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01:12:05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여고에서 넘어옴

이 문서는 학교 관련 문서이며, 로그인 후 수정 가능합니다. 다음과 같은 서술은 작성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
  • 현황과 역사를 불문하고 학교 간 우열이나 서열을 확정·조장하는 서술과 학교 수준을 비하하는 서술
  • 학교 내 특정 임의 단체(급식, 매점 등)와 교내 학생 단체(동아리, 학생회 등)에 관한 서술
  •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학교 관련 사건 사고에 관한 서술
  • 학교 밖에서 알려지지 않은 교사나 학생에 관한 서술
  • 템플릿:학교에 존재하지 않는 문단에 관한 서술
  • 편집지침에 어긋나는 서술

파일:금정구 CI_White.svg 부산광역시 금정구 고등학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letter-spacing: -1px"
남자고등학교
,
여자고등학교
,
이외 남녀공학

※: 자사고, ⊙: 자공고, ▣: 특목고, ◈: 특성화고, 이외 일반계고
금샘고등학교 금정여자고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내성고등학교 대진전자통신고등학교
동래여자고등학교 부산과학고등학교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부산예술고등학교
부산정보관광고등학교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예술고등학교 지산고등학교
}}}}}}}}}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학교 틀 둘러보기

학교법인 정선학원
고등학교중학교
브니엘고등학교브니엘여자고등학교브니엘예술고등학교브니엘예술중학교브니엘중학교1
사건 및 사고
1 1998년 폐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女子高等學校 | PENIEL GIRLS' HIGH SCHOOL
파일:브니엘여자고등학교_로고.png
<colbgcolor=#2a66ab><colcolor=white,#191919> 개교 1996년 3월 8일[1]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여학교
형태 사립
학교법인 정선학원[2]
교장 제23대 주종진
교훈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교화 영산홍
교목 히말라야시다
학생 수 216명 (2023.03)
교직원 수 39명 (2023.03)
관할 교육청 부산광역시교육청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 154 (구서동)
전화번호 051-582-6613 (행정실)
051-582-9181 (교무실)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학교 연혁3. 학교 상징
3.1. 교훈3.2. 교화3.3. 교목3.4. 교가
4. 학교 특징5. 학교 시설6. 학교 생활
6.1. 학교 일과6.2. 동아리6.3. 주요 행사
7. 운동부8. 출신 인물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9.1. 버스 노선
10. 사건·사고11. 기타

[clearfix]

1. 개요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소재한 사립 일반계 여자고등학교. 형제 학교로 바로 옆에 브니엘고등학교브니엘예술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부산광역시의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는 학급수와 정원이 가장 작은 학교로 알려져 있으며 부산광역시 소재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는 처음으로 전교생이 200명대에 진입한 학교이기도 하다. 그리고 1995년까지 오랫동안 야간제 전용학교로 운영되다가 1996년 주간 승격 늦은 시기인 1999년에 평준화 되었다.

2. 학교 연혁

1958.07.01 1958년 7월, 미국 VOCA (Voice of China & Asia Inc. 중아선교회)에서
Dr. Samuel Park(박성기목사)를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전쟁난민 구제를 위한 브니엘운동과 교육 사역을 시작함.
1963.12.01 브니엘학원(學園) 설립
-브니엘고등학교(주간,야간), 브니엘중학교-
1996.02.16 브니엘여자고등학교 인가
1996.03.01 초대 박성기교장 취임
1996.03.08 제1회 입학식
1996.03.19 신축 교사(校舍) 이전 : 금정구 체육공원로 154
1999.02.11 제1회 졸업식
2008.03.03 MOU체결_고신대학교
2010.02.20 인조잔디 운동장 준공
2013.03.01 자율형 창의경영학교 선정(~2016)
2013.10.28 MOU체결_(사)부산밥퍼나눔공동체
2018.03.02 제23회 입학식
2018.11.29 '학력신장 우수학교' 선정(부산광역시교육청)
2018.12.10 '교실수업개선 우수학교' 선정(부산광역시교육청)
2019.03.04 제24회 입학식
2019.04.05 2019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시행 기여 표창(교육부장관)
2019.07.25 MOU체결_태국,싸라윗타야Sarawittaya학교(방콕_한국어과 개설)
2020.02.11 제22회 졸업식
2020.04.09 온라인 개학(3학년)
2020.04.16 온라인 개학(1,2학년)

3. 학교 상징

파일:브니엘여고 상징.jpg

3.1. 교훈

1. 나는 하나님사람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2.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3.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4.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1. I will be a man who loves God, man, and nature.
2. I will be a man who keeps growing, thinking, and working to the full.
3. I will be a man who rejoices with those who rejoice and weeps with those who weep.
4. I will be a man who is always ready to respond to the calling of my country and humankind.

