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마리오 고메스
1. 선수 경력2. 국가대표 경력
1. 선수 경력
1.1. VfB 슈투트가르트
1999년부터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고메즈는 지역 유스팀에 들어갔고 양친의 조언에 슈투트가르트 유스팀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고메즈는 맹활약하기 시작했고 2년만에 2군으로 승격, 2004년엔 1군으로 옮겼다. 보다시피 14살에 축구를 시작했음에도 5년만에 분데스리가 1부 클럽 1군에 입성한 재능파 엘리트였던 것. 2004년 고메즈는 3월 9일에 첼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경기에서 10분 출전하였고, 5월 8일에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04-05 시즌, 그는 당시 3부 리그였던 남부 레기오날리가에 속한 VfB 슈투트가르트 II에서 활약하며 24경기에서 15골을 득점하였고 1군 소속으로는 8번 출장하였다. 05-06 시즌, 영구적으로 1군 일원이 되었다. 그는 분데스리가 30경기에 출장하여 6골을 득점하였으며 그의 첫골을 2005년 9월 17일에 득점하였다. 고메즈는 UEFA 컵 5경기를 출전하며 2골을 득점하였고 DFB-포칼에서는 세 차례 득점을 올렸다.
1.1.1. 2006-07 시즌
2006-07 시즌, 이 젊은 공격수는 분데스리가 득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007년 3월 10일에 손을 다쳤고 왼쪽 무릎의 인대가 찢어졌다. 2007년 5월 12일에 복귀한 그는 벤치에서 나온 즉시 득점을 올렸다. 그 경기에서 슈투트가르트는 VfL 보훔을 3-2로 꺾었고 FC 에네르기 콧부스와의 34라운드를 앞두고 2점차 선두를 가져갔다. 이윽고 콧부스를 홈에서 극적으로 꺾은 슈투트가르트는 2006-07 시즌의 챔피언으로 등극하였다. 그 외에도 슈투트가르트는 DFB-포칼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FC 뉘른베르크에 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그는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였다. 제 1의 전성기이자 본인이 꼽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시절. 고메즈는 구단과 2012년까지 유효한 연장 계약을 체결하였다.1.1.2. 2007-08 시즌
2007-08 시즌으로 넘어가서 나머지 팀원들은 06-07 시즌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냈으나, 고메즈 혼자 25경기 출장 19골을 기록하며 고군분투하였고 또다시 득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보다 더 많은 골을 득점한 선수는 FC 바이에른 뮌헨의 루카 토니로 24골을 득점하였다. 또한 DFB-포칼에서 고메즈는 6득점을 올리며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그의 괄목한 성장으로 인해 다수의 빅클럽들이 이 23세 공격수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였고,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 (6-3 승리)에서 해트트릭을 하였는데 두 번째 골을 사실상 이을드라이 바쉬튀르크가 만들어낸 잡을 수 없는 패스를 골로 연결한 것으로 인해 미스터 신뢰 (Mr. Zuverlässig) 라는 별명도 획득하였다. 2008-09 시즌, 고메즈는 분데스리가 선두 VfL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4골을 득점하여 4-1 승리를 견인하였다.1.2. FC 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은 고메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08-09 시즌 우승을 볼프스부르크에게 내줬기 때문에 바이에른은 고메스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려 했고 분데스리가 최고 이적료인 3,400만 유로에 고메스를 영입한다.[1]
1.2.1. 2009-10시즌
당시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부상 여파로 빌빌댈 때고, 루카 토니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었던 지경이라 어깨가 무거웠지만 많은 출장에도 불구하고 별 활약을 못했다.오히려 왼쪽 날개 땜, 혹은 공격수 4옵션으로 생각했던 이비차 올리치가 펄펄 날았고, 토마스 뮐러가 포텐을 폭발시키면서 벤치에 앉게 되었다.[2] 그 때문인지 슈투트가르트 때의 폼을 보여주지 못했고 많은 경기를 출장한 반면에 득점과 어시스트가 현저히 떨어졌다.
하지만 팀은 분데스리가 우승에 DFB-포칼도 우승하고 챔피언스 리그도 준우승하는 등 대단한 성적을 냈고, 본인도 어찌 됐건 10골은 찍었다.
