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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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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인3. 문제점4. 해결책 논의5. 사례6. 여담7. 관련 문서

1. 개요

무적자()란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정부기관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유령 아동'이라고도 한다. 1970년대부터 계획생육정책을 시행하던 중국에서는 이들을 '헤이하이쯔(흑해자, 黑孩子, 어둠의 자식들)'라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무적자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를 내지 않는다. 헤럴드경제가 단독으로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2020년 3월까지 전국 기초자치단체 정보공개창구에서 집계한 무적자는 353명이다. # 이 중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경우가 73.9%(260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생아인 경우가 40건(11.4%)으로 뒤를 이었다.

2023년 6월 중순 기준으로 정부의 전수조사 결과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병원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는 전국 2,236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일부는 생사 여부 및 소재가 파악됐고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 아이가 1,400명으로 나타났으며 나머지 1,200여 명은 행방을 찾고 있다.

유령 아동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인 수원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가 6월 28일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 조사에 착수하면서 경찰에 수사 의뢰된 사건은 25건으로 늘어났으며 이 가운데 아직 7건에서 아이들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7월 18일 기준 1025명은 원가정에서 생활하거나 친인척 양육 혹은 입양 등의 형태로 살아 있으며 249명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고 814명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2023년 유령 아동 사태 문서 참고.

2. 원인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문제점

개인정보를 제공해야만 받을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특히 국가가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는 많은 혜택들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조차 매우 어려워진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아예 안 해 버리고 나이가 찼는데 학교에 못 가건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건 그냥 방치해 버리는 막장 부모도 있다.

인구 파악에 구멍이 생기며 최대의 문제는 무적자들은 범죄에 희생되더라도 이를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 해결책 논의

실제로 존재하는 아이가 출생신고가 안 되어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리는 황당한 일을 막기 위해 아동인권단체에서는 병원이나 조산사가 의무적으로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는 보편적 출생신고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서는 미혼모들이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해 병원이 아닌 곳에서 출생하거나 아기를 유기하는[1]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수원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신호탄이 되어 2023년 유령 아동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가 시행되었다. 더구나 상간남의 아이까지 제 가족입니까? 사건에서처럼 친생추정 조항 때문에 법적으로만 부모지 생물학적으로 생판 남남인 사람에게 출생신고를 사실상 강제화하고 출생신고를 안 한 책임을 무는 것은 억울하다는 평도 있다.[2]

양측에 대해 모두 비판하자면 출생신고가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보완책 중 하나로서 수직적 가족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양측 모두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혼모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수직적 가족관계의 임의적 단절이며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수직적 가족관계의 단절이 현행법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서울고법 2016나2064402). 수직적 가족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소송에 의해서나 가능하다(예: 맥컬리 컬킨, 호주 사례).

실제로 친족관계가 국적 등 거의 사회 전 분야와 연관되는 만큼 수직적 가족관계에 대한 단절청구(=친족관계 소멸청구) 소송이 도입되지 않는 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 호주 등 외국에는 친족관계를 소송에 의해 소멸시킬 수 있는 법률조항이 있고 한국에는 없다는 점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사실 수직적 가족관계를 유지하고도 대한민국의 아동 학대를 해결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사회가 문제다.

5. 사례

기사에 따르면 2017년에는 태어난 지 무려 18년 만에 겨우 출생신고를 한 사례까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좀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법적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아니라 동거남의 아이임을 법적으로 입증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링크 이러한 경우는 그나마 고의는 아니고 무지한 탓이며 다행히도 엄마와 친아빠(동거남)가 잘 먹이고 키워 신체적 학대를 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출생신고 안 하고 학교도 안 보내는 것 역시 엄연히 정서학대이므로 아이가 무사히 지낸다고만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정말 고의로 출생신고를 거부한다면 속수무책이다.

빚 문제로 쫓겨 다니는 상황에서 무려 10남매를 낳은 어느 부부는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여덟째를 제때 출생신고하지 못했다고 한다. 광주 7남매 미취학 방임 사건 문서 참조. 기사 기사가 보도된 2016년 시점에서 25살인 둘째를 비롯한 7명의 자녀들은 아예 태어난 뒤 그때까지 평생 학교라고는 문턱조차 밟아 보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출생신고가 안 되었던 아이 중 가장 큰 아이는 위의 사례처럼 태어난 지 18년 만에야 출생신고가 되었다고 한다.

2021년 12월 제주시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정규교육 및 병원 진료나 치료를 단 한 번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신분증이 없어서 비행기나 배도 타 보지도 못했으며 대부분 집에서만 생활을 해 온 23세(1998년생), 21세(2000년생), 14세(2007년생) 세 자매가 발견됐다. 자세한 건 제주 유령 세 자매 사건 문서 참조.

섬노예인신매매 피해자의 신분이 무적자인 경우가 있다. 기사

2023년에는 2023년 유령 아동 사태가 터졌다.

6. 여담

반대로 국가보조금을 부정 수령하기 위해 실제로 낳지도 않은 아이를 낳은 것처럼 보증인 2명을 내세워 거짓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이 때문에 보증인을 세워서 하는 인우보증인 제도는 2016년 11월 30일자로 폐지되었다.

7. 관련 문서


[1] 이로 인해 산모와 아기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도움을 받지 못해 죽어 버릴 수도 있다. 의료진의 간단한 도움만 있으면 별일 없이 해결될 상황이 양쪽 모두의 죽음이라는 참혹한 결말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병원이나 병원이 아니어도 타인의 도움을 받는 상태에서 산모사망률은 10만명 당 9명 정도지만 아무런 타인의 도움 없이 산모가 아무의 도움도 없이 혼자 있을 때의 산모사망률은 10명 당 1~2명 꼴에 달한다.[2] 이 사건은 생모가 출산 후 사망해 버려서 출생신고를 할 사람이 법적 남편밖에 없어 문제가 되었지만 살아 있었어도 곤란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에도 나온 사례로, 사실상 이혼 상태인 바람난 아내가 내연남의 자식을 둘이나 낳고 그냥 출생신고해 버려 자신의 아이가 아닌 애들이 자기 호적에 자식으로 등록되어 버린 남편이 있었다. 결국 법적 남편이 생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친생자관계 부존재 소송(친생부인의 소)를 해야 한다. 안 그러고 있는 채로 2년이 지나면 자기 자식으로 인정한 것이 되어 아내가 양육비를 청구해도 할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여자 쪽에서도 '이 아이는 남편의 아이가 아닙니다'라며 친생부인 소송을 내는 건 충분히 가능하지만 무책임하거나 이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사망해 버렸으면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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