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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 이스라엘 |
1. 개요
모로코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모로코는 2010년대 중후반 들어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반이란 동맹이 추진되기 이전까지 아랍권 내에서 유달리 친이스라엘 외교를 하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2020년대 기준 이스라엘과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 사이의 반이란 동맹 관계가 추진되고 이스라엘 보이콧이 허물어지면서, 모로코가 아랍권에서 독보적인 친이스라엘 국가라고 하기도 애매해졌다. 친밀한 것은 정부차원이지 모로코인들은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1]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프랑스 식민시절 유대인들은 아랍 무슬림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누렸으나 모로코의 독립 이전 이미 이들 중 상당수가 프랑스나 팔레스타인 각지로(이스라엘 건국 이후에는 이스라엘로) 이민한 역사가 있다. 모로코내 세파르딤 유대인, 베르베르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했다.[2] 1949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임에도 모로코 자치정부가 이스라엘 건국을 축하했는데, 당시 모로코 자치의회 현지인 의원이 절반 가까이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모로코는 1958년 아랍동맹 나라로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하지만 공식적인 외교 관계는 좋을지 몰라도 모로코 내에서도 국민감정은 이스라엘에 대해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본래 예루살렘에는 모로코인 거주 구역이 따로 지정되어 있었다가 6일 전쟁을 계기로 파괴된 역사가 있다.
예루살렘의 모로코인 거주 구역의 역사는 12세기 말, 예루살렘을 십자군으로부터 탈환한 살라흐 앗 딘의 장남 알 아프달 알리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모로코를 비롯한 북서아프리카와 안달루스의 무슬림들은 말리키파 법학파를 믿어서 법 적용이 여타 예루살렘의 무슬림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 시대 예루살렘 시가지 구역 설정 기준으로는 무슬림 구역의 남쪽에, 유대인 구역과 성전산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마그레브(북서 아프리카)와 안달루스(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무슬림들이 거주하였다. 하지만 6일 전쟁 직후에 이스라엘 군부가 통곡의 벽 광장의 터를 닦기 위해서 모로코인 구역을 싸그리 철거했으며, 이때 많은 이슬람 유적들이 파괴되었다. 대표적으로 아이유브 왕조 대에 지어진 셰이크 이드 사원과 무함마드가 천국 여행을 할 때에 탔던 말 부라크를 매어 두었다는 곳에 세워진 작은 사원, 맘루크 왕조 대에 지어진 파크리야 마드라사 등이 있다. 곧이어 모로코인 공동체는 예루살렘의 무슬림 구역이나 난민 캠프로 흩어졌고, 일부는 모로코 국왕 하산 2세의 초청으로 망명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들은 없어진 구역의 무크타르(촌장)을 선출한다고 전해진다.
모로코 왕국이 아직 프랑스 식민지이던 시절 1948년 12월, 아프리카 및 아랍 이슬람권 지역으론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했다. 독립한지 얼마 안 돼 1958년 아랍연맹 국가로서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모로코 왕실도 닥치고 이스라엘만 두둔하였다가 아랍연맹에게 축출된다든지 여러 불이익이 있는 상황이라 제4차 중동전쟁이라든지 여러 이스라엘 전쟁에 아랍 진영에 편에 서 지원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다만 이스라엘과 실질적인 군사적 충돌은 없었기에 이스라엘도 이런 파병에 대해서 입다무는 편이다.결국 2000년 아랍 동맹의 반발로 이스라엘과 단교했는데 이스라엘이나 모로코 측 대사들이 서로 안타깝다는 의견을 표시하였다.
