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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7 22:23:47

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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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문화재 및 유적
3. 초조대장경과의 연관성4. 교통정보

1. 개요

한자 : 符仁寺 또는 夫人寺 / 로마자 : Buinsa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 (신무동 356-1) 팔공산 남쪽 중턱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한다. 대략 동화사와 파계사의 중간 쯤에 있는데 동화사가 좀 더 가깝다.

2. 역사

기록이 없어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절 내부에 사당인 선덕묘(善德廟)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1]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판각은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은 일본 교토 난젠지(南禪寺)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침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현재 부인사는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 터에 중창한 것이다. 이후 1986년대 연성타 스님주지로 부임하면서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1930년대 중건된 선덕묘에서는 지금도 음력 3월 보름, 동네 사람들과 승려들이 함께 선덕제를 지낸다.

2.1. 문화재 및 유적

문화재로는 신라 시대의 당간지주, 쌍탑(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석등(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등이 있다. 한편 초조대장경 판각지 증거가 발견되어 동구청장이 부인사지 국가지정사적 승격 및 석조 수각 보물 지정 등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다음 문단에 나오듯 초조대장경 제작 증거가 발견된 중요한 유적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많은 땅이 민간 소유로 넘어가 조사가 어렵다. 원래 부지로 추정되는 22만여 제곱미터의 10% 정도만 발굴돼 있고 나머지는 농경지라서 발굴은 커녕 유구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3. 초조대장경과의 연관성


초조대장경을 이곳에서도 만들었다는 기록과 간접증거가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주장들이 있었는데 2024년 발굴조사에서 한지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절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의 석제 수조와 수로가 발견돼 이곳에서도 초조대장경이 제작됐다는 것이 더욱 확실시되었다.

4. 교통정보

시내버스로는 주말,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팔공3번이 유일하다. 따라서 평일에는 절대 시내버스로 들어올 수 없으며 거기다 팔공3번은 3월부터 11월까지 주말, 공휴일만 운행하는 노선이라 12월 초일부터 다음 해 2월 말일까지는 시내버스가 아예 없다. 아니면 팔공1번 신무동행을 타고 신무교 정류장에서 10~15분 정도 걸어와도 된다.[2]

이 사찰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입구 부근에 자가용을 위한 작은 주차장이 있다. 다만 주 도로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사잇길이 협소하므로 운전자들이 주의해야 한다.


[1] 임시 관청[2] 평일이나 12월~다음해 2월 사이에는 이 방법 외에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