3.2. 교화

교화
교화는 영산홍이다.

3.3. 교목

파일:external/www.daegucity.net/daegu_now(130715-2).jpg
교목
교목은 '히말라야시다'라고 불리는 개잎갈나무 이다.

3.4. 교가

파일:브니엘 교가.png
1절
산보다 더 드높은 소망을 안고서
모였다 우리들은 사랑의 샘터로
브니엘 브니엘 온 누리에 뻗어 갈
그 이름도 미쁘다 우리 브니엘 학원
빛나는 역사의 창조자 역사의 창조자
길이길이 빛나라 우리 브니엘 학원
2절
푸른 바다 물결에 아침 해 빛나고
금정산 봉우리엔 희망은 찬란다
브니엘 브니엘 온 누리에 뻗어 갈
그 이름도 미쁘다 우리 브니엘 학원
빛나는 역사의 창조자 역사의 창조자
길이길이 빛나라 우리 브니엘 학원
작사 작곡 박환철

4. 학교 특징

1975년에 개교한 학교로 같은 4학군의 다른 학교들보다 역사가 길거나[3], 비슷하지만[4]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그만큼의 인지도를 얻지 못했다.
1975년 개교 당시, 연산동 브니엘중학교의 교실을 빌려 2부 형태로 운영되던 야간제 전용 학교였다. 학적 관리는 브니엘고등학교가 담당했으며, 직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을 위해 설립되었다. 야간제 특성상 대학 진학률은 매우 낮았다. 당시 대학 총정원이 적어 일반계 고등학교도 절반 이상의 학생이 대학 진학에 실패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학교는 노동으로 지친 학생들이 부족한 수업 시수로 학업을 이어갔기 때문에 대학 진학은 더 어려웠다.[5]
1970년대 후반부터 학교 신축 이전과 함께 평준화 일반고로 승격하려 했으나, 재단 문제로 이전 예정 부지가 여러 차례 바뀌며 이전이 계속 지연되었다. 이 과정에서 20년간 학교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연산동 지역에서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1989년에는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개교로 인한 학생 수 감소와 생활수준 향상, 주간 여자고등학교 증가로 인해 야간부 학생 수가 급감해 5학급으로 감축되기도 했다.
1996년에 금정구로 이전하면서 주간 특수지 고등학교로 승격되어 다시 6학급 체제로 복귀했고, 1999년에는 평준화 고등학교로 승격되었다. 이후 1975년부터 1995년까지의 역사는 사실상 흑역사로 간주되었고, 개교 연도도 1996년으로 새로 설정되었다.[6][7]
200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 4학군의 입시 경쟁이 치열해 전교생이 약 700명에 달했으며, 당시에는 학교 규모를 키울 기회도 있었다. 학급과 학생 수를 늘려 반전을 꾀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2017년에는 부산 내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 중 가장 학생 수가 적은 학교가 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한 학년당 학생 수는 100~120명 수준이 되었고[8], 적은 학생수로 학생들 간의 교류가 활발해져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저출산 문제와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정책의 영향을 받아 학교 존폐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관선이사 체제에서는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으며, 풍전등화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앞으로 정이사 체제로 전환된다면, 새롭게 선임될 정이사들의 운영 방식에 따라 학교의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5. 학교 시설

파일:브니엘학교 전경.jpg
학교법인 정선학원 전경

6. 학교 생활

6.1. 학교 일과


[월-목]
아침 채플[9]
1교시: 8:25~9:15
2교시: 9:25~10:15
3교시: 10:25~11:15
4교시: 11:25~12:15
점심시간: 12:15~1:10
5교시: 13:10~14:00
6교시: 14:10~15:00
7교시: 15:10~16:00
8교시(방과후): 16:15~17:05
석식: 17:05~18:00
야자 1차: 18:00~19:15
야자 2차: 19:30~20:50
야자 3차[10] : 21:00~21:50

[금]
6교시까지만 진행

6.2. 동아리

파일:2024동아리브니엘여고.png

6.3. 주요 행사

추가하시려면 "행사명: 개최시기"로 추가해주시고 부가적인 설명을 적어주세요.