2.2. 21세기
상술한 것처럼 2000년 모로코와 이스라엘의 국교가 단절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단교된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국적 인물은 모로코 입국이 가능하고 이스라엘도 모로코 국적 입국은 다른 아랍 국적보다 더 쉽게 해주듯이 여전히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2020년 12월 10일에 모로코와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재로 재수교에 합의했다.#영문 위키피디아 정보 모로코는 이스라엘과의 수교 댓가로 서사하라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았다.#
2021년 8월 21일에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이 모로코를 처음 방문했다.# 11월 24일에는 모로코는 아랍권 국가로는 최초로 이스라엘과 국방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
2022년 2월에는 양국간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4월 16일에 모로코 외교부는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순례자들과 이스라엘 경찰의 충돌로 최다 160명의 무슬림이 부상을 당한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을 강력히 비난했다.#
2023년 7월 이스라엘이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영유권을 공식 인정했다.#
3. 문화 교류
모로코는 중세 시대 알안달루스의 영향으로 전근대 기준으로 유대인에게 매우 관용적인 사회였고, 유대인들의 사회적 진출도 쉬웠다. 오래전부터 유대인들과 역사적으로 옛 왕조들 휘하에서 유대인 자치구역[3]까지 인정했으며, 유대인이 고위대신에 오르기도 하며 유대인들을 매우 우대했던 유산이 남아있다. 자세한 내용은 세파르딤 문서 참조. 사디 왕조는 유대인 자치구역을 따로 배정했는데,# 이러한 자치구역은 자치권이 주어지고 자유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므로 중세 유럽의 수용시설로서의 유대인 게토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에도 모로코에는 유대인 인구가 제법 남아 있다. 현재도 모로코 왕국 내에는 유대계 후손들이 고위직 관료로 여럿 등용될 정도이며 이들은 모로코와 이스라엘 양국의 외교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이스라엘에도 모로코 출신 유대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4] 이들은 종종 세파르딤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아랍어가 모어라는 이유로 미즈라힘으로 분류될 때도 있다. 물론 이스라엘 내 미즈라힘 차별 분위기[5] 때문에 모로코 출신 유대인이라고 대놓고 내세우는 경우는 드물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모로코 요리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런 모로코식 코셔 푸드 레스토랑들은 대개 모로코 출신 유대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4. 교통 교류
양국은 20년 가까이 미수교국이었던 영향으로 직항 항공노선이 없었다. 그러다가 2020년 9월 12일에 이스라엘의 방송국이 이스라엘-모로코 직항노선이 생길 수 있다고 보도했다.# 12월 10일에 양국이 수교하기로 합의하면서 이스라엘-모로코 직항노선이 개항했다.# 2021년 7월 엘알이 텔아비브-마라케시/카사블랑카 노선에 취항하는 등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5. 대사관
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모로코는 텔아비브에, 이스라엘은 라바트에 대사관을 재설치했다.6. 여담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전에서 포르투갈 관중들이 이스라엘의 국기를 흔들자 모로코 관중들이 아주 화내며 대응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포르투갈 내에서도 모로코와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니고 왜 이스라엘 국기 흔드느냔 비아냥이 많이 나왔었다.[6] 그리고 모로코가 2020년 12월에 이스라엘과 재수교한다고 밝히면서 아랍권에서 이스라엘과 수교한 나라들이 조금씩 늘어났다.#7. 관련 문서
[1] 오히려 모로코인들은 월드컵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거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종종 벌어지며 친팔레스타인 성향을 보인다.[2] 이스라엘내에는 베르베르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다.[3] 이스라엘 건국 이후 대다수가 이스라엘로 이민갔으나 다시 되돌아와 자치구역에서 여전히 사는 유대인도 있다. 하긴, 이스라엘과 원수 같아야 할 시리아조차도 대대로 사는 유대인들이 남아있다.[4] 오늘날 이스라엘인 중 모로코 유대인 혈통을 물려받은 인물 중 가장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인물로는 이스라엘의 패션모델 실로미트 말카를 들 수 있다.[5] 정확히 말하자면 아랍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 중 예멘 유대인들이 흑인 비슷한 외양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피부색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 내 반아랍 감정이 강하기도 하고 해서 괜히 아랍어가 모어라는 것을 공개해봤자 좋을 것은 없다.[6] 우습게도 포르투갈의 이웃인 스페인이 영토 및 해상 영토 문제로 모로코랑 군사적 충돌 직전을 벌이고 양 누리꾼끼리 서로 디스하는 등 안 좋은 면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