1.2.2. 2010-11시즌
이윽고 10-11시즌, 최고 이적료라는 상품이 아까웠던 감독과 올리치의 장기간 부상으로 많은 기회를 잡았으나 기대 이하여서 잠시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주전자리가 넘어갔지만, 클로제가 이후 다소 부진의 늪에 빠지자 선발로 출전해 갑자기 각성하여 어느새 골을 마구마구 삽입하기 시작했다.전시즌과는 달리 로베리가 그래도 자체 로테이션이나마 기용은 꾸준히 됐고, 뮐러와 슈바인슈타이거 등의 지원이 좋았던 탓이다. 고메즈는 한 시즌내에서 해트트릭을 5번이나 하고 챔피언스 리그에선 8골을 넣는 등 맹할약을 펼치며 결국 10-11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등극한다.
특히 이 시즌 위엄이 쩌는 건 고메즈가 골을 넣기 시작한 몰아치기보다는 꾸준하게 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허나 지나치게 수비라인을 끌어올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를 센터백으로 기용하는 등의 반 할 식 토탈사커의 결과 팀 성적은 겨우 3위를 기록했다.
유프 하인케스가 이후 새로운 감독으로 오게 되었다.
1.2.3. 2011-12시즌
2011-12 시즌, 토니 크로스가 플레이 메이커로 각성해서 안정적인 볼 배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고메즈는 전시즌보다 더 향상되는 폼을 보이며 어김 없이 골 넣는 기계로 활약한다. 우선 8월 20일 함부르크 SV전에서 선제골을 득점하며 대승을 이끈데 이어 1주 후, 고메스는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하였다. 그러다가 9월 10일, 고메스는 SC 프라이부르크전에서는 무려 4골을 넣으며 7-0 대승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팀의 4연승을 달성하며 리그 선두로 팀을 이끌었다.
이후 9월 27일, 고메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에서 전반전에 2골을 득점하며 맨체스터 시티를 2-0으로 꺾었고, 당시 맨시티는 카를로스 테베스가 출장을 거부하면서 팀 분위기가 엉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1월 2일, SSC 나폴리와의 챔피언스리그 4차전에서도 미친 골 결정력으로 해트트릭을 하며 3-2 승리를 견인하였다.
12월 11일, VfB 슈투트가르트를 상대로는 2-1 결승골을 뽑아내었다.
이렇듯 고메스는 리그에선 해트트릭을 밥 먹듯이 하지를 않나 챔스에선 조별리그에서만 5골을 기록하고, 16강전 한 경기에서만 4골, 8강과 4강전에서 2골, 등등 신과 우주와 인간계 대표로 득점 경쟁을 하는 등 월드 클래스 급의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그렇게 4월에는 뮌헨과 2016년까지 계약 기간을 연장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에선 각성한 훈텔라르에게 득점왕을 뺏기고[3] 홈에서 개최된 2012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선 신의벽을 넘지 못했다. 포칼에서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한테 최다 골을 뺏기는 등 득점왕 2위 트레블을 세웠다. 더군다나 팀도 준우승 트레블...
2012년 한해에는 결국 미하엘 발락급의 콩 퍼레이드 기록을 세웠다. 정리해 보면
- 11-12 분데스리가 준우승
- 11-12 DFB-포칼 준우승
- 11-12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 11-12 분데스리가 득점 2위 [4]
- 11-12 DFB-포칼 득점 2위 [5]
- 11-12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 2위 [6]
그야말로 눈물없이는 차마 볼 수 없는 콩콩콩(..).
1.2.4. 2012-13시즌
2012-13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리그 12경기를 결장하고 새로 영입된 마리오 만주키치가 주전 공격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만주키치의 활약이 좋았고 팀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부상에서 회복된 후에도 바로 닥주전은 아니고 만주키치와 로테이션을 돌거나 백업으로 나오고 있다.12-13 시즌 전반기 하노버 96전에서 복귀해 들어오자마자 압도적인 피지컬과 깔끔한 마무리로 복귀골을 넣었다. 이후 포칼이나 리가에서도 점점 얼굴을 많이 비추더니 갓 부상 복귀 한 것과 적은 출장시간을 감안하더라도 20골이 넘게 때려박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VfL 볼프스부르크와의 포칼 4강에서는 단 6분만에 헤트트릭을 달성했다. 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다 떠먹여 준 거긴 하지만 무려 4강에서 이런 기록이 나왔다니 어쨌든 대단한 기록.
