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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영국 해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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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함 | <colbgcolor=#fefefe,#191919>24형, 브리지워터급, 헤이스팅스급, 밴프급, 쇼어햄급, 그림스비급, 킹피셔급, 비턴급, 이그렛급, 블랙 스완급, 플라워급, 캐슬급 | |||
호위함 | 리버급, 캡틴급, 콜로니급, 로크급, 베이급 | |||
구축함 | R급, S급, V급, W급, 셰익스피어급, 엠버스케이드급, 아마존급, A급, B급, C급, D급, E급, F급, G급, H급, I급, 트라이벌급, J급, K급, N급, 헌트급, L급, M급, O급, P급, Q급, R급, S급, T급, U급, V급, W급, Z급, C급, 배틀급, 웨폰급A, | |||
잠수함 | H급, L급, U급, V급, X급, X1, P611급, S급, T급, 그램퍼스급, 암피온급, 리버급, 레인보우급, 파르티안급, 오딘급 | |||
모니터함 | 로버츠급,에레버스급 | |||
경순양함 | C급(칼레돈급, 세레스급, 칼라일급), D급, E급, 리앤더급, 엠피온급, 아레투사급(1934), 타운급(사우스햄튼급, 글로스터급, 에든버러급), 다이도급, 크라운 콜로니급, 미노토어급(스윕트셔급), | |||
중순양함 | 호킨스급, 카운티급(켄트급, 런던급, 노포크급), 요크급, 엑서터급, | |||
순양전함 | 리나운급, 어드미럴급, | |||
전함 | 아이언 듀크급, 퀸 엘리자베스급, 리벤지급, | |||
호위항공모함 | 오더시티, 액티비티, 나이라너급, 아처, 어벤저급, 어태커급, 룰러급(보그급 호위항공모함), 프레토리아 캐슬 | |||
경항공모함 | 유니콘급, 1942년 설계 경량 함대 항공모함, 센토어급A | |||
정규항공모함 | 아거스급, 허미즈급, 이글급, 커레이저스급, 아크로열급, 일러스트리어스급, 임플래커블급, 오데이셔스급A, | |||
기타 | 페어마일 어뢰정, 알제린급 소해함, 캐서린급 소해함, 소드피시, 인섹트급 연안포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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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기의 호주 해군 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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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순양함 | 카운티급 | |||
경순양함 | 리앤더급, 타운급 | |||
구축함 | 트라이벌급, N급, 끼베홍, 퀵매치, V급, W급 | |||
호위구축함 | 스콧급 | |||
호위함 | 리버급 | |||
초계함 | 야라급, 배서스트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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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템스 강에서 박물관함으로 정박중인 HMS 벨파스트(Belfast) 함. 유일하게 남아있는 타운급 경순양함이다.
1. 개요
타운급 경순양함(Town-Class Light Cruiser)[1]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영국 해군이 운용한 경순양함 함급 중 하나. 하위 함급으로 3개의 함급이 존재한다.2. 설명
Naval Legends: HMS Belfast |
1922년의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로 인해 항공모함과 배수량 1만톤 이상의 선박(주력함)의 보유에 제한이 가해졌다. 그리고 기준 배수량 1만톤 이하의 선박의 경우, 함포는 8인치(203mm) 이하로 제한이 가해졌다. 이후, 1930년의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순양함의 총 톤수에 제한이 가해졌으며 영국의 중(重)순양함 보유는 15척으로 제한되었다.
타운급의 하위급인 사우스햄튼급은 이러한 조약에 맞춰 건조되었다. 주무장은 3연장 6인치(152mm) 함포 4기, 총 12문을 배치하였다. 해당 함포는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분당 8발의 발사속도와 2만 5천 야드(23.317km)의 사거리를 지녔으며 탄의 무게는 112파운드(50.8kg) 정도이다. 원래는 일본의 모가미급이나 미국의 브루클린급에 대응하기 위해 함포를 15문으로 배치하려고 하였지만, 1만톤 이내로 건조해야 한다는 조약 내용을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이후 에딘버러급을 건조할 시 6인치 주포를 4연장 포탑으로 4기를 올리는 방법을 고려하였으나 4연장포탑을 제조하기도 어렵고 포탑 내부의 공간이 너무 좁아져서 승무원들이 임무를 수행하기에도 버겁다는 결론이 나와서 취소한다.
대공무장의 경우, 4인치 양용포는 방공과 단거리 목표 사격을 목적으로 배치되었는데 분당 20발의 발사속도를 보였다. 4인치 양용포는 연장포탑 4기(2x4)가 설치되었다. 이외에도 2연장 폼폼 포 4기와 0.5인치 2연장 기관총을 4기 정도 배치하였는데 폼폼 포의 경우, 분당 115발의 발사속도를 보였으며 최대 사거리는 1100m 정도를 보였다. 이후 에딘버러급에서 4인치 양용포가 6기(2x6)로 늘어나고 2파운드 폼폼 포탑이 8연장 2기로 증가(2x8)하여 대공화력이 증가했다. 추가로 6인치 함포로 상대하기 힘든 주력함과의 교전을 대비하여 어뢰발사관이 장착되었다.
선측의 114mm 장갑은 선박의 기계실과 대공화기 탄약고, 전투통제센터(Combat Control Centre)를 방호하였다. 해당 장갑은 보일러실과 선수쪽 기관실이 위치한 상갑판과 이어졌으며, 마찬가지로 엔진룸과 전투통제센터, 탄약고가 위치한 주갑판 부분과 이어졌다. 장갑갑판은 A바벳(1번 포탑 바벳)에서부터 조타실까지 방호하였고, 그 두께는 32mm 정도였다. (조타실의 경우, 추가적으로 38mm의 경사장갑이 장착됨) 탄약고는 114mm 두께의 격벽에 의해 보호되었다.