7. 운동부

학교가 분리되기 이전인 1968년에 여자 테니스부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 불과 5년만인 1973년에는 국제 대회에도 우승하는 이변을 일으키는 등 단기간에 테니스의 강호로 떠올랐으며, 1975년 2부 브니엘여고로 개편된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었다.
1970~1980년대 당시 부산지역 여자 테니스부의 강호로 정말로 유명했고 최고 전성기때는 전국구로 명성을 떨쳤다. 그 덕분에 브니엘여고 자체는 인식이 썩 좋지 못했음에도 테니스부 만큼은 정말로 알아줬었다.#[11] [12]
하지만 학교가 이전을 추진할 무렵에 테니스부가 쇠락하기 시작했고, 금정구로 이전한 이후에도 수년간은 운영되다가 1990년대 후반 브니엘학원 사태가 터지면서 30년의 역사를 뒤로한채 재정난으로 갑자기 해체되었다.[13][14]
이후 정선재단이 들어오면서 자칭 정상화를 주장했을때 테니스부의 부활이 예상 되었으나, 정선재단 인사들은 의치한이나 자사고에만 관심있다보니 의치한 진학률에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여자 테니스부를 부활시킬 생각을 안하면서 아예 관뚜껑에 못을 박았다.
학교 자체가 학생수가 적다보니 테니스부라도 부활했으면 학생수를 조금이나마 보태줬을 것이고, 그때 테니스부가 부활했으면 2018년 지금쯤 다시금 재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8. 출신 인물

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9.1. 버스 노선

정류소 명칭 노선 번호
브니엘고등학교 301, 금정3-1

지하철은 그런거 없다. 구서역, 장전역으로 가야 한다.

2023년 9월 1일 부터 십수년간 운행해왔던 금정3번의 브니엘고 통학지원노선이 폐지되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의 셔틀버스 운행으로 전환되어 완전히 부산외대 위주로만 운행하게 되었기 때문.

10. 사건·사고

언론에서 보도한 경우에만 서술하시기 바랍니다.