만주키치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FC 바르셀로나와의 4강 1차전에서도 풀타임 출전하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열심히 압박을 가하고 연계까지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인 데다 팀의 두 번째 골까지 넣는 만점 활약을 펼쳤다. 리가 31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팀의 위기 상황에서 깔끔한 헤딩 슛으로 동점골을 넣기도 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연장 돌입을 예상한 양팀 감독이 교체카드를 계속 아낀 바람에 단 2분 출장하는 데 그쳤지만, DFB-포칼 결승에서는 선발로 출장하여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트레블에 일조했고, 본인의 숙원이던 챔피언스리그도 제패했다.
이 시즌에 만주키치와의 주전 경쟁에서 다소 밀린 고메스는 시즌 내 13경기에만 선발 출전할 정도로 주로 조커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총 19골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출전 시간 대비 득점 기록으로 환산할 경우 63.74분당 1골을 득점한 것으로, 단순 기록 비교만으로는 같은 해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모두 앞서는 뛰어난 활약이다. 특히 DFB-포칼에서 6골을 득점하며, 2007-08 시즌에 이해 생애 두 번째 득점왕을 차지한 점도 고무적인 부분이다.
시즌 종료 후 적은 출장 기회로 많은 이적설이 나돌았고, 본인은 일단 부정했으나 결국, 2000만 유로의 이적료로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됐다. 브라질 월드컵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대표팀 주전 자리 확보를 위해 출전기회가 많은 팀으로 떠난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바이에른에서의 통산 성적은 174경기 113골. 첫 시즌인 09-10시즌 10골로 삐걱거린 것 빼고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다운 엄청난 기록이다.
1.3. ACF 피오렌티나
제노아와의 세리에 A 2라운드에서 2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지만 3라운드인 칼리아리전에서 무릎 부상으로 6주간 결장하게 되었다.
또 같은 팀의 주세페 로시가 득점왕으로 뛰어오르는 동안 계속 부상으로 결장하다가 그 로시도 부상으로 알레산드로 마트리가 땜빵을 오고 또 시간이 지나서야 복귀했다. 그리고 화려하게 복귀해 UEFA 유로파 리그에서 유벤투스의 발목을 잡았으나 이후 다시 부상당했다(...) 사실상 13-14시즌은 거의 다 날려버렸다.
14-15시즌도 초기엔 나오지 못하다 복귀하였다. 그리고 복귀 이후 최악의 폼을 보여주며 있는 기회 없는 기회 다 날리다 리그 13라운드에서 1골 1어시를 하며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그럼에도 공격수들이 다 부상 당해 피렌체는 울며 겨자먹기로 고메즈를 쓰고 있다. 2015년 새해, 꼴지에서 헤메고 있는 파르마전에서 피케이와 함께 많은 기회를 폭풍같이 날려버리며 파르마의 1:0 승리를 이끌며 평점은 무려 4점이나 받았다. 정말 후하게 준 거다. 피오렌티나가 4:3으로 이긴 팔레르모전에서 당연히 골은 못 넣었고 없느니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4점 넣고 이긴 팀 스트라이커가 평점 5.5, 5점을 받는 진귀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키에보전에선 결국 65분에 부상에서 회복한 바바카르와 교체되었고, 그 바바카르는 막판에 결승골을 넣었다. 몬텔라 감독은 부상에서 회복한 바바카르를 주전으로 쓰기로 했고, 고메즈는 사실상 쫒겨나게 생겼다.
바이에른에서 20골을 넘게 넣은 20대 후반의 선수였던 고메즈를 구단 입장에선 큰 돈이지만[7][8] 선수의 활약을 생각하면 많지도 않은 2000만 유로에 영입하였으니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가닥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히 망해버렸고 연봉은 주세페 로시의 2배(425만 유로)나 받는 먹튀가 되었다. 이 정도면 대괄호에 들어갈 만도 하다. 밀란에서 폭풍같은 활약을 한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묻힌(?) 느낌이 있는데 팀에 끼친 해악은 고메즈가 훨씬 크다.