순양함의 함재기는 정찰 기능을 제공하였는데 함재기로는 슈퍼마린 월루스를 탑재하였다. 해당 항공기는 복엽날개와 엔진 1개를 장착한 수륙양용기로 승무원은 4명이 탑승하였고 최고속력은 시속 135마일(217km/h)로, 무장으로는 항공기 앞쪽에 0.303인치(7.7mm) 기관총 1정, 후방에는 1정 또는 2정의 0.303인치 기관총을 장착하였고, 600파운드(272kg) 폭탄이나 폭뢰로 무장하였다. 함재기는 순양함의 캐터필트를 통해 이륙하였고 회수는 수면위로 착륙한 함재기를 크레인으로 끌어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3. 제원
항목 | 사우스햄튼급 | 글로스터급 | 에든버러급 | |
제원 | 전장 | 180.29 m | 180.28 m | 186.99 m |
선폭 | 18.97 m | 19.74 m | 19.74 m | |
흘수 (만재) | 5.18 m (6.1 m) | 5.33 m (6.25 m) | 5.49 m (6.86 m) | |
배수량 (만재) | 9,100톤 (11,200 톤) | 9,400 톤 (11,650 톤) | 10,565 톤 (12,980 톤) | |
동력 기관 | Admiralty 3-드럼 보일러 4기 4축 파슨스 증기 터빈 | |||
출력량 | 75,000 마력 | 82,500 마력 | 80,000 마력 | |
속력 (만재) | 32 노트 (30.5 노트) | 32 노트 (31 노트) | ||
항속거리 | 12 노트에서 12,100 해리 | 12 노트에서 12,200 해리 | ||
승조원 | 750~930명 | 800~980명 | 781~950명 | |
무장 | 주무장 | 6 인치 Mk.23 3연장 포탑 4기 | ||
부무장 | 2연장 4인치 QF Mk.16 고각포 4기 | 2연장 4 인치 QF Mk.16 고각포 6기 | ||
QF 3 파운더 호치키스 Mk.1 4기 | ||||
4연장 2 파운더 폼폼 포 2기 | ||||
4연장 0.5 인치 기관총 2기 | ||||
어뢰 | 3연장 21 인치 어뢰발사관 2기 | |||
함재기 | 슈퍼마린 월러스 2기 | |||
장갑 | 측면 | 4.5 인치 (114 mm) | ||
격벽 | 2.5 인치 (64 mm) | |||
탄약고 | 1~4.5 인치 (25~114 mm) | 3~4.5 인치 (76~114 mm) | ||
바벳 | 1~2 인치 (25~51 mm) | |||
갑판 | 1.25~1.5 인치 (32~38 mm) | 1.5~3 인치 (38~76 mm) | ||
포탑 | 1~2 인치 (25~51 mm) | 2~4 인치 (51~102 mm) |
4. 건조된 함선 (사우스햄튼급)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사우스햄튼 (HMS Southampton) | 1934년 11월 21일 | 1936년 3월 10일 | 1937년 3월 6일 | 1941년 1월 11일, 이탈리아 공군 슈투카의 공습으로 격침 |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뉴캐슬 (HMS Newcastle) | 1934년 10월 4일 | 1936년 1월 23일 | 1937년 5월 5일 | 1959년 8월, 스크랩 처리 |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셰필드 (HMS Sheffield) | 1935년 1월 31일 | 1936년 7월 23일 | 1937년 8월 25일 | 1967년 9월, 스크랩 처리 |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글래스고 (HMS Glasgow) | 1935년 4월 16일 | 1936년 6월 20일 | 1937년 9월 9일 | 1958년 7월, 스크랩 처리 |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버밍엄 (HMS Birmingham) | 1935년 7월 1일 | 1936년 9월 1일 | 1937년 11월 18일 | 1960년 9월, 스크랩 처리 |
5. 건조된 함선 (글로스터급)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글로스터 (HMS Gloucester) | 1936년 9월 22일 | 1937년 10월 19일 | 1939년 1월 31일 | 1941년 5월 22일, 독일 공군 슈투카의 공습으로 격침 |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맨체스터 (HMS Manchester) | 1936년 3월 28일 | 1937년 4월 4일 | 1938년 8월 4일 | 1942년 8월, 자침[2] |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리버풀 (HMS Liverpool) | 1936년 2월 17일 | 1937년 3월 24일 | 1938년 11월 2일 | 1958년 7월, 스크랩 처리 |
6. 건조된 함선 (에든버러급)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에든버러 (HMS Edinburgh) | 1936년 12월 30일 | 1938년 3월 31일 | 1939년 7월 6일 | 1942년 7월 6일, 격침[3] |
건조 시작일 | 진수일 | 취역일 | 최후 | |
HMS 벨파스트 (HMS Belfast) | 1936년 12일 10일 | 1938년 3월 17일 | 1939년 8월 3일 | 1971년 10월 21일 퇴역 [4] |
7. 함생
7.1. 사우스햄튼급
- 1번함 HMS 사우스햄튼 (HMS Southampton)
1번함 사우스 햄튼은 취역후 메인함대의 기함이되었고 제2 쿠르즈 비행함대의 기함역할도 했었다. 39년 9월 5일 독일의 상선을 나포하는등 초기에 활약을 펼쳤다. 39년 10월 16일 사우스햄튼은 독일의 공습으로 150m 높이에서 500kg 폭탄이 3개의 수평장갑을 차례대로 관통했고 물속에서 폭발했다. 이로 전기계통에 경미한피해가 발생했고 구조적인 손상이 발생했다. 연말 순양함 라왈핀디가 침몰돼 노스캐이프 해전에 참여 그후 40년 2월까지 스카파 플로우의 제 18 크루저 함대에 소속되었다. 40년 4월 9일 사우스햄튼은 독일의 공습의 의한 파편피해로 함내 배터리가 파손되었고 10월에 지중해에서 침공방지를 위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12월에 사우스햄튼은 홍해로 이동하여 부대호송을 호위 동아프리카 키스마유 포격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사우스햄튼은 루프트바페의 급강하 폭격기 슈튜카의 공격으로 적어도 2개의 폭탄이 명중 함내 화재가 번지면서 사우스햄튼은 글로스터에 어뢰 1발과 순양함 오리온의 어뢰 4발로 격침되었다.
