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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6 12:56:05

마리오 만주키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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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리오 만주키치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어린 시절

만주키치는 유고슬라비아의 슬라본스키브로드[1]에서 태어났다. 그가 5살때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터졌고 그의 가족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독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그는 독일슈투트가르트 근처의 TSF Ditzingen이라는 클럽의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 하게 된다. 그러다 11살이 되던 해에 만주키치의 가족은 크로아티아로 다시 돌아왔고, 크로아티아의 NK 마르소니아 유스팀으로 옮기게 된다. 그후 NK Željezničar Slavonski Brod 유스팀을 거쳐 18살이던 2004년에 NK 마르소니아에서 프로 데뷔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데뷔 해에 23경기 14골을 터트리게 된다. 2005년에는 1부 리그 팀인 NK 자그레브로 이적하게 된다.[2]

3. GNK 디나모 자그레브

그후 2년 뒤인 2007년 크로아티아의 명문이자 최강 팀인 GNK 디나모 자그레브로 1.3m 유로에 이적하게 된다. 당시 GNK 디나모 자그레브에두아르도 다 실바아스날로 이적을 시키고 대체자를 찾던 중에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만주키치를 대체자로 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영입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07/08 시즌 37경기 14골 13어시로 우수한 스탯을 찍었고, 08/09 시즌은 38경기 19골 15어시로 리그 득점왕이 되었다. 시즌이 끝난 직후 SV 베르더 브레멘과 연결되었으나 15m 유로를 원했던 GNK 디나모 자그레브와 12m 유로를 제시하는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의견이 끝내 좁혀지지 않아 잔류하게 된다. 결국 09/10 시즌도 자그레브에서 뛰었고 34경기 17골 7어시로 팀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4. VfL 볼프스부르크

2010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분데스리가VfL 볼프스부르크로 7m 유로에 이적하게 된다. 이적 후 첫 시즌인 10/11 시즌, 10골 3어시로 나쁘지 않은 활약이지만 당시 팀의 주포이던 에딘 제코에 그늘에 가려졌고 팀은 감독이 두 번이나 짤리고 강등권을 겨우 모면하는 등[3] 말이 아니었다.

그 후 11/12 시즌, VfL 볼프스부르크의 첫 우승을 이끌었던 마가트를 감독으로 앉혔는데 이후 감독의 정신나간 영입[4]과 말도 안 되는 기강 잡기[5]를 시전했다.

11/12 시즌 겨울 이적시장... 3000만 유로가 넘는 금액을 지출하면서 유럽 이적시장 지출 순위 1위를 했으나, 팬들도 왜 샀냐고 이해하지 못하고, 전문가들도 쓸데없는 지출만 한다고 까였고 이적시장만 되면 여기 저기에다가 돈을 쓰면서 어디서 듣보잡 선수만 잔뜩 긁어와 스쿼드를 눌러채우다 못해 폭발할 정도로 모아놓은 상태다.[6] 팀이 개판이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만주키치는 33경기 12골 10어시로 좋은 성적을 냈고 유로 2012를 시작하게 되는데...

5. FC 바이에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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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12에서 3골을 넣는 등 대박을 친 덕인지, 분데스리가의 No.1 클럽인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등번호도 간판 스트라이커의 번호인 9번을 받았다.

5.1.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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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에 펼쳐진 슈퍼컵 경기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선발출전하여 4-2-3-1 전형으로 나섰고, 도르트문트는 대부분의 전력이 출장했다. 도르트문트의 효율적인 전방압박에 고전했으나 프랑크 리베리의 환상적인 롱패스를 만주키치가 놓치지않고 선제골로 연결한데다[7] 역습 상황에서 아르연 로번의 역습으로 뮐러가 추가골을 넣으면서 순식간에 2대0이 되며 승부가 갈렸다. 후반전에 레반도프스키의 땅볼슛으로 만회골을 넣었으나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끝내 바이에른은 도르트문트 전 5연패의 사슬을 끊은 중요한 2대1 승리를 챙기며 유프 하인케스 감독 부임 후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8월 20일 포칼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4대0 승리를 이끌었으며, 5일 뒤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는 SpVgg 그로이터 퓌르트를 상대로 1대0으로 앞서던 상황에 로벤의 활약에 헤딩으로 팀의 두 번째 골을 집어넣었다. 팀도 3:0 승리를 거두었다.