11. 기타




[1] 브니엘학원 설립 및 브니엘고등학교 개교는 1963월 12월 1일로 굉장히 빨랐으나, 브니엘여고는 1975년 3월 부터 브니엘중학교 교실을 차출하여 야간학교로만 운영하였었다 주간학교 승격및 정식학교 인가는 1996년 2월 16일에 받았다.[2] 현재 소유권 분쟁 중이며 재단 교체 가능성이 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교육청에서 관선이사를 파견하고 있다.[3] 학산여자고등학교(1985년), 대명여자고등학교(1986년), 사직여자고등학교(1987년) 등[4] 부산중앙여자고등학교(1973년),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1972년) 등[5] 다만, 3저 호황 시기였던 당시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도 스펙이 되었고, 졸업생들은 제조업과 섬유업체 등 다양한 산업체에 취업할 기회가 많았다. 일부 졸업생은 은행 등 제1금융권에 취업하거나, 뒤늦게 공부해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6] 그러나 동래구, 금정구, 연제구 일대의 연산동 시절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 주간 승격 이후에도 학교 성장은 더뎠다.[7] 특히 재단의 방치와 평준화 승격 직후 중요한 시기에 학교에 대한 관심 부족이 문제였다. 이후 2000년대 중반 신재단 교체 이후에는 학교를 대놓고 탄압하기도 했다.[8] 2020년대에 들어서는 한 학년당 60~80명 수준이 되었다.[9] 이동없이 각 반에서 방송으로 진행[10] 3학년 재학생만 실시[11] 이런점에서 과거 광성공고 탁구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12] 얼마나 오죽했으면 많은 사람들은 브니엘 하면 브니엘남고의 SKY대, 의치한 진학률 아니면, 브니엘여고의 테니스부를 연상했을 정도였고 브니엘여고 테니스부는 브니엘여고의 알파이자 오메가 였었다.[13] 학교 재단 자체가 부도났을 지경인데 테니스부를 도저히 살릴수 없었을 것이다.[14] 워낙 갑자기 해체되어서 정확한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15] 참고로 부산에서 폐교 권고 기준이 고등학교가 300명 이하인데 그 폐교 권고 기준에 들어가버린 것이다.[16]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부산에서 평준화 일반고 최초로 100명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17] 실제로 주변에는 화훼, 당근, 버섯 재배 같은 농업 종사자들도 많이 있으며 학부모들 중에도 농업종사자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18] 주로 양산물금신도시의 고등학교로 전학가면서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특히 물금신도시는 주변 교육 환경도 괜찮으면서도 읍,면 단위 지역(물금읍)이라 농어촌특별전형이 되는 이점이 있다.[19] 매년 학교 재량으로 다르게 지정한다.[20] 오히려 브니엘고와 브니엘여고를 폐교하고 서명고모전고를 개교하는게 매우 압도적으로 이득이다. 엄청난 과밀로 악명높은 명호고등학교가 있는 명지오션시티와 비정상적으로 작게 지어진 신정고등학교, 신정고등학교가 수용하지 못한 학생들을 수용하기도 벅찬 정관고등학교가 있는 정관신도시에 고등학교가 한 곳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인데 위치도 극악무도하게 좋지 않아서 학생들을 모으기도 매우 힘든 브니엘고, 브니엘여고를 폐교시켜서 학교 총량제의 쿼터 2개를 확보한다면 명지국제신도시와 정관신도시에 고등학교를 1개씩 개교하면 그 지역에 사는 학생들을 수용시킬 수 있으니 과밀 현상은 줄고 금정구에 있는 남은 고등학교들도 폐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21] 오히려 4학군 + 여고 + 적은 학생수 때문에 수시 위주의 현행 대입 체계 하에서는 내신 지옥으로 지역내에서 유명하게 되었다.[22] 여담이지만 부산시 교육청은 2021년 까지 당장 3년 이내에 고등학교 2개를 폐교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지만,[38] 다행히도 관선이사 파견 때문인지 1차 통폐합 대상은 피하였으나 2021년 이후, 아니 정이사 선임 이후의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23] 최근 지구촌고등학교와 금성중학교의 폐교가 결정되었고 2019년부터 근처에 있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신대원의 폐지가 결정되면서 최근들어 부산지역의 사학들이 전체적으로 폐교 및 구조조정 기조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24] 현재 학생 수를 고려할 때 신설 필요 1순위는 각각 명지국제신도시의 서명고등학교와 정관신도시의 모전고등학교이다. 2순위는 명지오션시티의 오션고등학교와 에코델타시티의 강동고등학교이다.[25] 하지만 신도시로 이전하는 비용만 해도 최소 수백억대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26] 게다가 이전을 추진한다고 해도 울산 홍명고 사례 처럼 그쪽 지역에서 받아주지 않을 우려도 있다.[27] 평준화 전환 당초부터 기피학교라서 학급수, 학생수가 타 학교 보다 적기는 했어도 2000년대 초반 까지는 내신을 절대평가인 수우미양가 방식으로 매겼기에 내신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28] 또한, 당시에는 정시위주의 대학입시였기 때문에 기피학교라는 점이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다.[29] 사실 그때는 학생수도 학년당 250명 정도로 제법 있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보다 규모가 작은 18학급이라 해도 내신 산출에 지장갈 수준이라고 볼 정도는 아니었다고.[30] 특히 양산 물금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금정구의 학령인구들이 지속적으로 물금신도시로 대거 빠져나간것도 타격이 되었다.[31] 1980년대 당시 평판이 안좋은 고등학교인걸 생각하면 교복 재도입이 상당히 빨랐던건 정말 의외의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교복 재도입이 가장 빠른 축에 속한 고등학교였다. 당시 평판이 좋은 고등학교들 중에도 1990년대 초중반 까지 교복을 재도입 안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생각하면 말이다.[32] 평준화 적용 이전 시금치라는 별명은 덕○여고, 부○여상 같은 근처 고등학생이나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조롱의 의미로 불리웠지만 구서동 이전 이후에는 평준화로 전환되어 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조롱의 의미는 없어지고 자조적인 뜻으로 쓰이고 있다.[33] 시금치라는 별명이 있기 전 검은 교복 쓰던 시절인 1975~1982년에는 야순이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34] 사진의 경우는 타 학교 야간부 학생들도 섞여 있을 수 있으나, 사실 당시 부산시내 여자고등학교 교복은 인문계, 실업계, 주간부, 야간부 막론하고 정부 시책으로 학교는 달라도 모두 같은 형태로 하는 바람에 육안으로는 구별이 안되었다. 인근의 계성여상, 부산여상 또한 당시에는 교복이 같았다. 이는 당시 남자고등학교들이나 중학교들도 마찬가지.[35]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만약 실현되었다면 지금과는 학교 위상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36] 반면 같은 1975년에 개교한 삼성여자고등학교는 총동문회가 존재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자랑스러운 동문이라고 목록도 작성되어 있다. 당장 같은 4학군의 개교 시기가 1년 밖에 차이가 안나는 동인고등학교도 총동문회가 있고, 수년 늦게 개교한 동천고등학교도 총동문회가 있다는걸 생각하면 굉장히 특이한 사례다. 그리고 야간제 전용 학교라도 1975년 기준으로 여성이 야간제 고등학교라도 나오면 지금의 전문대학~4년제 대학 졸업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중졸 학력도 굉장히 흔했었다.[37] 연산동 시절 야간제 브니엘여고 출신들은 2020년대 기준으로는 대부분 40대 중반~60대 초반의 중년 이상의 연령대로 현재도 양산 공단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물어보면 대부분 모교에 대한 애착이 없고 심지어 부끄러운 출신 학교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아서, 이런 이유로도 당시의 출신 동문들이 뭉쳐서 총동문회를 만들만한 구심점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