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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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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기원전 7세기 페니키아 상인들이 지브롤터 해협과 서지중해 무역로에 가까운 입지를 활용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2세기경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카르타고 세력이 쇠퇴하면서 루사디르는 마우레타니아 왕국에 편입되었고, 서기 42년 로마의 마우레타니아 팅기타나 속주에 포함되었다. 680년경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에 진출했을 때 멜리야 지역은 정복 과정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며, 페스와 틀렘센 사이의 전쟁으로 주민들이 떠나면서 폐허가 되었다. 927년 코르도바 토후국의 칼리프 아브드 알 라흐만 3세가 말라가에서 파견한 함대를 통해 멜리야를 점령했다. 당시 멜리야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으며 메디나는 쿠보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후 건설된 요새들 때문에 안달루스 시대의 유적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근세에는 15세기 북부 모로코에서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의 세력이 확대되었고, 1497년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의 명령을 받은 페드로 데 에스토피냔이 멜리야를 점령하면서 카스티야 왕실의 직할령이 되었다. 1767년 스페인과 모로코는 평화·통상 조약을 체결했으나, 1774년 모로코 술탄 무함마드 3세가 영국의 지원을 받아 멜리야를 포위했으며, 스페인군은 후안 셜록이 지휘하여 이를 방어했다. 1780년 아란후에스 조약이 체결되어 스페인과 모로코 항구 사이의 자유무역이 보장되었다.
19세기에는 1860년 아프리카 전쟁을 끝낸 와드라스 조약을 통해 멜리야와 모로코 사이의 경계가 설정되었고, 1863년 멜리야·세우타·차파리나스 제도가 자유항으로 지정되었으며 1864년부터 민간인의 자유로운 정착이 허용되었다. 20세기 초 알헤시라스 회의의 결과 프랑스와 스페인이 각각 모로코에 보호령을 설치하면서 멜리야는 스페인령 모로코의 군사·경제적 중심지로 발전했고, 1909년 멜리야 전쟁과 1911~1926년 리프 전쟁을 겪었다.
특히 리프 지역의 철광석과 납 광산 개발은 도시의 경제성장을 촉진했으며, 멜리야 신시가지에는 근대주의 건축물이 대거 건설되어 바르셀로나 다음으로 많은 스페인 근대주의 건축물을 보유한 도시가 되었다. 1921년에는 스페인군이 연례 전투에서 대패하는 연례 참사가 발생했으며, 리프 전쟁은 1926년까지 이어졌다. 1936년 7월 17일 멜리야에서 일어난 군사 반란은 스페인 내전으로 이어진 군사 쿠데타의 최초 움직임이었다. 1956년 스페인과 모로코가 공동선언을 체결하면서 스페인령 모로코 보호령이 종료되었고, 멜리야는 스페인 영토로 남았다.
3. 영토 분쟁
| 영토 분쟁 | |
| 실효 지배 | |
| 영유권 주장 | |
현재 모로코 측에서 이 지역과 세우타의 영유권을 주장하나 스페인은 모로코라는 국가가 성립하기 전부터 우리 땅이었다면서 무시로 일관한다. 좀 더 나중에 먹은 스페인령 모로코는 20세기 들어 탈식민지가 대세가 되자 비교적 순순히 돌려줬지만 1497년부터 5세기 넘게 실효 지배한 이곳은 나머지 모로코 지역과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현지에 거주하는 스페인인 시민들 대부분도 모로코가 종교, 문화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다른 이슬람 국가에다 경제적으로 스페인보다 더 떨어진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모로코로의 귀속을 반대, 스페인령 잔류를 주장하고 있다.
큰 갈등이 있지는 않으나 2007년 에스파냐 국왕 내외가 여기를 방문했을 때 모로코에서 대사를 소환하는 등 나름 영유권 주장을 위한 조치를 계속 취하고 있다.