9월 3일에 펼쳐진 리그 2라운드 슈투트가르트전에서는 팀이 3대1로 앞선채로 전반을 마친 상황에서 후반전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사카이의 삽질을 크로스가 뺏어내었고 이것이 만주키치의 추가골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6:1이라는 무자비한 스코어로 승리를 거두었다.

9월 15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3라운드 마인츠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시작하자마자 주장 필립 람이 상대 진영에서 뺏은 공을 토마스 뮐러에게 연결했고, 뮐러의 크로스를 만주키치가 받아먹으며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팀도 3대0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만주키치는 뮌헨 소속으로 첫 5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달성했다.[8]

9월 26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5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는 1:0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후반 12분 세르단 샤키리나우두와의 경합을 이겨내고 왼쪽측면을 뚫으며 만주키치가 헤딩골을 만들었고, 불과 8분 뒤 필립 람의 크로스에 이어 만주키치가 또 헤딩골을 넣었다.

9월 29일에 펼쳐진 리그 6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에서는 단테의 헤딩골이 애매한 옵사이드 판정에 취소되고 리베리의 슛이 골대를 때리는 등 똥줄타는 경기를 하다가 후반 막판 구스타보가 환상적인 칩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켰고, 불과 2분 뒤 상대 코너킥 상황에서 환상적인 팀워크 역습의 진수를 보여주며 만주키치가 추가골을 기록, 2대0으로 승리했다.

이후 10월 20일에 열린 리그 8라운드 경기에서 슈퍼컵에서의 선제골과 흡사하게 리베리의 아웃프런트 패스를 만주키치가 슬라이딩 골로 연결시키며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5대0 완승을 이끌어내었다.

11월 17일에 펼쳐진 리그 12라운드 뉘른베르크전에서 선발출전하여 시작하자마자 환상적인 팀플레이에 이은 토니 크로스의 패스를 만주키치가 받아먹으며 선제골을 넣은데다 경기내내 압도하지만, 마르쿠스 폴너의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중거리슛이 시야가 가려진 노이어가 뒤늦게 대처하려다 어이없이 먹히며 무재배를 거두고 말았다.

후반기 첫 경기였던 2013년 1월 19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18라운드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와의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하여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기분좋게 후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어서 리그 19라운드, 20라운드 경기에서 각각 1골과 2골을 기록하면서 후반기 첫 리그 3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는 등 전반기 막판에 주춤하던 득점 페이스가 다시 불이 붙고 있는 중이다.

2013년 2월 17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22라운드 볼프스부르크 원정 경기에서도 한 골을 집어넣으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현재까지를 기준으로 바이에른의 주전 공격수로서, 리그에서 총 19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하면서 분데스리가 득점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팀의 승점 15점차의 독주 질주에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9] 게다가 이 상승세를 아스날과의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 3-1 관광을 보내주면서 제대로 증명했다. 만주키치 본인도 선발로 출전해 후반 막판 람의 크로스를 환상적인 뒷발 칩샷으로 원더골로 넣으면서 선전했다.

골을 결정짓는 능력이나 파워는 경쟁자 고메스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연계, 전방 압박과 수비 가담, 포스트플레이로 바이에른의 물 흐르는 듯한 공격 전개의 숨은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유벤투스전 만주키치의 퍼포먼스는 인구에 회자되는 퍼포먼스이다. 이 당시 빌드업의 핵심인 피를로와 보누치를 만주키치가 피지컬과 기민한 압박능력을 통해서 삭제시키는 퍼포먼스는 두 말할 필요없이 꼭 봐야 하는 퍼포먼스일 정도다.

팀은 역대급 시즌을 보내 트레블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5월 26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전반전에서는 거센 압박에 의해 공을 거의 잡아보지 못했으나 후반전 로벤의 어시스트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챔스 우승에 기여했다.[10]

여담으로 마르크 판보멀이 나간 후 깡있는 선수가 부족해서[11] 상대팀과 분위기가 거칠어지면 온순해졌던 바이에른이 만주키치의 합류 후 몸싸움이 생기거나 분위기가 가열되어도 기싸움에서 안밀리는 중. 비슷한 역할을 해주는 제롬 보아텡마누엘 노이어의 활약(?)도 한몫했다.