허나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다시 크나큰 부진에 빠졌고 뛰어난 기술을 갖춘 피오렌티나 미들진으로부터 차려준 밥상을 들어 엎는 경우가 많았고 간혹 멀티 골을 넣어서 혹시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날려버렸다. 홈인 아르테미오 프란키에서 벌어진 엘라스 베로나 FC 전에서 교체되자마자 부상으로 실려나간 쿠마 바바카르의 시즌 아웃의 따른 공백을 메꿔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지만 수 많은 기회를 줬음에도 그 스스로 날려버렸으며 세비야 FC와 유로파리그 1차전에서 천금같은 단독 찬스를 날려버리고 더불어서 동료들과 연계 플레이가 최악에다 움직임마저도 실망스런 모습이었고 결국 이 경기 끝으로 빈첸초 몬텔라 감독에게 눈 밖에 나면서 비록 유로파 리그 명단에 이름을 못 올렸지만 리그에서 자기 폼을 되찾은 질라르디노에게 완전 밀려버렸다. 적은 기회를 가졌음에도 꾸준히 공격포인트를 올리면서 팀과 융합이 되어가는 질라르디노와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질라에겐 굴욕인 수준. 비록 이러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코파 이탈리아에서 4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여전히 구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턱부족이었다.
더불어서 유로파 리그도 세비야에게 홈 원정 모두 털려서 탈락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질라르디노가 부상 당해서 교체되지 않는 한 그의 자린 없다. 더구나 이제 14-15시즌은 AC 키에보베로나와의 홈 경기 딱 한 경기 남았다. 몬텔라가 선심 쓰지 않는 한 나올 기회는 사실상 없어 보인다. 본인은 피렌체라는 도시가 맘에 드는 것 같지만 구단은 그를 처분할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마리오 고메즈 이전 그에 버금가는 거액으로 피오렌티나에 왔던 누누 고메스라는 스트라이커가 있었는데 마리오 고메즈처럼 망했던 사례가 있었다.
몬텔라 감독이 피오렌티나와 상당히 좋지 않게 헤어짐에 따라 피오렌티나가 지난 시즌 FC 바젤을 이끌면서 매력적인 축구를 펼친 파울루 소자를 선임함에 따라 고메즈는 새로운 감독 밑에서 잠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수자도 일단 테스트하길 희망했지만 역시 친선 경기에서 자신의 전술에 겉돌면서 그를 보내기로 결정, 2015년 7월 30일 1시즌 임대되었다. 의무적 완전 이적 조항이 달렸으니 사실상 피오렌티나와의 인연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 결정적으로 그는 소자가 원하는 스타일의 스트라이커가 아니었다. 소자는 비록 골을 많이 넣지는 않아도 역동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또한 연계플레이에 능한 스트라이커를 원했지만 피오렌티나 내에선 이런 축구를 펼칠 선수는 주세페 로시가 가장 적격이나 그의 부상 경력이 발목을 잡고 있으며 흑인 특유의 탄력성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쿠마 바바카르가 그 나마 수자가 원하는 스타일의 공격수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바바카르는 탐욕이 좀 있는 편이라 연계 플레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지만... 그리고 지난 시즌 드니프로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면서 유로파 리그 준우승에 한몫을 한 니콜라 칼리니치를 영입했고 칼리니치는 현재 고메즈의 그림자를 완벽하게 지우는 중..
1.4. 베식타스 JK
2015-16 시즌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의 베식타스 JK로 임대이적했다. 과거 슈바벤에서 함께 뛰었던 안드레아스 베크와 재회하기도 했다. 리그에서 33경기 26골, 시즌 총합 41경기 28골을 기록하며 쉬페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9] 고메즈의 활약에 힘입어 팀 역시 쉬페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베식타슈에 포워드로 분류되는 자원은 고메즈를 포함해 젠크 토순 (시즌 총합 43경기 17골), 무스타파 페크테메크 (시즌 총합 12경기 1골), 함자 퀴취쾨일뤼 (시즌 총합 2경기 0골)까지 단 4명으로, 당분간 팀의 주포로 활약할 듯 하다.
