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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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합중 공화국 (1930 ~ 1937) República dos Estados Unidos do Brasil | ||
브라질 합중국 (1937 ~ 1946) Estados Unidos do Brasil | ||
국기 | 국장 | |
Ordem e progresso 질서와 진보 | ||
1930년 10월 24일 ~ 1946년 1월 31일 | ||
성립 이전 | 성립 이후 | |
브라질 제1공화국 | 브라질 제4공화국 | |
수도 | 리우데자네이루 | |
언어 | 포르투갈어 | |
종교 | 가톨릭 | |
민족 | 브라질인 | |
정치체제 | 대통령제 권위주의 연방제 | |
국가원수 | 대통령 | |
통화 | 헤이스(1930-1942) 크루제이루(1942-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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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ra Vargas. 브라질 제1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브라질의 정치체제.2. 역사
브라질 제1공화국은 상파울루 공화당과 미나스제라이스 공화당의 양당체제로 굴러갔으나 둘은 대지주 기반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고 서로 동맹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동맹 관계는 1929년 상파울루 출신의 워싱턴 루이스 대통령이 후계자를 상파울루 주 출신으로 임명하면서 깨지게 되고, 이에 미나스제라이스는 다음해 치러진 1930년 대선에서 히우그란지두술과 동맹을 맺고 히우그란지두술의 주지사 제툴리우 바르가스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다.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브라질의 경제는 타격을 입게 된 상황이었는데, 이 때 조직력에서 앞선 상파울루의 줄리우 프레스치스가 승리를 거두었고, 바르가스의 러닝메이트였던 부통령 후보인 주앙 페소아가 선거 이후 피살당하기도 하였다. 이에 히우그란지두술과 미나스제라이스를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고, 이어진 군사 쿠데타로 제1공화국은 붕괴되었다.쿠데타 이후 바르가스는 군부의 추대로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브라질은 대공황의 여파로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으로, 브라질의 경제 윈동력이었던 커피 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바르가스는 커피 가격을 상승시키기 위해 과도하게 많이 생산된 커피를 사들여 폐기하는 정책을 취했다. 1932년 상파울루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이는 진압되었다.
1934년 브라질에서는 신헌법이 제정되고 바르가스는 1934년 4년 임기의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1930년대 브라질에서는 통합주의행동당(AIB)을 비롯한 파시즘 조직들과 민족해방동맹(ALN)을 결성한 공산주의자들이 세력을 불려 갔는데, 그 전부터 국가보안법 등을 제정해 이들의 충돌을 통제하려고 하던 바르가스 정부는 1935년 공산당의 봉기가 진압된 후 좌익 세력에 강경한 탄압을 가했다. 본래 그의 정치는 군부와 미나스제라이스 공화당 출신 세력의 지지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나, 1937년 선거를 앞두고 바르가스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후, 포르투갈 제2공화국을 모방하여 이스타두 노부(Estado Novo)[1]를 선포하고 전체주의 독재 정치를 하였다(제3공화국). 파시스트 통합주의자들은 쿠데타를 지지하였으나, 바르가스 본인은 파시즘과는 거리가 멀어 통합주의자들을 기용하지 않았고, 이에 통합주의자들은 대통령궁을 습격하여 바르가스를 쫓아내려 하였으나 진압당했다. 또한 나치식의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르가스는 더욱 강하게 중앙집권화를 추구하였으며, 경제적으로는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하고, 산업화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교육에도 투자를 하였다. 바르가스는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 세력을 탄압하고, 노동조합을 통제하면서도 노동 관련 법을 제정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또한 대중을 향한 선전을 통해 노동자들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전까지 백인들에 의해 저급한 문화로 여겨졌던 삼바와 반대로 백인 일색의 스포츠였던 축구가 모든 브라질 사람이 향유하는 문화 아이콘이 된 것도 바르가스 시대의 일이었다.
브라질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처음에는 중립을 지켰다. 나치 독일은 처음에는 브라질의 쿠데타에 우호적이었으나, 바르가스가 통합주의자들을 제거하는 등 국내 파시스트들과 거리를 두면서 양국 간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 브라질은 1942년 1월 추축국과 관계를 끊고, 이후 독일 잠수함이 브라질 상선을 격침시키자 1942년 8월 추축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연합국으로 2차대전에 참전하였고, 브라질군이 1944년 이탈리아 전선에 파병되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브라질 내에서는 독재 국가가 연합국으로 참전하는 모순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결국 바르가스는 1945년 선거 실시를 약속하였다. 이에 바르가스 반대파는 국민민주연합을 결성하고, 지지자들은 브라질 사회민주당을 결성했으며, 바르가스 자신도 노동계가 주도한 브라질 노동당(PTB)의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군부는 불만을 나타냈고 1945년 10월에 그를 지지하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후 제헌의회가 구성되어 1946년에 새로운 브라질 헌법이 통과됨에 따라 제4공화국이 선포된다.
[1]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국가 또는 체제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