5.2. 2013-14 시즌

펩 과르디올라 체제 초기에서는 결장하는 일이 잦아지며 불화설이나 팀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나, 교체 투입될 때마다 골을 기록해주자 펩도 최근에는 만주키치를 다시 잘 쓰고 있다. 뮐러, 괴체 제로톱이 큰 효과를 못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비 마르티네스데이비드 알라바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빠진채로 치러진 함부르크 SV와의 전반기 16라운드에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수비적인 전술과 라소가-주아-판더바르트 라인의 역습에 고전했으나, 전반 막판에 토니 크로스의 킬패스 - 하피냐의 침투 - 마리오 만주키치의 헤딩 마무리로 선제골, 티아고 알칸타라의 패스를 받은 마리오 괴체가 단 두번의 터치로 기습적인 추가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가져왔다. 라소가가 추격골을 넣긴 하지만 후반 막판 교체투입된 신예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가 좋은 활약을 펼쳐주며 세르단 샤키리의 쐐기골까지 만들어내며 3대1로 승리했고, 무패행진은 41경기로 늘어났다.

전반기를 14승 2무, 승점 44점 단독선두로 헤업스트마이스터(Der Herbstmeister)에 등극한 채 마무리하는데 성공했으며, 15라운드까지 승점 4점차로 추격하던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홈에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패하며 2위와 승점 7점차를 벌린 채로 제법 안정적으로 선두자리를 지켰다.

해가 지나 2014년 1월 5일에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보스만 룰을 통해 영입이 확정되면서 만주키치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으나, 만주키치 측은 바이에른에 남아서 경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선 레반도프스키가 낫냐, 만주키치가 낫냐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또 여러 명문 구단에서 만주키치에 대한 링크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FC 바이에른 뮌헨의 입장에선 뛰어난 공격자원이 합류하게 되면서 다양한 공격루트를 가지는 것은 반가워할 일이다.

지난 시즌 못지않게 좋은 득점력을 보여주며 현재 12골로 분데스리가 득점랭킹 3위에 랭크되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홈 경기에서는 발재간으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며 쐐기골을 넣는 등 발밑 결정력도 꽤 좋아졌다. 함부르크 SV와의 포칼 8강에서는 이적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0 대승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바이에른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만주키치의 머리만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4월 5일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53경기 무패행진이 깨짐과 더불어, 분데스리가 무패우승도 실패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경기에서는 토니 크로스를 아래로 내리고 양쪽 풀백을 모조리 올리는 2-4-4-에 가까운 포메이션으로 공격으로 몰아붙였으나 1차전과 비슷하게 전반내내 답답한 모습만 보여주고 역습만 허용하는 모습이었다. 후반전에도 코너킥을 연이어 허용하더니 후반 12분 파트리스 에브라가 반대편에서 넘어온 볼을 강력한 논스톱중거리로 연결하며 포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것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꼴이 되고 말았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로베리의 돌파 후 크로스로 마리오 만주키치가 거짓말같은 동점골을 만들어냈고, 또다시 9분 만에 로베리 조합의 활약끝에 토마스 뮐러가 귀중한 역전골을 뿜어냈다. 그리고 로벤이 그나마 남은 원정골의 불안감마저 깔끔하게 없애버리는 개인기골을 넣으며 3대1로 멀찌감찌 앞서갔다. 맨유는 결국 치차리토, 야누자이등 공격자원들을 대거 투입시켰으나 별다른 기회를 만들지 못했고, 바이에른은 3년 연속 4강진출에 성공하며 2년 연속 트레블에 한걸음 다가섰다.

