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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데크피르몬트 후국 Fürstentum Waldeck und Pyrmont | |||
국기(~1830) | |||
국기(1830~) | 국장 | ||
위치 | |||
1712년 ~ 1918년 | |||
역사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프랑켄 공국 | 바이마르 공화국 | ||
지리 | |||
위치 | 독일 헤센 | ||
수도 | 아롤젠 | ||
인문환경 | |||
언어 | 독일어 | ||
종교 |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 ||
민족 | 독일인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입헌군주제 | ||
국가원수 | 후작 |
[clearfix]
1. 개요
발데크피르몬트 후국은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후국(Fürstentum)[1]이었으며 수도는 아롤젠(Arolsen)이었다.발데크피르몬트 후국은 서로 떨어져 있는 2개의 월경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남쪽에 있는 상대적으로 큰 월경지가 발데크, 북쪽에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월경지가 피르몬트였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1,121 km², 인구는 5만 9천명 가량이었다.
2. 약사
발데크피르몬트 후국의 시작은 1180년에 발데크 백국으로 출발했으며, 1349년 제국백국이 되었다. 1625년 피르몬트를 얻어 발데크-피르몬트 제국백국이 되었으며, 1655년에 발데크에서 아롤젠으로 천도했다. 1712년에 카를 6세의 허가로 후국(Fürstentum)으로 승격되었고[2],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1918년 발데크 공이 퇴위하였고, 이듬해 자유주가 되어 바이마르 공화국을 구성하게 되었다. 1921년 북쪽의 피르몬트가 주민투표를 통해 프로이센 자유주 산하 하노버 주로 흡수되어 발데크 자유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29년 발데크 자유주 역시 주민투표를 통해 프로이센 자유주의 헤센 주로 흡수되면서 소멸하였다.
3. 왕사(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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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안톤 울리히 | 카를 아우구스트 | 프리드리히 카를 아우구스트 | 게오르크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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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데크피르몬트 백작 | }}}}}}}}} |
후국 승격 이후
- 프리드리히 안톤 울리히 (1712 ~ 1728) - 즉위한 해에 공작령으로 승격.
- 카를 아우구스트 (1728 ~ 1763)
- 프리드리히 카를 아우구스트 (1763 ~ 1812)
- 게오르크 1세 (1812 ~ 1813)
- 게오르크 2세 (1813 ~ 1845)
- 게오르크 빅토어 (1845 ~ 1893) - 네덜란드의 에마 왕비와 올버니 공작부인 헬레네의 아버지로 빌헬미나 여왕, 카를 에두아르트, 애슬론 백작부인 앨리스의 외할아버지.
- 프리드리히 (1893 ~ 1918)
3.1. 공위요구자
- 프리드리히 (1918 ~ 1946)
- 요시아스(1946 ~ 1967)
- 비테킨트 (1967 ~ 2024) - 1936 ~ 2024. 前 서독 공군 중령
- 카를 안톤(1991 ~ )[3]
- 2명의 남동생이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마지막 공세자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1896-1967)는 1930년 무장친위대에 들어가 1936년 상급집단지도자(Obergruppenführer)까지 올라갔고, 이 때문에 나치 패전 후 부헨발트 재판에서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20년으로 감형되지만 건강 문제로 3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래도 요시아스와 두 남동생의 자손이 번성해서 1900년에는 계승권자가 그들 세 형제뿐이었지만 지금은 남계 자손이 30명 가까이로 늘었다. 참고로 요시아스는 올덴부르크 대공국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니콜라우스 폰 올덴부르크의 막내여동생 알트부르크과 결혼했는데 니콜라우스는 반대로 요시아스의 유일한 여동생인 헬레나와 결혼했다. 즉 남매가 겹사돈이다. 흥미롭게도 니콜라우스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사실상) 1남 3녀 중 유일한 아들이였고, 아내 헬레나는 반대로 3남 1녀 중 고명딸이였으며 슬하에 아들이 딸보다 많다.(6남 3녀) 반대로 성별이 바뀐 요시아스와 알트부르크는 슬하에 아들보다 딸이 더 많다.(1남 4녀)
4. 여담
[1] 영어로는 Prince가 되는데 영국의 Prince가 Duke와 동격이라 동일하게 공작으로 번역되고 프랑스의 Prince가 Duke보다 높아 친왕 혹은 대공으로 번역되는 것과 다르게 독일의 Fürst(=Prince)는 Duke보다는 낮고 백작보다는 높은, 그러나 후작과는 또 다른 작위이기에 번역명이 난잡하다. 일단은 후작으로 번역한다.[2] 현재까지 남아있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제후국인 리히텐슈타인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17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윤허로 후국(Fürstentum)의 지위를 얻어 리히텐슈타인 후국이 되었다.[3] 2013년 마인강에서 수영하다 다쳐 다리를 못 쓰는 지체장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