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삼종의 혈맥(三宗의 血脈)은 조선시대 효종, 현종, 숙종 세 임금의 혈통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경종 연간 최초로 등장한 조선 왕실의 정통성에 관련된 표현이다.2. 배경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경종 (景宗) | <colbgcolor=#fff3e4,#331c00> 숙종 (肅宗) | <colbgcolor=#ffffe4,#323300> 현종 (顯宗) | |
효종 (孝宗) | |||
인선왕후 (仁宣王后) | |||
명성왕후 (明聖王后) | |||
청풍부원군 김우명 (淸風府院君 金佑明) | |||
덕은부부인 은진 송씨 (德恩府夫人 恩津 宋氏) | |||
옥산부대빈 장씨 (玉山府大嬪 張氏) | |||
장형 ( | |||
증 우의정 장응인 (贈 右議政 張應仁) | |||
증 정경부인 남포 박씨 (贈 貞敬夫人 藍浦 朴氏) | |||
파평 윤씨 ( | |||
증 판서 윤성립 (贈 判書 尹誠立) | |||
증 정부인 밀양변씨 (贈 貞夫人 密陽 卞氏) |
이어 예조 당상관을 불러 거행할 것을 청하고, 여러 신하들은 물러갔다.
임금은 평소에 병이 많아 계사(繼嗣)를 두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국세(國勢)는 위태하기가 철류(綴旒)[1]와 같았다.
삼종(三宗)의 혈맥으로는 다만 주상과 아우 한 분이 있으니 천명(天命)과 인심의 스스로 귀착(歸着)되는 바가 저군(儲君)[2]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이제 종사(宗社)의 대계(大計)가 이미 정해졌으니 명명(明命)이 한 번 내려지자 온 나라 사람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경종실록 4권 경종1년 8월 20일
임금은 평소에 병이 많아 계사(繼嗣)를 두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국세(國勢)는 위태하기가 철류(綴旒)[1]와 같았다.
삼종(三宗)의 혈맥으로는 다만 주상과 아우 한 분이 있으니 천명(天命)과 인심의 스스로 귀착(歸着)되는 바가 저군(儲君)[2]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이제 종사(宗社)의 대계(大計)가 이미 정해졌으니 명명(明命)이 한 번 내려지자 온 나라 사람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경종실록 4권 경종1년 8월 20일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의 사후 경선군 이석견 등 소현세자 소생이 아닌 효종 계통이 왕위를 계승, 효종·현종·숙종 세 임금의 직계 후손이 왕통을 쥐었다. 경종 연간 왕대비였던 인원왕후는 노론 4대신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의 압력으로 즉위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왕의 후계 구도를 연잉군으로 확정하게 되고, 그 논거로 활용된 것이 이른바 삼종의 혈맥론이다.
영조의 즉위 후 삼종의 혈맥은 왕조의 존립 근거로 기능하게 되었고 정조 연간 화완옹주 등을 두고 삼종의 혈맥을 흔들었다는 둥의 기록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효종 직계는 철종 연간에 실질적으로 단절되게 되고[3] 인조의 3남 인평대군(대궁) 계통으로 넘어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