분데스리가 33라운드까지 18골로 도르트문트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득점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마지막 경기인 34라운드에서 2골을 꽂아넣으며 최종 득점 순위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펩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이 컵 대회 결승에서 밝혀졌는데, 펩이 결승 직전에 만주키치를 선발에서 제외하자 빡친 만주키치는 라커룸에 있던 짐 몽땅 싸들고 국대에 복귀했다고 한다. 구단 측에서 그냥 결승 제외를 통보한 것도 아니고 "다음 클럽에서 행운을 빈다"라는 말까지 하며 제외를 통보해서 만주키치가 제대로 열받은 듯. 게다가 다음 시즌 바이에른에 합류하는 레반도프스키에게 자신의 등번호까지 뺏긴 걸 알고 유니폼을 내동댕이쳤다는 기사도 났다. 이미 바이에른 동료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한 것으로 보아 사실상 팀을 떠나는 것이 확실시된다.[12]

결국 레반도프스키의 이적의 희생양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가는 것이다 보니 만주키치가 떠나는 것에 대해 펩을 원망하는 바이에른 팬들도 상당하다. 그럴 만한 것이 그리 비싸지 않은 돈으로 바이에른으로 이적해 성실한 플레이로 사랑받으며 2년동안 그야말로 팀의 전성기의 큰 축을 담당한 스트라이커이기 때문. 12-13, 13-14 두 시즌간 트레블을 포함해 8개의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70여 경기에 출전해 40골 넘게 때려박았다. 거기에 성실한 공중볼 다툼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전방 압박, 연계 플레이까지 수준급으로 해줬다. 그런 만주키치를 레반도프스키의 합류 때문에 등 떠밀듯 보내야 한다니 팬들도 보드진과 과르디올라를 원망하는 게 당연지사다. 물론 레반도프스키가 이후 8년 동안 뮌헨에서 미친 활약을 보여주어 이제 이런 원망은 없지만...

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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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적설이 돌던 2014년 7월 10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이 공식 발표되었다. 계약기간은 4년이며 이적료는 22m 유로로 추정된다. 첼시 FC로 이적한 디에고 코스타와 뉴욕으로 떠난 다비드 비야의 공백을 앙투안 그리즈만과 함께 메울 것으로 보인다.

정규시즌 첫 홈경기인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차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데뷔골을 기록하며 슈퍼컵 우승을 도왔다.

전반기까지의 평가는 기대만큼은 아니여도 그럭저럭 해준다는 평. 모든 대회 통틀어서 두 자릿 수 득점을 올려주고 있고 특히 팀의 가공할 세트피스 득점력에 한 몫하는중. 또한 문제점이었던 투박한 플레이도 제법 개선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5차전 올림피아코스전에서는 이적 후 첫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후반기에는 투톱 파트너인 앙투안 그리즈만의 폼이 살아나면서 둘이서 좋은 파트너쉽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2월 말 발목부상 이후 폼이 극심하게 하락해 팀이 우승권에 미끄러지는데 일조하였다. 2월 알메리아전 PK골 이후 시즌 종료까지 득점을 전혀 올리지 못하였고 특유의 느린 발 때문에 역습상황에서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점, 전반기 극강이었던 세트피스 공격력이 후반기에 들어서 주춤하여 본인의 제공권을 활용할 기회가 적어졌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결국 시즌 말미에는 페르난도 토레스에게도 주전자리에서 밀리고 말았다.

시즌 종료 후 비야레알 CF의 공격수인 루시아노 비에토를 영입하고 만주키치를 처분한다는 설이 돌 정도로 한 시즌만에 자리가 위태로워진 상황이다. 그리고 6월 19일(현지시간) 유벤투스 FC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카를로스 테베스가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갔기 때문에 유베에서 그 대체자로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7. 유벤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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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알 두하일 SC

알 두하일 SC에서도 등번호 17번을 받았다.

2020 ACL 조별리그 C조 1차전 페르세폴리스와의 경기에서 첫 데뷔골을 넣었다.

2020년 7월 5일, 클럽과 상호 동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음을 발표했다.

FA가 된 만주키치를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AS 로마,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RC 셀타 데 비고, AC 밀란이(가) 영입하려 하고 있다.

2021년 겨울 이적시장에 AC밀란으로의 이적이 굉장히 가까워졌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FA신분으로 밀란으로 팀을 옮겨 즐라탄의 백업 공격수로 활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월 19일, 밀라노에 도착한 것이 포착됐다.

9. 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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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9일, AC 밀란에 입단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0-21 시즌 종료까지로, 1년 연장 옵션이 포함되었다. 등번호는 9번을 배정받았다. 기존에 많이 달았던 17번이 이미 레앙이 쓰고있어 전에 쓴 적이 있는 9번을 골랐다고 한다.

