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S NAVY L-8 |
1. 개요
유령 비행선의 미스터리(Mystery of the "Ghost Blimp", 고스트 블림프)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8월 16일, 미합중국 해군 제32 비행선 전대 소속의 L급(L-class) 비행선 L-8이 샌프란시스코 인근 해안에서 초계임무를 하던 도중 교신이 두절되고 실종되어, 이후 승무원들이 사라진 채 추락한 사건이다.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목격자들도 많았으며 당시 사건을 찍은 사진들도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승무원들이 실종된 이유는 미스터리다.
2. L-8의 역사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군은 미국 선박에 대한 통상파괴작전을 벌여 6척의 선박을 격침시켰다. 또한 1942년 2월 24일에는 일본 해군 잠수함 이 17이 캘리포니아 주 산타 바바라의 엘우드 제유소를 포격하여 미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뿐만 아니라 대서양에선 나치 독일의 유보트들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잠수함들을 초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 해군은 굿이어 사에서 만든 민간용 비행선들을 사들여 비행선전대를 만들었다. 이들 비행선들은 주로 미국 해안가에 배치되어 일본 해군과 크릭스마리네의 잠수함에 대한 초계활동을 벌였다.L-8은 이러한 목적으로 활동한 비행선 중 하나였으며 특히 둘리틀 특공대의 도쿄 공습 때 예비부품을 항공모함 호넷에 운반하여 유명해졌다.
3. 실종
어니스트 드와이트 코디 중위 | 언신 찰스 엘리스 아담스 소위 |
1942년 8월 16일 오전 6시 3분 L-8은 샌프란시스코의 트레저 섬을 출발하여 금문교를 지나 페럴론 섬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초계임무에 나섰다. 작전시간은 대략 4시간에서 4시간 반으로 예상되었으며 당시 기후는 양호한 상태였으며 비행선 역시 사건 발생 4일 전에 있었던 점검 결과 양호한 상태였다.
7시 38분 L-8은 페럴론 섬에서 동쪽으로 4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무전을 보냈다. 그리고 4분 후 수상한 기름띠를 발견했으며 연막탄 2개를 투하했다는 보고를 보낸다. L-8이 연막탄을 투하하는 바람에 근처를 지나던 리버티선 알버트 갤러틴과 트롤 어선들은 일본 잠수함이 나타난 줄 알고 신호를 보내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한편 페럴론 섬에선 7시 42분의 보고를 마지막으로 L-8과 교신이 끊겼지만 당시에 그러한 무전교신의 중단은 종종 있었던 일이었으며 L-8의 연료도 충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8시 50분이 되어서도 계속 교신이 끊긴 상태이자 급히 2기의 OS2U 킹피셔 수상기를 파견한다. 10시 49분 수상기 1기가 L-8 비행선을 발견하였다. L-8은 살라다 해변에서 서쪽으로 3마일 떨어진 곳에서 계속 상승중에 있었다. 킹 피셔 수상기의 조종사는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해서인지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몇 분후 미합중국 국무부 직원 리처드 캄이 산 마테오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L-8을 발견하여 사진을 찍었으나 이 사진은 미군에 의해 압수당했다. 이후 11시 15분 경 샌프란시스코 오션 해변에 L-8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샌프란시스코 올림픽 클럽의 레이크 사이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사람들 역시 L-8을 발견하였다.
4. 추락
추락 중인 L-8 |
추락한 L-8 |
샌프란시스코 상공을 떠다니던 L-8은 이윽고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떨어진 댈리 시에 추락하였고 그 과정에 주택 여러채의 지붕이 파손되었다. L-8이 추락하자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소방서에 신고하였고 곧바로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승무원을 구출하기 위해 곤돌라의 문을 부수고 진입했으나, 어디에도 코디와 아담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사결과 L-8의 엔진은 정상이었으며 연료탱크에는 4시간 분의 헬륨이 남아 있었다. 다만 배터리가 다 떨어지고 연료의 일부를 버린 흔적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비행선은 서둘러 부력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연료를 버릴 이유가 없기 때문에 L-8이 연료 일부를 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모자와 기밀문서들도 남아있었다. 심지어 반쯤 먹은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도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미 해군은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으나 결국 발견에 실패하였고 두 사람의 가족에게 실종 통보를 하였다. 두 사람이 7시 42분의 무전 교신을 끝으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종되고 이후 L-8은 표류하다가 추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7일간의 조사결과 비행선은 일본군에게 공격 받은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려졌다. 때문에 두 사람의 실종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들이 나왔으나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없었다. 결국 사건 발생 1년 후 두 사람은 사망처리 되었다.
전시중인 L-8의 곤돌라 |
L-8은 이후 수리를 받고 훈련용 비행선이 되었다가 전후 민간에 넘겨져 스포츠 경기 중계용으로 1982년까지 사용되었다. 그리고 현재 곤돌라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의 해군 항공박물관에 전시 중에 있다.
5. 가설
워낙 미스터리한 사건이기에 이 사건은 여러 가설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일본군 공격설: 일본군이 비행선에 대공공격을 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7일간의 조사 결과 비행선에서는 어떠한 공격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 스파이설: 두 탑승자는 사실 일본군의 스파이였으며 일본 잠수정과 접선하기 위해 비행선을 버렸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이 주목받은 것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 당시 엔지니어 한 명이 더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무게를 줄인다는 이유로 해당 엔지니어는 탑승하지 않은 후문이 있었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엔지니어가 접선에 방해될 것이기에 태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 UFO설: 당시는 로스앤젤레스 전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외계인들이 복수로 승무원들을 납치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당연히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 잠금장치 오류설: 비행선의 잠금장치가 오류를 일으켜 승무원 하나가 떨어졌고 다른 승무원이 떨어진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둘다 죽었다는 설. 하지만 해군의 방침이 ‘배를 절대 버리지 마라’인 것을 생각하면 군인들이 해군 방침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기에 어폐가 있는 주장이다.
- 프래깅설: 잠금장치 오류설의 연장선. 아담스 소위는 코디 중위보다 먼저 입대했으며 나이도 훨씬 많았으나 계급은 코디 중위보다 낮았다. 이 때문에 아담스 소위가 코디 중위를 못마땅하게 여겨 둘이 몸싸움을 벌이다가 잠금장치가 풀리며 둘다 바다로 떨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현재까지도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