스페인이 영토로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크게 중요성이 떨어진 데다 경제마저 쇠락해 그다지 전망이 밝지는 않다. 사실 유럽이 북아프리카 지역을 식민 지배하던 시기가 끝났고, 적대적인 모로코에 둘러싸였으니 도시 확장 등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 물론 가까운 곳에 나도르라는 도시가 있기는 하지만 대도시는 아닌 데다가 주민들의 상당수도 모로코에서 흘러든 주민들이 차지하여 모로코의 도시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식량이나 필수품도 모로코에 의존하므로 모로코가 마음만 먹으면 말려 죽일 수 있다. 다만 모로코 측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스페인으로 통하는 길목이라 경제적으로 활용한다.
4. 경제
멜리야는 1863년부터 자유항이었다. 솅겐 조약에는 속하지만 유럽 관세동맹에는 속하지 않으므로 상품 수입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2020년에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의 국경이 폐쇄되어 상품의 통행만 허용되었으며 이로써 모로코 짐꾼들이 수행하던 비공식 무역이나 밀수가 종식되었다. 이 폐쇄는 또한 약 5,000명의 모로코 국경 노동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5. 사회
5.1. 난민 문제
유럽 난민 사태의 영향으로 난민들이 유럽으로의 밀입국 또는 망명하는 주요 루트로 활용해 스페인으로서는 골치다. 가끔 스페인에서 모로코에 책임이 있다고 따지는데 막상 밀입국자들은 모로코에서도 골칫거리이기 때문에 모로코 측은 스페인의 태도를 비웃는다. 유럽으로 가지 못하자 모로코에 남아 기회를 노리다 보니 빈민가를 이루기도 하고 온갖 범죄에 노출되거나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3]
2022년 6월에 멜리야-모로코 국경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6. 정치
| 멜리야 시의회의 원내 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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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스 2석 | [[우리는 멜리야|우리는 멜리야 1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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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 의원은 폐쇄 명부 비례대표제(D'Hondt 방식, 5% 봉쇄조항)을 통해 선출된다. 시의회 의장을 겸하는 시장은 의원 과반수 득표자를 우선으로 하며 그렇지 않으면 최다 득표자로 한다. 동점자인 경우 지명된다.
7. 교통
스페인령 모로코 시기에는 나도르로 통하는 1,000mm 협궤 철도가 있었으나 오래 전에 철거되었다. 멜리야 바로 남쪽인 나도르 항에 가야 철도를 탈 수 있다.스페인령 모로코 시기 공항은 남쪽 도시 나도르 알 아루이 공항을 이용했으나, 해당 지역이 모로코에 넘어가게 되자 좁은 땅에도 불구하고 1969년 멜리야 경내에 멜리야 공항을 만들었다. 스페인 본토에서는 항공편 외에 말라가 등지에서 연락선로도 접근 가능하다.
8. 관광
- 멜리야 라 비에하 (Melilla la Vieja) : 도시의 서쪽 끝, 지중해를 향해 돌출된 바위 지대에 형성된 이 구시가지는 멜리야가 오랫동안 북아프리카에서 스페인의 군사적 거점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요새 지구다.
- 빅토리아 그란데 요새 (Fuerte de Victoria Grande) : 18세기에 도시 방어 체계의 일부로 건설된 요새로 1774년에서 1775년 사이 멜리야 공성전 동안 요새는 도시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멜리야 등대 (Faro de Melilla) : 1854년에 지어진 작은 등대 부지에 세워진 등대.
- 멜리야 박물관 (Museo de Melilla) : 스페인령 북아프리카 자치도시 멜리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
9. 기타
- 멜리야 시내에는 화려하면서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많은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아르누보 형식의 건축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카탈루냐 아르 누보(Catalan Art Nouveau)라 불리는 건축의 연장선으로 당시 스페인령 모로코의 광산 등의 식민지 경영으로 자본을 축적한 부르지아지들의 많은 투자를 받았다.
- 의외로 세우타보다 인구가 약간 많다.
- 지역 축구팀으로 UD 멜리야가 있다.
- 독일 래퍼 파리드 뱅(Farid Bang)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