그러나 튀르키예 쿠데타 발발로 튀르키예 내 정국이 혼란해졌고, 현재 튀르키예를 떠났다고 한다. 피렌체로 복귀할 가능성도 높다고. 현재 도르트문트 링크도 나고 있다.
1.5. VfL 볼프스부르크
1.5.1. 2016-17시즌
유로에서 준수했던 덕인지 백업 스트라이커를 찾아 헤매는 FC 바르셀로나부터 해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까지 각종 링크란 링크는 다 연결되었는데, 결국 속전속결로 볼프스부르크 이적이 확정되었다! 등번호는 트레이드 마크인 33번.다름슈타트과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클래스를 증명했다. 시즌 후반이 될수록 폼과 결정력이 좋아지고 있다.
2016-17 시즌 26라운드에서는 레버쿠젠을 상대로 경기종료 10분동안 혼자 3골을 몰아넣으며 2:0으로 지고 있던 상황을 3:2로 뒤집어 놓았지만, 카이 하버츠의 골로 인해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 26라운드 종료 후 고메즈는 리그 12호골에 분데스리가 시즌 득점 순위 5위에 올라 있다.
한국시간으로 4월 8일에 열린 2016-17시즌 28라운드에서 팀은 샬케04를 상대로 4:1로 대패했다. 마리오 고메즈가 79분에 성공시킨 페널티킥이 볼프스부르크의 유일한 득점이었다.
2016-17 시즌 29라운드에서는 잉골슈타트를 상대로 1골을 넣으며 팀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29라운드 종료 후 고메즈는 리그 14호골에 분데스리가 시즌 득점 순위는 5위.
2016-17 시즌 32라운드에서는 후반 18분에 1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32라운드 종료 후 고메즈는 리그 15호골에 분데스리가 시즌 득점 순위는 5위.
2016-17 시즌 분데스리가 33라운드에서는 묀헨글라드바흐를 상대로 58분에 동점골을 넣었으며 팀은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시즌을 끝으로 마르세유로 떠난 구스타보의 뒤를 이어 늑대군단의 새 캡틴으로 선임되었다.
1.5.2. 2017-18시즌
캡틴으로 새 시즌을 시작한 고메스는 DFB포칼을 포함해 전반기 대부분의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결과는 그말싫 수준.첫 공격포인트는 리가 5라운드 샬케04와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왔다. 이후 바로 직후 베를린과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키며 두 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 냈다.
이후 7경기 동안 1도움만 추가하며 부진했고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친정팀 복귀를 선언했다.
1.6. VfB 슈투트가르트 2기
1.6.1. 2017-18시즌
2018년 1월 1일, 9년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하였다. 등번호는 27. 혹자는 33번이 어울린다고 하지만 몇 년간 다니엘 긴첵의 셔츠에 새겨있다.[10] 그리고 복귀 이후 폼이 확 올라오면서 팀을 캐리 중이다.
2018년 2월 3일 21라운드에서 직전 소속팀인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득점하였다. 후반 15분 코너킥 상황에서 데니스 아오고의 짧은 패스를 받아 1:1 동점골을 뽑아냈다. 슈바벤 복귀 후 첫 골.
이후 11일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 홈 경기에서 풀타임 활약하며 다니엘 긴첵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2018년 3월 4일 쾰른을 상대로 한 리그 경기에서 혼자 두 골을 넣으며 팀의 3:2 승리에 크게 기여한다.
27라운드 프라이부르크를 상대로 한 리그 경기에서도 혼자 두 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에 크게 기여한다. 첫 골은 프리킥 상황에서 헤딩으로, 두 번째 골은 크로스를 받은 뒤 본인이 슛을 했는데 그것이 골키퍼를 맞고 나왔고 그걸 다시 받아 득점에 성공한다.
1.6.2. 2018-19시즌
2018-19시즌에는 노쇠화로 인해 소속팀처럼 힘들어 하고 있다. 팀은 최악의 경기력으로 16위를 차지해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고, 우니온 베를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후반전 초반 1대1로 비기던 중 오랜만에 황소 드리블로 돌파 후 슛을 날려 행운의 골을 만들어냈다.[11] 하지만 1골을 먹혀 경기는 2대2로 비겼다. 그리고 2차전에서 비기며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인해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노쇠화로 폼이 떨어졌다고 해도 7골로 그해 슈투트가르트 공격진중에 가장 골을 많이 넣은 선수였다.