- 2번함 HMS 뉴캐슬 (HMS Newcastle)
뉴캐슬은 대전 초기에 독일 구축함 2대를 대파시키는등의 활약을 올렸고 1939년 11월 23일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와 조우했지만 악천후를 틈타 도망쳤다. 40년 11월 27일 이탈리아를 상대로 남대서양을 봉쇄하기위에 활동했으며 이후 지중해에 재배치 되었다. 41년 6월 15일 독일의 잠수함의 공격으로 배에 커다란 구멍이 발생했으며 알렉산드리아에서 긴급수리를 받고 이후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이부분에 대해서 수리받는다. 뉴욕에서 주둔중 실론의 동부연함함대에 합류했으며 제 4부대의 기함을 하였으며 일본군의 점령지등을 포격했다. 전쟁후 광범위한 대규모 개장을 받았으며 1950년대 말레이시아 비상사태 기간동안 말레이시아의 공산주의 시설등을 포격했다. 뉴캐슬은 1959년 매각스크랩 되었다.
- 3번함 HMS 셰필드 (HMS Sheffield)
셰필드는 기존에 설계와 다른것이라면 승조원의 청소를 줄이기 위한 설계가 반영되었고 1938년 영국왕실함대 소속중 최초로 프로토타입의 레이더를 장비했다. 셰필드는 제노아포격작전에 참여하였고 비시프랑스의 함대를 방어하기 위해 몰타에 배치되었다.또한 비스마르크 추격전당시 셰필드는 비스마르크를 추격도중 아크로열이 오판을 저지르며 아군 셰필드에게 뇌격을 시도하게 되지만 어뢰 대부분이 빚나가거나 수면마찰로 폭발함으로 피해를 면한다. 또한 유조선인 프리드리히 브렘을 격침시켰으며 독일의 보급선 코타페낭을 격침후에 본국으로 귀환한다.
42년 3월 3일에 기뢰와 접촉해서 손상을 입고, 42년 7월까지 손상을 수리했다. 이후 횃불 작전에서 연함군의 상륙에 도움을 준다. 바렌츠해 전투에서 셰필드는 구축함 프리드리히 에커트를 격침 어드미럴 히퍼를 중파 구축한대를 대파시키는등의 성과를 올렸다. 43년 2월 비스케이 만에 배치되었고 7월과 8월에 눈사태작전에 동원되었다. 12월 말 노스케이프 해전에서 샤른호르스트를 격침하는데 참여한다. 1944년 4월부터 8월까지는 티르피츠에 대한 공습을 진행하는 항공모함의 호위로 복무했다. 이후 보스턴과 영국에서 개장을 진행하면서 2차 대전에서는 더 이상의 활약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 전함 3척을 격침시키는 일련의 과정에 전부 참여한 순양함이 되면서 함선의 지위가 전함들 턱밑까지 치솟았고, 1946년 5월에 개장을 마치고 나서는 서인도 제도 버뮤다에 주둔하는 영국 해군 함대의 기함이 된다.
1959년 1월에 예비역으로 돌려지지만, 1960년에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서 1964년까지 숙박선(accommodation ship)으로 복무한다. 셰필드는 원래 함선의 전과와 타운급 경순양함의 원래 구조를 대부분 간직하고 있는 역사성이 인정받아서 기념함이 될 예정이었지만 1966년에 재검사한 결과 현역 복귀 이후의 관리부실이 너무 심각했던 탓에 1967년 기념함으로 남지못하고 스크랩되었다. 셰필드에 달려있었던 종은 이후 셰필드 대성당에 전시되었다.