9.1. 2020-21 시즌

영입되자마자 아탈란타전 후반에 교체출장했으나 본 포지션이 아닌 오른쪽 윙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잘못맞은 슈팅을 보여주는 등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기 후 약한 발목부상을 입은 것으로 컨펌되었다. 볼로냐전을 앞두고 바로 복귀하였고 왼쪽윙어로 교체출장했으나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다. 스페치아전에서도 교체출장했고 역시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해 실패한 영입이라는 평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유로파리그 즈베즈다전에서 드디어 원톱 포지션으로 선발출장했으나 수비가담 말고는 딱히 존재감이 없었다. 이후 부상이 컨펌되었고 당분간 출전하기 어렵게 되었다. 생각보다 부상기간이 길어지고 있어 즐라탄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있다. A매치 기간 이후 복귀했으나 교체로도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영입시 기대에 비해 너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 이번 시즌이 끝나면 프리로 풀릴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제노아전에서 간만에 교체출장했으나 역시 별 활약은 없었다. 라치오전에서 선발출장했으나 볼터치도 거의 하지 못하며 존재감이 없었다. 토리노전에서도 후반 막바지 교체출장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현지 반응으로 봤을 때 계약 연장은 불가능해 보이며 크게 실패한 영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5월 24일, 아탈란타 BC와의 리그 최종전을 끝으로 계약만료로 팀을 떠나게 됐다.

10. 은퇴

AC 밀란을 떠난 후 소속팀을 찾아다녔으나, 2021년 9월 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11.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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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경기 33골 9도움

11.1. UEFA 유로 2012

유로 2012에서 대박을 치는데 중앙의 루카 모드리치가 중원을 누비며 기회를 만들어주면 쏙쏙 골로 꽂아넣어 조별 리그 세 경기 동안 총 3골을 퍼부었다. 득점왕인 페르난도 토레스도 3골인 거에 비하면 사실상 득점 1위나 다름없는 기록.[13] 이러한 유로 2012의 활약을 바탕으로 만주키치는 크로아티아가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면 더 활약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크로아티아는 벨기에에 밀려 조 2위를 기록하였으나 아이슬란드를 플레이오프에서 누르고 감격적인 월드컵 출전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11.2.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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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좋았으나... 하필이면 아이슬란드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만주키치는 기껏 선제골을 잘 넣어놓고 상대 미드필더 요한 베르그 그뷔드뮌손의 다리 사이를 강하게 걷어차 퇴장을 당하고 만다. 이로 인해 그는 1경기 출전 정지, 월드컵 1차전 출전 불가 징계를 받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조 추첨에서 결정난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1차전 상대가 개최국 브라질, 그것도 개막전이었다.

결국 만주키치는 팀의 주포로서 팀이 패배하는 것을 벤치에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이 경기는 후반전 중반까지만 해도 박빙으로 흐르던 경기였고 크로아티아는 훌륭한 경기 운영에도 불구하고 최전방 해결사의 부재로 어려운 경기를 벌이고 있던 게임이었다. 그리고 결국 석연치 않은 페널티 킥 판정이 나오면서 잘 버티던 크로아티아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만주키치가 출전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반응이 정말 많이 나왔던 경기다.

2차전인 카메룬전에서는 선발 출장하여 분노의 2골을 몰아치면서 MoM까지 받는 등 대활약하며 팀을 일단 위기에서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카메룬이 알아서 자멸해준 것도 있는 경기였다.[14]

그리고 3차전인 멕시코전. 1차전인 브라질전을 1:1이나 2:2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3차전에서 브라질이 카메룬을 잡는다는 가정하에 멕시코와 비기기만 해도 브라질, 멕시코, 크로아티아가 승점 5점으로 모두 동률이 되어 카메룬전에서 4골을 몰아친 크로아티아가 골득실로 16강 확정에 잘되면 조 1위까지도 차지할 수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즉, 브라질한테는 앞서 서술한대로 패배를 당했기에 크로아티아는 멕시코를 반드시 꺾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공격 위주로 무리하게 경기를 운영하다가 멕시코에게 역습으로 골을 연속해서 얻어맞으며 패배하고 말았다.[15] "비기기만 해도 되는 상황"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은 엄연히 다르니까 말이다. 즉, 반드시 이겨야 된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브라질처럼 아주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던 팀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여러모로 만주키치는 1차전의 결장이 뼈아프게 느껴졌을듯. 물론 3차전에서 만주키치는 슈팅수 0을 기록하는 등 멕시코의 촘촘한 그물 수비에 막히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결과론적으로 팀을 16강 토너먼트로 이끄는 데는 실패한 셈이 되었다. 2경기 출장 2골 1MoM. 사실 나쁜 기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러모로 불운이 겹치고 말았다. 또, 이를 통해 크로아티아는 멕시코에 약하다는 특징까지 제대로 보여주고 말았다.[16]