1.6.3. 2019-20시즌
소속팀이 강등되었지만 팀을 떠나지 않았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주로 교체로 출전 중. 후반기 들어서는 다시 선발로 많이 출전하고있다. 현재 18경기 6골을 기록중이다.시즌이 끝나고 팀을 떠날 것이라고 한다.
2020년 6월 29일 본인의 소속팀 슈투트가르트를 1부 리그로 승격시키고, 은퇴를 선언하였다.
2. 국가대표 경력
2007년 2월 7일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고메즈가 국가대표에 처음 승선됐을 때 팀엔 넘사벽 주전인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버티고 있었다. 루카스 포돌스키처럼 윙에서 뛸 수 없는 고메즈는 벤치에 앉아 있기 일수였고, 소속팀에서의 준수한 활약과는 별개로 뢰브 감독은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는 클로제-포돌스키 투톱 또는 클로제 원톱 체제로 유지하면서 UEFA 유로 2008, 남아공 월드컵에서 클로제에 밀려 벤치에 않는 시간이 많았다. 물론 유로 2008에서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클로제와 투톱으로 짝을 이루었으나 쉬운 기회마저 다 놓치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왼쪽 윙으로 가있던 포돌스키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벤치신세가 되어야 했다.
2.1. UEFA 유로 2012
하지만 UEFA 유로 2012, 고메즈를 쭈욱 주시해왔던 뢰브 감독이 클로제를 빼고 고메즈를 투입하는 전술을 펼쳤고 아니나 다를까 첫번째 포르투갈전에서하지만 방전됐는지, 덴마크전에서는 뮐러의 패스를 흘려서 1어시를 한 것 밖에는 활약이 없었고, 그리스전에선 변화를 준 뢰브 감독이 클로제를 선발 출장시킨다. 그 후 이탈리아전, 고메즈는 왼쪽의 포돌스키와 최악 중에서도 최악의 플레이를 펼치며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폭풍 교체당한다. 결국 팀은 2-1로 이탈리아에게 떡실신 당했다. 이 경기로 인해 독일 팬덤은 클로제를 선발 기용하지 않은 뢰브를 맹비난했고 클로제가 2014년 월드컵 출전을 약속한 현재, 월드컵 때는 벤치를 달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2.2.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그리고 5월 8일 발표된 브라질 월드컵 30인 예비 명단에서 고메즈는 제외되어 벤치에도 앉지 못하게 되었다. 부상 여파가 큰 듯.피오렌티나에서의 부상과 부진의 시간을 벗어나 베식타슈에서 맹활약하며 2015년 11월 6일, 대표팀에 복귀하였다. 이후 11월 14일 프랑스와의 A매치에 오랜만에 출전하였다.
2.3. UEFA 유로 2016
클로제의 은퇴 이후 독일에 워낙 최전방 원톱 자원이 없기도 했고, 고메스 본인의 폼도 준수해서 명단에 승선할 것이라 예상되었고, 그렇게 되었다.
대회 초반에는 뢰브 감독이 마리오 괴체를 폴스 나인으로 기용하면서 벤치멤버였지만 괴체의 경기력이 공기 수준이었고 그 결과 3차전부터 원톱 공격수로 선발 출장하였다. 3차전 북아일랜드 전에서는 뮐러와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골을 뽑아내며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고 16강 슬로바키아 전에서 수비를 달고 다니는 뛰어난 포스트 플레이를 보이며
이후 8강 이탈리아전에서는 외질의 선제골의 기점 역할을 하여 요나스 헥터에게 침투 패스를 넣어주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드락슬러와 교체 아웃되었다. 결국 부상으로 남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고, 4강 프랑스전에서 케디라 & 고메즈, 후멜스 등을 모두 잃어버린 독일은 전반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최전방에서 결정지어주거나 균열을 내줄 공격수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며 0-2로 패배했다.