- 4번함 HMS 글래스고 (HMS Glasgow)
전쟁전 글래스고는 제2 순양 함대에 편성되었으며 전쟁이 발발한 그해에 영국 주력함대에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39년 9월 2일 글래스고는 험버포스와 함깨 독일의 상선파괴 및 함대 격파를 위해 노르웨이 해안에 순찰배치 되었고 39년 10월 9일 독일의 공군에게 색적 폭격기들이 120개의 폭탄을 투하했으나 모두 회피했으며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는다. 전쟁이 발발하자 글래스고는 스칸디나비아 해역에 배치되었고 40년 2월 12일 독일의 어선 1척을 나포한다. 40년 4월 9일 베르겐에서 Ju88과 하인켈 111의 공격으로 두번째 회피기동중 실수로 두개의 폭탄이 옆에 각각 떨어졌는데 4.6미터 거리에서 폭발하면서 파편에 배의 흘수선에 피해를 받았고 하나는 기저아래에서 폭발 약 지름 1.5m의 구멍을 만들었다. 그와중에 배의 움직임으로 53번 세로구역부터 74번 세로구역까지 침수가 발생 전방 1번포탑의 작동이 멈추었다. 4월 10일 스카파 플로우로 회항했고 임시수리를 받는다. 다음날 바로 전선에 복귀 노르웨이 셰필드와 예하 구축함으로 구성된 6척의 함정이 연합군의 상륙을 도왔다. 노르웨이에서 철수한 글래스고는 주력함대에서 다시 활동했으나 40년 짙은 안개속에서 아군의 구축함 이모겐과 충돌했으며 이모겐은 침몰한다. 글래스고는 다시 한번 수리후 지중해에 배치 호송호위를 진행하였고 타란토 공습에서 이탈리아함대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고, 11월 14일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드니, 요크와함대 상륙부대 호위등을 했다. 12월 3일 글래스고는 이탈리아 공군의 공격을 받았고 어뢰 2발이 명중 프로펠러 샤프트의 손상으로 사우스햄튼이 글래스고를 대처했고 글래스고의 손상은 재료등의 부족으로 완전수리 상태가아닌 임시 수리 상태로 사용되었다. 수리가 끝난뒤 인도양에 배치되 전투가아닌 호위등의 역할을 주로 진행하였다. 42년에도 대부분의 임무가 호위였고 5월 6일에 글래스고는 영구 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 수리와 개장을 받는다. 수리후 스카파 플로우의 제 10 크루스 편대에 배속된다. 43년 12월 글래스고는 HMS 엔터프라이즈(순양함)과 독일 구축함 부대와 비스케이 만에서 전투를 치러 독일 구축함 1척과 어뢰정 2척을 격침시키고, 폭탄까지 맞았지만 귀환했다. 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글래스고는 USS아칸소, USS텍사스와 프랑스 함대의 몽칼과 그로주 레이그 예하 미국의 9척의 구축함과 3척의 헌트급 구축함은 C상륙부대 지원을 하였다. 6월 25일부터 글래스고는 독일의 발전장비를 포격했다. 45년 8월 동인도 제도함대에 배속되었다. 전후 글래스고는 다시한번 현대화 개장을 진행하였다. HMS 감비아, HMS 버뮤다, HMS 이글 예하 7척의 구축함, 두 개의 호위함과 함께 1954년 5월 2일에 몰타로월드 투어가 끝날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에든버러 공작을 호위했습니다. 글래스고는 HMS 감비아와 함께 1954년 8월 포트 사이드에서 제 40 여단의 철수에 참여했을 때 여전히 지중해 함대에 소속되어있었다. 수에즈 전쟁이 끝나고 1958년 폐기되었다.
- 5번함 HMS 버밍엄 (HMS Birmingham)
1938년 1월 5번함 버밍엄은 제 5 순양함 함대에 소속되었다. 40년 3월에서 4월 버밍엄은 몰타에 배치되었으며 이후 독일 상선을 파괴하기 위해 노르웨이 해안에 제 18 크루즈 함대에 소속된다. 4월 중순 버밍엄은 맨체스터와 함깨 카이로로 부대호송 임무를 진행했고 독일 순찰선 쉬르를 격침시켰습니다. 5월 에 맨체스터와 함깨 오달스네스에서 1,500명의 군인을 철수 시켰습니다. 41년 1월부터 4월까지 버밍험은 중동에 부대호송을 호위했고 5월 대서양에서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여, 그후 아프리카로의 호송을 호위했다. 아프리카에 셀본 드라이도크에 정박한 버밍험은 레이더 장비등의 개량을 거쳤다. 42년 3월 버밍엄은 개량을 마치고 지중해에 제 4 크루즈 함대에 소속되어 지브롤터와 아렉산드리아에 호송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15대의 급강하폭격기 슈튜카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9월에 마다가스카르 점령에 참여 11월에 버밍엄은 제 10보병사단을 일러스트리어스로 이동시켰다. 1943년 4월 개조를 마친 버밍엄은 11월 28일 독일잠수함 U-407에 뇌격을 받고 흘수선 아래가 심각한 손상을 받는다. 그 충격으로 포탑하나가 폭발 선내는 난장판이되었고 용골이 거의 절단나는 수준까지 심했다. 이 만신창이의 몸을 끌고 버밍엄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 임시수리를 진행했고 완전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1944년 11월 수리가 끝난 버밍엄은 제 10 순양함대어 포함되었고 주해역으로 이동한다. 45년 5월 종전때 버밍험은 다이도와 예하 구축함들로 발트해 항구를 점령한다. 5월 9일 코펜하겐에 도착하고 항복한 독일의 순양함 프린츠 오이겐과 뉘른베르크를 나포한다. 버밍엄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으로 한국 해양에 배치되었고 1,051발의 주포를 발사한다. 1955년 버밍엄은 지중해 제 1쿠르즈 함대에 기함이 되었으며 57년 6월 흑해 훈련에 참여한다. 버밍엄은 1959년 12월 3일 마지막 보수를 받았으며 1960년 9월 매각 스크랩된다.
