적인 성관념은 당시 로마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일대 아람어권 지역의 시민들의 성관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한데 이 지역은 로마 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록에서도 이런 문화적 차이가 언급되는데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아나톨리아의 리디아 왕국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시아인들은 당시 그리스인이나 이집트인 및 그리스 서쪽이나 북쪽의 다른 민족들과 다르게 나체 노출을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유대교가 생겨나기 전인 신아시리아 제국에서도 전 여성들에게 베일을 씌우던 문화와도 어느 정도 연계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독교 이전 시절 고대 이집트는 벽화를 보면 알 테고 그리스와 로마, 켈트 문화권 모두 남성은 나체 노출의 기준이 오늘날보다 훨씬 더 관대한 수준이었으며 중세 초만 해도 습한 유럽 기후와 당시 목조 건축 가옥의 한계 때문에 집 안에서는 남녀노소 다 옷을 벗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스티브 테일러의 <자아 폭발>이라는 책에서는 6000년 전에 사하라시아의 급격한 사막화로 인한 환경 변화로 거주민들이 육체를 부정하게 여기고 혐오하게 되면서부터 성적 엄숙주의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3.2. 이슬람
부정한 여성은 부정한 남성을 위해서 부정한 남성은 부정한 여성을 위해서 있고, 정숙한 여성은 정숙한 남성을 위해서 정숙한 남성은 정숙한 여성을 위해서 있으니, 이들은 소문과 무관하다. 이들에게는 용서 그리고 내세의 은총이 주어지리라
쿠란 24:26
쿠란 24:26
3.3. 불교
불교에서는 재가자(평신도)의 사생활 문제 관련해서는 특별히 엄격한 기준을 두지는 않지만[5] 대신 출가자는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 수행에 방해받지 않도록 여러 가지 엄격한 계율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석가모니가 여성의 출가를 용인하지 않다가 친지들과 제자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비구니의 출가를 어쩔 수 없이 용인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불교에서는 직접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계율에 명시하는 것 이외에도 간접적으로 출가자들이 성욕을 통제할 만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상좌부 불교 경전에서는 인간의 신체의 불결함 및 사망 이후 인간 시체의 부패를 경전에서 자세하게 강조하는 편이며[6] 동아시아 대승 불교계에서는 성욕을 촉진할 수 있는 식재료(오신채와 육류 등등)를 먹는 것을 계율상 금지한 것을 들 수 있다.
4. 예술과 외설
흔히 성 윤리에서 '예술과 외설'이라고 하여 예술 ≠ 외설이며, 예술성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인식과 달리 둘은 전혀 별개의 요소로, 예술적인 작품이라고 하여 선정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법원 판결문 98도679에 따르면 어떤 작품의 문학적·예술적 가치에 따라 그 음란성이 희석되어 결국은 형법이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일본의 춘화처럼 지나간 시대의 음란물 역시 예술성이 있다면 논의를 거친 뒤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같은 맥락에서 똑같은 작품이라도 전체를 보면 예술이 되고 중요 부분만 보면 외설이 된다는 말이 90년대 중후반에 잠시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5. 여담
- 음란보다 강도가 높고 급이 비교적 낮은 표현으로 '음탕'이라는 말이 있다.
- 선정적이고 저급한 농담을 화장실 유머로 부른다.
- 음란한 것을 잘 떠올리는 사람을 음란마귀가 씌었다고 한다.
[1] 사람의 성욕을 함부로 자극하여 난잡시킴. 참고로 일본 형법에서는 '음란'의 의미뿐만 아니라 '추행'의 의미로도 쓰인다.[2] 성욕을 자극하여 일으킴. 보통 '선정적', '선정성'의 형태로 쓰인다.[3] '어둡고 난잡스러움', 즉 陰亂이 아니다. 어두움을 뜻하는 '음' 자는 그늘 음(陰) 자이다.[4] 여기서 간음이란 것은 부적절한 성관계, 강간, 자기 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을 탐내는 것 등을 의미한다. 당연히 부부간의 정상적인 성관계가 아니다.[5] 그저 탐진치의 일종이라고 가르치는 정도의 수준이다. 수다원과를 얻은 사람이라면 성욕이 어쩔 수 없이 아직은 남아있다고 보며 아나함과를 얻어서야 성욕이 사라진다고 여긴다. 따라서 아나함과를 얻은 사람부터는 가족을 이룰 수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출가할 운명이라고 본다.[6] 특히 신체가 지닌 점액성과, 부패로 인해 생기는 역겨운 기체가 주는 혐오감을 강조한다. 에드워드 콘제를 위시한 서구의 불교학자들은 자타카 등에서 미녀의 시체가 혐오스럽게 부패하는 이야기 등을 싣은 것이 승려들의 성욕 절제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