2.4.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2.4.1. 유럽 예선
2017년 3월 26일 아제르바이잔과의 2018월드컵 예선에서는 요슈아 키미히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넣은 다음 후반 15분에 메수트 외질과 교체됐다. 팀은 4대 1로 승리.2017년 9월 초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 선발 명단에 포함됐다. 체코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한국시간으로 9월 5일 새벽에 열린 노르웨이전에서는 후반 20분에 티모 베르너의 교체 선수로 출전한다. 그는 후반 34분에 요슈아 키미히의 크로스를 받아 다이빙 헤딩골을 성공시킨다. 이 경기에서 독일은 6:0 대승을 거둔다.
현재 고메즈와 같은 타겟맨이 적은 독일로서는 산드로 바그너가 갑툭튀 활약을 보이고 고메즈가 평타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은, 고메즈가 월드컵 무대에 다시금 설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3월 말 브라질, 스페인과의 평가전 명단에 포함됐다.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는 80분 쯤에 티모 베르너의 교체선수로 출전했으나 시간이 짧아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4.2. 본선
2018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선발됐다. 독일이 조별리그 1, 2차전 승리하면 피지컬이 약한 대한민국과의 경기에 원톱으로 선발 출전해서 문전을 휘젓고다닐 가능성이 많았다. 멕시코전에서 후반 34분에 마빈 플라텐하르트의 교체 선수로 출전으나, 결과는 0:1 패배.조별리그 2라운드 스웨덴전에서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드락슬러와 교체되어 들어왔는데 비록 결정적인 골문 앞 찬스를 날리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베르너에 비해 경험많은 노장 스트라이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장기인 피지컬을 활용한 결정적인 헤딩도 날렸으나 로빈 올센의 슈퍼 세이브에 막힌게 아쉬운 부분.
조별리그 한국전에서 후반 13분에 사미 케디라의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22분에 결정적인 헤딩 슛을 날렸지만 레온 고레츠카가 그랬던 것처럼 조현우 골키퍼에게 막혔다. 후반 41분에도 결정적인 헤딩 슛을 날렸지만 많이 빗나갔다. 그리고 저 2개를 제외하고는 개발슛을 마구 난사해대면서 독일 탈락에 크게 일조했다. 심지어 토니 크로스가 찬 공이 니클라스 쥘레의 다리 사이로 정확하게 지나가 김영권한테 갔을 때는 토니 크로스, 쥘레와 함께 벙쪄서 실점을 직감한 듯 막을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경기 종료 후에는 충격이 컸는지 한참을 그라운드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충격적인 조별리그 탈락을 눈 앞에서 손수 본 이후 결국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고메즈로서는 월드컵은 여러모로 아쉬울 듯하다. 2007년 A매치 데뷔이후 굵직굵직한 큰 대회에 쭉 대표팀에 뽑혔고 2014 브라질 월드컵 딱 한번만 부상으로 뛰지 못했는데, 팀은 우승을 해 버렸고 절치부심해서 나온 다음 월드컵에선 광탈을 해 버렸으니...
[1] 현재는 해리 케인으로 바뀌었다.[2] 두 선수 다 많은 활동량, 투지, 적극적인 스위칭 등을 무기로 하는 선수로 당시 바이에른의 스타일과 고메즈가 아주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로베리도 완전 가동하는 법이 드물어서...[3] 사실 훈이 페널티킥 골을 굉장히 많이 넣은것도 득점왕에 크게 작용했다.[4] 1위는 클라스 얀 훈텔라르. 하지만 위에 서술했듯 페널티킥골이 많았다. 어쨌든 순위는..[5] 1위는 포칼 결승 헤트트릭으로 득점순위가 역전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6] 1위는 하필 당시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던 리오넬 메시.[7] 당시 피오렌티나 역사상 2번째로 많은 이적료를 지불한 선수이다.[8] 2014년 기준 29세였다.[9] 2위는 리그에서 31경기 20골을 기록한 안탈리아스포르 소속의 사무엘 에투.[10] 긴첵이 이적했지만 33번을 골키퍼인 파비안 브레틀로가 가져갔다.[11] 찬 공이 1차로 마르빈 프리드리히의 발을 맞고 얼굴을 맞은뒤 역동작이 걸린 골키퍼 라파우 기키비츠를 지나 골라인을 넘었다.