11.3. UEFA 유로 2016

하지만 유로 2016도 있고, 다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32세인 만주키치는 아직 국가대표팀에서 뛸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크로아티아가 빡센 유럽 지역 예선을 뚫고 이런 메이저 대회들의 출전권을 얻을 수 있느냐일 뿐(...). 그래도 유로 2016 같은 경우는 출전국가가 16팀에서 24팀으로 늘어나는 만큼, 크로아티아 부동의 원톱으로 인정받고 있는 만주키치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지켜봐야 될 일이다.

유로 2016 본선 3경기에 나서 무득점을 기록했다. 터키전과 체코전에서 숱한 찬스를 날리며 크로아티아가 다득점 승리에 실패하거나, 다 잡은 승리를 놓치는 데 일조했다.

11.4.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파일:NINTCHDBPICT019748100.jpg

조별 리그 1차전 나이지리아 상대로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본인의 공중볼 경합 능력이 뛰어다는 것을 이번 경기에서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두 골에 모두 만주키치가 관여했으며, 심지어 수비에도 가담해 헤딩으로 막아냈을만큼 돋보였다. KBS에서는 스페셜원으로 만주키치를 택했을 정도였을만큼, 이날 만주키치는 골을 못 넣은 거 빼고 다 잘했다.

이후 16강전, 8강전, 4강전 모두 연장 승부를 치르면서 크로아티아는 살인적인 체력 부담을 안게 되었는데, 만주키치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6강전과 8강전에서 모두 120분 풀 타임을 채웠으며 4강전에서도 연장 후반까지 죽어라 뛰어다녔다. 8강전과 4강전에서는 다리 경련이 와서 주저앉고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압박을 했고 4강전에서는 역전 결승골까지 만들었다.[17] 전설의 경지에 오르고 있는 미드필더이자 주장 루카 모드리치의 활약에 가려서 만주키치의 활약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만주키치의 이번 월드컵에서의 역할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치고는 골 결정력이 좋지 못해 이번 대회에서도 아쉬움을 보여 주었다. 이반 라키티치 & 루카 모드리치, 마테오 코바치치,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등 좋은 미드 조합을 갖고 있음에도 마침표를 찍어 줄 스트라이커가 없는 게 크로아티아의 문제이다. 본선에선 비록 골 결정력이 영 좋지 못하여 많은 찬스를 날려먹었으나, 어그로와 수비로 큰 역할을 하면서 조국을 16강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했다.

16강 덴마크전에서는 전반 1분 스로인 상황에서 덴마크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분위기가 넘어가고 있던 찰나 전반 4분 동점골을 넣음으로서 이번 월드컵에서 본인의 첫 골과 더불어 크로아티아의 8강 진출에 역할을 하였다.

4강 잉글랜드전에서 연장 후반 잉글랜드 키퍼 픽포드의 왼쪽을 빠져나가는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줬다. 박스 안으로 투입된 볼을 잉글랜드 수비진이 밖으로 걷어내자 만주키치는 탄식하며 고개를 숙이고 걸어나오다가... 이반 페리시치가 재차 볼을 헤딩으로 박스 안으로 우겨넣자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잉글랜드 수비수들을 따돌리며 박스 안으로 침투해 볼을 차 넣었다! 대회 내내 스트라이커로서 폼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정적인 순간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만큼은 어디 가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프랑스와 맞붙은 결승전에서는 전반전에 앙투안 그리즈만이 찬 프리킥이 본인 머리에 맞았고, 이는 다니옐 수바시치도 손을 쓸 수 없었다.[18] 그리고 후반전에는 상대 팀 골키퍼인 위고 요리스가 만주키치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굴러온 백패스를 여유롭게 볼 처리 하려다가 만주키치가 끝까지 압박하여 실책을 유도, 요리스가 찬 공이 만주키치의 발에 맞고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가 득점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2차 조별 리그에서 네덜란드이탈리아전에서 네덜란드의 에르니 브란츠 이후 처음으로 같은 경기에서 자책골과 득점을 동시에 달성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물론 에르니 브란츠의 네덜란드는 이탈리아를 2-1로 이겼지만, 이 경기의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에게 2-4로 우승컵을 내줬으니 이 경기는 졌잘싸의 표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2018년 8월 14일, 만주키치는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하면서 박수 칠 때 떠나는 아름다운 작별을 고했다. 만주키치의 A매치 최종 기록은 89경기 33골 9도움이다.