7.2. 글로스터급
- 1번함 HMS 글로스터 (HMS Gloucester)
1번함 글로스터는 이 이름을 가진 9번째 글로스터이다. 글로스터는 진수 후 테스트 때부터 조금 남달랐는데 최고 속도 측정당시 31.92노트(59.12km/h, 36.73mph)를 기록해 타운급의 평균 속도였던 33.05 노트(61.21km/h, 38.03mph)에 미치지 못하며 동형함 중 가장 느렸다. [5] 1939년 1월 31일 완공되어 제대로 된 함선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6] 배치와 동시에 중국해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제4 순양함대의 기함이 된다. 39년 11월 중순, 글로스터는 프랑스 해군의 아비소 리가울트 드 제노일리와 함깨 독일의 중순양함 그라프 슈페를 추격했으나 실패하고 마다가스카르와 셰이셸 제도 사이의 인도양에 배치된다. 1940년 5월 글로스터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지중해의 제7 순양함대에 소속된다. 리버풀이 토브룩을 포격할 때 글로스터는 소해함을 침몰시킨다. 7월 7일 지중해에서 몰타 호송대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사보이아-마르게티 SM.79의 폭격으로 수평장갑이 관통되어 기동에 어려움이 발생했고 함내 함장을 포함한 고위직 참모들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글로스터는 7월 9일 칼라브리아 해전에 참전해 항공모함 이글을 호위하였고 8월이 되어서야 수리가 진행되었다. 9월 글로스터는 제3 순양함대에 배속되었으며 모자 작전(Operation Hats)에서 리버풀과 함께 1200명 규모의 병력을 몰타로 이동시킨다. 11월 11일에는 타란토 공습에서 일러스트리어스를 호위한다. 1941년 1월 11일 글로스터는 자매함 사우스햄튼과 초과 작전(Operation Excess)에 참여해 몰타로 떠났으나 슈튜카의 250kg 폭탄이 명중했으나 불발되었다. 그러나 사우스햄튼은 큰 피해를 입고 오리온에 의해 뇌격처분을 받아 자침한다. 1941년 3월 27일 글로스터는 다시 제7 순양함대에 소속되었고 마타판곶 해전을 치른다. 4월 20일 밤, 글로스터는 트리폴리 항구를 포격했고 같은 달 말에 지브롤터에 정박했다. 5월 초 글로스터는 타이거 작전(Operation Tiger)을 위해 지중해에 주둔한다. 독일의 크레타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여러 군으로 나뉘어진 상태에서 독일 상선의 파괴를 목표로 독립적으로 행동했으며 독일의 공수부대가 크레타에 착륙하자 글로스터는 포스B의 지휘함이 된다. 글로스터는 크레타 섬에서 약 23km 떨어진 키티라 해협에서 글로스터와 피지는 슈튜카의 공격을 받아 본함대에 귀환하던 중 침몰했다. 여담으로 1년도 되지 않아서 5번의 전투 명예 훈장을 받아 'The Fighting G'라는 별명이 있었다.
- 2번함 HMS 맨체스터 (HMS Manchester)
39년 9월 3일 독일이 전쟁을 선포했을 때 맨체스터는 홍해와 아덴만을 순항중이었다. 9월 25일 인도양으로 향하는 군대를 호위했다. 11월 10 맨체스터는 영국으로 복귀하던 중 몰타에서 제18 순양함대에 소속된다. 11월 25일, 포츠머스로 돌아온 맨체스터는 폭풍으로 인한 피해 복구를 위해 도크에 들어갔다. 12월 22일, 수리 및 개장이 완료된 맨체스터는 본토함대에 소속되어 북부 순찰대에서 활동하며 다음해 4월까지 독일 봉쇄 임무에 참여했다. 이후 제18 순양함대는 북부 순찰대에서 제외되어 노르웨이로 향하는 호송대 호위를 하게 된다. 5월 26일, 맨체스터는 버밍엄과 셰필드와 함깨 제18 순양함대 소속으로 침략 방지 임무를 수행했다. 11월 맨체스터는 이탈리아 함대와 교전했으며 경미한 손상을 입었고, 이듬해 1월 8일 지중해를 빠져나와서 1월 11일부터 4월 17일까지 수리를 하게 된다. 7월 23일, 맨체스터는 몰타로 향하는 호송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이루어진 이탈리아의 공습에서 뇌격기의 어뢰에 피격되어 선체에 60피트(18.3m)의 길이의 구멍이 생기는 등 심한 손상을 입었다. 9월 15일 맨체스터는 수리를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로 향했고, 그곳에서 1942년 2월 27일까지 수리를 진행했다. 전역에 복귀한 맨체스터는 또 다른 몰타 호송 임무인 페데스탈 작전에서 제10 순양함대로써 항모 퓨리어스를 호위했으나 이탈리아 어뢰정의 뇌격을 맞아 기동이 불가능해졌다. 당시 함장이었던 해롤드 드류 대령은 이어질 어뢰정의 추가 공격을 염려해 배를 자침시키기로 결정했고, 8월 14일 새벽 침몰했다.[7]
- 3번함 HMS 리버풀(HMS Liverpool)
리버풀은 대전 발생전 지중해에서 2달간 머무르며 엔진의 문제를 해결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리버풀은 제4 순양함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39년 11월 중국해역의 제5 순양함대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1940년 1월 21일, 리버풀은 일본의 여객선 아사마마루를 나포했다.[8] 40년 4월 리버풀은 호주 순양함 HMAS 호바트와 함깨 홍해에 함대를 이루었고 리버풀은 홍해 함대의 기함이 되어 호주군을 수에즈로 호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41년 6월 리버풀은 제7 순양함대에 편성되었고 이탈리아의 공습을 막을 수 있는 9척의 순양함 중 하나가 되었다. 6월 12일 리버풀은 글로스터와 예하 4척의 구축함들과 함께 육상 포격 임무를 맡던 도중 이탈리아 해군과 조우한다. 함대는 장갑순양함 산 조르지오가 포함된 5척의 선박을 공격했고 소해정 조반니 베르타를 침몰시킨다. 7월 9일에는 칼라브리아 해전에 참가했다. 7월 말 리버풀은 이집트로 향하는 호송호위를 진행 도중 이탈리아 공군의 대규모 공습을 받았고 두 개의 폭탄이 폭발하지 않은 채로 갑판을 관통하는 등 당시 유일한 피해를 받은 함이었다. 리버풀은 8월에 다시 지중해 함대에 편성되었고 리버풀은 글로스터, 켄트와 함께 제3 순양함대에 소속된다. 9월 28일 리버풀은 몰타로 호송을 진행한다. 10월 14일 리버풀은 이탈리아 소속 뇌격기에 의해 공격을 받았으며 연료탱크가 피격되어 발생한 폭발로 선수부에 화재가 발생하고 포탑 하나가 유폭하는 등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리버풀은 임시수리를 진행했고 이후에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메어 아일랜드 해군조선소에서 수리를 받았다. 이후 개량으로 리버풀은 레이더장비를 가졌으며 대공화기도 증강되었다. 이후 리버풀은 제18 순양함 함대에 편성되어 러시아에서 임시 수리를 받고 복귀하는 순양함 트리니다드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나 트리니다드가 공습으로 침몰하고 그 자신도 공습을 받았다. 1942년 5월 25일, 리버풀은 소련을 지원하기 위한 35척의 상선으로 이루어진 PQ-16을 호위하는 작전에 참가했다. 리버풀은 작살 작전(Operation Harpoon)에서 수송부대를 호위하던 중 공습을 당해 어뢰를 맞았는데 하필 그 부분이 엔진실이여서 침수가 발생, 우측 프로펠러 2개가 멈춘다. 리버풀의 속도는 4노트로 감소했고 6월 17일 수리를 위해 지브롤터로 향하던 중 또 공습을 받게 된다. 8월 영국에 돌아온 리버풀은 항공기 사출기와 포탑 하나가 제거되고 새로운 레이다 장비와 대공무장이 증설되는 등 대규모 개장을 거쳤다. 개장은 1942년 7월에 완료되었으나 운영인원을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43년 부터 45년까지 유지보수만 진행하였다. 45년 10월 리버풀은 다시 일선에 복귀하면서 제15 순양함대에서 활동한다. 1952년 퇴역한 리버풀은 포츠머스 조선소 예비군에 소속되어 장교 숙소 등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리버풀은 벨파스트와 함깨 현대화 개장 계획에 의해 우선순위에 올라갔다. 그러나 1957년 이뤄진 대규모 군축으로 최소 551척의 개장 예비함을 폐지한 영국해군은 60년대까지 전시순양함 계획을 완전히 철회할 것임을 밝히면서 리버풀의 역할은 카운티급 구축함과 타이거급 순양함에게 대체되었고, 1958년 최종적으로 스크랩처리 된다.
7.3. 에든버러급
- 1번함 HMS 에든버러 (HMS Edinburgh)
1939년 7월 시운전을 마치고 제 18 쿠르즈 편대에 소속된다. 한동안 아이슬란드 주변을 순찰할 예정이였지만 1939년 중후반 제 2 순양함대에 소속으로 바뀌었다. 1939년 10월 16일 독일이 로지스의 해군기지를 습격하였고 에든버러는 경미한 손상을 입는다. 10월 23일 호송호위를 진행하던중 무장순양함 팔라완디가 공격을 받았으며 에든버러는 샤른호르스트를 수색하기위해 대열을 이탈했으나 색적에 실패 다시 대열에 합류한다. 40년 3월 18일 에든버러는 개장을 실시했고 10월 28일까지 진행되었고 개장이 완료된뒤 에든버러는 제 18 순양함대에 소속된다. 1941년 5월 4일 에든버러는 포르텐 제도를 공습하는 클레모어 작전에 지원을 한다. 또한 1941년 5월 비스마르크 추격당시 에든버러는 비스케이만을 순찰중이였다. 6월 1일 에든버러는 다이도급 순양함 에르미오네를 호위하기위해 떠났으며 다른 호송임무를 진행하고 지브롤터에 정박한다. 7월 24일 몰타로 호송중이던 에든버러는 독일 폭격기가 공격를 시도 그러나 명중탄은 없었다. 1941년 9월 할버트 작전의 일환으로 9월 28일 몰타에 도착한다. 그두 41년 10월 1일 에든버러는 지브롤터로 돌아왔으며 파슬레인에서 수리를 마친뒤에 11월 아이슬란드 군 순찰대로 이동한다. 에든버러는 4월 28일 17척으 호송대를 호위했고 U-456의 어뢰에 금이 저장된 바로 앞부분에 피격된다. 배는 바로 침수가 시작되었지만 승무원들에 의해 저지된다. 그러나 2번째 어뢰가 함미에 명중하며 기동불능에 빠졌고 에든버러는 견인줄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일 뇌격기에 계속된 공격을 받았으며 헤르만 휴만, Z24, Z25의 공격을 받는다. 결국 에든버러는 금을 가진채로 침몰한다.