[1] 현재는 크로아티아.[2] NK Marsonia는 2부 리그 팀이다.[3] 리그 33라운드까지 순위는 겨우 강등을 모면한 리그 15위였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호펜하임에게 선제골을 먹히며 불안하게 출발한데다가 다른 강등권 팀들이 이기는 중이어서 강등권 현실화가 우려되었으나... 이후 극적으로 3골을 넣으며 호펜하임을 꺾고 15위를 기록해 잔류를 확정지었다.[4] 중앙 미드필더만 3명을 영입했다. 참고로 전 시즌까지 중앙 미드필더는 5명...[5] 훈련장에 오면서 헤드셋을 착용했다고 벌금, 경기 중에 자신의 전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벌금을 때렸다.[6] 종목은 다르지만 모 야구팀처럼 돈은 펑펑 쓰는데 성적은 안 오르는 총체적 난국의 상태이다. 결국 만주키치 이적 이후 리그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해 2012년 10월 마가트 감독은 해임되었다.[7] 뮌헨 이적 후 공식 경기 데뷔전에서 데뷔골이다.[8] 리그 3경기 연속 득점이다.[9] 물론 12~13시즌 바이에른의 질풍 같은 독주의 가장 큰 요인은 상식을 초월하는 우주방어 덕분이다. 11월 24일부터 2월 17일까지 약 3달동안의 리그 경기 10경기에서 겨우 2실점이다. 2월 17일 기준 22경기에서 7실점, 특히 원정경기 10경기에 1실점을 기록중이다. 물론 공격력도 고메스가 거의 후보로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최강급이다.[10] 여담으로 너무 기쁜 나머지 목에 걸고 있던 금메달을 잃어버렸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의 금메달을 분실한 걸 깨닫자 울상이 되었다. 깨알같이 주워서 주는 리베리는 덤.[11] 리베리가 있긴 하지만 자주 부상당하는데다 피지컬에서 부족한 부분도 있다.[12] 펩이 원래 바르사 시절부터 그와 불화 있는 선수치고 뒤끝 좋게 떠나는 선수가 없었다. 한번 전술상으로 눈밖에 난 선수는 결국 끝까지 불화를 겪다 이적하곤 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무엘 에투, 야야 투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있다.[13] 사실 유로 2012에서 3골을 기록한 선수는 무려 6명이다. 만주키치, 토레스를 비롯해 마리오 발로텔리, 마리오 고메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알란 자고예프가 모두 3골을 기록했다. 물론 도움이나 출전 시간 등으로 순위를 매길 순 있고, 그 결과 토레스가 득점왕을 차지했다.[14] 이 과정에서 알렉스 송은 전반 막판 크로아티아의 역습 상황에서 만주키치의 등짝에 엘보 어택을 날렸다. 당연히 레드카드 받고 퇴장. 게다가 후반 막판에 카메룬 선수들이 서로 충돌하는 추태까지 부렸다.[15] 첫 골을 먹자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하는 등 강공 드라이브를 걸다가 수비 밸런스가 무너지며 연속골을 허용했다.[16] 참고로 크로아티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도 멕시코에게 0:1로 진 적이 있었다.[17] 역전 결승골을 넣은 이후에는 결국 다리 경련으로 주저앉아서 교체되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시간 지연 행위로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만주키치가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를 잘 알기에 경기장 관중들도 야유하지 않았다.[18] 월드컵 결승전 최초의 자책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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