- 2번함 HMS 벨파스트 (HMS Belfast)
타운급의 마지막 함선 벨파스트. 다만, 사실 벨파스트가 기공과 진수가 에든버러보다 빨랐지만 함선으로써의 완성이 늦어지면서 에든버러급 2번함이 된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전 1939년 8월 초 벨파스트는 독일에 대한 영국해군의 보호를 진행했다. 그리고 1939년 8월 31일 제 18 순양함대에 소속된다. 다음날 독일은 폴란드 침공을 시작했고 영국은 9월 3일 프랑스와 전쟁을 선포하면서 벨파스트는 아침 11시 40분 독일을 향한 적대행위를 진행하겠다.라고 무전받으면서 2차 세계대전기에 시작을 알렸다. 9월 8일 독일 선박을 격침하기 위해 벨파스트는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나운, 언니인 에든버러 예하 4척의 구축함과 함깨 해당해역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그들은 적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해당해역에서 이탈한다. 11월 10일 벨파스트는 제 2순양함대 소속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나 11월 21일 기뢰와 충돌한 벨파스트는 용골이 부서지고 보일러실 1개가 침수되어 사실상 침몰과 가까운 손상을 입는다. 기뢰의 폭발로 작은 구멍이 여러개 발생했고 함 자체가 심각하게 뒤틀렸으며 기저가 3인치 가량 속으로 들어가는 변형이 발생했다. 1940년 1월 4일 벨파스트는 수리를 위해 드라이독에서 사실상 해체하였고 6월 28일 수리를 끝낸다. 이때 수리와 개장을 진행하였고 장갑확장과 대공무장 강화 레이더등을 장비했다.
42년 11월 3일 주해역에 복귀했고 제 10 순양함대의 기함이 된다. 1943년 호위임무를 진행했고 같은해 10월 5일과 6일, USS레인저를 호위하여 독일 조선소를 공습한다. 1943년 12월 26일 벨파스트는 노스케이프 해전에 참여하였다. 당시 영국은 노포크와 셰필드, 벨파스트등 제 10 순양함대를 포스 1으로 요크와 자메이카등의 함선을 포스 2로 지정하였고 4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샤른호르스트가 노르웨이 북부항을 떠나서 호송대를 공격했고 다음날 26일 샤른호르스트는 퇴각을 하려 했으나 포스 2에 속한 킹조지 5세급 전함인 듀크 오브 요크의 유효타격으로 거의 멈추었고 이후 구축함과 순양함의 뇌격으로 침몰한다. 이때 벨파스트는 포스 1의 기함으로 공격 타이밍을 정하였고 레이더 장비를 통해 듀크 오브 요크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벨파스트는 트리플 베이스 탄약으로 샤른호르스트에게 혼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예광탄을 쏘아올리며 듀크 오브 요크가 요격 기회를 잡는데 도움을 준다. 노스케이프 해전 이후 벨파스트는 1944년 새해에 보급을 위해 스카파에 도착했고 44년 2월 북극 호송임무에 참여 44년 3월 30일 벨파스트는 영국의 해군과 공군의 공습인 텅스텐 작전으로 티르피츠를 격침시키는데 참여한다. 해군이 호위임무를 맡은 사이 공군이 떨군 3발의 폭탄이 전함을 뒤집었다. 이후 벨파스트는 4월 23일 부터 5월 8일까지 간단한 수리를 진행하였고 노르망디에서 독일을 4인치 포로 공격을 진행했다. 이후 침공은 6월 5일에 시작되었고 해가 뜨기 시작할때 공격을 실시했다. 7월 8일 벨파스트는 모니터함 로버츠와 전함 로드니와 같이 차우드 작전을 진행, 유럽해역에서 마지막 포격전이였고 이때 벨파스트는 6인치 탄을 1,996발을 발사한다. 1945년 태평양 지역으로 배치 될 가능성을 두고 대공 무장을 강화한다. 이후 1945년 시드니에 도착한 벨파스트는 다시한번 개장을 받았으며 태평양 제 2 순양함대의 기함이 되지만 일본이 항복해버렸다.
1950년 5월 벨파스트는 일본 쿠레항에 주둔하였고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38선 이북에 배치된다. 50년 3월 벨파스트는 서해안에서 정찰을 자행 7월 19일 부터 USS 주노와 함깨 포격을 진행 이날에만 6인차 탄을 350발 발사한다. 51년 1월 31일 혹한등이 이유와 북한군의 공격으로 간단한 수리가 필요해 지면서 사세보로 돌아온다. 1952년 벨파스트는 영국 경항모 오션을 호위했고 1952년 9월 27일 벨파스트는 버밍엄과 뉴캐슬이 배치됨과 동시에 영국으로 귀환했다. 벨파스트는 한국 전쟁에 배치되어있는 기간 6인치 포탄을 8,000발 이상 발사했다. 이후 1952년 11월 4일 체텀에 도착했고 12월 1일 예비역으로 보관되기 시작했다. 1955년 이후로 영국은 군축에 돌입했고 그렇기에 순양함 운영은 돈이 많이 들어갔다. 따라서 벨파스트의 미래도 어두워 졌으나 1959년 5월 12일 까지 영국은 벨파스트를 현대화 개장을 실시했으며 예비역에서 다시 현역으로 복귀한다.
벨파스트는 1959년 12월 16일 부터 싱가포르에 주둔했고 1960년대 동남아 해역과 서북 오세아니아 해역에서 훈련등을 진행한다. 1961년 벨파스트는 수륙양용 헬기를 수용하는 형태로 개장되려 했으나 12월 취소된다. 1962년 3월 26일 싱가포르를 따나 태평양을 거쳐 6월 19일 포츠머스에 도착한다. 여담으로 포츠머스에 정박해 화물을 점검하다 당시 시가로 5억여원어치에 달하는 헤로인이 튀어나오는 사건이 있었다. 조사결과 삼합회가 영국에 밀수하려고 선원을 매수해 벌인 짓이라고. 1963년 벨파스트는 다시 예비역으로 보관된다. 영국군은 순양함 1대를 보존할 생각이있었고 그주인공은 감비아가 될 예정이였지만 감비아는 심각한 노후화로 어려웠고 1968년 6월 벨파스트를 기념함으로써 남기기로 한다. 그러나 71년 초 해군 장군이 바뀌며 다시 폐기 처분 순서를 거쳤지만 1971년 5월 4일 다시 기념함으로 남기로 한다. 벨파스트는 현재 박물관 선박으로 남아 있으며 탬스강에 정박 타워 브리지가 보이는 곳이 있다. 위치는 여왕의 산책로 라고 불리는데 있으며 런던 브리지 역 또는 타운힐 지하철 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사실 원래 대로라면 벨파스트는 폐기 였지만 민간 단체가 나서서 벨파스트를 박물관으로 만든것이였다. 1971년 10월 21일 '트라팔가의 날' 벨파스트는 민간인에게 공개되었다. 이 트라팔가의 날은 기함 HMS 빅토리와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날이였다.
8. 매체에서의 등장
- 네이비필드에서 영국 2차 경순양함으로 등장한다.
에든버러 | 벨파스트 |
- 월드 오브 워쉽에 에든버러가 정규트리 8티어 순양함으로 나왔고, 벨파스트는 1959년 사양으로 7티어 골쉽으로 등장했었다. 벨파스트의 성능이 너무 사기적이라[9] 영구 판매 정지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후 어뢰를 달고 소모품을 일부 바꾸고 너프를 먹인 1943년 사양의 벨파스트, 벨파스트 '43이 8티어 프리미엄 쉽으로 출시되었다.
HMS 사우스햄튼 | HMS 벨파스트 | HMS 리버풀 |
- 워 썬더에서 정규트리로 HMS 사우스햄튼, 프리미엄으로 HMS 밸파스트, 비행대 장비로 HMS 리버풀이 등장한다
- 모바일게임 벽람항로에 에든버러급 에든버러와 벨파스트가 등장하며, 사우스햄튼급 사우스햄튼, 셰필드와 뉴캐슬, 글래스고, 글로스터급 글로스터, 맨체스터, 리버풀도 등장한다. 사우스햄튼을 제외하고는 전부 특이하게도 메이드 캐릭터로 나오며, 설정상으로는 메이드대라고 불린다. 메이드장은 벨파스트. 사우스햄튼은 기사대 소속이다. 이는 타운급 경순양함이 영국해군의 정규 함선을 보조, 지원, 호위한것에서 부터 나온것으로 추측된다.
- Naval Creed:Warships에서 에든버러급인 벨파스트가 영국 순양함 4티어 1차 트리 함선으로 나온다, 이후 언니이자 네임쉽인 에든버러도 에든버러도 4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등장한다.
-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와치독: 리전에서 박물관함으로 정박되어있는 벨파스트가 구현되어있다. 함선 하단에 그래피티가 빼곡하게 칠해져있으며, 선체 상단에 스킬칩 1개가 놓여져있으며 스킬칩 획득 목적 이외에는 별로 볼일이 없는 곳. 보트를 타서 접근하거나 화물 드론에 올라탄다음 갈수 있긴 하다.
9. 관련 문서
[1] 함급의 함선 이름이 모두 영국의 도시(Town)이라서 붙은 명칭이다.[2] 당시 맨체스터는 이탈리아군 SM. 79 폭격기의 뇌격을 당한 이후 M,A,S 어뢰정에게 어뢰를 맞아서 함을 살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2차대전 중 어뢰정이 격침시킨 가장 큰 함선이다.[3] 7형 유보트 U-456의 어뢰에 피격당하여 격침. 이때 에든버러는 금괴 호송임무를 맡고 있었다. 자매인 벨파스트는 취역일 당해인 1939년 기뢰에 큰피해를 입어 3년을 수리 및 개장을 받는 상태였다. 유실된 금괴는 현재 영국 정부 측에서 인양하고 있다.[4] 6.25 전쟁 참전 이후 정식 퇴역하여 박물관함 및 기념함으로 운용중, 템스 강에 정박되어 있다. 박물관으로의 내용에 관해서는 제국 전쟁 박물관문서를 참고.[5] 하지만 이는 얕은 해역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이는 밀어낼 충분한 양의 물이 없어서 그랬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6] 진수는 37년 10월 19일이다.[7] 사실 맨체스터는 예상보다 빠르게 추진력 복구가 완료되어 조금만 기다리면 어떻게든 항구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함장은 배가 언제든지 나포될 수 있다는 전술적 상황에 집중해 자침을 명령했고, 뒤늦게 배가 기동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자침 명령이 이루어진 후였다. 이후 이루어진 군법 재판에서 해롤드 대령은 지난번 뇌격과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배가 충분히 기동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시하고 배를 자침시킨 죄로 해임 처분을 받았고, 이후 다시는 함장직을 맡을 수 없었다.[8] 이는 침몰한 독일 여객선의 잔존 승무원들이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아사마마루에 승선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고 그 구실로 공포탄까지 쏴가면서 배를 나포한 것인데, 당시 일본은 연합국과는 중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데다 일본 해역과 불과 56km 떨어진 공해상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양국 간에 큰 외교적 논란이 있었다. 갈등이 고조되자 양국 정부는 협상을 통해 독일인의 일본 여객선 승선을 금지하는 대가로 9명의 독일인을 석방하는 등 갈등을 비교적 잘 풀어냈다.[9] 간단하게 요약해서 장갑이 종잇장이라는 것과 어뢰가 없다는 점을 빼면 모든 걸(대공, 함포, 내구도, 피탐지, 기동력, 소모품 등등) OP급으로 가진 함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